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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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라며 사달라는 조카의 소원으로 백화점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적당한 가격과 비주얼이 있는 레고를 하나 사왔다. 같이 맞춰 보자며 한참 조립을 했지만 성질 급한 조카는 빨리 배가 만들어지지 않아 답답해했다. 빨리 가지고 놀고 싶은데 완제품이 아닌 조립 제품을 사가지고 왔다고 동생의 타박을 받으며 한참 조립을 하는데, 조카가 땀 흘리며 애쓰는 이모를 걱정하며 말했던 단어 하나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립을 잘하지 않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며 기다림을 강조하는 나의 말에 조카는 배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물어 보았다. 나는 배가 물어 빠진다고 다시 설명해주니 그때 조카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세월호처럼?”




그때, 나는 한 달 동안 텔레비전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던 그 단어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 나를 발견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랬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빨리 되어야 하고 자신이 몰았던 배를 버리고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선장이 처벌 받아야 하며 아직 물속에 남아 있는 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남겨진 숫자의 아픈 사람들이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했다. 그리고 저 너머로 넘어가 있는 진실이 우리 앞에 도착하기만을 원했던 그 순간을 이렇게 빨리 잊고 말았다. 어쩜 세월호는 한 나라의 가장 가슴 아픈 현실과 직면한 슬픔이면서 나에게 직접 닿지 않는 아픔이란 생각에 나는 너무 쉽게 잊었던 것일까.




“ 내가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알았다. ” P 19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나처럼, 한 나라를 책임질 수장은 배를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선장처럼 책임감 없는 신년 새해 연설을 했다. 그분도 나처럼 자신의 가슴 아픈 고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두 손 꼭 잡고 당신들의 아픔을 안다는 그때의 잠깐의 모습은 진실이었을지 몰라도 너무 쉽게 그 눈물 자국을 지워버렸다.


나와 같이 쉽게 잊는 사람을 위해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소설가, 시인, 문학 평론가, 언론학자와 정신 분석학자까지 쉽게 잊으면 안 될 그날의 얘기를 다시 들려주고 있다. 이토록 얇은 책이 이렇게 무거운 얘기로 나에게 말해줬다. 나의 망각의 곡선 끝에 자리 잡은 그날의 일들을 다시 얘기해주고 있었다. 너무 쉽게 잊으면 안 된다고 혹은 잘못된 진실이었다면 다시 고개를 들어 차디찬 겨울에도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는 그들의 시린 손을 기억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분은 분명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고 최선을 다해 구조에 나서겠다고 말했었다. 배의 꼬리가 점점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기도했을 것이다. 정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구조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단 한명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살아오지 못했다. 차디찬 바다 속에서 온 몸의 온기를 다 빼앗기고서야 모습을 보인 그들을 위해 남겨진 사람들은 진실에, 거짓된 눈물에서 눈 떠야 하지 않을까?



“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P65 / 박민규_ 눈먼 자들의 국가




어느 날 세월호에 관련된 기사를 읽으며 분노했던 마음이 덧글을 읽으며 우울해졌다. 어떤 이가 써 놓은 덧글에는 이제 그만 세월호 얘기를 하라고 했다. 이정도 했으면 됐다고, 지겹다고 했다. 대체 지금의 일이 어느 정도껏 해야 하는 일인지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한 달, 석 달, 일 년이 지나면 그 정도껏에 해당이 되는 것일까. 남이 죽는 것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라지만 지겹다는 말은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P230)" 우리가 예의를 갖춰 잊지 않아야 할 때가 지금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실이 수면 위로 모두 올라올 때까지, 그 시간이 무거운 어깨를 누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함께 지켜봐 줘야 하는 예의를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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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4 0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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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4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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