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도착하고 다음날 유심칩을 사서 넣었으니 내 핸드폰은 한국에서 온 전화를 받을 수 없다. 번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톡에 문자가 아닌 카톡으로 연락을 해 달라고 썼더니 새벽에 (나는 새벽이지만 그들은 오후 한 낮이었던) 연락이 왔다.





“독일은 왜 갔어?”

여기 저기 놀러 다닌다고 생각하는 지인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지만, 3개월이나 있겠다고 하면 독일에 왜 갔냐고 물어 본다. 처음에는 다 설명을 했지만 몇 번 얘기를 하고 나니 지겨워졌다. 왜 갔냐고? 그냥 온 거라고 하면 다들 너무 부러워 하니까 좀 더 사실적인 얘기를 해주면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잘 지내다가 오렴이라고 답해준다.

독일에는 나의 대학 후배가 살고 있다.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을 했다. 그의 직업이 독일에 있으니 당연히 독일에 살아야 한다. 그녀와 몇 달 전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흔쾌히 나에게 독일로 석 달을 머물다가 가라고 했다. 한번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보는 것은 어때요? 그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한 달 이상 머물렀던 적이 없었다. 매번 어떤 여행이 끝이 나면 그곳에서 더 오래 머물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머물고 싶었던 도시는 아니지만, 새로운 곳이니 더욱더 가고 싶었다.

그래도 일주일 이상은 고민을 했다. 비행기 값이 문제가 아니라 혼자가 아닌 후배의 남편도 있는 곳에 석 달이나 있을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고민보다 훨씬 더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결국 새벽녘 대한항공 직항으로 비행기를 결제했다.

그리고 그리스를 다녀오고 홍콩을 갔다 온 삼일 후에 독일로 떠났다. 그리스를 다녀 올 때는 정말 짐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로 단출하게 짐을 싸기로 했다. 12일 이상 있었던 그리스에서는 캐리어가 23키로가 넘어 등에 지고 에코백에 넣고 공항에서 난리가 있었는데, 삼개월이나 있을 독일에서의 짐을 너무 간소했다. 물론 선물과 후배가 읽을 책을 싸서 오느라 좀 많았지만 그걸 빼면 정말로 간소한 짐이다.

 

 

 

 

 

 

 

 


내 짐을 넣으라고 책장을 비워 줬는데, 다 넣고 다니 이만큼 밖에 없다. 이렇게 간소하게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떠나오고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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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6-1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쪼록 ‘짐‘은 무겁더라도 마음만은 가볍게 여행 즐기시길요~

여행과 짐 말씀을 하시니 문득 김수영 시인의 ‘오래된 여행가방‘ 얘기가 떠오릅니다. 그 시에 딸렸던 곽재구 시인의 글과 함께요... 작은 주머니보다 더 작은 댓글창이지만 가위로 ‘잘라내어‘ 여기에 큼지막하게 ‘오려붙여‘ 봅니다.

* * *

오래된 여행가방

김수영(金秀映)

스무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기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를 낳고 먼 섬에 있는 친구나, 소풍날 빈방에 홀로 남겨진 내 짝 홍도, 애인도 아니면서 삼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남자,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삼촌···

추억이란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잊고 있다가 문득 가슴 저려지는 것이다.

이따금 다락 구석에서 먼지만 풀썩이는 낡은 가방을 꺼낼 때마다 나를 태운 기차는 자그락거리며 침목을 밟고 간다. 그러나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주워온 돌들은 어느 강에서 온 것인지, 곱게 말린 꽃들은 어느 들판에서 왔는지.

어느 외딴 간이역에서 빈자리를 남긴 채 내려버린 세월들. 저 길이 나를 잠시 내려놓은 것인지, 외길로 뻗어 있는 레일을 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혼자이고 이제 어디로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ㅡ ㅡ ㅡ ㅡ ㅡ

˝신이 최초의 일주일 동안 창조한 것은 빛이 아니라 여행이었다˝고 말한 이는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 풀러스이다. 한 인간은 한 생애 동안 하나의 여행가방을 지닌다. 길 위에서 여행가방은 점점 낡아가며 때로는 쓸모없는 욕망의 꿈들로 부푼다. 점점 누추해져 가는, 점점 비릿해져 가는 여행가방이 아닌, 꽃향기가 솔솔 풍겨 나오는 여행가방, 구름이나 바람이 한참 머물다 가고 싶은 여행가방, 지혜와 신념과 헌신의 시간들이 묵은 때 속에 반질반질 드러나는 여행가방··· 길 위에서 오래 아파하며 그 여행가방의 주인이 된 이의 영혼이여, 축복 있으라.

- 곽재구 엮음,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중에서


오후즈음 2017-06-24 21:01   좋아요 1 | URL
시차 적응이 이제야 완료되어 덧글을 이제야 답니다.
넘 감동적이네요. 저도 가벼운 마음을 지니고 여행을 떠나도록 하려구요.
그런데 늘 마음도 몸도 짐도 너무 무겁네요.....언제쯤 가벼워 질 수 있을까요?

oren 2017-06-24 21:37   좋아요 0 | URL
시차 적응까지 마쳤으니 이제부턴 한결 여유롭고 즐거운 여행 만끽하시길요^^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궁금한 ‘독일 여행기‘도 계속 올려주시구요~

서니데이 2017-06-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여행 잘 다녀오세요.^^

오후즈음 2017-06-24 21:01   좋아요 1 | URL
넵, 감사합니다. ^^ (넘 늦은 답변이죠? 시차 적응이 이제야 완료 됐네요.....참 오래 걸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