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김정일 - CEO Of DPRK, 때를 기다려 올인하는 전략, 그 모든 것을 밝힌다
정창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김정일을 새롭게 이해하기 <CEO of DPRK 김정일 : 때를 기다려 올인하는 전략>

정창현 , 2007. 10., 446, 중앙북스


 책은 2007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에 한창 준비하고 있을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하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로 평가받는 정창현 교수가 노무현 정부 관계자와 독자들에게 김정일  김정일의 북한 정권에 대한 실체와 권력 수립 과정을 분석하여 내놓은 것이다. 남의 최고 지도자와 정부 관계자가 북의 최고지도자와 정부 관계자와 국가 대 국가로 협상을 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당연히 어설픈 정보나 편향적인 정보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분석 정보, 수십년 동안의 상대방 국가와 지도자의 권력 형성과정, 상대방의 철학과 정책과 비전을 알아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가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지낸 기간이 수십 년이고 북한에서는 여전히 김일성 주석과 더불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도자, 지도자 인정받고 있고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은의 ‘혁명전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김정일 집권시 북한 체제를 아는 것은 지금의 김정은 체제와 북한을 이해하는  도움이 것이다.


당시  책을 출간한 출판사와 저자 역시 단순히 방송언론의 상업주의적 가십 거리나 호기심, 정보 차원의 '무지와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가 경영 리더십에 주목할 시점이 되었음에 주목했다. 

그의 리더십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개인 김정일'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운영하는 'CEO 김정일' 주목해야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김정이 국방위원장을 'CEO' 표현하는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낼 것이다. '철권통치자'에게 무슨 리더십이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북에서는 어떻게 위대한 영도자 ‘CEO’ 지칭할  있느냐고 거부감을 드러낼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정보 차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접근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할 때가 됐다고 본다. 또한 남북의 화해와 협력, 변호하는 북한 사회를 읽는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방송이나 언론이 북한과 북한 지도자에 대해 일관되게 폄하하고 편향적으로 기사화하지만,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 협상이나 북미 협상, 북일 협상이나 6 회담 테이블에서 북한은 항상 주도권 아닌 주도권을 갖고 간다고 평가한다. 북한은 협상 일정을 뒤바꾸기는 예사이고, 어젠다를 한순간에 바꾸기도 한다. 아예 협상 자체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이러한 파워 지니게 할까?

아무리 후한 점수를 주어도 북한의 국력은 대한민국과, 미국과, 일본과, 그리고 6 회담 당사국들과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데도, 북한이 이처럼 항상 협상의 주도  쥐게 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더군다나 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현재처럼 핵무기나 장거리미사일도 개발하기 전이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근대 이후 대를 이어 권력을 이어받은 마지막 후계자라는 비판을 뒤로 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 지도자로 자리 잡을  있었던 전략, 10 넘게 붕괴한다 외교가의 분석을 무색케 하며 김정일 체제로 완전히 정착할  있었던 전략, 전방위로 압박해오던 미국과 일본을 핵실험 하나로 관계 정상화로 돌아서게 하는 전략의 요체는무엇일까? 

2000 1 남북 정상 회담을 끝내고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은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서방  평가는 크게 왜곡됐다 토로했다. 방북   전부터 각종자료와 정보를 섭렵하며, 정상 회담을 준비해온 김대중  대통령조차 이러한 평가를  정도면 일반 시민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2000 10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회담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도 2003 출간한 회고록(<마담 세크레터리, The Mighty & The Almighty>에서  위원장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 지적인 인물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견해를 확인할  있었다. 그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으며 미몽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경제의 계획을 얘기할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그는 회담에 대비한 준비를 아주  했다고 느꼈다. 그는 똑똑했다라고 평가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상하고 북한의 노동당, 군대, 정부, 대남사업을 장악해가는 과정이다. 

김정일의 초기 성장은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특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닐 때, 그는 대학 당 위원회 소속이면서도 노동당 중앙의 주요 회의를 방청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그 과정에서 당시 북한의 사상투쟁을 대학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엄청난 특혜와 특별 학습을 통해 김정일은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후계자로 육성되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대학 졸업 후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배속되었다. 북한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는 핵심 중의 핵심부서라 한다. 그가 중앙당에 배속된 직후인 1967년 북한에서 ‘갑산파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김영주의 주도 하에 갑산파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적 비판과 숙청이 이어졌다. 김정일은 당 조직지도부가 중앙당 전원회의를 조직준비하는 과정에서 갑산파 숙청과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깊숙이 관여했다. 

김정일은 1968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장으로 옮겼다. 선전선동부는 조직지도부와 함께 노동당의 핵심 부서라 한다. 그 직후 북한 군부에서는 김영주의 후계 추진에 반발한 ‘김창봉, 허봉학 사건’이 일어났고, 노동당은 군 전반에 대한 검열을 진행했다. 김정일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인민군 당 전원회의 일정을 준비하고 보고서 작성, 토론 준비, 결정서, 문건 작성을 직접 준비했다. 또한 예술분야에 깊이 관여하며 영화예술론을 서술했고, 북한에서 강력한 선전 수단이던 예술 분야를 장악하여 빨치산 원로들의 신뢰를 이끌어냈다.

김정일은 조직지도부장과 선전선동부장을 맡은 1960년대 후반 이후 노동당, 군대, 행정기관, 대남사업기관에 대한 지도검열을 강화하면서 1970년대 중반까지 빠르게 권력을 장악해나갔다.


김정일 후계 문제는 1970년 처음 빨치산 원로 세대인 김일, 최용건, 건최현 등이 제안했지만 김일성이 보류했다. 이어 1971년 하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2차 전원회의 직후 개최된 당 정치위원회 회의에서 두 번째로 논의되었다. 이 자리에서 병환으로 조직비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김영주가 김정일을 노동당 조직,사상비서 자리에 앉히자는, 후계자로 선정하자는 제안을 했다. 김영주의 제안은 빨치산파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김일성이 “조금만 더 두고보자”며 다시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김정일을 후계자로 결정하자 또는 당 비서로 선출하자는 빨치산 원로들의 제안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의 논의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김일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김정일이 아직 어리다”는 이유였다.

결국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하부에서 올라온 결의서에 기초하여 김정일을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공식 결정했다. 빨치산 1세대의 내부 논의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회의는 김정일에게 당 정치위원회 위원 자리를 주는 동시에 ‘공화국 영웅’ 칭호를 안겨주었다. 김정일은 이미 조직지도 비서와 부장, 선전선동 비서와 부장을 포함한 1인 5역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이때부터 북한 언론은 김정일을 ‘당 중앙’으로 호칭하기 시작  했다. 당시 김정일은 만 33세였다. 

그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났던 시기는 후계자가 된 지 2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났던 김정일에 대해 술회하고 평가한 내용들은 가식이나 허풍이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김정일 위원장을 항상 파격 행보라고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정상적인 일상 행보 받아들여야 하며, ‘두려운 전략가 아니라 예측가능한 CEO’ 면모에 주목해야 7  남북정상 회담의 충격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교수는 이와 관련 김정일의 외교 형태에 대해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은 벼랑  전술이라고 규정해 왔다, 그러나 김정일의 외교술은 6 회담에서  드러나듯이 단순히 막무가내 버티기 아니라 결단의 타이밍을 중시한다 말한다. 특히 적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유리한 결단의 조건을 만들기 위한마지막까지 준비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는  위원장이 자신에게 보고되는 최종 문건이 나올 때까지 실무 부서와 관련 부서들 간의 끝장 토론 거치도록 하며, 그래서 최종 입장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했다.그렇지만 일단 최종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위원장의 결단이 내려지면 일사불란하게 집행되는데,  위원장의 결단과 추진력 원천이 여기에 있다고 덧붙인다. 


 책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리더십을 읽을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증언과 자료가 담겨 있다.  중에서도 조선노동당의 고위인사를 지내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신경완 씨의 증언이 뼈대를 이룬다. 신경완은 1998 사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 신분 노출을 우려해 일부 증언은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모양이다.  월간지 기자가 그의 실명을 거론하자 여러 북한 연구자들도 그의 실명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의 경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책에서는 그가 의도적으로 다르게 구술했던 내용을 바로잡고, 저자가 잘못 기술했던 사실들을 바로 잡았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정상 회담 녹취록, 방북 언론사사장단과의 대화록, 폴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지구 전권대사와의 대화록을 실어  위원장의 정치관, 외교관, 통일관, 경제관, 문화관 등을 엿보게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2 남북 정상 회담 365 막전막후 이야기도 담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최고 자리에 오르기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족적을 세밀하게 추적했으며, 기쁨조 등에 대한 오해와 진실도 실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 2016년 10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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