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처럼 소통하라 - 편지로 상대의 마음을 얻은 옛사람들의 소통 비결
정창권 지음 / 사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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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그리움을 낳았다.[정조처럼 소통하라 - 정창권]

 

 

 

이메일이 생기면서 편지를 쓰는 일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이메일이 생길 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찾아 편지를 보내셨다. 제자가 스승을 찾아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찾으셨다. 그날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동안 메일 확인하고 너무 놀란 마음에 바로 답장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오늘 보낸 메일을 바로 확인하고 답장을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즐거워 하셨다. 그간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몇 안 되는 아끼는 제자라는 사랑고백도 받고, 선생님께서 낳으신 딸들과 함께 저녁 식사도 약속했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와도 실시간 메일이 가능한 시대에 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메일을 보내서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그리움을 쏟아 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메일도 보내지 않고 인터넷 SNS로 소식을 보거나 메신저로 안부를 나누다 보니 오랜 시절 나눴던 편지는 그 순간들이 아득하게 그리워진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실시간 소식을 나눌 매체가 없으니 오직 편지 밖에 없었다. 편지로 많은 소통을 다룬 [정조처럼 소통하라] 책에는 몰랐던 이들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정조부터 박지원, 이순신, 정약용 그리고 명성황후까지 많은 이들이 편지로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하고 소통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정조는 편지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달인이었다. 그는 신하들에게도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에는 그의 마음을 솔직하게 녹아냈다. 그의 편지를 받아 본 신하들은 왕의 권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여 공감을 만들어 냈다. 자신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심환지에게도 비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사를 논하고 정조의 유쾌한 언어 소통 능력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선시대에 드물게 성리학을 공부한 강정일당이라는 인물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녀가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며 공부를 시키고 게을리 하면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다독이고 급한 성질로 화를 잘 내는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 성품의 못남을 지적했다. 그녀가 남편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한집에 살면서 쪽지 한통으로 남편에게 언쟁을 높이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런 현명한 아내가 어디 있을까? 편지로 남편의 잘한 점을 많이 칭찬해주며 남편의 기를 살려 주고 못난 점을 편지로 생각할 순간을 만들어 줬다.

 

 

 

“조금 전에는 무슨 일로 사람을 그리 심하게 꾸짖었는지요? 과중한 책망이 아닙니까? 안색이나 언어는 군자가 더욱 마땅히 수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남에게 따뜻하고 공손함이여, 아, 덕성의 바탕이라네!” 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남을 심히 꾸짖을 때는 자못 온화한 기운이 없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52쪽

 

 

 

많은 이들에겐 수많은 책을 쓰고 여러 기술적 업적을 남긴 실학자 정약용은 유배를 가며 자신의 가족이 폐족이 되었음에도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길 일렀다. 자신의 아들에게도 수많은 공부를 하길 원했고 멀리서 그것이 못 마땅해 보이면 유배지로 내려와 자신의 밑에서 공부를 시켰다. 그는 엄격하고 깐깐한 아버지였으며 학자였지만 유배지에서 들인 첩과 그 사이에서 낳은 딸에겐 모진 아버지였다.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편지를 보내 소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배가 끝나 다시 돌아가는 길에 유배지에서 낳은 딸과 첩은 두고 떠났으며 몇 년 후 찾아 왔을 때도 못 본척했으며 단 한 번도 그 두 여자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때로는 그의 업적이 이런 일화 하나로 인간적인부분에서는 절대로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된다. 그가 낳은 업적이 인격과는 다른 부분인 것인가 의문이 든다. 이런 소통인 부분을 들여다보면 그 위인들이 다소 다르게 보인다. 위인들은 뭔가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면에 그들의 약한 부분들이 나타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연암 박지원은 초상화로 보면 강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손수 반찬을 만들어 자식들을 먹이고, 이른 나이에 부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끝내 더 이상 부인을 맞거나 첩을 들이지도 않고 부인에 대한 애도하는 마음을 이어 갔다.

 

 

“소통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좋은 말이나 행동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것 역시 불통인 것이다. 불통이란 대개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앞에서 살펴본 김훈의 경우처럼 계속해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법이다.” 242쪽

 

 

조선시대보다 소통 할 수 있는 매개체가 훨씬 많은 세상이지만 그때보다 더 못한 소통의 우물에 살고 있다. 독일에 머물며 도시가 바뀔 때 지인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그때 지인들에게 도장이 찍힌 엽서를 받아본 기억이 몇 년 만이라며 즐거워했다. 때로는 보내는 마음과 받는 마음의 시간이 더딜지라도 그 시간을 기다리며 더 그리워지는 마음이 증폭되는 것 같다. 그렇게 소통을 하는 마음을 넓혀 갈 수 있었던 지난날들을 떠 올리며 또 편지를 써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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