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를 생각하며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30분경 한 청년이 전신에 석유를 뿌려 불에 휩싸이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절규하면서 쓰러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불을 끄지 못했다. 전신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이 청년은 병원에 실려 갔으나 끝내 회생하지 못한 채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이름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나 봉제 기술자였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1954년 가족이 모두 서울로 올라왔다. 전태일은 가난 때문에 거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 때 학생복을 제조하여 납품하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큰 빚을 지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파는 행상을 시작했다. 그러다 17세 때 학생복을 제조하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삼일사에 보조원으로 취직하였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아래 노동자들의 운명을 순순히 시장경제의 원리에 맡겼다.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결과 당시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착취당했다. 노동자라면 기본적으로 받아야할 어떤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말이다. 당시 노동자로 근무하던 전태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전태일이 일하던 평화시장은 인근의 동화시장, 통일 상가 등과 함께 의류 상가와 제조업체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좁은 공간에 다락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밀집시켜 일을 시키다 보니 노동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거기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햇볕도 들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서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 의존해가며 하루 14시간씩 일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오후 10시나 11시에 퇴근하며 일했고 환기 장치가 없어서 폐 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당시 여공이라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나이는 보통 13~17세 정도 되는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 여공들은 초과근무 수당이나 노동자로서 받아야할 합당한 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극심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다.

자본주의 신음아래 무자비하게 착취를 받던 여공들의 현실을 본 전태일은 1970년 9월 삼동회를 조직했다. 노동환경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돌려 노동청 서울시, 청와대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였지만, 행정기관과 사업주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다. 투쟁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을 알게 된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30분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과 동시에 온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힌 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쥐어짜고 착취 했는지를 보여준다. 작년 이맘때쯤 뉴라이트 세력들이 전태일 열사에게 고인드립을 가하는 책을 출판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전태일은 귀족 노동자라는 얘기이다. 고인드립 밖에 안 되는 소리다.

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전태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자본가 아래서 착취 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더 착취를 받으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전태일이 없었으면 8시간 노동제가 잘 지켜졌을까? 전태일이 없었다면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던 대한민국에서 노조가 있을 수 있었을까’와 같은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전태일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아래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이 있었기에 그리고 비인간적인 착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의 복지를 받고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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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10-26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8시간 노동제 안 지켜지고 있으며, 노조는 여전히 탄압받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은 여전하며, 비인간적으로 착취 당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ㅠㅠ

NamGiKim 2018-10-26 22:40   좋아요 0 | URL
ㅠㅡㅠ 맞습니다. 아직 갈길은 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