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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이제 너도 어둠을 무서워하게 될 거야. 죽을 때까지.”
“여자아이들은 평생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를 듣는다. 총력을 기울이지만 하면 충분할 거라고 한다. 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되면 딸들에게 맞는 말이라고, 열심을 다하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며 가족을 잘 건사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면 모든 게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얘기한다.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무서울 게 없다고. 아이들은 자기 방에서 혼자 잘 수 있을 만큼 용감해지려면 거짓말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려면 거짓말이 필요하다.”
_520쪽
우리는 버거운 일상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 모르는 다는 게 끔찍하지만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을 빠짐없이 챙겨 읽었다. 베크만은 사람을 웃고 울게 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재주를 가졌다. 이 소설 『베어타운』도 마찬가지. 그런데 또 베크만에게 또 하나의 재주가 있었으니 사회적 메시지를 이야기에 잘 녹여내는 것. 그래서 565쪽이나 되는 분량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마을, 베어타운. 이 작은 마을은 청소년 팀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하키를 보러간다. 한때 잘나갔으나, 쇠락해가는 베어타운처럼 서서히 몰락해거든 하키 팀에 천재가 등장한다. 이 능력자 하나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가 마치 몰락해가는 한 마을을 일으켜 세울 것처럼. 베어타운에 사는 사람들만 그럴까. 한 조직에서 한 공동체서 그런 인물에 우리는 열광한다. 그가 마치 우리 삶을 일으켜 세워줄 것처럼. 그가 무슨 사고를 치더라도 어느 정도는 용서할 마음으로 그를 바라본다.
『베어타운』은 작은 마을 안에서 영웅으로 취급 받는 한 소년이 성폭행을 저지르고, 또 이를 은폐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피해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피해자를 위해 나서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 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_88쪽
“그 인간을 봤어.겁에 질렸더라. 그 새끼가 겁에 질렸더라고.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니?”
마야가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은 다음에서야 그 사건의 형태가 제대로 갖추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낸 순간, 그녀는 트로피의 하키 포스털 뒤덮인 그의 방으로 되돌아간다. 그녀는 흐느끼며 후드 스웨커 위로 더듬더듬 있지도 않은 블라우스 단추를 찾는다.
그녀는 아나의 품속에서 무너지고 아나는 생명줄이라도 괴는 듯 그녀를 부등켜안으며 온 마음을 다해서 입장이 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_307쪽
그들은 경찰서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전부 이야기했다. 부모님의 눈빛을 보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한 문장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식으로 끊임없이 메아리칠지 알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모든 아빠들이 인정하기 가장 두려워하는 그 문장.
‘우리 아이들은 우리 손으로 지키지 못했다.’
_3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