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재들 -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 걸작 논픽션 7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송정은.황지현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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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말 두꺼운 책 한권을 끝까지 다 읽었다. 1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필자가 읽은 책은 한국전쟁을 다룬 책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의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이 쓴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라는 책이다. 최고의 인재들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과정과 인물들의 심리 상황 그리고 개인사를 정리한 책으로서 당시 미국 최고의 엘리트라 불리던 사람들이 어떻게 베트남 전쟁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1104페이지나 되는 이 압도적인 분량의 책을 읽다보면 소위 미국에서 최고의 엘리트라 불릴만한 인물들의 이름이 나온다.

 

하버드 대학교의 전설적인 교수 맥조지 번디, 미국의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며 사장자리까지 올랐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엘리트 코스를 거친 뒤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존F케네디, 록펠러 재단의 회장자리를 지냈던 딘 러스크와 같이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인물들 말이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쟁에 개입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도 어떻게 하면 사상자를 줄인 채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을지를 생각했으나, 자신들이 원하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들은 도미노 이론에 따라 베트남 전에 개입했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시작으로 베트남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한 미국은 1973년 파리평화조약을 맺고 철수하기 까지 총 58명의 병사를 잃었고, 미국 자존심에 크나큰 타격을 받았으며,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 대부분의 결과를 최고의 인재들은 알고 있었지만,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1. .소 냉전시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서로 경쟁하는 체제에 돌입했다.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의 체제 우월성을 입증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많은 곳에서 경쟁했고, 이는 한 나라의 좌우갈등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그랬고, 그리스가 그랬으며, 중국이 그랬다.

 

1949101일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은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승리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194910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다. 당시 중국의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자 미국은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미국의 공화당은 우린 중국을 잃었다.”라는 논리를 앞세워 민주당과 대통령 트루먼을 맹비난 했다. 중국 공산당의 통일 이후 미국은 매카시즘이라는 반공주의에 빠졌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49년 소련은 자력으로 수소폭탄을 개발했고, 19506월에는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한국은 북한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전쟁 초반에는 낙동강 전선 까지 밀리는 신세가 됐었다. 따라서 미국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따라 반공주의에 빠져들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은 주체적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과거 베트남을 식민지배 했던 프랑스는 다시 식민지화하기 위해 베트남에 들어왔고, 이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인 1945년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은 일본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협력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도움을 원했으나, 냉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프랑스편을 들었다. 냉전이라는 흐름에 따라 미국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식민세력 대 독립운동 세력으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관점에서 해석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전쟁이 격화됐을 무렵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의 프랑스 전쟁 비용 80%를 지원했다. 예상과 달리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54년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며 프랑스가 물러났다.

 

1950년대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기 시작했었지만, 국제정세는 여전이 미국과 소련의 대립 연속이었다. 1958년에는 금문도를 놓고 중국과 대만간의 충돌이 벌어져 미국의 제7 함대가 투입되기도 했고, 1959년에는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쿠바혁명을 완수했으며, 1961년에는 쿠바 미사일 사태가 터지고 독일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됐다. 즉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간의 대립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베트남의 경우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협약에 따라 2년 이내에 통일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해야했지만, 호치민이 승리할 것이라 예상한 응오딘지엠은 총선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가족정치와 부정부패 그리고 불교도 탄압으로 얼룩진 응오딘지엠의 독재 정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1960년에는 응오딘지엠 정권에 맞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즉 베트콩이 창설됐고, 남베트남의 농민들은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냉전이라는 대립 속에서 베트콩과 남베트남 국민들의 저항은 미국에게 있어서 단순한 좌우이념대립으로 보였다. 남베트남 정권의 내부적인 붕괴는 미국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미국은 남베트남에 군사고문단의 숫자를 점차 늘렸다. 즉 미국에게 있어서 남베트남의 문제는 도미노 이론에 따라 미국이 개입해야 하는 대상이었고, 미국은 베트남 문제에 깊이 개입했다. 그러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이 터졌고, 미국은 대규모의 전투부대를 보내며 전쟁에 개입했다.

 

2. 남베트남 정권의 부패와 혼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 정권은 정통성을 비롯한 그 모든 면에서 호치민의 북베트남에게 밀렸다. 호치민이나 보 응우옌 잡, 팜반동, 레주언을 비롯한 북베트남의 지도자들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과 태평양 전쟁 그리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투쟁을 전개했던 혁명가 혹은 독립투사들이었던 데에 반해 남베트남의 대부분의 고위관료나 군 장성들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프랑스에 빌붙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운 민족반역자들이었다. 따라서 베트남인들이 어디를 더 지지할 지는 안봐도 비디오였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인 응오딘지엠을 예로 들자면, 그 또한 민족반역자였다. 1930년 그는 식민지 관료로 있으면서 공산당의 반프랑스 봉기를 진압했다.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이 들어오자 그는 독립운동이랍시고 일본에 빌붙었지만, 실패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그는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전쟁 막바지에 베트남으로 돌아와 반공주의만을 외쳤고,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 이렇듯 남베트남의 고위관료들은 프랑스에 빌붙었던 민족반역자들이었다.

 

1954년 제네바 협약에 따라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진 뒤, 응오딘지엠은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남베트남의 초대 내각을 가톨릭으로만 구성했고, 가족정치를 일삼았다. 토지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할당이 됐고, 자신에게 반대되는 세력을 반공이라는 이름아래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숙청했다. 무엇보다 그는 베트남인 대다수가 믿는 불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심지어 1963년 수도 사이공에서 틱광둑이라는 고승이 소신공양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다. 따라서 남베트남의 민중은 응오딘지엠을 반대했고, 베트콩이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남베트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베트남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무능은 베트콩과의 전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9631월에 일어난 압박 전투는 남베트남군의 무능력함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압박 전투 당시 남베트남군 1500명이 300명의 베트콩을 상대했다. 결과는 베트콩의 대승이었다. 남베트남측은 86(83명 남베트남군 3명 미군사고문단)이 전사하고 미군 헬기 5대가 파괴되었던 데에 비해, 베트콩측은 총 18명이 전사했다. 이처럼 남베트남군은 전투에서도 무능력함 그 자체였다. 따라서 미국은 남베트남을 지키고 베트콩을 격퇴시키기 위해선 더 많은 군대를 파병해야 한다 생각했다.

 

3. 통킹만 사건: 이것은 미국의 침략전쟁이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게 된 계기는 바로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accident)’였다. 196482일은 일요일이었다. 이날, 미국 언론들은 베트남 통킹(Tonkin) 만 해상에서 정찰 중이던 미국의 구축함 매덕스(USS Maddox)가 북베트남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제1차 교전이었다. 1차 교전 당시 미 해군은 매덕스와 함께 작전하고 있던 동급의 구축함 USS 터너 조이(Turner Joy)가 반격을 가해 북베트남 함정 1척을 격침하고 2척을 파손시켰다. 북베트남군에서는 10여 명의 사상자도 나왔던 데해 바해 선제공격을 당했다는 미군은 한 명의 부상자도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83일 제2차 교전이 있었다.

 

84, 미국의 존슨(Lyndon B. Johnson) 행정부는 매덕스와 터너조이 구축함이 또 한 차례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두 번째 공격에 관한 전문을 받은 존슨 대통령은 즉각 전면적인 보복 공격을 지시했다. 존슨 대통령은 그날 저녁 존슨은 다음과 같은 대국민 선언문을 발표했다.

 

미국의 함정들은 공해상에 있었다. 미국의 함정들은 방어적 태세만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북베트남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우리의 남베트남 국민과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지원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이는 사실상 선전포고였고, 1965년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북폭에 나섰다. 미국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최신식 무기인 B-52 폭격기를 비롯한 최신식 항공기들을 동원하여 북베트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통킹만 사건은 이에 대한 명분을 싫어줬다. 따라서 전쟁 초기 미국인들은 이 사건에 대해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8년 구정 공세가 일어난 뒤 반전운동이 격화됐고, 1971년 미국의 양심적인 지식인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가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를 세상에 공개하면서 미국정부의 조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의 호치민이 일으킨 전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호치민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에 간첩을 침투시켰고, 북베트남의 꼭두각시라 할 수 있는 베트콩이 미국이 전면개입하기 전 까지 남베트남군과 교전했기 때문에 북베트남의 침략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트콩은 어디까지나 남베트남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된 조직이었고, 남파됐던 세력들도 대부분의 경우 어디까지나 남쪽 출신이었다. 북베트남은 베트콩을 지원했을 뿐이지 이를 노골적인 북베트남의 침략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베트남을 침략한 적이 없다 하는데, 전쟁 시기 미국 또한 그린베레를 비롯한 특수부대를 북베트남에 침투시켰고,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 즉 나치독일의 영국 대공습을 침략전쟁이 아니라 할 수 없듯이, 북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폭격도 미국의 침략전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 스스로 베트남 전쟁을 자신들의 침략전쟁으로 인정했고,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무리하게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였기에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침략전쟁이 맞다.

 

4. 미국의 패배

 

1964년 통킹만 사건 이후 베트남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한 미국은 북폭과 동시에 지상군을 파병했다. 19653월 미국의 지상부대가 베트남의 다낭에 상륙했다. 다낭을 시작으로 미국의 지상군 파병은 계속됐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호주 필리핀에서도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했다. 미국과 북베트남군의 첫 교전은 캄보디아 국경지대인 이아드랑에서 일어났다. 이아드랑 전투에서 미군은 막강한 화력과 헬기를 동원한 신속한 기동력으로 북베트남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아드랑 전투만 보더라도 미군과 북베트남군 전사자 비율이 1:6이었다. 미군은 북베트남군과의 교전에서 항상 적은 전사자 비율을 냈다.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미군은 베트콩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했다. 1967년 베트남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총 2만 명이 넘었지만, 일반인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1968년에 반전되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베트남의 대명절 구정을 틈타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구정 공세 시기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남베트남 전역에서 공격을 가했다. 베트남의 옛 수도 후에가 점령됐고,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은 전쟁터로 돌변했다. 구정 공세 초기 베트콩은 미국대사관 1층을 점령했고, 이는 미국인 기자들의 전파를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구정 공세는 사상자 비율로만 따졌을 때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구정 공세 1달 기간 동안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3만 명 이상이 전사했던 데에 비해, 미군 전사자는 2천명 안팎이었고, 남베트남군과 나머지 연합국 군대의 전사자를 합쳐도 6천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구정 공세로 인하여 우린 베트남 전에서 이기고 있습니다.”라고 선전을 했던 린든 존슨이 말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반전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 결과 그해 린든 존슨은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고, 베트남 문제는 고스란히 대통령으로 당선된 리처드 닉슨에게로 넘어갔다. 리처드 닉슨은 1969년부터 단계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으나, 결고 쉽게 철수하지는 않았다. 그는 베트남화 정책이라고 하여 점진적으로 철수했지만, 1970년에는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1971년에는 라오스를 침공했다. 1972년에는 마지막 수단으로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대규모 폭격을 북베트남에 감행한 뒤 19731월 북베트남과 파리평화조약을 맺고 철수했다. 따라서 남베트남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계획은 실패했고, 미국은 베트남에서 완벽히 패배했다. 그리고 2년 뒤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남베트남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여 사이공을 함락시킴으로써 통일을 이룩한다.

 

5. 결론: 역사는 반복된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최고의 인재들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엘리트인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오만에 빠져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미국 최고의 인재들은 2차세계대전 당시 자신들의 조국이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과 과거 추축국이던 나치독일과 일본 제국을 자신들 조국이 채택한 이념을 선택하게 한 것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한계에 대해 생각지 않았다. 한국전쟁 시기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자신들의 실책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최고의 인재들은 베트남에 개입할 때 자국우월주의와 인종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베트남 전이라는 실수를 저질렀고, 오판했다. 거기에는 전쟁이라는 행위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무지함이 반영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였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실수를 한다. 그 실수를 통해서 또 다른 실수나 실책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교훈이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저질렀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고, 그 실수는 현재진행형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네오콘들과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이라크 민주화와 대량살상무기 해체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 나라의 민주화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라크에 매장되어있는 어마무시한 양의 석유를 빼앗기 위함이었다. 거기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1980년대 미국이 지원하던 세력이었다. 이라크 전쟁에 개입했던 미국은 결국 이라크에서 발을 뺐다.

 

20019.11테러 이후 미국이 개입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19년인 현재도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에 맞서 싸우고 있는 탈레반은 1980년대 미국이 지원했던 무자헤딘 세력들이다. 즉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은 베트남 전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하여 제2 3의 베트남을 치렀고, 현재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제2의 베트남 전을 치르고 있다. 앞으로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떻게 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건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제2의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고, 이는 일방적인 제국주의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이다. 더 나은 세상과 평화를 위해선 미국 정치인들이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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