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액션 - 영화로 보는 미국의 두 얼굴
최한욱 지음 / 615(육일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서평] 최한욱 저 <할리우드 액션>을 읽고 / 2013. 11., 200쪽, 615출판


여러 종류의 영화를 즐겨보는 내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어린 시절 유일하게 접한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년에 한두 번 학교 전학생이 동원되어 관람하던 반공영화를 제외하고는.

방 한쪽 구석에 TV가 자리잡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주말 저녁시간은 ‘타잔’이나 ‘홀쭉이와 뚱뚱이’ 그리고 ‘주말의 영화’에 몰입하곤 하였다.


허리우드 영화 속 세상은 중소도시에 살면서 보고 겪는 일상과 TV 뉴스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가끔 소설책과 위인전도 읽었지만 책에서 경험하거나 상상해볼 수 없는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적인 패턴이 내 무의식과 '상식' 속에 자리잡았다. 미국은 위대하고 선량한 국가이며, 미국인들은 성실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 아메리카 인디언은 잔인하고 무식하며 사기와 배신에 능하다는 이미지, 첨단기술과 상품은 무조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이미지 등을...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 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으며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매년 수 십 억 명의 지구인들이 한 편 이상의 할리우드 영화를 소비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할리우드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역은 아마도 북한 정도일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할리우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념과 문화전파자로써 할리우드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이다. 종종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핵무기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저자가 헐리우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구촌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미국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동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한다.


물론,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을 비호하고 미국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인 <라스트 모히컨>과 <매트릭스>, <혹성탈출> 같은 경우는 다르다.

<라스트 모히컨> 속에는 미국인들의 선조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지 이야기해 준다. 반면에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물론 모든 인디언을 그렇게 설정하지는 않지만)은 선량하고 용감하고 지혜롭고 당당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기본'이 허위와 허상으로 가득찬 역사이며 현실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내가 영화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훈련도 덜 되었기에 저자가 비교,분석해주는 헐리우드 영화는 나에게 또다른 깨달음과 생각을 안겨 준다.

<대부> 시리즈와 <갱스 오브 뉴욕>를 비교하면서 저자는 "미국인들은 왜 조폭영화를 사랑할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역사이며 자신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은 미국,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저자가 "조직폭력은 미국인들의 삶"이라는 주장하는 이유는 실제 미국이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미국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1,190만 건이고, 살인사건은 16,110건이었다. 미국이 폭력조직은 21,500개이며 조직원은 모두 104만 명에 달한다.


언젠가부터 TV와 극장가를 주름잡는 좀비영화를 '도살영화'라고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아찔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각도에서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해 저자는 '미치광이 살인마'는 좀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잔혹행위는 모두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비영화에서 영화의 관객들은 살인과 학살의 쾌락(?)을 공유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제작된 시기(1968년)를 고려한다면 이 작품이 베트남전쟁의 은유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소개한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밀려드는 베트남 민중을 보며 미국인들이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웜 바디스>를 분석하면서 좀비영화가 십대 취향의 로맨스영화와 좀비영화를 결합이지만, 혐오스러운 존재인 좀비를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좀비, 즉 유색인종과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저자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링컨>, <더 레슬러>와 <부기 나이트>, <엘리시움>과 <식코>, <아르고>와 <계엄령>, <화씨 911>과 <세계무역센터>, <그린 존>과 <하트 로커>, <인디펜던스 데이>와 <디스트릭트 나인> 등을 비교한다.


헐리우드 영화, 즉 미국 문화와 한국의 관계는 다른 국가와는 크게 다르다.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들어온 미군정은 일주일 뒤인 9월 15일 서울중앙방송국 등 남한의 10개 방송국을 모두 접수하여 미군정의 군정정책에 대한 홍보매체로 이용하였다. 이때부터 미군이 공급하는 뉴스와 헐리우드 영화가 한국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TV와 영화관에서 여전하다. 미군정이 왜 방송국과 극장을 장악했는지, 신문과 라디오를 검열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미군정의 방송과 영상매체 장악은 이승만 정권 이후 김대중 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방식만 바뀌었을 뿐 영향력은 그대로다. 52년 동안 미국과 한국정부로 이어져온 방송과 영상매체의 편파적 운영은 아무런 반성도 평가도 없이 그대로 '미국이 천국인줄로만 아는' 재벌과 관료들, 역사의식 없는 사업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승계되었다.


그렇지만 저자가 헐리우드 영화를 전적으로 거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이념과 가치, 정책을 세계로 전파하는 창의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우리는 그 창을 통해 미국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물론 할리우드의 창은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 그 창은 반투명 혹은 불투명한 유리로 가려져 있으며 외부로 수많은 커튼이 드리워져 내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부를 전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할리우드영화를 관찰하면 그 속에서 진짜 미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올바른 한미관계의 정립은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 미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의 변화는 어쩌면 우리의 변화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 인상 깊은 문장 ]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통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비공식공무기구이다. 헐리우드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보다 세련되고 유연한 방식으로 미국의 가치와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침투시킨다."


"우리는 할리우드의 영화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미국의 문화에 젖어들며 자연스럽게 미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받아드리게 된다. 또한 미국의 국가이념과 가치, 정책에 대해서도 학습하게 된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영향권에 있는 지구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에 동화되고 스스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혹자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누구나 미국의 이념과 가치, 생활방식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 정부와 헐리우드의 밀월관계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상항에서 헐리우드는 단지 오락을 제공할 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우리를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 2014년 11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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