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사는 즐거움 -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의 여유와 지혜, 개정판
허균 지음, 김원우 엮음 / 솔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서평] 허균 저 <숨어 사는 즐거움 :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의 여유와 지혜>를 읽고 / 2010. 06., 325쪽, 솔

조선 중기 혁명가이자 개혁가 허균(許筠, 1569~1618)의 <한정록 閑情錄>을 작가 김원우 씨가 우리말로 옮긴 이 책에는 하기 싫은 일은 철저하게 하지 않은 은자들의 행적이 실려 있다. 허균이 인용한 <한정록> 안에는 처음 보거나 듣는 고서들이 많다. <준생팔전 遵生八牋>, <고사전 高士傳>, <사문유취 事文類聚>, <열선전 列仙傳>, <하씨어림 何氏語林>, <유후당서 劉煦唐書>, <후한서 後漢書>, <빈사전 貧士傳> 등이다.
허균은 빼어난 문장과 넓은 학식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광해군 10년에 역적모의를 했다는 모함을 받고 참형을 당했다. 소설가 김탁환은 작품 <허균, 최후의 19일>에서 허균이 혁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한다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 바 있다. 
조선시대에 역적 혐의로 참형을 당한 반역자 중에 조선 말까지 사면,복권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허균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의 지배계층에 충격적인 인물이었고 사상가였던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허균은 경직된 양반사회를 향해 신분계급의 타파와 적서(嫡庶)를 구별하지 않는 과감한 인재등용을 주장했는데, 이 같은 자유롭고 혁신적인 발상은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홍길동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균은 나이 42세 되던 광해군 2년(1610)에 명나라에 파견되는 천주사가 되었으나 병을 얻는 바람에 맡지 못하고, 그 대신 휴가를 받아 틈틈이 중국의 고서들을 보면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독서를 하는 중에 예전 선비들의 글을 추려서 일종의 자신만의 독서노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정록>이라 한다.
그는 <한정록>의 서문에서, "평소 세상일에 급급하여 조그만 이해에도 어긋날까 마음이 두려워졌고. 보잘것없는 자들의 칭찬이나 비방에도 마음이 요동하는 자신을 안타까이 여겨 옛 문인들의 글을 읽으며 옛날의 어진 이와 자신을 비교해보니 제 어리석음이 얼마나 막중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밝히고 있다. 벼슬살이에서 물러나 자연과 벗하며 한가로이 지내는 삶의 즐거움이나 독서의 즐거움에 관한 글들이 주로 엮여 있어 ‘훗날 숲 아래에서 세상을 버린 선비를 만나게 될 때 이 책을 꺼내가지고 서로 즐겨 읽고 싶다"고 말한다. 

출판사는 "여기에는 세속을 떠나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 중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와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의 일화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관한 희귀한 정보도 읽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동양의 유구한 역사상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과 저서들 가운데서 동양적 사고의 진수라 할 만한 일화, 잠언,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값진 책이라 할 수 있다.”고 이 책을 높이 평가한다.

조선왕조 500년은 유교이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거대한 사유의 바다였다. 주린 배를 끌어안고서도 눈에 불을 켜고 자아 인식, 나아가서 도덕의 최고선으로서의 자아실현을 고집하는 무서운 엄숙과 자부심 앞에서는 수많은 사유의 집적을 낳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유물이나 유적보다 찬란히 빛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선집(選集) 문집(文集) 휘집(彙集) 실록(實錄) 등의 형식을 빌린 그 숱한 글들은 한문으로 쓰여진 기록물이긴 해도 조선조가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했다는 받을 수 있는 자료이다.
한편으로 아무리 전형적인 엄숙주의 아래서 질식할 것 같은 유교 사회라 할지라도 숨통을 틔어주는 혁신 사상은 어차피 도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이른바 안티테제로서 사유의 또 다른 미덕이다. 환기 장치로서의 그런 사유 양식, 곧 혁신 사상이 여러 부족한 조건들 때문에 발붙일 땅을 찾지 못할 때 그 사회는 붕괴하고 만다. 

조선왕조의 지배계급은 때에 맞추어 내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 다. 한반도의 새로운 시대의 개척에 필요한 개혁과 혁명은 새로운 계급과 계층에게 맡겨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농민계급과 서민, 상인 등 신진계층이 새로운 사상을 마련하고 새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것이 바로 18~19세기 전국 각지에서 발발한 반란과 갑오농민혁명이라 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내부개혁에 실패한 데다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외세를 끌여들였고 급기야 국가사회 전체를 일제에게 빼앗겼다. 

허균이 예교라는 원시 유교의 실천 강령만을 씨가 닳도록 쓰다듬어온 따분한 조선조 유교 사회에서 혁신 사상의 선각자였음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사상 자체가 안티테제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홍길동전>이 없었다면 조선조는 내일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원시 유교 사상이 철저히 지배한 고리삭은 왕조였다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선조는 그처럼 보수 지향적 측면이 여실했던 폐쇄 사회였다. 그에 대한 도도한 반기가 실학 사상의 대두였다. 불행하게도 실학 사상은 어떤 소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고, 사대주의 매국세력으로 평가받는 개화파의 선구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런데 실학을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이 허균이었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실물은 <홍길동전>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알다시피 <홍길동전>은 이상향 유구국(琉球國)을 건설하기까지의 의적(義賊)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썼을 허균의 복잡한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가 고집불통의 조선조 유교 사회에 얼마나 염증을 내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혁명가상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는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숭불 자체가 탄핵의 대상이었던 유교 사회에서 허균이 불교에 깊이 경도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의 비범한 개혁 사상을 웅변하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 독실한 불교 신앙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양반계급으로부터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면서도 늠름했다는 허균이 도교 사상, 나아가서 은둔 사상 및 신선 사상에 심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그는 신분질서를 금과옥조로 섬기는 양반 사회에서 신분 계급의 타파와 적서(嫡庶)를 구별 않는 과감한 인재 등용까지 내놓았다. 
또한 그가 전개한 부국강병책과 붕당배척론은 비록 새로운 내정 개혁책은 아니라 할지라도 뒤이어 일어난 실학 사상의 비조로서 손색이 없는 경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호학(好學)의 선비답게 천주교의 천리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일찌감치 수렴하여 새로운 문물 및 서학(西學) 이론에까지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허균은 아웃사이더였다. 
아웃사이더는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기성 제도를 뒤짚어 생각하는 선각자이다. 아웃사이더는 어느 시대라도 질시와 핍박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어떤 막강한 기득권도 부정하지만 그의 꿈과 이상는 흔들림이 없다. 
허균이 바로 그런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파란 많은 한평생은 그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도구였을 뿐이다. 실천 없는 사유의 세계를 거침없이 질타한 허균의 쟁쟁한 육성은 빡빡하고 시난고난했던 조선조의 각성제였다.

허균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은둔 사상의 실천적 국면을 조리정연하게 편찬한 <한정록>은 그의 철저한 아웃사이더 정신의 산물이다. 
이 책은 그의 나이 42세 때, 그로서는 극도로 불우한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틈틈이 중국의 고서들을 보면서 예전 선비들의 한적한 삶의 모습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들을 손수 가려 편집한, 일종의 독서노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세속을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 중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와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의 일화, 그리고 벼슬을 물러난 뒤 한가롭게 살다간 이야기, 산천을 두루 보아 정신을 수양하는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룬 글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관한 희귀한 정보도 읽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동양의 유구한 역사상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과 저서들 가운데서 동양적 사고의 진수라 할 만한 일화, 잠언,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값진 책이라 할 수 있다. 분주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성찰의 계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혁명가이자 사상가였던 허균과 ‘숨어 사는 즐거움’을 음미하는 허균이 한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법정스님이 사랑한 책 ‘50권’ 중 40권째이다.

* 인상 깊은 문장

"옛사람이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는 것은 이름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 몸을 오래토록 속세를 떠나서 한거하게 하여 그 은거의 즐거움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다."

"선비란 살면서 세상을 경영하는 포부를 갖는 법인데, 어찌 금방 요순 같은 임금을 결별하고 오래도록 산림 속에 은둔할 계획을 하겠는가. 마음과 일이 어긋나거나, 공적과 시대가 맞지 않거나 또는 몸이 쇠하여 일에 권태롭거나 하면, 비로소 관직에서 물러나는데, 이는 자기 허물을 잘 고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퇴거한 사람은 맛 좋은 음식이나 화려한 의복을 취해서는 안 되고 오직 검소해야 돈도 절약이 되고 복도 기를 수 있다."

"장부의 처세는 마땅히 가슴이 탁 트이도록 가져야 하니, 상황에 따라 마음을 크게 먹고 순리로써 스스로를 억제하면, 인품이 고상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자연 고상하게 된다."

"한가한 곳에서 혼자 살면서 담박하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아도 일상 생활하는 일이야 그 일을 당하면 역시 하게 된다."

"글은 고요한 데서 하는 일 중의 하나인데, 한거하는 이가 글이 아니면 무엇으로 세월을 보내며 흥을 붙이겠는가."

이 책은 법정스님이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한 작품 중 마흔번 째이다.

[ 2014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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