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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 영화관 소설집 ㅣ 꿈꾸는돌 34
조예은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0월
평점 :
2016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가 재개봉했던 때가. 처음 작품이 상영되었을 당시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혼자 영화관에 가볼 용기가 나지 않기도 했고, 어쩐지 멜로 영화를 본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13년 만에 재개봉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건 꼭 보고 말겠단 다짐을 했었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처음 만나게 된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도 오랫동안 귓가에 그 첼로 곡이 맴돌았다. 두오모 위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시가지가 아른거리고, 미처 받아적지 못한 대사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뒤 지금까지 피렌체에 가보는 것이 버킷리스트를 차지하고 있고, 영화관은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영화관의 매력을 접하고 나니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무조건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영화관이기에 느낄 수 있는 온전한 몰입감이 좋았고, 영화를 보고 나올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라던가, 짙은 여운과 함께 전해지는 뭉클함이 좋았다. 그래서 책 속에서 그려진 영화관의 다양한 모습에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특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이자 신비로운 공간으로 그려질 때가 그러했다. 나 역시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가장 마음 편하게 찾는 장소가 영화관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의 깊은 어둠 속에서 오직 영화 속 세계와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단절감이 좋았고,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다.
내가 실제로 영화관에서 신비한 일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왠지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은, 혹은 그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영화가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실재하는 다른 차원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두 시간 동안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어 다른 인생을 살다 온 것 같달까.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어떤 소녀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진 듯한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한다는 영화관 직원의 말처럼. 그는 말한다. 극장에선 마법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마법이고, 마법 같은 영화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고.
책 속에는 작은 도시에서 오랫동안 조용히 머물렀던 영화관들이 등장한다. 장수극장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연인의 필수 데이트 코스였고, 때로는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작은 도시에서 보기 힘든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 등 극장이 있다는 것은 그 동네의 자랑거리였다. 또 다른 편에 등장하는 소다현의 극장 같은 경우 커다란 스크린과 음향시설을 자랑하진 않지만, 영화를 보고 싶은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주인장이 만든 따스한 커피나 뱅쇼, 그리고 빵을 함께 즐기면서 말이다.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특색있는 동네 영화관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자, 위안받기도 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수도 있는 곳이니까. 분명 그곳의 가치를 알기에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꾸준히 찾아갈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작은 마을 곳곳에서 조용히 오래 머무는 곳들이 늘어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