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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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평이나 혹은 영화 비평을 담은 책을 읽을 때는 고민스럽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이나 영화를 평할 때는 공감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읽거나 보았던 것을 같이 공유하며 논할 때 더 재미있게 다가오니, 낯선 영화나 책이 나오면 흥미가 생기거나 그렇지 않을때가 있다. 씨네 21에서 약 2년 동안 연재되었던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영화 비평은 매우 신선했다. 좋아 했던 영화들의 비평에 집중해서 읽고 즐겼다. 다만, 2014년에 출판된 책이라 이 책에서 고민스러운 부분이 몇 개가 있긴 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영화는 나의 일본 영화중 가장 먹먹했던 영화였다. 청춘을 겪으며 고통의 순간을 지나가는 성장통과 같았던 그들의 한때의 시절이 아름다웠고 가슴 아팠다.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사랑을 구걸할 것 같지만 그녀의 사랑은 당당했고, 구차하지 않았다. 나 같은 장애인이 어떻게 정상인 너와 사랑을 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나는 누군가와 사랑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던, 그래서 어떤 청춘의 순간에 외곽에 나와 있던 쓰네오와 사랑을 했고 많은 이들이 그렇듯 이별이 있었을 뿐이다. 그냥, 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을 뿐인데도 왜 조제의 사랑에는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일까?



“조제의 집을 떠나며 쓰네오가 한발 늦게 오열하는 장면이 그토록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것이 죄지은 자의 참회의 눈물이 아니라, 실패한 자의 통한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죄가 아닌 실패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조제가 쓰네오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는 비난하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더 분명해지는 것이지만, 그녀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였기 때문이다. 조제는 성공했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아름다운 힘이다.” 23쪽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냥,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여 동생을 살인하고도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감정 없는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엄마의 심정으로만 영화가 눈에 들어 왔고, 사이코패스를 낳은 엄마의 모진 인생이 불쌍했지만 신형철의 평을 읽으며 사랑이라는 뒤편에 있는 이름을 보았다. 처음부터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닥친 임신은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라도 막상 아이를 낳으면 생길 것 같은 모성애는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들과 그녀 사이에서 팽팽하게 놓인 마음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아들과의 관계를 그저 길가다가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만들어 놓았던 것일까? 하지만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모두 다 케빈처럼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케빈은 학교와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특별하게 나쁘지도 않았고 평범했다. 그저 평범하게 학교를 가고 아이들과 놀았던 십대였다. 힘들었던 관계는 오로지 엄마, 에바일 뿐이다. 두 사람 관계에서 가장 불행하게 보이는 것은 에바, 엄마이지만 케빈을 향한 엄마는 큰 모성애가 없을 뿐 아니라 애정도 없었다.



“이것은 그저 서로를 ‘정상적으로’ 사랑하는 데 실패한 두 사람의 이야기다. 한 사람은 덜 사랑했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너무 사랑했다.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둘은 노력했다. 엄마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척했고, 아들은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척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파국이었다. 이 영화는 둘 모두를 기소하는 데 실패한다.” 55 쪽



그가 영화를 보는 동안도 괴로웠다고 했던 김기덕의 ‘뫼비우스’의 평을 읽는 동안도 괴로웠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이렇게 사실적인 평을 읽고 나면 정신이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리지 않아도 머릿속을 떠다니는 영상의 잔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독의 작품에, 그는 걸작이라는 말을 했지만 2018년에 있는 그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가끔 작품과 작가의 도덕성을 같이 놓고 그 작품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작품으로 본다면 분명 걸작임이겠지만, 인간적인 도덕성이 없는 자가 만들어 놓은 작품을 좋아해야 할까.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앞으로 김기덕, 홍상수의 영화들은 불편할 것이고 앞으로 나는 보지 않을 것이다. 우디 앨런이 훌륭한 감독일지 모르겠지만, 입양한 자신의 딸과 열아홉 살 때부터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팩트이고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면, 이런 정확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를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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