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의 위기 - 현대 중국의 경험과 도전, 1949~2009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오쿠무라 사토시의 <새롭게 쓴 중국현대사>를 읽은 후, 뭔가 부족한 점이 많아 중국근현대사 과정 중에 전개된 세부적인 사회경제적 변동을 알아보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저자 원톄쥔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21세기의 첫 번째 10년에 이르기까지 중국현대사의 전과정을 경제사의 시각으로 다시 정리한다.
중국현대사에 대한 그의 저서에 호감이 가는 이유는, 그가 대학 졸업 후 정책 연구에 20년 이상 종사하며 이론과 현장을 결합하는 실사구시의 실천적 태도를 견지하였고, 이를 토대로 이데올로기적 선입관 없이 중국 경제의 실상과 발전 경로를 통찰하였다는 출판사의 소개 때문이다.(실제 그의 책을 읽어보면 사회주의 사상이론의 흔적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저자는 중국 경제와 발전 방향에 대해 혁신적인 논의를 펼치면서도 농민과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낮은 곳으로 향했기 때문에 나름 성찰의 결과를 내놓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톄쥔은 이 책에서 중국이 서구의 현대화 및 도시화로 대표되는 발전 경로로 설명될 수 없는 특징과 메커니즘을 지녔다고 보고, 그 경로를 똑같이 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와 논리가 <여덟 번의 위기>의 핵심 내용이다.

원톄쥔은 중국 건국 이후 60년 동안 중국에 '여덟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당대 중국의 주요 사건들은 원톄쥔이 경제사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놓은 현대사의 지평 위에 그 좌표를 찍어보면 대부분 이 '여덟 번의 위기'에 겹쳐진다.
1958년에 시작된 대약진과 그로 인한 파멸적 재난, 1966년부터 고조되어 1968년에 정점을 찍은 문화대혁명의 혼란과 그것에 이어진 대규모 상산하향(上山下鄕),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문혁의 종결과 개혁개방이라는 극단적 변화와 더불어 진행된 권력 교체, 1989년에 중국공산당의 집권 기반을 뒤흔든 천안문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원톄쥔은 1949년 이후 중국에서 발생한 경제적 위기를 크게 여덟 차례로 분석했고, 각 위기를 시기에 따라 분류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1956~1976년 동안 외자와 외채로 인한 공업화 초기에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1958~60년에는 소련의 투자 중단으로 인해, 1968~70년에는 '삼선 건설' 중의 국가전략 조정에 따른 경제 위기가 일어났고 1974~76년에 세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이때 마지막 '상산하향'이 전개되었다.
1978~1997년 동안에는 개혁개방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내발적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1979~80년. 개혁개방에 따른 도시지역의 경제가 '경착륙'하였고 중국 지도부는 '잠농'에 의존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1988~90년에는 내재적 메카니즘에 의한 다섯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또다시 '잠농'으로 비용을 전가하였고 이로 인해 '농민공'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3~94년 여섯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하였으나 도시와 농촌이 공동으로 위기 비용을 분담하였고 중국경제는 외향형 경제로 전화하게 된다.
1997~2009년 동안에는 세계 경제에 깊숙히 편입한 중국경제에 외래행 위기가 발생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에는 중국정부에 적극 금융과 시장에 개입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때 제4차 외자도입이 실시되었고 중국 국내의 생산능력 과잉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쳐 여덟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중국정부는 마지막 경제 위기마저 '연착륙'시켰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무려 여덟 차례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원톄쥔은 그 비결을 농촌에서 찾았다. 경제 위기가 여러 차례 발생하는 와중에 중국정부는 광대한 농촌 지역을 매개체로 이용하여 연착륙을 실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중요한 원인은 농촌이 노동적령 인구 5억 명을 보유한 저수지 역할을 했고, 그 저수지의 근간인 농촌 토지재산 공유제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농촌의 기본 제도를 바꾸지 않은 덕분에, 2억 4,000만 농민 가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손바닥만 한 땅이나마 위험 없는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300만 이상의 촌락공동체가 예비토지/촌락공동 체기업 및 기타 여러 사업체를 보유하여, 심각한 부정적 외부효과의 비용을 내부화하여 처리할 여력이 있었다.
따라서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농민공들은 단순히 농업노동에만 종사하지 않고, 능력이 되는 대로 각 가구나 촌락공동체 내부의 여러 공업 및 부업과 기타 각종 사업에 참여했다."(74쪽)

서구 역사가들이나 중국 관련 전문가들은 지금껏 대약진운동이든 문화대혁명이든 개혁개방이든 천안문사건이든 오로지 선정적인 정치적 시각으로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또는 좌우 냉전구도나 이념적 경쟁구도로 사고해 왔다. 국내외 독자들 역시 그런 설명의 결과물로 얻어진 이미지를 중국의 실상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원톄쥔이 '여덟 번의 위기'로 재구성한 중화인민공화국 60년을 살펴보면 서구 세계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부실한 것이었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편집증적인 독재 권력의 무모한 정책으로만 여겼던 대약진, 마오쩌둥에 대한 광신에 사로잡힌 젊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이해했던 홍위병 운동, 중국공산당 내 실용주의적 세력이 집권하여 정책을 합리적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결과라고 여겼던 개혁개방, 독재적 권력에 항거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로 규정했던 천안문사건 등은 모두 그 이면에 경제 위기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사건이었고, 그런 원인을 이해하고 해당 사건에 접근하면 각 사건의 실체는 지금껏 독자들이 생각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다.

단적인 예로, 문혁 시기 홍위병들의 무정부적 폭력 행위의 주요 원인은 겉으로 보이는 어떤 광기나 광신이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당시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른 재정적자와 도시공업 위기로 인해 최악으로 떨어진 청년 취업률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렇다면 권력이 선택한 해결책은 현실에 대한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는 청년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상산하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가 괴물처럼 여기는 홍위병 청년들의 심리가 오늘날 월스트리트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나 편의점 알바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420쪽)

원톄쥔이 제시한 중국의 경제 위기 극복에 대한 이론은 중국공산당과 학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 추이를 예상하면서 중국 경제가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을 몇 가지 대안을 책의 초반에 제시한다.
중국은 20세기에 10%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이 몇 년 전부터 한 자릿수에 멈춰 섰고,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추동력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저자의 분석과 대안이 중국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농촌과 농업경제가 떠올랐다. 한국의 농촌과 농민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도시와 공업의 성장을 위해 저곡가와 저투자로 희생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의 역대 위정자들이 미국정부의 조언만을 받아 서구 경제에서 성과를 보인 '수출공업 중심의 경제개발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밀어붙인 도시 만능, 수출 만능, 공업 만능, 재벌만능, 세계화 만능, 성장 만능의 사회경제 시스템의 결과는 농민 뿐 아니라 도시민에게까지 도달했다.(정권이 바뀌어도 정책기조는 변함이 없다.) 부동산값과 저임금, 빈부격차와 자살률 등 수많은 나쁜 통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201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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