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 철학자 이병창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비판
이병창 지음 / 도서출판 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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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창 저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를 읽고, 2014, 308쪽, 도서출판 말

 

한국현대사는 항상 마녀사냥이나 종북몰이가 있어왔다.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에 대한 집단학살이나 '빨갱이 사냥', 죽산 조봉암에 대한 사법살인,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의 김대중에 대한 낙인찍기, 수많은 간첩사건 조작과 국정원 댓글공격, NLL 논란 등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이를 통해 직접 이득을 취하려 했던 수구 보수세력이 민주 진보세력에게 가했던 공격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민주 진보세력 내부에서 상대방에 대해 종북몰이를 하거나 마녀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사태는 2012년부터 2년 동안 벌어졌다. 당시 통합진보당과 국회의원 이석기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의 특징은 수구보수와 대치하고 있는 민주 진보세력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병창 교수의 물음은 바로 여기에서 출현한다. "어째서 그들이? 그들 자신이 오랫동안 보수우익으로부터 같은 공격을 받아왔지 않은가? 여전히 보수우익에 대한 연대투쟁이 간절하게 필요한 시절에 어제까지 동지였던 그들이 자학적으로 공격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특히 이 교수는 학자로서, 사상가로서 개인에 대한 의문이나 문제가 아니라 현상의 바닥에 일정하게 흐르며 개인이나 집단이 말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사상적, 문화적 특징에 주목해야 했다.

 

철학자와 철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이병창 교수가 공개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할 게기였다. 그는 그런 마녀사냥과 종북몰이 속에서 파시즘이 등장하던 시기의 반유대주의의 냄새를 맡았고, 그 때문에 분노했다. "그런 분노가 나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현실에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이병창 교수가 대략 2년간 언론과 인터넷 등에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물음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당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를 비판하는 글을 써나가는 가운데 서서히,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답을 찾게 되었다. 여기 모인 글은 그렇게 찾은 답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내가 내렸던 답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제시하는 물음이다. 내가 출판에 동의한 이유는 나의 물음을 좀 더 분명하게 제시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째서 민주 진보세력 내부에서 같은 동지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가 이뤄졌는가? 그들이 파시스트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자기 파괴적 공격의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병창 교수는 민주 진보 세력 내에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가담했던 자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했다. 그들 가운데 대표자 격인 유00은 참여민주주의라는 상표를 즐겨 달고 다녔다. 그들은 때로는 친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다른 일부는 민중 운동권이며 자칭 사회민주주의 세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색깔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냈다. 그것은 그들이 '자유'와 '합의'라는 개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철학, 즉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의 개념에 부합한다. 그래서 그는 이들을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로 규정했다.

"나는 이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아메리카노’는 커피의 한 종류에 불과하고 그저 취미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메리카노는 독특한 정치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마치 ‘홍대 앞’이나 ‘강남 스타일’이 고유한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메리카노는 진보당 비례경선 사태 당시 유00이 언급함으로 자유주의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나는 바로 이런 아메리카노로 상징되는 자유주의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본다."

 

하지만 이병창 교수가 이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언급한 이유는 단순히 이름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시 말해 이 개념이 진보당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가담했던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의 원인을 밝혀주는 설명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에게서 어떤 전도(顚倒)를 보았다. 자유를 앞장서서 옹호하는 자유주의자가 오히려 자신과 다른 타자를 배제하고 박해하는 배타주의자로 전도되었다. 나는 이런 전도가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의 원인이라 본다. 이런 전도는 외부의 유혹이나 강제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전도는 자유주의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합의라는 개념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전도라고 파악한다. 즉 마녀사냥과 종북몰이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필연적 결과였다."

 

"나의 주장에 대해 독자들은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독자들은 나의 주장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한때는 스스로를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 또는 친노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자유와 합의라는 개념을 좋아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들이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나섰을 때 정말 당혹했다. 그런 사태들을 통해 나는 서서히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장점과 단점을 지닌다.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장점과 단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장점, 바로 그 때문에 단점이 생겨난다. 마찬가지이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장점을 지닌다. 바로 그 장점 때문에 단점이 발생한다. 그것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필연적 전도이다."

 

이병창 교수는 이들의 정치 행위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한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헌법 안의 진보"가 어떻게 헌법상 '정당의 자유'를 부정하게 되는지 그리고 "자유주의자가 왜 궁극적으로 국가적 폭력에 기생하게 되는지" 철학적 논리적 필연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종북몰이가 언제 어디서 유래했으며 어떻게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아 손을 잡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또한 '반북 진보주의자'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조어가 의미하는 바와 반북 진보주의자의 피해망상이 민주 진보세력 내에 조성한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2012년부터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에 가담한 여러 유명 인사와 지식인, 정치인들이 보여준 '철학의 빈곤'과 '조중동 적폐 언론'과의 일시적 동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이병창 교수의 결론은 "친노를 넘어서고, 참여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들의 철학적 배경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진실과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진보진영의 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자, 친노가 거듭나는 첫걸음은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한다"라고 제안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무제한적 무책임한 비판(비난)'과 '차별과 배제'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현상은 정치권에만 존재하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폄하, '김치녀'나 '기레기'처럼 일부 사람이나 집단의 특성을 과도하게 일반화시키는 현상 등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의 중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체쳐놓고 진행되는 강자와 약자의 갈등 문제 또는 갑을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양비론" 역시 무관하지 않다.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에 대한 필자의 챕터별 소감과 비평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daum.net/hy2oxy/8693623)를 참조...

 

[ 인상 깊은 문장 ]

 

"다시 말하지만, 인민의 의지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므로 그것에 따라서 정당도 자발적으로 새로이 출현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다양해야 한다. 만일 이런 영역에 법이 개입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정당은 되고 저런 정당은 안 된다고 법이 미리 정한다고 생각해 보자. 법은 현실이므로 현실을 옹호하는 보수적 정당만 살아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윽고 정당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새로운 정당의 자발적 생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일 법이 나서서 정당을 제약한다면, 결국 인민의 의지 자체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게 될 것이니 민주주의라는 형식 자체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대선 이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중산층 이하의 몰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사회적 좌절이 심화됐다. 대선의 패배 이후 그들에게 가능성이 열리지 않았다. 그 결과 몰락한 중산층이나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 청년 등으로 이루어진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증가되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바로 일베의 토대가 아닐까?

객관적으로 이들이 룸펜 프롤레타리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순진성과 기계적 반복성은 나치의 돌격대와 동일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베는 파시즘의 원초적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베에 대해 대증요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나치 돌격대의 폭력을 사회적으로 부각시키자 오히려 나치 돌격대가 성장했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그들은 논리나 이유,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논리나 정치적 고려를 통해 대응할 수도 없다.

그냥 무시하자. 그들이 배설하는 쓰레기나 낙서를 스스로 즐기도록 내버려 두자. 중요한 것은 오히려 배가되는 사회적 좌절이다.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급증하는 사회적 현실에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줄어든다면 일베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진경은 들뢰즈, 가타리의 프랑스 무정부주의 사상으로 전향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진경의 ‘수유너머’가 탄생했다.

이런 전향과 더불어 그는 갑자기 마르크스주의를 깡그리 부정하고 만다. 자신의 말대로 사회가 변했으므로 운동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좋다. 그렇다면 과거 교조적이었던 자기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보기에 사실 이진경의 교조주의는 변함이 없다. 교조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그는 마르크스를 교조로 삼았다. 이제 그는 들뢰즈, 가타리를 교조로 삼을 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교조인가가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교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순수 교조주의자이다. 그에게는 마치 어머니나 신처럼 교조가 필요하다."

 

"자유주의자는 타자(the other)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일까? 그는 타자를 처음에는 막연하게 자신과 동일한 존재라 본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아메리카노냐, 다방 커피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본질에서는 동일한 존재야! 내가 자유를 욕망하듯이 그 역시 자유를 욕망하지! 자유란 보편적 가치이니까.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은 처음에 너무나도 관대하게 말한다. 차이를 인정하자. 그리고 서로 대화하자. 그리고 합의하자.

실상 이들의 관대함은 상대방이 자기와 동일한 존재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관대함이다. 자유주의자는 곧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낯선 타자에 부딪히게 된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슬람 종교적 독재에 부딪힌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는 자기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북한의 세습에 부딪힌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낯선 타자에게 강제적으로 투사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의 눈으로 볼 때 이슬람 국가와 북한의 국민은 독재자의 억압에 의해서 자신의 근본적인 욕망에 대해 말도 하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자유주의자는 억압된 국민을 자기가 대변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낯선 타자인 독재자에게 보편적 인권의 이름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슬람이나 북한의 통치자들이 독재자인가 아닌가에 대해 이 자리에서 논하고자 하지 않는다. 문제는 ‘독재자냐 아니냐’하는 판단은 어디까지나 자유주의적 개념 틀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의 개념 틀이 모든 나라에서 유효한 틀인가?"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논리가 종북몰이 논리로 전도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의 배후에 있는 생존의 두려움이 아닐까? 그들은 무리, 다수 속에 끼어들어 가야만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무리 속에서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안전하다는 쾌감을 즐기는 것이다.

결국, 이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다수, 무리 속에서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가 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화하는 반이념적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로 변질하는 이 기막힌 사건을 우리는 지난해 종북몰이에서 여실하게 보았다. 이 종북몰이에서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해하게 된다.

종북몰이란 실상 자기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자기의 두려움이 외부의 적, 섬뜩한 타자라는 환상을 낳는다. 종북몰이란 두려움이라는 피를 먹고 사는 뱀파이어이다."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남들이 불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보자. 이제 재판도 막바지에 이르러 사건의 실체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종북몰이에 혈안이 된 조중동조차 포기한 사건, 기소를 유지해야 할 검찰도 신이 안 나는 사건이니 그 결과야 어련할까?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동 속에 정작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빠져있다.

이석기 의원이 제기한 문제를 보자. 그것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 결론이야 어떻든 간에 이런 문제 제기는 귀중하다. 앞으로 진보주의를 사유하는 누구도 그 문제 제기를 피해나가지 못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진보 세력은 남북의 통일에 대해 침묵한다. 이명박 정부 5년간 남북은 답답한 대결을 이어갔고, 그 사이에 단 한 번의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은 이런 답답함을 뚫어 보려는 어떤 적극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게야 남북 간의 긴장된 대결이 그 자신의 생존 조건이다.

그러니 사사건건 일을 비틀어 남북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대결을 조장하는 게 그들로서는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진보가 기초하고 있는 바로 그 민중이 아닌가?

그런데도 진보는 지난 5년 동안 이 답답한 국면을 해소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진보는 마치 남북의 통일 문제가 정권의 특권인 것처럼 멍하니 바라만 보았고, 그저 정권이 교체되기만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진보가 이 모양이 되었나?

결국 의지의 문제이다. 진보가 통일 문제에 대해 5년 내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진보의 의지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진보로서 발목이 묶인 점도 없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같은 진보 세력 내부에서부터 종북이라는 악의적인 비난이 악성종양처럼 자라났으니,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세력은 감히 숨조차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우선 몸이라도 챙기기 위해서 일단 오해를 불러일으킬 일을 피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남북의 대결이 악화함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중권 교수는 이제 국회의원의 사상을 검증하자고 한다. 북한에 대해서, 북핵과 삼대 세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그것을 밝힌다면, 그에 따라서 그가 종북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공직자의 의무에 이웃나라의 내정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을 고백하는 게 포함되는 것인지. 그러면 공직자는 의무적으로 일본의 자민당에 대한 입장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관한 입장과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도 고백해야 하는 것인지. 누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백한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진중권 교수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건 나는 모른다. 내가 맡은 임무는 그저 판단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기야 그다음은 진중권 교수가 맡은 일은 아니다.

그가 찬사를 받으면서 심사석을 떠나간 다음에 그 자리로 찾아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먼저 조중동이 나타날 것이다. 조중동은 준엄하게 선언할 것이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종북파인 당신이 있을 곳은 저기라고. 이 땅에서 떠날 때까지 우리는 나발을 불어 당신의 숙면을 방해할 것이라고.

그리고 조중동이 떠난 그다음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한 번이라도 국정원에 끌려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 70년대 초 박정희에 의해 자행된 사상전향 공작의 그 끔찍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더 잘 알 것이다."

 

"종북몰이꾼은 종북주의자를 맹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과 체제에 동조하는 바보로 본다. 하지만 실상 그들 자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상대방은 허위라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닐까? 자기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다른 사람은 허위라고 맹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파시즘적인 것이다. 그것이 소위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이다.

현대의 모든 철학들은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낯선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낯선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대화와 토론이다."

 

"자유로운 합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곧 그 한계를 누설하고 만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합의란 그 형식상 이미 자기 모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논리적 사유를 전개해 보자.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서 형성되는 일반의지는 개인의 개별적 의지를 넘어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반의지는 그것을 담지 할 구체적인 개인의 의지가 없다면, 단순한 추상적 관념에 불과하게 된다. 만일 일반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 개인이 일반의지를 담지하게 한다면, 이번에는 개인이 자기의 사적인 이해를 일반적 의지로 주장하는 전도가 일어난다.

쉽게 말해서 자유로운 합의가 독재로 전도 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합의라는 조건 자체가 만들어내는 필연적 결과이다. 그런데 자유로운 합의의 자기모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사유를 여기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밀고 나가 보자. 일반의지를 담지하는 자가 개별자라면 일단 모든 개별 시민이 그 자격을 갖게 된다. 그와 동시에 모든 시민은 서로 다른 시민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을 예감한다. 그러므로 서로서로 의심하는 가운데 다만 혐의가 있다는 의심 때문에 서로를 죽이게 되는 일반적인 공포가 출현하게 된다.

이미 루소적인 일반의지, 즉 자유로운 합의의 자기모순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혁명기에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실현되었다. 헤겔은《정신현상학》에서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를 평가하면서 의심 때문에 마치 배추 밑동을 자르듯 사람의 모가지가 잘렸다고 말한다.”

 

[ 2017년 5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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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그렇게 잘났어요
장영철 / 사회평론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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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교수의 <법정증언>을 통해 알게 된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언론 인터뷰와 <법정증언>에서 인용된 문장은 "연변에서 온 동포 직업연수생들이 남한에서 얼마나 차별받고 멸시당했으면 집으로 돌아가며 '만약 전쟁이 다시 한 번 난다면 총을 들고 선참으로 한국에 와서 그놈들을 쏴 죽이겠다'는 악담을 퍼부었겠는가"였다. (기사 : “북한 붕괴,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이재봉)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9719&ref=twit)


 

이 책은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서독으로 가서 한국대 사관을 통해 망명한 저자가 귀순하기까지의 과정과 귀순후 서강대 학생으로 다시 시작했던 한국에서의 생활, 샐러리맨에서 평양냉면집을 계획하기까지 낯선 한국에서의 삶을 밝히고 있다.


 

저자 장영철은 1966년 황해남도 배천군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아버지는 조선노동당 리당 비서였고, 인민학교 시절 아버지는 배천 자동차공업소 지배인이었다. 북한에서 일종의 중산층이자 주류에 속한 가정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포항공대나 카이스트 정도로 보면 될 김책공업대학 지질학부를 다니다가 북한 당국의 지원으로 동독에 유학을 갔다. 북한 전역에서 20년 만에 파견되는 유학생으로 선발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미래 엘리트였던 셈이다.


 

장영철은 유학생활 초기부터 동독에서 문화적, 경제적 충격을 크게 받았다고 말한다. 생맥주, 남녀교제, 애정표현, 영화, 수세식 화장실, 마트의 상품진열 등 북한에서 배우고 알던 상황과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만 먹었지 그런 방면에서 아직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었다. 애정표현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지내는 내 청춘이 억울했다.”(51쪽)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상, 김일성 주석과 북한 체제에 대한 인식 등과 관련해서도 다른 국가의 유학생들과 충돌도 잦았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들은 그 후 나의 독일생활에서 비판적 시각을 갖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느새 김일성 배지는 문제를 일으키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것은 결코 북한을 선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유가 없는 독재의 나라의 상징적 물건이 되었다.”(62쪽)


 

그렇게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 동독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장영철은 유학생활 3년이 지난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 서독으로 도망갈 결심을 한다. 그는 도피자금 마련(2천 마르크)을 위해 유학생활 중 알게된 광산회사의 프로젝트 소프트웨어를 몰래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는 1989년 11월 베를린의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한다. 그와 함께 넘어 온 사람이 바로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전철우씨다.


 

아무튼 장영철은 1991년 서강대에 입학했지만 대학과 학생들 속에 어울릴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농남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북한과 많이 다른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지기도 어려웠다. ‘자유대한(?)’에서 데모하는 대학생들 역시 납득하기 어려웠다. 특히 ‘북한 사람’이라는 선입관이 그를 괴롭혔다. “언제나 따라다니는 ‘북한 사람’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다. 나는 어떠한 변화도 따라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이방인처럼 눈만 두리번거렸다.”(120쪽)

서강대 91학번이면 아직 노태우 정권 시절이다. 노태우 정권은 직선제라는 형식을 거쳤을 뿐, 전두환 군사독재체제의 연장이었고 박정희-전두환 체제에 편승하고 기생한 이들이 장악한 사회체제였다. 그리고 1992년에 당선된 김영삼 정권 역시 겉으로는 민간정부였지만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종필의 공화당이 합당한 군사독재체제의 연장이었다. 북한체제의 폐쇄성과 독재체제에서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장영철이 그런 한국 사회체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아니러니다. 물론 장영철도 한국의 체제가 자신이 염원했던 ‘자유대한’에 가깝지 않아 스스로 혼란스러웠음을 고백한다.


 

장영철이 대학을 졸업한 것은 1995년이다. 그 이후 그는 방송사 PD, 작가의 꿈을 깨고 포스코에 입사해 자재관리부에서 샐러리맨으로 살았다. 후배들은 그의 회사자랑 소리가 듣기 싫어 그를 만나기를 꺼려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이 책이 출간되기 얼마 전 친구의 꼬임(?)에 빠져 남들이 부러워 하는 대기업 직장을 때려치웠다. 갑자기 방송인 전철우씨와 일산 자유로변에 평양식 냉면집을 차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서른 살 총각사장이 된다.

그가 이 책을 출간했을 때에는,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다른 샐러리맨들처럼 한 달에 몇 천만 원의 수익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꿈꾸고 있었다.


 

장영철이 이 책을 출간한 가장 큰 이유는 책의 제목 “당신들이 그렇게 잘났어요?”에 나타나 있다. 장영철이 책의 초반에 자신이 한국으로 탈출한 이유와 과정을 밝혔지만, 그가 책을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남쪽 사람들의 북쪽에 대한 이해’와 ‘민족동질성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제2부 ‘남한 사람이 북한을 이해 못하는 이유’와 제3부 ‘김책 공대 82학번, 서강대 91학번’에 걸쳐 장영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남한 대학생들은 북한 노래를 ‘촌스럽다’고 느끼고 평가한다. 북한 사람들은 술자리를 하다가  남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남한 노래가 꽤 알려져 있다.

“귀순 직접 동기 80%가 여성과 얽힌 문제 해결”이라는 <월간 중앙>의 제목. “티눈 만한 사실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남의 삶을 마구 헤집어 놓는 회포성, 상업적 가치만 있다면 자기 아버지라도 팔아 넘길 듯한 그 살벌함, 그저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보아 넘기에는 우리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158쪽)

코메디나 교양 프로에서 나오는 북한사람들의 의상과 언행으로 이미지화되는 ‘북한의 촌스러움’ “북한의 주민들은 한없이 바보로 만들고, 또 그들 위에서 군림하는 고위층들은 끝없이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한국의 매스컴이다.”(162쪽)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네 삶의 처지에 맞는 상황을 이해할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배고프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이 미국 식민지로 고통받고 남조선 어린이들이 굶고 있다는 당국의 선전을 곧잘 이해하지만, 남한 어린이들은 ‘배고프면 라면 먹지’라며 굶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167쪽)

“과거 귀순자들이 하던 역할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구태여 귀순자들을 등장시켜 북에 대한 남의 우월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미미한 가치는 남아 있다. 그러나 한둘이 와서는 더 이상 흥미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단위의 집단이 오거나 북의 고위층이라야 받아준다. 선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338쪽)


 

대체로 위와 같은 내용들이, 장영철이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을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대목들이며, ‘민족동일성 회복’을 위한 그의 노력이다.

이 책의 가치는,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과 폄하를 고발하는 것이다. 탈북 후 제대로된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준비하지 않은 채 정부와 탈북단체에서 탈북을 기획하고 부추기는 행태도 비판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당신들이 그렇게 잘났어요?>를 읽은 독자들이 책을 통해 받을 느낌은 오히려 ‘북한에 대한 부정적 혐오적 시각’과 ‘북한 인민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될 것이다. 장영철이 애초에 의도했던  ‘남쪽 사람들의 북쪽에 대한 이해’와 ‘민족동질성 회복’은 이 책을 통해서는 여의치 않다.

그는 책의 머리말부터 마지막 단락에 이르기까지 북한 체제와 지도부, 북한의 사회문화, 북한 인민들의 태도와 생활에 대해 부정적이고 동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컴플렉스도 극복하지 못했다. 말로는 남한 언론과 사람들이 ‘북한의 촌스러움’과 ‘북한의 주민들은 한없이 바보로 만들고, 또 그들 위에서 군림하는 고위층들은 끝없이 영웅으로 만든’다고 주장하면서도 초지일관 북한 인민들의 장점과 살아가는 동력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사회”이고, 남한과 비슷한 명절을 쇠고 비슷한 놀이와 문화를 갖고 있으며, 순박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산다는 점을 강조하지 못한다. 결국 장영철도 국내외에 존재하는 극우적이고 일방적 냉전적 사고방식인 ‘흡수통일’이라는 망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대북비방 전단 살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추구했던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과 교류 시기에 장영철의 소감과 움직임이 궁금했지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다.)


 

적지 않은 국내외 학자들과 정치인들도 북한 체제와 지도력 성립의 역사, 냉전과 체제봉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했던 북한의 노력, 북한 지도부와 인민들의 관계, 북한 내 사상철학의 장점과 단점을 거론하면서 남북관계 회복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대화를 통한 평화회복을 주장한다.

장영철이 아무리 북한체제를 버리고 남한으로 귀순한 처지라고 해도, 남북관계 회복과 민족동일성 회복을 위한 진심이 있었더라면 자신만은 북한사회와 인민들의 입장에서 변호하면서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부정적이고 폄하할 내용보다 자랑하고 긍정할 만한 내용을 담아야 했다.


 

물론 그의 곤혹스러운 입장도 이해한다. 장영철은 1989년 11월 귀순(?) 후, 서울에서 서강대학 91학번으로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1년 동안 국정원(안기부?)과 관련 기관에서 탈북에 대해 조사 받고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이후 지금까지 국정원과 공안기관의 감시와 보고 틀 속에서 생활해야 했을 것이다.

이 책 내용 중에서 탈북에 따른 공안기관의 수사와 교육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것도 밝히지 않는다.(그래서 이 책 내용도 미리 공안기관에게 검증받았을 것이라 감안해서 읽는다.)


 

한국살이 7년은 장영철에게 냉혹한 자본주의, 한국식 신자유주의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정부에서 제공한 정착금 1억원을 주식투자로 날리기도 했다.

“한국살이 7년 동안 느낀 것은 냉혹한 현실의 벽이었다. 이질적 문화의 벽, 학문의 벽, 언어의 벽, 인맥의 벽이 겹겹이 나의 앞길을 막아섰다. 간신히 하나를 넘고 나니 또 다른 벽이 막아섰고 그 높이는 전의 것보다 곱으로 높았다.

이 땅에서 나의 삶을 돌이켜 보건대 ‘좋구나’ 또는 ‘자유스럽구나’를 느낀 것은 순간이요, 낮설음과 혼란 속에 헤메이며 좌절과 실패의 쓰라림을 맛본 나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첩첩산중 넘어가야 할 길 또한 걸어온 것보다 더 멀 것이다.”(230쪽)


 

장영철은 탈북자 중에서 그나마 정부에서 가치를 인정한 축에 속하여 지원도 많이 받았고 개인적인 능력이 있어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9년 동안 서서히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한때 정부와 탈북자단체, 공안기관에 의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획 탈북’을 하게된 수천, 수만 명의 탈북자들 중 장영철 만큼의 지원도 못받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을 능력도 부족한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최근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기자회견한 탈북자들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제3국으로 망명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탈북자들이, 2017년 탈북자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정치권에게, 권력에게, 공안기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장영철 관련 기사-


 

[이사람] 두고 온 고향에 ‘마음의 짐’ 갚고파 (2007년)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0601.html


 

<탈북자들 "봉사로 하나되고 싶습니다"> - 작성자 연합뉴스 (2013년)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31118071500065


[2017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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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의 법정 증언 PEACE by PEACE
이재봉 지음 / 들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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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한다.”

이 문장은 대한민국 법원의 증언대에 서는 모든 사람이 판사 앞에서 맹세해야 하는 ‘증인 선서’다. 저자 이재봉 교수는 재판의 증언자로 나서게 되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증인 선서’의 보호 아래 ‘양심에 따라 숨김고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증언한다.

‘증인 선서’가 이재봉 교수를 ‘보호’해주는 이유는, 이 교수가 증언자로 나서는 소송 사건이 대부분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0여차례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에서 전문가증언을 해왔다. 주로 통일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걸려든 사람들의 재판이었다. 이재봉교수는 통일과 북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증언을 그치지 않아 왔다.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검찰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증언이 조선, 중아, 동아일보나 종편 등 극우언론에서 왜곡되어 보도되는 것을 보고, 이 교수는 그의 법정증언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이 교수는 법정에서 ‘증인 선서’를 바탕으로 북한의 국가자격, 김일성 주석, 주체사상, 북핵과 미사일 개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연방제 통일방안, 정전협정, 주한미군, 반미운동 등 한국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까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증언한다.

또 한국현대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공산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며, 공산주의가 항일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분단과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를 처음 접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운동은 일제치하에서부터 시작됐고, 평양보다 서울에서 훨씬 활발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한반도역사에 준 영향이 적지 않지만, 반공주의에 갇힌 역사교육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어느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와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사안을 다루는 태도는 ‘한미동맹’의 상대방인 미국을 대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친미반공의 사회구조안에서 말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미국이 한반도의 분단을 주도했다는 아주 기본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남사회 내에서 ‘종북’으로 받아들여져 국가보안법의 처벌받을 수 있는 반미운동에 대한 기원과 성질을 짚어본다.

반미운동은 1945년 미군이 한반도에 착륙하자마자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식민통치구조의 연장에 불과한 미군정으로 인해 반미감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반미감정은 1980년 광주학살과 전두환 독재정권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행보로 인해 폭발하고,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됐다. 민주화운동이 반미운동으로 발전하며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통일을 실현하자는 반외세 민족자주운동이 전개됐고, 미국은 통일의 걸림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교수는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남한으로의 핵무기 배치와 핵공격 위협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라 지적한다. 북한은 핵을 가진 주변국들과 주한미군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와 인력을 축소하여 돈을 아끼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핵개발에 매진해왔다.

저자는 ‘북핵문제’를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발상의 전환’으로 풀어나가지 않는 이상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두단계에 걸친 핵문제해결방안을 제안한다. 최근 급속히 악화해 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회복하려면, 1단계로 북의 핵 동결 선언과 북미 평화협정 등을 먼저 추진하고 그 이후 북핵 완전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추진하자는 현실적인 2단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세력에 의해 '빨갱이'로 묘사되고 있는 사상인 공산주의가 사실 이념적으로는 이상형에 가까울 만큼 바람직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중간 단계인 사회주의 체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 1990년대 소련 붕괴를 시작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자본주의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오히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견제해왔기 때문에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이른바 '시장민주주의'나 ‘국가 개입’ 등을 통해 부단히 변화해 왔지만, 사회주의는 사상의 변화는 곧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변화를 거부한 탓에 몰락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생각을 북한에도 적용하고 있다. 사상으로서의 '주체사상'은 사람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철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상이지만, 이것이 김일성주의의 '수령론'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이나, 이 과정에서 등장한 '선군정치'의 배경이나 의미를 지적한다.

그리고 최근 이른바 군사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북한의 '병진노선'까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적시한다. 이렇게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북한이 발겨 벗겨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른바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체를 보게 된다.

남한의 이른바 공안 정국 상황에서도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 통일 방안을 "바람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통일 방안"이라고 강도 높게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학자적 양심마저도 읽힌다.

그리고 북한의 이러한 연방제 제안이 변화해온 과정을 일일이 추적하며, 최근에는 이른바 남한에 흡수될까 하는 우려마저 보이고 있는 '수세적 연방제안'으로 바뀌었다고 통찰하고 있다.

이 교수는 남북 간에 충돌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른바 '북방한계선'이 등장한 배경을 설명하며, 남북 모두가 실질적인 피해자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 북방한계선을 평화지대로 만들고자 북한과 협의한 내용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남북한의 갈등을 불려오고 있는 것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이 교수는 자신을 이른바 '친북주의자'라고 단호히 말한다.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북한과 친하지 않고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의 아주 상식적인 논리이다. 하지만 저자는 왜 이러한 상식이 한국에서는 이른바 '종북'으로 매도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친일파의 등장에서 최근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학자의 양심으로 갈파하고 있다.

<이재봉의 법정 증언>은 저자의 말대로, 특히 보수 언론의 왜곡으로 북한을 두둔하거나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책이라는 왜곡된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처럼 매우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기준으로 남북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관해 쓴 드문 책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북한과 관련하여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는” 학자나 언론인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종석, 정창현, 김진향, 박노자 등 정말이지 열 손가락을 넘기기 어렵다. 일부 극우선동가들이 이 교수를 ‘쳐 죽여야 할 빨갱이’라고 매도하곤 하지만, 오히려 ‘존경스러운 노교수’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종북몰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기간 동안 제대로 청산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야권과 진보진영을 공격하고 분열시키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히고 생계를 박탈당하고 사회정치적으로 매장당했다. 분단을 정권유지 및 강화에 악용해온 ‘분단 기득권 세력’이 한국사회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라도 국가보안법으로 박해받는 양심수들을 위해 ‘증언’하는 이 교수의 양심과 노력에 감사드린다.


[2017년 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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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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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빠가 돌아왔다.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로 시작되는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집이다.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는 열네살 하층민 동네에서 자란 아이 다운 소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열네살 소녀의 가족은 술주정뱅이에 ‘고발꾼(사소한 범법행위를 관공서에 고발하여 보상금을 받는다)’인 아빠, 미성년자 동거녀와 집에 돌아온 오빠, 아빠와 헤어지고 함바집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이다.

열여섯 살때까지 아버지에게 늘상 두들겨 맞던 오빠는 가출한 후 4년 만에 군에서 제대하여 집에 돌아왔다. 동거녀와 함께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란이 가족에 대한 소녀의 냉소적인 시각에 담겨 거침없이 그려진다. 소녀의 냉소주의는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는 반어적 화법이다.


 

그밖에도 일상의 평범한 사건 속에 숨겨진 헤아릴 수 없는 긴장을 예리한 감성으로 포착한 「이사」와 「마지막 손님」, 기발한 상상력이 아이러니와 조롱에 섞여드는 번뜩이는 순간들을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로 풀어낸 「너의 의미」와 「보물선」(황순원문학상 수상작) 등에서는 새로운 감수성과 다양한 소재로 동시대 한국문학을 갱신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의 역량이 잘 드러난다.


 

우리 일상 속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듯한 사건사고가 통쾌한 유머와 섬뜩한 아이러니를 업고 짜임새 있게 펼쳐지고 있다. 특히 가치 파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내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특히 「오빠가 돌아왔다」는 8편의 작품 중에서 압권이다.


 

일자는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중에 「오빠가 돌아왔다」를 종종 인용하곤 한다.  「오빠가 돌아왔다」에 등장하는 가정과 ‘오빠’의 캐릭터가 유별나게 보이지만 실제 한국현대사가 각 가정에 각인시켰던 여러 굴곡점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렸을 때는 프로이트 심리학처럼 ‘어머니’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일지 몰라도 나이들어서는 성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어떤 존재’라 할 수 있다. 아버지와 관계가 특별하면 특별할수록 그런 필요성은 커진다.

아버지와의 관계와 별개로,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국방의 의무’가 부여되는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대부분 ‘군대’라는 관문을 거쳐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질풍노도의 시대’라는 청소년기를 막 지나면서 군에 입대하게 되면 많은 남성들이 변화를 겪게 된다. 군대라는 조직의 경험이 남성들에게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집단 속에 홀로 견디는 2~3년은 개인을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와 과정이 된다.(물론 연간 150명이 넘는 군대 내 사망자와 수많은 폭력, 학대 사건은 국방부의 무책임한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전히 위험한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오빠가 돌아왔다」의 ‘오빠’의 경우에는, 군대라는 경험을 통해 체격과 힘이라는 면에서 성인으로 당당하게 성장하여 ‘폭군’ 아버지를 제압한 경우에 해당한다.

‘폭군’ 아버지가 보호나 애정은 커녕 어머니를 내쫒고 청소년 시절까지 자신울 폭행한 경험을 가진 남자 아이가 무엇을 배웠겠는가. 가정뿐 아니라 사회나 국가 어디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남자 아이일텐데. 그가 4년 만에 십대 소녀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폭력’으로 아버지를 제압한다는 설정은,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필자가 아는 지인 중에도 「오빠가 돌아왔다」의 가정과 비슷한 경우가 여럿 있다. 그 중 두 곳의 가정은 아버지가 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세대다. 각 아들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폭력성에 시달리면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만 아직이다. 경제적인 독립이 여의치 않고 한 명은 정신적으로도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공통적인 특징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가정을 경험한 아버지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동일한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들이 특이한 점은, 바깥에서는 ‘호인’이나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밖에서 다른 이들에게 자상하고 배려심도 보인다는 것이다. 일종의 이중인격일텐데 정신장애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필자는 사회생활 중에 ‘호인’으로 평가되고 지인들을 자상하게 배려하는 남성들을 보이는 그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한국사회는 이중인격이 가능한 사회구조이자 인간관계가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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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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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 <대리사회>

김민섭 저, 2016. 11.. 255쪽, 와이즈베리


저자의 전작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대학에서 보낸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지었고, 기업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대학의 노동력 착취 실태를 고발했다. 그 책을 출간하고서 홀연 대학을 떠난 저자는 대리운전 기사로 변신했다.

대학을 박차고 나와서야 그는 대학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괴물'이었고, 자신은 괴물 같은 대학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


저자는 대학원생, 박사과정, 시간강사였던 스스로를 대학의 구성원이자 주체로서 믿었지만 그 환상은 강요된 것이었고, 그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강의실과 연구실에만 존재했다. 강의하고 연구하고 행정 노동을 하는 동안 그는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 받을 수 없었고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후 대학에서 나온 그는 그 시간이 ‘대리의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저자는 1년간 대리기사로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거리에서 때로는 책상에서 기록해 <대리사회>라는 책을 냈다.


저자가 전하는 대리운전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대리운전에 필요 없는 모든 행위는 계약에 의해 또는 무의식적으로 금지된다. 내 차가 아니기에 의자의 기울기를 조절할 수도 없고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 수도 없었다.

손님이 먼저 말을 건네기 전까지 먼저 말하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손님이 던지는 말에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만 할 뿐이다.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게 되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사유의 통제다.

저자는 대리기사가 겪는 이런 주체성의 통제가 단지 대리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대리기사의 삶을 한국사회에 투영한다. 바로 이 사회가 거대한 대리사회라는 것이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의자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7쪽)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인 것처럼 좌석에 앉아 도로를 질주하지만 이미 조수석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이 타자의 욕망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들려주는 길 안내에 따라 운전한다.


‘대리운전’이라는 ‘주체성의 통제’,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사회’를 사회 전분야로 확대적용하여 ‘대리사회’로 규정하는 저자의 논리에 일부 수긍한다. 그렇지만 수긍은 일부일 뿐이다.

‘주체성의 통제’나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사회’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만 개인을 대상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의 특성이고, 언론에 의해 이미지화된 ‘주어진 정당과 후보’에게만 투표하는 것으로 ‘정치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가로막는 자유민주주의체제(대의민주주의체제)의 특성이지 않을까 싶다. 권력과 자본이 ‘통제’와 ‘상품의 판매’를 위해 시민과 소비자를 획일화시키고 세뇌시키고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체제의 문제가 본질적이다.


필자는 오히려 대리운전이 음주문화와 연관된 특수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로 유지되는 전세계 국가 중에서 대리운전이 얼마나 보편적일지 모르겠지만(언론에 따르면 중국 정도가 대리운전 사업이 폭발적 성장세임), 음주문화가 한국과 비슷한 국가에서 시장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전망이나 자본주의 상품화의 특성상 ‘욕망의 대리경험’과 관련한 기술이나 산업이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저자가 의미하는 ‘대리사회’의 개념과는 다를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에서 학교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런 '을의 공간'에 순응하는 법을 체화했기에 우리는 남의 운전석에 앉아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 공간에서 다른 대리인간에 의해 밀려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만 조수석에 앉아 있는 타자의 존재, 즉 자기 욕망을 대리시켜온 대리사회의 괴물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즐거움을 보며 대리로서 즐거워야 한다면, 역설적으로 나 우리는 지금 그만큼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이 만족스럽다면 남들이 먹고 노래 부르는 것에 지금처럼 필요 이상으로 열광할 이유 는 없다. 결국 많은 이들이 새벽에 연구실에 앉아서 기약 없는 논문을 써 내려가는것만큼이나 외롭거나, 아니면 절박한 심정이라는 이야기 가된다."(212쪽)


저자는 그때부터 '사유하는 주체'가 되고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 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252쪽)


‘사유하는 주체’, ‘거부할 수 있는 용기’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대리사회’라는 개념보다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나 <병원이 병을 만든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와 <그림자 노동>, 그리고 <성장을 멈춰라>가 자본주의 체제나 근대사회체제를 비판하고 세계와 자신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문제의식에 적합하다고 본다.


[2017년 4월 20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 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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