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힘
원재훈 지음 / 홍익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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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 이제 막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제 막 아빠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사람들에게 특징이 있는데 가정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가정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큰 문제가 된다. 목숨을 건다는 것의 의미가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들을 가정과 함께 보낸다. 직장에서 끝나자마자 집에 들어가고,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는 "너만의 시간을 가져라."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아직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아이들이 어릴 때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어디든지 아내와 함께 가고, 어디든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날부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힘겨워 지고, 내가 할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카페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해야할 일이 있거나 시간이 있으면 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가페에 앉아서 혼자 책도 읽고, 알라딘에 끄적거리기도 했다. 처음에 서운해 하던 아내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 내겐 무척 소중하다.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나혼자 이런 저런 생각해 보고, 아무도 나를 몰라보는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게임도 하고, 때로는 웹서핑도 하고, 때로는 책도 보고, 때로는 멍 때리기도 하고, 때로는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시간에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지친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화난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빈도 수도 줄어든다. 지금도 애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집을 나왔다. 병원에 들렸다가 카페에 앉아서 글도 쓰고, 책도 본다. 이렇게 리프레시를 하고 저녁에는 애들에게 유투브 영상을 찍어 주기로 했다.

 

  고독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이것이다. 개인만의 시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할 일만 하는 것,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도 좋다. 그곳이 대단한 곳이 아니라도 좋다. 자신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곳,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곳, 내가 혼자서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고독의 장소이고, 그 시간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방학이 짧은 것이 아내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살짝 옆으로 미뤄 놓는다. 아내에게도 아내만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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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저항이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박규태 옮김 / 복있는사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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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이란 용기다!

 

  안식일은 저항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주일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쉼이란 우리가 마당히 누려야할 권리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살펴보고,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몸이 자시 일을 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누리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쉴 권리를 말하는 우리들에게 세상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이 시대의 자본가들이, 시스템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네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네가 게으르기 때문이다가 아닌가? 몇년 전에 주 5일제를 시작한다고 할 때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우려와 걱정들이 있었는가? 근면과 성실을 이야기하는 세상 속에서 쉼이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은 게으름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비난을 받지 않는가?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쉼을 이야기한다. 잠시 멈추어서서 모든 일을 내려놓고 쉬라고 말한다. 안식은 말 그대로 평안히 쉰다는 것이다. 일을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머릿 속으로 하는 오만가지 생각들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아니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두려워서 이다. 혹시 밀려나는 것은 아닌가? 혹시 쉼으로 인하여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가?

 

  만나 사건을 통하여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매일 아침에 나가서 만나를 주웠던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무엇일까? 주어진 만나에 대한 감사?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의 속성에 대해서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내 눈 앞에 있는 만나를 보면서 그날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라는 명령은 하나마나한 명령이다.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일은 만나가 안 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거두어 들일 수 있을만큼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하루가 지난 후에 깨닫게 된다. 썩었다. 악취가 난다. 이러한 일을 반복하면서 그들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면서, 마음 속에서부터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억누르고 그날 그날의 양식을 얻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마음 속에 심어 주는 것이 무엇인가?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가? 젊은 시절에 노후 준비를 하지 않으면 너의 노후는 불안할 것이다. 언제까지 자녀에게 짐이 될 것인가라는 공포 마케팅이 횡행한다. 심지어는 장례 비용도 미리 준비하라고 자녀에게 짐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에 속아서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다. 그런데 그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는 행복한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담보잡힌 나의 현재는 불안하고, 두렵고, 초조하다.

 

  그런 우리에게 안식일은 저항이라는 말은 정말 의미가 깊은 말이다.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뒤집어 엎어 버리는 말이다.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서, 멈추어 서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다. 저자의 이름 값에 부끄럽지 않는 묵직한 가르침을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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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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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를 배우는 것은 사실 재미가 없다. 학창 시절 영어를 배우는 것도 꽤나 재미없는 일이었고, 독일어는 배우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배웠기 때문에 영어는 띄엄띄엄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되고(그것도 고급 영어는 구사하지 못하고 그저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이다.) 독일어는 이것이 독일어이구나 알아들을 정도만 된다. 언제가 흥미가 생겨서 헬라어를 공부하다가 포기하고, 라티어를 배워보려던 마음도 접었다.


  그러다가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이 나와서 "라틴어 문법책이구나"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런다가 갑자기 문화상품권이 생겼고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기 때문에 한번 사서 읽었는데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라틴어 문법책이 아니다. 라틴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사서 보라고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그렇지만 인생의 지혜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열면서 라틴어를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자의 "있어 보이려고 배운다"는 말이 꽤나 마음에 와닿았다. 맞다. 어쩌다가 라틴어 한 마디 주절거리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있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있어 보이려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주변에 라틴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은 정작 웃긴 일이다. "아모르 파티"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에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부르니 물어보자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야라고 말해주자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party라고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틴어 문구 하나하나를 가지고 인생의 깊이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의 내공이 부럽다. 어떻게 저렇게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을까 부럽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람 밑에서 라틴어를 배운다면 라틴어가 꽤나 재미있겠다 싶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가라는 아쉬움에 책을 꼼꼼이 읽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청년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읽인다.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라 읽히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가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반드시 읽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간만에 유쾌한 책을 만나서 마음이 한없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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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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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없는 이야기"


  제목부터가 눈에 띈다. 왜 지금은 없는 이야기일까? 책을 읽어가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된다. 없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중의적인 이야기입니다. 없다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없다는 이야기이다. 동물이 하는 경우도, 식물이 서로 성공하기 위해서 경쟁하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이 책은 우화이니까? 다음으로 없다는 것은 이 책의 내용대로 가면 책의 주인공들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조금씩 타협을 하고 조금씩 퇴로 없는 경쟁을 하다 보면 멸종되어 버릴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


  저자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내용은 암울하다. 약자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경쟁하고 강자는 약자를 없애기 위해서 힘을 모으니 말이다. 


  어떤 동물 이야기에서 약간 특이하게 우는 동물을 골라내고 그 동물을 쫓아내는 이야기, 이 일이 성공하고 난 다음에는 또 다른 동물을 골라내고, 끊임없이 골라내다보니 결국에는 그 동물들은 사라져 버리는 이야기. 염소를 잡아먹는 늑대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는 날카롭다. 송곳이라는 그의 책의 제목처럼 현실을 바라보고 풍자하는 그의 시각이 무척 날카롭다. 그래서 더 아프다. 애써 외면하려는 나의 마음을 자꾸 불편하게 한다.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내 마음에 불편함이라는 짱돌을 던진다. 


  동물들의 이야기라는 상상 속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동물을 노동자로, 소비자로, 평범한 사람들로, 이 시대의 약자로 치환하여 읽으면 신문이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 현실의 이면과 맞닥뜨리게 된다. 무한경쟁의 시스템을 멈추기 보다는 그 안에서 나는 안전하니까, 나는 괜찮으니까라는 위로를 하면서 혼자서 살아남으려는 우리들에게 그러다 보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던져 준다.


  천사의 이야기는 더 신랄하다. 천사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다보니 나중에야 비로소 자신이 속아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속아서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파인텍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을 해도, 신기록을 세웠다는 말 앞에서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다. 아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 아무렇지 않다는 말보다는 무관심하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그들의 아픔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면서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던 것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물려주기 위해서 애쓰면서 여기까지 왔던 것일까?


  문득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옹알이를 하고 있던 큰 아이의 손을 붙잡고 "아빠가 미안하다."라고 사죄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과연 내 아이에게 지금은 미안하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무한 경쟁, 적자 생존의 시스템 속으로 내 아이를 밀어 넣으면서 미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작가는 나에게 묻는다. 아이에게 미안해 하던 당신은 어디로 갔는가? 과연 그 때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씁쓸함과 불편함과 미안함으로 복잡한 마음으로 끄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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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터키사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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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하면 생각 나는 것은? 

  터번, 콧수염, 이스탄불, 2002 월드컵 3위, 갈라타사라이, 그리고 이을용? 맞다. 6.25참전국. 칸카르데시, 코레가지. 이 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최근에야 알게 된 것들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터키는 유럽에 속한 팀으로, 아시아에 속한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란, 이라크보다 더 먼 나라이다. 알고 있는 것도 거의 없고, 터키를 형제국가라고 부를 때 왜 그렇게 부르는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메메드2세, 콘스탄티노플 함락, 슐레이만 대제같은 민족, 인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들이 전부 터키 역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국사도 선택으로 가르치는 마당이니 세계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드물고, 세계사라고해도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세계사에서 번두리 역사로 취급받는 터키사에 대한 입문 소개서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간혹 터키사를 소개한다고 해도 딱딱한 학술 서적이나, 이슬람 역사처럼 중동과 이집트, 그리고 터키를 뭉뚱그려 한꺼번에 다루고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니 터키사라는 말자체가 낯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던 차에 나온 처음 읽는 터키사는 내 시선에 포착되기 딱 좋았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책들을 주문하면서 같이 끼워서 주문했다. 이미 주문한 로마제국 쇠망사와 갈리아 전쟁기, 내전기와 함께 읽으며 로마의 세계에 흠뻑 빠지리라 작정을 했다. 시간상으로는 가장 나중에 읽어야 하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순전히 쉽기 때문이다. "처음 읽는"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정말 쉽게 풀어 쓴 책이다. 혹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특히 터키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터키사에 입문하기 전에 애피타이저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중고등학생들이 읽어도 무방하고, 초등학교 5~6학년이 읽어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15000원의 가격으로 출판된 책이지만 일반 교양 도서라는 느낌보다는 교과서같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각 단원을 편성하고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터키사를 풀고 있다. 그렇지만 140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채 300페이지가 안되는(후주와 연표를 제외하고 순수한 내용만을 계산했을 때) 적은 분량에 그것도 그림까지 곁들여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주마간산식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 때문에 조금 자세한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가치는 철저하게 "처음 읽는"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것을 기억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쌍화점에 나오는 회회상인들이 터키계 사람이라는 것도, 돌궐이 사실을 투르크라는 그들의 이름을 얕잡아 본 중국식 명칭이라는 것도, 애거서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도 실은 터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위에서도 밝혔듯이 주어진 분량에 비해 너무 긴 세월을 다루기 때문에 설명이 간략하다는 점(물론 교과서에 비하면 엄청나게 자세한 것이겠지만)과 터키사를 너무 미화했다는 점이다. 첫번째 예는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과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이다. 단 몇줄로 표시되어 있지만 예루살렘 정복은 1차 십자군 원정의 결과이고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은 3차 십자군 전쟁의 결과이다. 시간상으로 100년의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단 몇줄로 표시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는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장구한 시간을 300페이지에 담으려 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이나 연표를 더 자세하게 기록해 주었다면 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서구 중심의 세계사관에서 벗어나 터키를 중심으로 쓰다 보니 그들이 벌인 정복 전쟁의 잔인함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십자군이 터키군에 대하여 한 것만큼 터키군도 십자군에 대하여, 그리고 유럽인에 대하여 잔인한 행동을 취했다. 터키에 대항하던 성요한 기사단의 모토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음을 기억한다면 터키 또한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넓은 포용력을 보였다고 말하지만 이교도에 대하여 특별 인두세를 물렸다는 사실은 포용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예니체리 군단 또한 마찬가지다. 예니체리 군단이라는 것 자체가 기독교도 소년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어내어 개종시킨 것임을 기억한다면 터키사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자칫 오해할 소지가 있음이 이 책을 보면서 느기는 또 다른 아쉬움이다. 

  어찌 되었던 읽기는 재미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혹은 화장실에서, 혹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에, 딱 그 정도의 분량이다.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ps. 43페이지 바울에 관한 설명 중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실수이다. 교회사에 의하면(그래봐야 전설이겠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십자가형이 아니라 목이 잘리는 단두형을 받았다. 십자가 형을 받은 것은 또 다른 사도인 베드로라는 것이 교회 전통에 따른 설명이다. 아마도 바울과 베드로를 혼동하여 생긴 실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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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1-05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aint236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saint236 2019-01-12 18:58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잘지내시죠?

ㅇㅇ 2019-01-23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십자군 전쟁이 잘 소개가 안된 이유는 살라딘은 당시 오스만제국의 지방 군벌이었고, 딱히 중요한 정계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전쟁은 오스만제국 입장에서는 지방군벌이 중앙정계에 진출하기위해서 서양 침략자와 별 중요하지 않은 지역을 두고 싸우는 것으로 판단했죠. 호들갑떨고 성전이다 하면서 유럽만 난리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