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체제 만들기
백낙청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백낙청 저 <2013년 체제 만들기>를 읽고 / 2012. 01., 191쪽, 창비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힌국사회에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의 의미는 매우 크다. 특히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를 확보하지 못한 국민들과 주권자로서 자신들의 각종 권리가 박탈된 사람들, 즉 90% 이상의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 현행 한국의 사회체제는 정치가 많은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악의 빈부격차와 자살률, 그리고 행복도 최하위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법과 제도와 행정이었고, 그 법과 제도와 행정을 주도한 것은 선출직 공무원들이다. 그들을 선출하는 제도가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인 것이다.
부정부패를 양산하는 시스템과 문화도, 부정부패에 면죄부를 주는 사법체계도, 국민들의 일자리와 생존권을 좌우하는 경제와 행정도,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농민들의 터전을 붕괴시키고 중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를 낭떠러지에 내모는 것도 정치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한국의 정치와 행정이 ‘불량국가’ 수준인 것은 정치가 ‘불량’하기 때문이다. 그 정치가 불량하게 만드는 구조적 역사적 원인은 한국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친일과 분단이다. 일제의 식민지 무력 감정을 환영하고, 그런 일제에게 부역하여 호의호식을 한 자들이 해방 후 분단을 주도했고, 분단이 한국전쟁의 참화를 가져왔으며, 전쟁이 다시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군사독재의 명분이 되었다.

친일파들과 군사독재 부역자들이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한 이후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지 70년이 흘렀다. 그들이 기득권을 장악한 무기가 바로 분단과 반공이었다.
백낙청은 그래서 ‘분단체제’를 강조한다. 그 분단체제는 1948년 분단체제가 아니라 '한국전쟁을 거친 분단체제’다. 그것을 그는 ‘53년 체제’라 규정한다. ‘53년 체제’는 분단과 독재가 핵심구조이다. 두 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53년 체제’는 친일과 외세의존, 전시체제와 반공을 주요 이념으로 한다. 경제질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섞여 있다. 
또한 남과 북, 즉 한반도는 주변 열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반도의 분단 과정이 강대국의 냉전구도에 강제된 측면이 강할뿐만 아니라 분단의 유지와 고착화도 외세의 입김에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식민과 해방과 분단의 과정, 그리고 전쟁과 분단고착화의 과정에 주변 열강이 모두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53년 체제’는 외부적인 변수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갈등구조와 맞물려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남과 북이 주변 열강을 무시하고 임의로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추진하기 어렵다. 주변국들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그 자체로 또다른 강대국이 탄생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CIA는 오바마의 재선 후 한반도가 통일되면 세계 5위의 강대국이 탄생할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오바마에게 제출했을 정도다.)

‘53년 체제’는 남과 북에 ‘결손국가’를 만들어 버렸다. ‘결손국가’라 함은 자기완결적인 사회체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독립국가’이면서도 실상은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인 국가 형태’로 남아 있다. 이는 1972년 남북공동성명의 기본 정신이고,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명문화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분단체제’는 남과 북 내부에 분단체제로 인한 기득권이 발생하도록 만들었고, 따라서 각각 분단이 고착화되기를 바라는 집단과 분단을 극복하려는 집단이 존재하게 되었다. 물론 남북 대다수의 주권자들은 분단 보다 통일을 바란다.
남과 북은 ‘결손국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방이 통일을 대상이자 주체이기 때문에 상대방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주로 정권과 기득권자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분단기득권’이 생겨났고 부분적으로 체제 내에 자리잡은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는 분단기득권자들이 중심이 된 정권이었다. 그래서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주장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그 개념을 인정하든 아니든)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곧잘 ‘87년 체제’를 말한다. ‘87년 체제’는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1961년 군사쿠테타 이후 기본적인 자유와 절차마저 유린되었던 25년 간의 ‘유신독재체제’가 사라졌다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자체장을 주권자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다는 의미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전체주의, 군사주의의 제도를 청산하고 절차와 선거와 협의를 강조하였고, 많은 분야에서 자유권을 신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민주정부,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이 탄생되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04 공동선언은 ‘87년 체제’의 불안정한 구조인 분단체제를 흔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진보정치의 흥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백낙청은 ‘87년 체제’가 ‘53년 체제’를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53년 체제’의 두 기둥, 즉 분단과 독재에서 독재 하나 만이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87년 체제’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도입되었지만, 내용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미루어졌다. 더 중요한 것은 ‘87년 체제’가 ‘53년 체제’를 근본적인 면에서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분단체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분단기득권자들이 분단과 반복 공세를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책은 2012년 총선과 대선, 양 선거를 앞둔 국내정세에 대한 분석과 김정은체제로 이동하는 북한의 변화와 대북정책에 대한 진단, 그리고 87년체제를 넘어 희망의 2013년체제를 향한 백낙청의 제언과 해법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나도 ‘2013년 체제’라는 개념을 전혀 들어보지 못할 정도로(2012 희망 원탁회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백낙청의 문제의식과 제안은 한국사회에 널리 퍼지지 못했다.
결국 백낙청이 말한 ‘2013년 체제’는 ‘87년 체제’를 뛰어 넘어 ‘53년 체제’까지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주창하는 ‘2013년 체제'의 주요 요소 중에는 복지사회, 공정·공평사회론, 그리고 생태전환론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2013년체제'의 주요한 골자는 무엇보다 6·15선언으로 상징되는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진전,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이다. 이 내용을 그는 ‘포용정책 2.0’이라고 이름지었다. ‘포용정책 2.0’ 정책은 2013년체제에서 주요한 열쇳말로 제시된다. 이 대목은 87년체제와 가장 대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87년체제의 극복과 2013년체제의 수립이 2012년 양대 선거의 승리로 정권교체나 원내 다수의석 확보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선거승리는 필수적인 요소지만 정권교체 이후의 새로운 체제를 미리 논의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역사의 시간표는 다시 지루한 뒷걸음질을 기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보진영과 야권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실패한 이유는 어쩌면 ‘2013년 체제’ 만들기가 아니라 단순히 ‘야권의 승리’, 특정 정치세력의 ‘승리’ 또는 ‘전진'만을 욕심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고 나니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 단순히 ‘야권의 승리’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체제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기 보다는 기존에 어렴풋이 들었던 여러 생각들이 이 책을 통해서 가닥을 잡아간다는 느낌이다.
물론 백낙청 교수는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에서 자신이 ‘2013년 체제’론을 설파하고 설득하는 것에 실패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등 박근혜 정권의 모습이 ‘2013년 체제’는 커녕 ‘87년 체제’마저 후퇴시키는 퇴행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적공’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작금의 정치상황이 ‘87년 체제’를 지키는 것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53년 체제’라는 관점과 ‘53년 체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나타난 박근혜-새누리당 체제를 ‘87년 체제’만을 지키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더 후퇴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내가 ‘2013년 체제’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것은 백낙청의 2015년 신간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이었다. 그후 ‘2013년 체제’와 ‘53년 체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는 이 책 <2013년 체제 만들기>뿐 아니라 <어디가 중도고 어째서 변혁인가>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까지 읽어야 했다.

[ 인상 깊은 문장 ]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원(願)을 크게 세우는 일이라고 믿기에 눈앞의 현실보다 한 발짝 먼 이야기부터 하려는 것이다. 2012년의 선택이 비록 중요하지만, 그해의 양대 선거에 논의가 너무 집중됨으로써 우리가 목표하는 선거 이후의 삶에 관한 사고를 제약하고 때이른 정치공학적 논의에 몰입해서는 곤란하겠기 때문이다." ―제1장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물론 2013년체제가 성립하기 위한 가장 큰 전제조건은 2012년 양대 선거의 승리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는 대폭적인 지각변동이 감지되는 움직임들이 여럿 있다. 야권통합후보의 서울시장 당선, ‘안철수 현상’, 젊은 세대의 정치 복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전열 정비, 박근혜 대세론의 붕괴와 ‘조기등판’ 등이 그것이다. 특히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위원장은 본의 아니게 너무 일찍 선거판에 투입되는 바람에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정치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온갖 불확실성 속에서도 2013년체제가 다가오고 있음이 점차 실감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후보’ 박원순이 야권통합후보로 당선된 사실과 이를 전후한 ‘안철수 현상’, 그리고 그 바람에 오랫동안 부동의 여론 지지율 1위를 자랑하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대세론이 무너지고 드디어 그녀가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예정에 없던 ‘조기등판’을 하게 된 사정 등이 모두 그런 실감을 더해준다." ―제4장 「다시 2013년체제를 생각한다」

"복지국가론의 기본 취지가 당장에 복지를 전면화하는 것보다 국가모델을 ‘복지국가형’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라면, 더욱이나 여타 국가적·사회적 목표와 결합된 복지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기존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생태친화적으로 전환하는 ‘친환경 복지국가’ 모델이어야 하며, 동시에 ‘성평등 지향적 복지국가’ 모델이 되어야 한다. 또한 복지국가이되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협동조합, 시민단체, 그리고 복지수혜자 개개인의 능동적 참여가 극대화되는 ‘민주적 복지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2013년 이후 진전될 남북관계와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관한 ‘범한반도적 설계’가 긴요하다.” ―제1장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2013년체제와 평화전략을 함께 얘기해야만 하는 이유는 평화체제로의 진행 여부가 2013년체제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 중에서 유독 남북관계나 평화문제만 중요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87년체제가 53년체제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탓에 민주화를 위한 그 긍정적인 동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교착·혼란·퇴행상태를 겪게 된만큼, 결국 53년체제를 혁파하여 분단체제를 좀더 획기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제8장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 2.0」

"크게 보면 이 모든 것이 상식과 교양 및 인간적 염치의 회복이라는 문제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것이 정권교체나 정치권 주도의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님은 명백하다. 몇몇 인사들의 무교양과 몰상식 그리고 부도덕에서만 문제가 비롯되었다기보다 국민들 다수의 생명경시 습성과 정의감 부족, 그리고 비뚤어진 욕망에 뿌리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이틀에 바로잡힐 일이 아니며,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바꿔나가는 노력을 각자의 삶에서 꾸준히 진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분위기가 일신될 때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터이기에, 아무래도 2013년(또는 2012년)의 결정적인 전환을 꿈꾸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그러한 전환을 위해 필요한 뼈저린 반성을 할 기회가 지난 3년여 동안 유독 많았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명박시대에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1장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 2015년 11월 03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