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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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두환이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5.18은 폭동”이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하지만 한국의 헌정체제는 1988년 국회에서 실시된 광주청문회를 비롯하여 1995년~1997년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통해 전두환과 노태우 등의 국가반란과 살인혐의를 확정했다. 이로 인해 전두환, 노태우는 기본적인 경호 이외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했다.(비록 확정 판결 후 1년 만에 정치적인 이유로 석방되었지만..)

문제는, 전두환 등이 국가반란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그들을 배출해낸 유신군사독재 체제와 그들이 한국사회에 강제한 5공화국 적폐구조는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5공화국은 집권 7년 동안 한국사회 곳곳에 인적으로,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온갖 불의와 부정과 부패를 심어놓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탄생과 무수히 많은 적폐들은 유신군사독재와 5공 군사독재의 적폐가 뿌리깊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전두환은, 자신이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이자 국가반역자임이 명확하게 확정되어 있음에도 왜 한국인들에게 “5.18은 폭동”이라는 도발을 할까? 필자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에 대한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의 법적 정치적 역사적 심판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2014년에 출간되었지만, 이 작품의 등장은 독자뿐 아니라 한국인 모두에게 5월 광주민중항쟁의 사회역사적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한다.

이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그후 남겨진 사람들이 고통받는 내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5월 항쟁 당시의 처절한 장면들도 현장감 있게 묘사했다. 소설은 주인공과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이 겪은 5.18 전후의 삶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작가는 광주에서 쓰러져간 무고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한 진심 어린 문장들로 어느덧 그 시절을 잊고 무심하게 5.18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여전히 5.18의 트라우마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저자는 주인공들이 겪은 5.18 전후의 삶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야기는 5월 광주항의 치열한 현장에서 곧바로 시작된다.

1980년 5월 광주, 열다섯 살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 합동분향소가 세워진 도청 상무관에 갔다가 그곳에 먼저 와있던 수피아여고 3학년 김은숙, 미싱사 임선주의 부탁을 받고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열다섯 어린 소년은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 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고,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공장에 들어와 자신의 꿈을 미루고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면서 남매는 비극을 맞는다.

얼마 후 도청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들은 시신을 두고 밖으로 나갈지 아니면 안에서 계엄군을 맞을지 고민한다.
계엄군의 총소리가 도청을 중심으로 온 도시에 울려퍼진 그 날이 지난 후, 은숙은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게 되지만 검열에 걸려 경찰에게 피멍이 들도록 뺨을 맞는 폭행을 당한다. 선주와 진수는 체포 당시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극렬분자', '빨갱이'로 분류되어 성기 고문, ‘모나미 볼펜’ 고문 등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사실 한국의 사회과학 등 학계와는 달리 문학계나 예술계에서 5월 광주항쟁은 잘 보이지 않았다. 5월은 현대사의 한 단락으로 역사서에 기록되거나 정치나 사회분야에서 분석의 매개로만 적용된 듯하다. 물론 정치나 사회과학에서도 빈도수는 낮다.

문학이나 예술, 영화 등에서 5월 광주의 모습이 적은 이유는 아픈 기억에 대한 ‘회피’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한국사회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5공의 부역자와 기득권자들이 5월 광주를 문학과 예술의 소재로 삼는 것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또는 문학과 예술을 한다는 이들이 5월 광주의 문학적, 예술적 형상화를 해낼 수준과 능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5월 광주를 회피하는 동안, 5월 광주는 여전히 당사자들과 한국인 모두의 무의식과 유전자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잠복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이 작품 <소년이 노래한다>의 출간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5월 광주에서 시민들, 젊은이들, 학생들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동족의 군인들이었다. 공수부대와 군인들에게 대검과 몽둥이와 군화발로 살상을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을 유린한 군인들은 과연 어떤 낯짝을 하고 있을까.

작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군인들이 한 해 전 부마항쟁을 잔혹한 방식으로 진압했던 이들, 베트남전에서 몇백만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이들이 아닐까 암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핏줄이 2009년 1월 용산에서, 2014년 세월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라고 적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p.212)

작가는 인간의 잔인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잔인성을 강요하는 권위 앞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는 인간도 있다는 믿음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작가가 재조명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2017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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