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속으로 2 - 예수로 말미암아,사도행전 3.4.5장 이재철 목사의 사도행전 설교집 2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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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3~5장까지의 설교 내용을 모아 놓은 책이다. 1권을 읽고 2권을 읽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오자마자 사 놓고도 선뜻 손이 안가는 책이다. 저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설교집이 가지는 한계라고 하겠다. 분량이 조금 나가더라도 "인간의 일생"이나 "참으로 신실하게"처럼 4개 정도의 설교로 이루어진 책이라면 훨씬 읽기가 수월하겠지만 이렇게 10장 내외의 설교를 수십편 모아 놓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어렵다.  

  이 책은 성전 미문에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과 여기에서부터 파생된 사건,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권에 비하여 이번 권은 삶에 대해 조금은 더 정조준하고 있는 느낌이다. 저자가 설교 가운데 인용한 폴 발레리의 말이 이 책 가운데 담겨진 핵심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대가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리라. 

  저자의 말대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과 사는대로 생각하는 사람. 전자는 불의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상황에 휩쓸려 항상 타협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사도행전 3~5장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어지며 초대교회를 이끌어가고 부흥하게 한 사람들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임을 밝히면서 당신은 어느 부류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과 결단을 요구한다. 

  저자의 질문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과거에 읽었던 책의 제목인데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이다. 맞다. 요즘 참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 같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하기 싫어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설교도 목사가 다 요리해서 떠 먹여 주길 바란다. 세세하게 이런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는 세부적인 삶의 행동 강령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설교가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세세하게 조목조목 삶의 행동 강령을 내려 주는 것도 문제다. 상황과 현실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참 어렵지만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도,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도 늘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점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가 이것이 아닐까?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내용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묵상하고,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하는 단계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요, 많은 욕심들을 버리고 낮은 자리를 스스로 택할 때 가능한 일이다. 과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사도행전 속으로 2권이 내게 던진 질문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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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7-2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폴 발레리가 한 말이 아니라 볼 프루제가 한 말이다. 폴 브루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검색이 안된다.
 
열린다 비유 : 돌아온 탕자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2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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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 탕자의 비유 또한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아버지, 큰 아들, 탕자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탕자의 유산 분할 요구가 당시 문화권 속에서 얼마만큼 무례하고, 불효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두말없이 들어주는 아버지의 행동이 얼마나 황당한지, 옆에서 두말없이 그것을 지켜보다가 나중에 동생이 돌아왔다는 말에 화를 내는 큰 아들이 얼마나 기회주의자인지 각 사람의 입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동시에 이 비유를 들은 사람들이 각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하여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비유라는 것이 원래 드라마를 보는 듯이 생생한 것인데, 이 책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하여 비유가 잃어버렸던 생생함을 회복시킨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저 여기에서 멈추었다면 상당히 실망했을 것인데 그래도 2권인지라 조금 더 나아가서 비유의 깊은 곳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 책은 큰 아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큰 아들도 집에만 있지 사실은 탕자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뒤에 숨어서 안그런척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이익을 다 챙기고 있는 큰 아들의 모습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다다르게 된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진다면 열린다 비유 시리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까 한다. 2권을 먼저 보고 나서 1권을 봐서인지 1권의 재미가 반감되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초급자 입문용이라면 탕자의 비유는 비유에 대한 중급자 입문용 내지는 초급자 발전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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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1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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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사마리아인!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무슨 내용인지 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비유의 깊은 곳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비유는 1세기 이스라엘의 문화라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1세기의 사고 방식이 2011년을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을 수 없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문화와 같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의 독자들이 생동감 있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는 동화, 혹은 공부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뒤로 하고 어찌되었던 공부를 해야 한다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하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이렇게 비교적 재미있고 쉽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단순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유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당시의 사상에는 어떤 학파들이 있는지, 역사적인 배경은 무엇인지, 그 비유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이 비유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너무 자세해서 때론 그런 친절함이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고, 거기에 유대교적인 가르침까지 더하여 이만한 책을 써낼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오래 살아서 그 문화를 이해하는 저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생생하게 풀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미 다른 책을 통하여 이 비유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큰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비유에 대한 신학적인 책들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비유 입문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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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 10주년 기념판, 성숙한 인격의 8가지 자질
빌 하이벨스 지음, 박영민 옮김 / IVP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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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림심연(如臨深淵)하며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

  시경 소아편의 소민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감히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없고(不取爆虎)
  감히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없나니(不取憑河)
  사람들은 모두 이를 알지만(人知其一)
  그 밖의 다른 것은 알지 못하는 구나(莫知其他)
  두려워하고 또 조심할지어다(戰戰兢兢)
  깊은 연못가에 이른 것처럼(如臨深淵)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如履薄氷) 

  과거 선비들과 위정자들이 자신을 다스리고 경계하는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여림심연이요 여리박빙이라"는 말만큼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정확하게 경고를 해주는 말도 없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이 책의 제목에서 나는 "여림심연이요 여리박빙"이라는 여덟 글자를 보았다. 묘하게도 성숙한 인격에 이르기 위한 자질을 저자는 8가지로 꼽고 있다.  

  "용기, 자기 통제력, 비전, 인내, 온유한 사람, 엄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파격적인 사랑" 이렇게 여덟가지는 그리스도인이 인격적으로 성숙함에 이르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하는 필수적인 인격들이다. 이러한 인격을 구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성숙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직 믿음으로만을 강조하다보니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갖추어야할 책임감을 소홀히하게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아니던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다 용서해주시니까라는 안이한 생각에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적을 고리타분한 설교, 도덕주의로 매도해 버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 깊어진다는 것은, 성령과 동행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인격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나를 인도해 가시는데 내가 여전히 그대로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나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없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살펴본다면 지금 나의 신앙의 상태와 수준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인격의 변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읽어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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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치유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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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군대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군에 입대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이 한달쯤 지나자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궁금해서 그 녀석을 찾아가 요즘은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녀석 대답하는 말이 이렇다.  

  "주일날 예배 전에 찬양 인도하는 중대 군종병 있잖아요. 그 선임이 중대에서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사랑한다는 찬양을 불러요. 저는 그게 정말 가식처럼 느껴져서 싫어요. 그 선임 얼굴만 보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 사라져서 안 나가요." 

  그 녀석이 교회에 다시 나오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썬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다. 일주일을 내 맘대로 살다가 일요일만 되면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의 개신교인이 800만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진짜 크리스천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짜게 잡아도 아마 50%는 썬데이 크리스천일 것이다. 이것저것 빼고 짜게 잡은 수치이지만 어찌보면 희망 수치인지도 모르겠다. 

  썬데이 크리스천의 특징이 무엇인가? 생활이 정확하게 둘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일요일과 월요일에서 토요일! 이렇게 둘로 나뉜 일주일을 각각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요일에는 기독교인으로서의 기준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아간다.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성실히 나오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월요일에서부터 토요일까지는 기독교인이지만 세상의 기준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는 것, 가끔 차에 십자가 악세사리를 걸어 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증표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썬데이 크리스천이 몇 맥만이 있다고 한들 교회 싸이즈가 커지는 것 외에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오늘날 교회가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고, 목사가 먹사로 불리면서 최소한의 존경심마저도 사라지고 조롱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된 교회가 아니라 큰 교회를 지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썬데이 크리스천인 까닭이다. 교회에서만 거룩하고 사회 속에서는 그 거룩을 잃어버리고 너무나 완벽하게 동화되어버리는 삶으로는 세상 속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고,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말이지만 간과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기독교인의 행실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는데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 결과가 일상과 유리된 기독교 신앙이다. 그런 신앙이 생명이 있고 힘이 있을리 없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이야기한다. 일상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일상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썬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내 삶을 온전하게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 이것이 내 신앙의 화두이자 목표이다.

ps.청년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한 가득 닮겨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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