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 - 최초의 해상 제국과 민주주의의 탄생
존 R. 헤일 지음, 이순호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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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와 스파르타!

 

  매우 특이한 조합이다. 둘은 닮아 있는듯 하면서 전혀 닮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라는 것, 동일하게 패권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에서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그렇지만 패권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에서는 정말 다르다. 소수의 엘리트들과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스파르타와 소수의 엘리트들과 다수의 대중에 의한 승인에 의해 움직여지는 아테네! 어찌보면 이 둘이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 고대 국가들을 양분하여 격돌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혹자들은 스파르타는 육군국이요, 그리스는 해군국이라고 차이점을 이야기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구분이 모호해졌다. 스파르타가 육상전을 선호하고, 아테네가 해상전을 선호했던 차이는 있지만, 아테네를 꺾기 위해 결국에는 스파르타도 해군을 조직했고, 이를 통하여 아테네를 몰락시켰다. 물론 어떤 이들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와 동맹국들의 해군을 동원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육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것이지 분명 아테네와의 전쟁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왠만한 도시국가의 해군을 찜쪄먹는 해군을 보유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점은 시스템에 의해 사회가 유지되는가, 집단지성에 의해서 사회가 유지되는가에 있다. 시스템이 건전하게, 그리고 시대에 걸맞게 작동하던 시대의 스파르타가 강국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집단지성이 상식적으로 작동하게 되었을 때 아테네는 강국이 되었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육군 증강과 해군 증강을 두고 충돌했을 때 아테네의 대중은 해군 증강파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일단 시작이 어렵지 시작을 하게 되자마자 그들은 통크게 해군을 증강했으며, 서로 다른 자산 계급에 속해 있으면서도 함께 노를 젓는 해군으로 복무하였다. 물론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들에게 부과된 임무를 받아들였다. 대중이 상식선에서 사고하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건전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스파르타의 시스템이 시대에 발맞추어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걸었듯이 아테네는 대중의 판단이 상식선에서 건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엘리트들 사이의 싸움들이야 항상 있어온 것들이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도 항상 있었던 것이고, 자극적이고 황당한 발언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자격이 안되는 사람들도 항상 있어왔다. 다만 그들의 주장 앞에서 대중이 이성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판단하는가 하지 못하는가가 그 사회의 발전과 몰락을 결정한다. 아테네의 전반기는 집단 지성의 건전성과 성과를 보여줬다면, 아테네의 후반기는 집단 지성의 불건전성과 한계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지도자의 자질 유무를 떠나서 전반기 아테네는 실패한 그들을 용인하고 후원할 것을 결정하였지만 후반기의 아테네는 유능한 지도자마저도 어이없는 이유로 끌어내리기 일쑤였다. 유능한 지도자들이 아테네를 이탈한 이유, 그리고 처형당한 이유가 감정에 휩쓸린, 소수의 사람들에게 선동된 대중들의 결정이었다. 사람은 바뀌어도 시스템은 작동하는 스파르타에 비하여 대중의 판단에 대부분의 것들을 맡겼던 아테네가 안고 있었던 불안요소가 더 컸을 것은 자명하며, 이로 인하여 아테네의 몰락이 더 빨리, 그리고 급하게 시작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스파르타에게 패배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아테네는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테네를 보면서 집단지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집단지성을 맹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집단에 의한 결정이면 덮어놓고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SNS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더라"고 말하면 덮어놓고 믿는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믿는다. 그 결과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용기를 가지고 아니라고 진실을 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당장 위키피디아를 들어가보라. 그리고 위키피디아에 대한 기사들을 몇개 검색해보라. 집단지성의 한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위키피디아가 집단지성을 통하여 발전하는 포맷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 긍정적인면 속에 한계가 담겨있다. 책임을 지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그대로 노출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짐으로 인해서 집단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잘못된 정보가 단순히 실수라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악의적으로 의도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아테네의 대중들이 악의적인 선동에 휩슬려 자신들의 유능한 함대 지휘관들을 처형하고 이탈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요즘 온통 소란스럽다. 사람들의 감정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임계점은 이미 지났고 하나둘씩 폭발하고 있다. 상식과 이성 대신에 감정이 우선시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집단으로 모이고 있다. 바로 이 순간 집단의 힘이 양날의 검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사회의 부조리와 적폐(많이 듣던 말이다.)를 청산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괴물을 출현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건전한 상식과 다양한 논의,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자극적인 말로 대중을 선동하는 일베 국회의원과 pure siri party(알만한 사람은 다 알거라고 생각한다.)와 관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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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이야기 - 신화로 남은 전사들의 역사
폴 카트리지 지음, 이은숙 옮김 / 어크로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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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포드라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사람으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자동차 생산에 도입했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 때문에 포디즘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사람의 생각은 단순하다. 각 가정에 자동차를 한대씩 팔겠다는 것, 이를 위해서 단가를 낮추어야 하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모델로 통일하고,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하여 노동자의 업무도 단순화했다. 이 시스템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점에 비하여 얻는 이익이 컸기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모든 가정이 한대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난 다음이 문제였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외면했던 시스템의 약점을 파고든 후발 주자들에 의하여 헨리 포드 왕국은 무너졌다.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일어났던 포드 왕국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자랑으로 여겼던 컨베이어 시스템 때문이다.

 

  스파르타를 어떻게 설명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전사들의 나라, 베일에 가려져 있고, 헐리우드에 의하여 발견된 300으로 포장된 스파르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리뷰를 작성한 분 중에 책이 산만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중심으로 풀어가다 보니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간 책에 비하여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읽어갈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해있던 스파르타의 시스템, 왕이 둘이 있고, 전사를 길러내는 시스템인 리쿠르고스 시스템에서 읽어야 한다. 초기의 인물들은 이 시스템에 충실했던 사람들이고, 후기에 갑툭튀한 영웅들은 이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던 시절에 돌발행동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조그마한 시골도시였던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육상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리쿠르고스의 입법이다. 스파르타를 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시스템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 리쿠르고스 법의 골자는 스파르타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것, 이로 인하여 강력한 군대를 길러내는 것에 있다. 실제로 존재한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전설적인 인물인데, 굳이 그러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스파르타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리쿠르고스라는 인물은 그를 굳이 개인으로 취급하지 않고 스파르타의 시스템을 통칭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이해하도 무방하다.

 

  리쿠르고스의 법에 충실한 스파르타는 강력한 군사를 길러냈고, 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그리스의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테네가 해상제국으로 성장하기 전에도 이미 스파르타는 그리스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강대국이었는데, 이는 스파르타에 존재했던 시스템이 아테네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위에서 말했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맞지 않게 된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고 해도 시간이라는 변수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시스템을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러한 시도들은 시스템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그런데 스파르타는 이 부분을 무시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유지했던, 그들을 강국으로 만들었던 시스템을 마지막까지 붙잡았다. 보수적이라고 하기보다는 미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스템을 초기의 시스템으로 다시 돌려보려는 반혁명을 추구했고, 어떤 사람들은 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혁명의 길을 선택했다. 다만 이러한 변화들이 꾸준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결국 시스템으로 일어난 스파르타는 그 시스템으로 인하여 도태되었고, 로마 시대에는 테마파크로 전락해 버리게 되었다.

 

  스파르타를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도 스파르타처럼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의 한 부속품으로 맡겨진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스파르타처럼 강대한 군사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멍청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결국은 유통기한이 있으니 시대에 맞추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않는다면, 이 책은 재미도 없고, 산만하기만 한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한국은 박정희 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외부적인 요인이 작동을 했던, 혹은 박정희 개인의 역량이었던, 그것도 아니면 재수가 좋았던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그 당시 발전을 주도했던 시스템이 이제는 먹히지 않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 운동이 오늘날 적절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는가? 낡은 집을 고쳐주고, 마을에 작은 다리를 놓고, 도로를 깔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그러한 시스템들이 오늘날 한국에 적절한가? 혹은 재벌 기업을 중심으로 온갖 특혜를 주면서 키워내는 시스템이 과연 오늘날에도 적절한가? 시장 중심 주의, 혹은 국가 주도형 산업 등등 여러가지 시스템들이 난무하지만, 그리고 우리가 한번 해봤던 경험들이 있으니 그렇게 다시 해보자는 말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가면서 스파르타가 왜 멸망했는지를 다시 점검해 보길 권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면서 우려 섞인 시선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들은 의혹이 아니고, 기우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가 했던 그 시스템을 다시 끌어들어 부활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역사 교과서까지 바꿔가면서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도 눈물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아니라고 말하면, 더 이상 그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한번쯤은 멈추어서 생각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개돼지처럼 우매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새마을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바르게 살자라는 비석을 세운다. 박정희 동상을 세우면서 이 길만이 살길이라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대생이라서 그런지 산소 가스는 알지만 스파르타라는 역사는 잘 모르는가 보다.

 

  오늘날 한국을 바라보면서 박정희 시스템으로 재미를 봤던 우리 나라가 그 박정희 시스템으로 인해 몰락할 것 같아 두렵다. 헨리 포드의 독선과 자신감이 자꾸 생각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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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2 - 정조 시대를 읽는 18가지 시선
이덕일 지음 / 고즈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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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관련 콘텐츠들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2012년 영화 광해가 나왔을 때 왜 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을까? 명량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왜 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영화에 열광했을까? 대조영, 광개토대왕이 드라마로 방영되었을 때에 왜 많은 사람들이 그 드라마에 열광했을까? 그저 국뽕이라는 말로 치부해 버리면 논란거리가 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국뽕이라는 한마디 말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껄쩍지근한 느낌이 있다. 내 생각에는 이 영화가, 혹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박탈감, 분노, 안스러움, 절망과 같은 감정들이 그 콘텐츠에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지도자와 자존심, 희망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찾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정조가 인기를 끈다. 기승전연애로 끌고가기 정조가 가진 스토리는 힘이 딸린다. 주변에 변변찮은 러브 스토리 하나 없고, 책과 정사에만 매진했던 정조인지라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전개하는 방식을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불가능한 캐릭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라는 캐릭터가, 그리고 그 시대가 조명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우리는 정조의 시대에 열광하고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암울한 시대가 오늘날 우리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려본다. 정조의 시대는 영조의 오랜 치세를 겪었지만, 그 오랜 치세가 독이 되어 돌아온 시대이다. 왕조 국가 조선에서 신하들이 왕을 택하는 택군이 일어나고, 그렇게 노론과 손을 잡은 영조의 치세가 오래되면서 노론은 탄탄한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관록이 붙어 있는 영조마저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급기야는 아들 사도세자마저 뒤주에 가두어 죽게 만들어야 하는 암울한 시대, 민족과 나라의 이익보다는 당파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시대가 바로 영조의 시대였다. 정조는 영조가 가지고 있던 관록마저 없어졌으며, 자기 외가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 집안이라는 복잡한 상황을 할아버지로부터 왕권과 더불어 물려받았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복잡한 시대, 요즘말로 하면 혼용무도의 시대라고 하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 혼용무도는 전 지도층을 포함하지만, 정조의 시대는 정조를 제외한 지도층들을 포함한다는 정도? 정조가 어리석지 않으니 혼용무도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복잡했다라는 정도로 넘어가주길 바란다. 게다가 정조 즉위 당시 임금은 정조가 아닌 노론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니 혼용무도라는 말이 썩 어울리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이런 혼용무도의 시대에 정조가 외로운 투쟁을 하면서도 크게 넘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정조가 혼용무도의 시기에 그나마 희망을 빛을 던져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여리박빙의 심정으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위태한 시대, 위험한 시대 속에서 한발 한발 조심하면 근신하는 것, 그것이 정조가 자기 외로운 투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다만 여리박빙이라는 말이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모호하다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밝혀둔다.

 

  정조와 같은 혼용무도의 시대, 그 시대 속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정조가 했듯이 근신하면서 여리박빙의 심정으로 조심하면서 묵묵히 걸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요즘 차기 대선 주자들, 차기 정권을 꿈꾸는 사람들은 조심하기만 한다. 너무 조심하다 보니 자기 생각도 없고 그저 보신에만 급급하다. 뚜렷한 자기 생각도 없고, 소신도 없다. 정조가 허탈해 했던 것처럼 머리 속에 든 것도 없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을 찍찍 해대면서 왜 MS오피스를 마이크로 소프트사에서 사오냐고 사퇴하라고 큰 목소리를 외치는 사람들만 많다. 사드가 어떻고, 북핵이 어떻고 할 말이 많은데 국방위는 김제동 국감을 하고 있다. 혼용무도의 시대에 여리박빙의 심정이 아니라 지붕이 푸른 집 눈치만 보고 있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지도자들이 여리박빙이라는 말의 의미와 무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에는 이덕일의 책 답지 않게 평가와 해석이 거의 없다. 드라이하게 역사적인 사실만 늘어 놓았다. 이 책이 이덕일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감흥이 없고, 읽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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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1 - 정조 시대를 읽는 18가지 시선
이덕일 지음 / 고즈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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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과 함께 엮어서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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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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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정권부터 우리 국민들이 우리 정부를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글로벌 호구"

 

  참 씁쓸한 말이다. 글로벌 스챈다드를 외치는 시대에 맞게 호구짓도 글로벌로 하다니. 전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미국 대통령의 카트를 끌어줬다. 여당의 전 대표라는 사람은 주한미군 사령관을 업어 주었다.(물론 펠레의 저주에 맞먹는 저주라는 기가 막힌 일도 일어나긴 하지만.) 현 대통령은 외국 순방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에 귀국이라 부르지 말고 방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외국 순방을 많이 한다. 중요한 결정은 거의 대부분 외국에서 전자 결제하기로 유명한 분이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말이다. 그렇게 외국을 자주 순방하면서 마일리지를 쌓는 것 외에 어떤 성과도 없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 발표 후로 중국에 가서 그렇게 혐오해마지 않는 북한 정권보다도 못한 대우를 중국으로부터 받았으니 한국이 얼마나 국제 사회에서 호구짓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조선사를 배우면서 광해군은 연산군에 맞먹는 폭군이라고 배웠다. 인조 반정은 잘못된 것을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의로운 행동이라고 배웠다. 흥청망청이라는 한마디의 말로 광해군을 깎아 내렸던 역사를 배운 나에게 있어서 광해군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은 광해군에 대한 재해석을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씌여졌다. 물론 재해석을 한다고 광해군의 오점을 일부러 누락하거나 하지 않는다. 광해군의 악정은 분명한 악정임을 짚고 넘어간다. 다만 이 책은 광해군의 외교에 대해서만큼은 큰 점수를 주고 있다. 명의 쇠퇴와 청의 발흥 사이에서 조선의 사대부들이 명으로 경도되어 있는 시대 속에서 광해군은 명과 청 사이의 외줄타기 외교를 통하여 실리적인 외교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광해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도, 청도 아닌 조선이었다는 의미이다.

 

  이 시대에 광해군이 필요하다는 말도 이런 의미이다. 조그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세계 열강이 모여 있다. 전 세계 군사력의 10위 안에 있는 국가들의 이익이 얼마나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지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미묘한 관계 속에서 한국은 충분히 실리 외교를 취할 수 있다.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이 미묘한 상황을 잘 활용하여 자주 통일과 자주 국방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 정권과 이번 정권의 대통령은 다른 의미의 광해군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던 폭군으로서의 이미지, 벽창호로서의 이미지를 덧 씌운 광해군의 이미지만 추구한다. 그의 외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외국에 나가서는 온갖 호구짓은 다하면서 자국민을 향하여서는 준엄하게 꾸짖는 행태는 영화 광해군에서 신하들이 보여주는 행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다.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고, 유지 될 수도 있다. 다만 외교에서만큼은 지난 두 정권과는 다른 사람들이 집권했으면 좋겠다. 내가 반기문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리 외교, 아직은 우리에겐 너무나 먼 유토피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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