드디어 다시 떠나게 되는 하루 전날이다. 나는 오늘 할 일이 많았다. 우선 그제까지 입고 있었던, 아니 오늘까지 입고 있었던 모든 옷들을 다시 세탁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동생 옷만 세탁해주고 내 옷은 코인 세탁을 하라고 했다. 그게 서운하지는 않다.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행동을 보아서는 그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간혹 과한 관심을 보여주는가 싶다가도 자신은 외국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쿨 한 사람으로 변했다면서 다시 쿨 한 여자로 변했다. 여행 동안 손빨래로 열심히 다져 놓은 나의 실력은 잠시 접어 두고 코인 세탁소로 향했다.

 

 

 

두 시간 만에 세탁이 끝이 났다. 이번에는 핸드폰을 충전을 해야 했다. 이미 데이터가 다 소진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충전하지 않으면 구글의 노예로 살아갈 수 가 없다. 나는 이번 여행만큼은 구글을 사랑하게 됐다. 구글이 없으면 절대로 여행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핸드폰 충전을 하기위해 매장에 갔더니 그녀가 나에게 한달짜리로 15유로짜리를 줬다. 처음에는 10유로 였는데 다음부터는 15유로 이고, 오늘 문자를 받았는데 다음에는 18유로짜리를 해야 한단다. 우리 것이 마음에 들어 계속 쓰려면 돈을 더 내라니. 이상한 시스템이다. 계속 이용하면 갂아줘야 하는것 아닌가?

 

 

 

매장에서 돈을 지불 했다. 전에는 번호도 눌러서 설치도 다 해주더니 이번에는 나보고 하란다. 그녀가 내민 종이를 보니 대충 어떻게 하는지 알겠다. 가는 도중에 해 보았는데 이게 웬일인지 카톡은 3G로 아주 천천히 되는데 네이버나 구글은 열리지 않는 것이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는. 여권에 넣어 놓은 핀 번호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연락 했지만 카톡을 받지 않았다. 결국 다시 집으로 가야 했다.

집에서 다시 핸드폰 전원을 켜 보았지만, 여전히 네이버는 안 됐다. 핸드폰에 입력하라는 번호는 계속 입력했지만, 젠장 독일어로만 나오고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씨름을 하다가 후배 남편에게 독어로 온 내용의 문자를 보여주며 무슨 말인지 물어 봤더니 “유효하지 않은 번호”라고 했다. 아니 유효하지 않다니. 이게 무슨 경운가. 난 지금 이 충전 번호를 산지가 두 시간도 안됐는데…….덜컥 겁이 나서 나는 트램을 타고 매장으로 향했다. 나에게 번호를 줬던 여직원은 나에게 되는 것이라고 얘기를 했고, 나는 당장 아무것도 3G로는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니까 되는 거라고만 말하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하…….내가 영어를 더 잘했으면 막 뭐라고 더 따지고 싶은데 이게, 언어의 한계인가 봐…….사용 할 수 없다고만 계속 얘기하다가 그녀와 나의 언어 단절로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 왔다.

 

 

 

우울 했다.

내가 이곳에 왜 와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따질 수 있을 정도의 영어가 안 되는 걸까? 혼자 욕을 랩처럼 읊조리며 트램을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 왔더니 그녀는 잘 해결이 됐는지 신경도 써주지를 않는다. 사실 나는 그녀가 내게 코인 세탁을 하라고 했을땐 서운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정말 서운했다. 언어도 잘 안되는 내가 급하게 나가서 땀을 뻘뻘 흘리고 들어 온 것을 봤다면 궁금 하지 않을까?

 

 

나는 카셀에서 만난 지인에게 sos를 보냈다. 사건을 설명했고 독어로 문장이 뜬걸 번역 했는데도 사실 모르겠다고 하니 그녀가 이 번호가 유효하지 않는게 아니구요…….이미 설정이 다 된 거래요, 라고 설명을 해 줬다. 그때 나는 후배의 남편이 독일에서 10년을 살았음에도 번역에 문제가 있거나 아님 그가 독일어를 아직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지인의 사촌에게도 똑같은 내용을 카톡으로 전달했더니 그녀가 네이버 블로그에 충전 유의 사항이 있는 포스팅을 찾아줬다. 그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서 내 핸드폰의 충전 만료일이 8월 8일이니, 충전을 해도 9일부터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너무나 간단하게 다시 알게 된 일이다. 이런 설명을 사실 좀더 잘 해줬다면 나는 알아 들었을 것인데 왜 매장 직원도 그렇게 퉁명스럽게 얘기를 했을까? 아, 오늘 하루 비도 우중충하게 내리는데 정말 일진이 사납다. 하지만 매장 직원도 답답했을 것이고 나도 그랬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말 못하는 소비자인 나는 정말 벙어리 냉가슴으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같이 살고 있는 그녀가 아니라 나와 빠른 기차로 두 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그녀와 나와 4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카셀의 그녀였다는 것이 씁쓸했다. 두 사람에게 SOS를 했을 때 그녀들이 핸드폰 데이터가 터지지 않으면 남은 여행에 지장이 있을 그 순간들에 안타까워 해줬다. 그녀들은 나의 남은 여행을 응원해 줬고, 격려해줬다. 그리고 만약 내일 안 되면 자신들이 어떻게든 돕겠다며 와이파이 잡히는 곳에서 연락을 하라고 했다.

 

 

 

독일에 와서 이제 석 달이 접어드는 이 순간, 나는 오늘 처음으로 울었다. 나와 두 시간, 네 시간 떨어져 있는 그녀들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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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8-09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순간엔 정말 너무 절망스러운데 , 지나고 보면 참 별거 아닌게 사람을 참 바보로 만들고 무기력하게 되고 그래요 . 조금 지나 오늘 이 날을 누군가에게 추억담으로 얘기해주게 될 날이 오시겠죠? 먼 곳에 있어도 , 마음은 가까이 ~ 토닥 토닥 입니다!^^

오후즈음 2017-08-09 04: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멘달이 많이 약해져서 그런지 저는 이런 위로의 말에 가슴이 뜨뜻해집니다. ㅠㅠ

2017-08-09 0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9 0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9 0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7-08-0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소한 일들이 엄청난 난관으로 느껴질 때가 생기더라구요. 물론 가끔씩은 사소한 실수로 진짜로 엄청난 난관에 봉착할 때도 있고요. 저는 런던에서 사진 찍는데 열중하다가 그만 ‘함께 타고 다니던 투어 버스‘가 휭~ 사라져버린 걸 경험한 적도 있었고, 뉴욕에선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당일 아침에 ‘호텔 앞에서 잠깐 기념촬영‘ 하다가 손가방(여권, 지갑, 온갖 귀중품들이 다 들어 있던)을 도둑맞아 절망에 빠진 일행도 봤답니다.(최소한 15일 이상은 걸려야 귀국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카이로 공항에선 함께 여행 다녔던 의사 부부의 ‘대형 트렁크‘가 통째로 사라진 걸 찾느라 하루가 꼬박 걸린 경우도 봤고요. 그래도 다 멀쩡하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오게 되더라고요.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그려려니~‘ 하시고, 의연하게 대처하시길요. 힘들어 하고 좌절할 수록 결국 나만 손해더라구요.

오후즈음 2017-08-09 12:40   좋아요 0 | URL
타지에 있으니 사실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샘이 열릴때가 있더라구요. 지나보면 다 별것 아닌 일이겠지요.
마음의 평정을 찾고 다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