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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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찾기 위해 블로그를 뒤지다가 한번은 이 사람은 직업이 뭘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매월 어딘가를 떠나서 올리는 사진을 보면서 부러움에 그녀의 삶이 나의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이 매일 즐거울까? 생각해 보니 여행은 하는 동안도 즐거웠지만 준비하는 그 과정의 두근거림 때문에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과정 없이 매일 이어지는 여행이 좋기만 할까.







그녀가 선택한 아이슬란드에 대한 정보라곤 오로지 몇 년 전 여행프로에서 본 오로라에 대한 환상밖에 없다. 언젠가 나도 저런 오로라를 꼭 보리라. 그것이 나의 원대한 꿈이라고 지인들에게 떠들고 다녔는데 그녀는 나보다 훨씬 먼저 오로라가 아닌 그녀의 텅 빈 삶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떠났다.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 단돈 370만원을 가지고 70여일을 히치하이킹과 야영만으로 버텼다는 그녀의 여행기는 그동안 민박과 호스텔 생활 없이 오로지 호텔과 Airb&b만으로만 여행을 한 나에게는 큰 자극이었다. 남과 함께 화장실을 쓰지 못하고 잠자리도 함께 하지 못하는 나름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녀의 장기 여행에 많은 자극이 되었다. 유난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 못 하는 것이라는 것을 얼마 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까다로운 사람인줄 알았는데, 불편함을 못 견디는 개인주의자 였던 것이다. 물론 그녀처럼 꼭 이런 여행만은 옳은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여행은 나름의 선택이고 그것을 즐기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여행기를 읽고 그간의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았다.

그녀의 여행이 특별해 보였던 것은 단지 남들은 일주일에 다 쓸 수 있다는 부족한 여행경비와 야영, 히치하이킹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가 와서 마르지 않은 축축하게 젖은 양말을 신고 다니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나서는 그 고단한 시간을 참으며 견디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그녀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우선 젖은 양말을 다시 신고 비바람을 맞으며 하이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봤다. 그러면 그녀처럼 그 고단한 밤은 또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내일도 나일질것 없는 그런 악천후 날씨를 견디며 계획했던 코스를 여행 할 수 있을까? 매일 식빵 두 쪽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젖은 신발을 매번 아무렇지 않게 신고 갈 자신도 없다. 그리고 그녀만큼 자신 없는 영어로 친구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이 불가능 할 것 같다는 것을 해냈다. 살인적인 물가 따위 저리 가버리라며 370만원으로 71일의 히치하이킹을 완성 하였다. 심지어 그녀는 여행이 끝나기 전에 200여만 원이나 남았다고 하지 않았나? 나라면 분명 남은 돈을 생각하며 식빵이 아닌 훨씬 맛있는 고 단백으로 식사를 했을 것이고 야영이 아닌 따뜻한 호텔로 한번쯤은 숙박을 해결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호사를 모두 하지 않았다. 평생 작가로 살지 못할 것 같다는 그녀는 서른세 번째로 그녀에게 작가로 허락을 해준 책을 출판했으며 아이슬란드의 여행을 마쳤고, 그녀에게 들은 그녀의 아이들의 얘기를 통해 그녀 스스로 자신의 응어리진 부분을 풀어 내지 않았을까.

‘행복지수’ 3위권에 드는 아이슬란드에도 슬픔에 잠겨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제일 비참하게 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내가 아닌 상대방을 위로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위로 하려 했던 그의 마른 등을 토닥였을 그 순간을 생각하니 나는 문득 내게 등을 졌던 다른 이들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그들의 등을 나는 토닥여 줬을까.

“먹구름과 파란 하늘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오후 6시, 마침내 오늘 나의 목적지인 아프나르스타피에 도착했다. 해안가의 작은 마을이 있었다. 헤어질 때 얄티가 악수를 청해 왔다. 나는 살짝 그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페타 레다스트(잘될 거예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P261

그간 여행을 통해 남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꼈다. 나는 이렇게 뭔가를 기억하며 그곳을 떠나 왔던 적이 있었던가. 꼭 어떤 기록물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삼 그저 남의 나라 갔다는 것으로 즐겁게 여행을 하고 왔다는 생각에 그간의 여행에게 좀 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다시 산다면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이라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고문 따위 붙들지 말아야지. 아이슬란드 사람들처럼 ‘내일’, ‘다음’ 따위의 단어도 버려야지. 수시로 땅속에서 불이 솟구쳐 오르고 땅이 뒤흔들리고 뒤집히는 걸 보며 사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겐 ‘지금’이 가장 중요한 ‘내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나.” P444

독일에 온지 이제 일주일에 접어든 나는 매일 뭔가를 꼭 이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하루가 피곤했다.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서 쌍커플이 생길 정도로 피곤에 절어있다. 비싼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그 시간만큼 뭔가 보상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 읽히는 책도 꾸역꾸역 읽어 내려갔던 어떤 날 마주한 이 책을 통해 내일 뭘 할까보다 오늘을 가장 충실하게 채워야 할 아침을 맞이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나도 생뚱맞은 곳에 와 있다. 물론 그녀보다 나는 훨씬 편한 곳에 있고, 매일 아침을 식빵 두 쪽으로 해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도 아니고, 언제든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돈도 있다. 아침마다 눈 뜨며 오늘 뭘 하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다를 뿐이다. 그녀는 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녀처럼 무거운 등을 지고 가야 할 배낭이 없지만, 한국에서 떠나 올 때 짊어지고 온 가슴의 상흔들이 매일 밤마다 찾아와 괴롭히고 있다. 그녀가 귀국하며 시원하게 벗어 버릴 수 있던 짐처럼 내게도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르길 기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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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 여행, 다 잘 될 겁니다! ^^

오후즈음 2017-06-24 20: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시차 적응이 이제 끝이 나서 덧글을 답니다.^^

오거서 2017-06-1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여행이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요.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낯선 말… 등이 새로운 자극이 되겠네요.

오후즈음 2017-06-24 20:57   좋아요 0 | URL
꼭 그렇게 이번 독일 장기 여행이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