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규율권력과 자발적 복종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

미셀 푸코 저, 오생근 역, 2001. 11., 464쪽, 나남출판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할 것" 다음으로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23쪽)

<감시와 처벌>의 첫 문단은 위와 같이 시작한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실재했던 유죄판결문 중 일부이다. 현대인으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다. 실재했던 판결문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다미엥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일이다.

한반도에서도 20세기 이전의 형벌방식은 비슷했다는 주장이 있다. 조선시대 대역 죄인에 대한 능지처참형이 바로 그것이다. 성삼문 등 사육신이나 수많은 사화와 민란의 주인들이 받은 형벌을 그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능지처참형이 18세기 프랑스의 다미엥이 받은 거열형과 비슷했을까. 하지만 구체적이고도 악랄하게 형벌을 집행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유사하지만 프랑스 지배자들이 조선의 지배자들보다 더 참혹했던 것이다. 서구인들의 과거 신체형은 한국인(동양인)의 상상을 넘는 공포 그 자체였다. 푸코는 이를 ‘지극히 화려하고 호화스런 의식’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왜 이런 처벌을 내렸을까. 지배체제에 그리고 권력에 감히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누구도 왕권이라는 권력에 도전하면 그런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민중의 반란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극악한 신체형이 18세기 후반 이래 전반적으로는 감옥에 범죄인을 감금하여 교정하는 자유형으로 바뀌었다. 범죄를 저질러도 이제 더 이상 신체에 손을 대지 않는다. 감옥이라는 공간에 감금한 다음 규율을 통해 교육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 되었다.

(물론 이런 규정은 서구인들이 같은 서구인 범죄자들을 대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서구인들이 강제로 식민지로 삼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18세기 유럽의 잔인한 형벌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우도 일제강점기를 거쳐 20세기 말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고문과 구타가 존재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탈북자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고문과 악행이 여전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것은 합리적 계산에 의거하여 효과적인 징벌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원칙이 있다. 이들 원칙 모두가 언뜻 보아도 매우 합리적이다. 첫 번째 원칙인 '양의 최소화 원칙' 하나만 보자.

"범죄는 그것이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범죄에 대한 그런 생각에, 그것보다 어느 정도 큰 형벌의 불이익을 결부시키게 되면 범죄는 저지르고 싶지 않은 행위가 될 것이다." (148쪽)

가혹한 형벌을 신체에 부과하지 않아도 범죄인이 형벌의 불이익을 생각하여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그 이상의 처벌을 하려다 보면 범죄인은 완전범죄를 노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범인 잡기만 어려워진다. 그것은 결국 범죄인이 권력을 농락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이러한 원칙은 고도의 계산이 따른 것이다. 일종의 심리학이 동원된 것이다.

사람을 진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강압적인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이고 관념적이어야 한다. 예컨대, 계량화를 통한 비용-효과분석을 형사정책에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근대 이성의 합리주의적 사고가 아닌가. 이런 사고의 결과가 바로 신체형에서 감옥이라는 새로운 제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형벌제도의 발달 때문에 권력은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학문이 발달시켰다. ‘일망감시시설(팝옵티콘 panopticon)’, 즉 교도관 한명이 여러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관리의 효율성을 불러 일으켰다. 건축학, 광학은 이 시스템을 바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죄인의 죄를 측정하기 위한 심리학, 병리학의 발달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권력은 자신이 필요한 학문만을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감옥의 탄생은 단순한 형벌제도의 변화가 아니다. 푸코는 이 변화가 18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인간과 사회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규율사회'의 건설이라는 측면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본다.

감옥은 그 규율사회의 하나의 전형일 뿐이다. 푸코에 의하면 “규율사회는 감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학교, 병원, 군대, 공장 등 주요한 사회기관 모두는 알게 모르게 공통적으로 인간의 신체에 관한 과학적인 관리법을 적용하여 예속적이고 복종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푸코가 말하는 근대국가, 근대사회의 핵심은 바로 ‘복종하는 인간’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사람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사회가 규격화한 사람만이 ‘쓸모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쓸모 없는 사람’, ‘이방인’, ‘사회부적응자’, ‘이탈자’, ‘범죄자’가 된다. 사회체제에 복종하는 사람으로 키워지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가 설정한 정상의 기준에서 일탈한 광인이 되어 ‘사회의 쓰레기’가 된다.

“쓰레기가 되고 싶지 않으면 인간들이여 사회의 규율에 따르라.” 이것이 푸코가 주장하는 근대사회의 핵심이다.

 

푸코가 관찰한 바로는 이러한 규율사회의 전형은 군인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 탄생한 상비군들은 과거와는 다른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이들의 신체는 길러졌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신체에서 ‘반항(저항)할 수 없는 인간’이 탄생하였다.

"18세기 후반이 되자, 군인은 만들어지는 그 어떤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틀이 덜 잡힌 체격, 부적격한 신체를 필요한 기계로 만들면서 조금씩 자세를 교정시켜 나갔다. 계획에 의거한 구속이 서서히 신체의 각 부분에 두루 퍼져나가 각 부분을 마음대로 지배하여, 신체 전체를 복종시켜, 신체를 언제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구속은 습관이라는 무의식적인 동작을 통하여 암암리에 그 작용을 계속하게 된다. 요컨대 '농민의 몸가짐을 추방해' 버리고, 대신에 '군인의 몸가짐'을 심어준 것이다." (204쪽)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을 푸코는 하나의 정치(기술)로 보았다. 이 정치(기술)은 단지 신체를 표적으로 강건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신체의 지배를 넘는 어떤 목적이 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일까. 그렇다. 신체의 지배를 통해서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정치(기술)의 ‘최종 목적’이다.

이 기술의 요체는 강제 지배가 아니다. 통제되고 있는 사람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의지를 토대로 통제된다. 자기의 내적인 욕망에 의해 스스로 순종적인 신민이 되어 권력의 그물코 속에 자기를 걸어 두는 것이라고. 우리는 스스로 기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원해서 말이다.

“끊임없는 판단과 검사를 통해 인간 행동의 객관화와 자료화가 달성되며 이것이 근대 인간과학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까지 푸코는 주장하면서 <감시와 처벌>을 마무리한다. "개인은 특별한 규율적 권력 기법이 생산한 실재"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근 현대를 추동한 서양적 합리주의의 동역학에 대한 푸코적인 바깥으로부터의 사유가 도달한 한 극점으로서, 나중에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감시와 처벌>에서 제기하는 푸코적 권력론과 담론 이론의 통찰은, 권력과 지식은 서로 반대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권력과 지식이 서로 갈수록 정교하게 얽혀가게 된다는 것이다. 합리성을 주창한 계몽주의의 득세 이후, 보다 세련된 권력일수록 스스로 진리와 객관성을 자임하고 채택하는 형태로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진리나 합리성의 이념 자체가 '일정한 권력효과를 동반하면서 사용되는 말의 흐름과 쓰임으로서의 담론'인 것이다.

 

서구인들은 자기의 기독교적 문화나 가치관과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나 중동 이슬람세계를 정복할 때 처음에는 군사력 같은 물리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물리적 강압만에 의한 지배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약소국의 시민들이 강국의 가치관과 문화를 부러워하고 자신의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할 때 강대국의 헤게모니가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강대국의 관점과 자신들의 시각을 약소국 주민들이 동일시할 때 강국의 지배는 거의 영속화된다. 결국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는, 부정적인 동양관과 긍정적인 서양관을 동양인들 자신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은 동양(Orient)에 대한 어떤 이미지나 관점을 총칭한 것으로서 대부분 부정적인 요소들, 즉 동양이 미신적이고 퇴영적이며 후진적이라는 등의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동양이 이런 방식으로 채색되면 서양의 이미지는 당연히 그 반대가 된다. 즉, 서양적인 것은 과학적이고 진보적이며 선진적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리엔탈리즘이란 용어 자체가 서양 여러 나라들이 제국주의적 경략에 여념 없던 시절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강점기 그리고 미국제국주의의 미군정기와 한미동맹 체제는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을 심어놓았다. 바로 식민지근대화론과 같은 식민사관과 군사작전권의 영구적인 포기, 그리고 각종 보수적 집회와 종교행사에 도배되는 성조기를 통해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인들(특히 기득권층과 노인세대) 사이에 광범위하게 뿌리 깊게 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 2017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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