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선비 - 오늘의 동양과 서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혜로운 선비는 평소에 서류를 잘 정리해둔다. 임기가 끝난 그다음 날 소리 없이 관아를 떠나는 것은 맑은 선비의 법도다. 모든 정부를 투명하고 바르게 마감하여, 절대 이러쿵저러쿵 잡음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지혜 있는 선비가 할 일이다.” 5쪽

 

 

 

“중세의 기사도와 신사도는 어떻게 서구 시민사회의 교양으로 부활했는가?”

“신사의 길과 선비의 길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저자는 이런 물음으로 책을 집필했을 것으로 본다. 비슷하면서 다른, 다른 시대와 세계에 놓은 두 개의 관점을 연결하고 비교 분석하고 싶어 했지만, 연결 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조선의 선비와 서양 중세 시대에 있었던 기사에서 그리고 신사로 이어지는 역사의 한 굴레는 저자들에게 흥미를 주기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그 갈래의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부분도 많았던 것이 이 책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 등장한 신사도가 19세기로 이어지면서 그 부분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머물지 않고 다른 영역까지 침범했다. 특히 스포츠에서 그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 스포츠맨십 교육을 유난히 강조한 학교는 영국의 퍼블릭스쿨이었다. 중세 기사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 퍼블릭스쿨에서는 스포츠맨십을 젠틀맨십, 곧 신사도의 실천으로 간주했다. 청소년들이 신사다운 성품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교과목이 스포츠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 페어플레이란 곧 신사도였고, 그 근본정신은 기사도에 맞닿았다. ” 102쪽

 

 

우리가 선비라고 생각하는 대상은 어떤 사람들일까. 곧은 절개와 청렴은 기상을 갖고 스스로를 바로 잡기 위해 애를 썼던 사람일 텐데 그 시대에 있었던 그 많던 선비들은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 가치와 판단도 달라지겠지만 기본 정신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을 살피면 많이 아쉬운 요즘이다.

 

 

“선비들에게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폐쇄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비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점이 있다. 선비에게는 물질적 유혹으로 꺾지 못할 정도 강직함이 있었다. 제 한 몸의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여길 줄 아는 큰 뜻이 있었다. 공동체를 향한 헌신의 열정이 있었가.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과 우주자연을 하나로 꿰뚫는 유기적 인식이 있었다. 이기심과 탐욕이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서 더욱 그러한가. 선비의 청고한 기상. 그의 호연함이 그리울 때가 적지 않다. ” 157쪽

 

 

이 책의 서평을 쓰는 날 우연치 않게 좋아하는 한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가 선비와 같은 기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해악적인 그 말과 언어에 늘 감탄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죽음을 앞에 두고 가슴이 아파 하루 종일 눈물이 났다. 물질적 유혹을 꺾으며 살아가고자 했던 선비의 정신을 갖고 있었던 그는 그것을 지키지 못한 마음의 부끄러움을 그렇게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나 묻고 싶었지만, 이제 그에게 그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다. 부디, 이름 없는 그 세상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지내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