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GO발뉴스 - 지승호 이상호의 위험한 인터뷰
지승호.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추천 [서평] 이상호 저 < 이상호 GO발뉴스, 지승호 & 이상호의 위험한 인터뷰 >를 읽고 / 2012. 11, 302쪽, 동아시아


2012년 ‘기자생활에 대한 반성문’이라는 말과 함께 이상호 기자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와 출간한 책이다.


"기자질이 제 직업입니다. 질문하는 걸로 밥 먹고 살아왔습니다. 남에게 대답하게 하고 저는 운 좋게 곤경을 피해왔답니다. 그러다 이번에 임자를 만났습니다. 상대는 대한민국 대표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였습니다. 근 20년 동안 남에게 던진 질문을 한꺼번에 되돌려받은 느낌입니다. 
이 책은 지난 기자생활에 대한 반성문입니다. 곤란한 질문도 피하지 않고 답했습니다. 답변을 강제해 한 권의 책으로 뽑아내는 기술, 대단하더군요. 지승호 작가의 탁월한 준비와 배려가 아니었다면 아마 견뎌내지 못했을 겁니다.”(p.05)


이 기자는, 이제는 꺼진 불에 불과한 전두환을 뒤?i는 이해 못할 행각 뒤의 숨겨진 사연,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과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에 대해, 공중파 최초로 방송된 BBK 고발보도 이후 웃지 못할 뒷이야기 등을 책 속에 담았다. 


“의심해야 돼요. 전쟁위협을 강조하는 사람들 그 배후에 전두환이 있고 안보위협을 강화해서 기득권을 키워나가는 신군부체제의 정점에 전두환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중략) 전두환 해외 비자금을 담당했었다는 사람에게서도 연락이 왔어요. 중동 건설현장 회계 책임자였는데, 자신이 그때 자기 회사에 할당된 전두환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거에요. 진술이 아주 구체적이었어요.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직은 도와줄 수 없다는 거에요. 이유가 뭐였는지 아세요? 아직 아니라는 거에요. 아직도 전두환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에요. 참여정부 때였는데 말이죠.”(p.23)


“군부는 인사, 정보와 작전, 군납과 획득 이렇게 세 개로 나뉘어있잖아요. YS 때 하나회를 철폐한 것은 따지고 보면 1/3 개혁에 불과했던 겁니다. 단지 인사 부분만을 없앤 거에요. 그래서 DJ 때 정보 및 작전과 관련된 군 개혁을 했죠. 마지막으로 노무현 정부 때 제일 힘든 개혁을 했습니다. 군 획득과 관련한 적폐를 청산했죠. 그렇게 3개 정권을 거치면서 하나회를 약화시켰지만,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한 겁니다. 수구냉전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MB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잘려나간 조직들이 급속도로 재건되고 있다는 보도나 첩보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어요. 그 결과 안보위협에 대한 과장이 시작됐어요. MB의 대표적 악행이 바로 신군부라는 곰팡이가 다시 번식할 수 있는 눅눅하고 축축하고 불온한 생태계를 부활시켰다는 점입니다.”(p.30)


이명박 정권에게 장악된 방송문회진흥회는 부정하고 부당한 방식으로 정연주 사장을 내?i고, MBC 사장에 김재철을 앉혔고, 그 김재철은 정권의 입맛대로 방송을 장악하고 이상호 기자에게서 기자수첩과 마이크를 빼앗았다.

이 기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회와 권력을 고발하기 위해 자회사에서 ‘손바닥 뉴스’를 만들었고 회사에서 완전하게 ?i겨난 뒤에는 스스로 ‘고발뉴스’를 만들어 지금 순간에도 기자로서의 한 길을 달리고 있다.

또한 이상호 기자는 비록 기자이지만 정치와 민심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지니고 있다.


“(총선에서 MB심판론이 잘 먹혀들지 않은 이유는?) MB의 무엇을 누가 왜 심판하는 지가 빠져있어요. 목적어도 없고, 주어도 없고, 이유도 없어요. 이렇게 허망한 슬로건을 처음 봤어요. MB를 심판해도 그 이전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데, MB를 심판해도 누가 어떻게 집권한다는 청사진이 보이지 않았아요. MB의 실정만 이야기했지 지난 정부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거죠. 비판이 기준점이 없는 비판, 허무한 거죠. MB가 왜 집권했는지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한 이해와 반성이 없다는 겁니다.”(p.66)


“(문재인의 저서 <운명>에 대해) 노무현 정부 전체를 재벌이라든가 기득권층에 이롭게 보이도록 하는 정책을 쓴 이유가 크게 보면 삼성의 경제관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어떻게 그걸 이야기하지 안히고서 노무현 정부를 평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돼죠. 그건 유시민의 책에서도 대체로 마찬가지고요. 그러면서 입으로는 경제민주화를 운운하죠.”(p.72)


“촛불싸움이 지나치게 일찍 번지면서 참여정부의 어떤 패인을 좀 더 분석하고 반성해야 되는 시간이 없어졌어요. 바로 대정부 투쟁으로 전환이 돼버린 것 같아요.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면서 친노세력이 대선 패배를 통해서 반성할 시간을 빼앗겨버린 것이 아닌가, 정권퇴진 요구를 그들 또한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빨리 반성의 길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됐고, 그것이 오늘날 여전히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일반적으로 MB 심판만을 강요하는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누가 왜 무엇을 심판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p.73)


그는 기자생활 중 자신의 가장 나빴던 기사로 주차관리요원 고발 기사, 서울대공원 녹용 고발 기사, 김광석 변사사건과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분신자살, 그리고 검찰 출입기자 시절의 모습을 '워스트 기사 5’라고 고백하며 스스로 반성한다. 
철없던 기자의 무심한 기사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구르던 주차안내원 노동자에 대한 때늦은 죄송함도 담겨있고, 출입처의 일방적 자료를 죄의식 없이 대필해주던 나팔수 기자 시절의 뼈아픈 기억도 되살렸다. 특종이라는 팡파르와 함께 보도해 세인의 관심을 요란스레 끌어모았던 기사들도...

그리고 자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기사로 'Best 10’을 꼽았는데, 삼성 X파일 고발 기사를 시작으로 국회의사당 아래로 지나가는 9호선 고발 기사, 자유총연맹 고발 기사, 하남 국제환경박람회 기사, 연예인 노예계약&상납 비리 탐사 기사, 병역비리 고발, 병역특례 기사, 군납비리 기사, 최규선 게이트 기사, 그리고 김현철 비리 기사를 꼽았다.

대선을 코 앞에 둔 민감한 시기에 참여정부와 삼성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고 말한다.


이상호 기자가 10년 넘게 추적했던 각종 이슈와 사건은 그의 진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진실을 추구하는, 대다수 민중의 이익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인민의 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은 생각의 공장입니다. 기자는 새로운 생각을 끌어오는 사람입니다. 찬물과 뜨거운 물이 섞여 목욕물을 만들 듯, 오래된 생각이 덥혀지며 세상은 미래로 굴러갑니다. 새로운 생각, 뜨거운 물이 탕 속에 들어오면 유입구 쪽으로 손님들은 뜨겁다고 때밀이 총각을 나무랍니다. 그렇다고 새 물을 잠가버리면 목욕물은 금새 냉탕이 돼버립니다. 때밀이나 기자나 욕먹을 수밖에 없는 직업입니다.”(p.06)


침구사 구당 선생에 대한 취재 사유서는 처음 알게된 내용이고 인상 깊게 읽었다. 이 기자는 당초 영리병원 반대를 위한 대안으로 취재를 시작했지만, 의료계와 한의사 단체 양쪽의 조직적 반대에 직면해 참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몸이 자본주의의 마지막 금맥이 된 현실에 구당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자의 본심이 느껴진다. 시간을 내서 이 기자와 구당 선생의 저서를 읽어봐야겠다.


이상호 기자의 박사 전공이 정치학이고 박사학위 논문이 한미관계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논문 제목은 ‘미국의 공공외교와 한미관계, 1953~1990’이다. 그는 한미동맹을 미디어와 인식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논문을 썼다고 밝힌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까 미국이 한국인의 인식을 조정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했더라고. 이를테면 국무부와 국무부 산하의 지역 조직, 그리고 한국 내 대사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한국인들의 인식을 동맹의 유지, 강화라고 하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획하고 조작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른바 한국인에 대한 인식조종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매년 한국인의 심리학적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 심리학적 목표, 즉 미국은 우방으로서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줄 것이다. 미국이랑 친하면 경제발전을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매년 10가지나 되는 목표를 그때그때 새롭게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이행 플랜과 이행프로젝트별로 예산 수요를 정교하게 작성한 가죠. 그리고 이 프로젝트 이행을 위해 사회 각 분야의 주도세력을, 이를테면 교육계 500명, 문화계 500명, 학계 500명, 정계 50명, 재계 50명, 이런 식으로 수천, 수만 명을 조직하고 그 사람들한테 한미동맹의 특혜의 과실을 나눠주는 식으로 테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삼성이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넣은 방법과 똑같아요. 그 결과 한미동맹이 군사동맹이지만, 본질적으로 적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인식동맹’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p.280)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 뒤인 작년 4월 진도에 내려갔을 때, 팽목항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있는 해수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을 향해 부석부서한 머리를 한 채 마이크를 들고 세월호 유가족을 대신하여 날카로운 질문과 성토를 하던 사람, 즉 이상호 기자를 처음 보았고 그때 인상이 깊게 각인되어 나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 2015년 3월 14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