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저항이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박규태 옮김 / 복있는사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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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이란 용기다!

 

  안식일은 저항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주일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쉼이란 우리가 마당히 누려야할 권리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살펴보고,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몸이 자시 일을 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누리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쉴 권리를 말하는 우리들에게 세상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이 시대의 자본가들이, 시스템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네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네가 게으르기 때문이다가 아닌가? 몇년 전에 주 5일제를 시작한다고 할 때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우려와 걱정들이 있었는가? 근면과 성실을 이야기하는 세상 속에서 쉼이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은 게으름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비난을 받지 않는가?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쉼을 이야기한다. 잠시 멈추어서서 모든 일을 내려놓고 쉬라고 말한다. 안식은 말 그대로 평안히 쉰다는 것이다. 일을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머릿 속으로 하는 오만가지 생각들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아니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두려워서 이다. 혹시 밀려나는 것은 아닌가? 혹시 쉼으로 인하여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가?

 

  만나 사건을 통하여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매일 아침에 나가서 만나를 주웠던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무엇일까? 주어진 만나에 대한 감사?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의 속성에 대해서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내 눈 앞에 있는 만나를 보면서 그날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라는 명령은 하나마나한 명령이다.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일은 만나가 안 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거두어 들일 수 있을만큼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하루가 지난 후에 깨닫게 된다. 썩었다. 악취가 난다. 이러한 일을 반복하면서 그들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면서, 마음 속에서부터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억누르고 그날 그날의 양식을 얻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마음 속에 심어 주는 것이 무엇인가?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가? 젊은 시절에 노후 준비를 하지 않으면 너의 노후는 불안할 것이다. 언제까지 자녀에게 짐이 될 것인가라는 공포 마케팅이 횡행한다. 심지어는 장례 비용도 미리 준비하라고 자녀에게 짐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에 속아서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다. 그런데 그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는 행복한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담보잡힌 나의 현재는 불안하고, 두렵고, 초조하다.

 

  그런 우리에게 안식일은 저항이라는 말은 정말 의미가 깊은 말이다.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뒤집어 엎어 버리는 말이다.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서, 멈추어 서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다. 저자의 이름 값에 부끄럽지 않는 묵직한 가르침을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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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과 신들 - 개정판
주원준 지음 / 한님성서연구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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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신화가 재미있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고, 그 내용 자체로도 재미가 있다. 도대체 이런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신화에 관한 책이라면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을 이해하는데 이러한 점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아쉬운 것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신화들은 대개 그리스와 동양, 그리고 북유럽 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바벨론과 이집트의 신화는 아직도 내겐 생소한 부분들이다. 그래서 이 분야의 책이 나오면 구해서 보는 편이다. 책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낼름 집어들었다. 그동안 사놓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구매를 자제했지만 저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이것은 반드시 구매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성경을 이해하려면 꼭 필요해"라는 면죄부를 주면서 샀다. 그런데 재미는 있는데 난해하다. 난해하다는 표현은 내용이 어렵다는 말보다는 무엇인가 껄쩍지근한 마음이 해소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책의 두께가 생각보다 두껍지 않은데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화적인 내용에 충실하기 보다는 성경을 번역함에 있어서 이러한 내용을 감안하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는가라는 취지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집트의 신화와 바벨론,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고대 팔레스타인의 신화에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거나, 번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익할지 모르지만 신화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책이다. 


  그래서 선뜻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지는 않다. 필요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라는 말이면 족할 것 같다. 아마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여러번 펴보지는 않을 것 같아서 가뜩이나 넘치는 책꽂이에 꽂아 놓을 책을 하나 장만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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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7-0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기나긴 역사에 비해서 이집트의 신화와 바벨론,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는 영미에 비해서 국내에는 아직 많이 번역되지 못한것 같습니다.아마도 국내에선 신화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만을 생각해서 그런것 같은데 저도 신화를 좋아해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나마 북유럽 신화도 과거에 비해서 좀 번역이 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 내용이 이집트의 신화와 바벨론,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 치우쳐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아마도 성경속 상당수 내용이 이들 나라의 신화를 많이 차용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인데 이 내용은 메소포타미의 신화인 갈가메쉬 이야기에 나온것을 그대로 본따 성경속에 넣은것이라고 하네요^^

saint236 2018-07-07 16:28   좋아요 0 | URL
아쉬운 건 그나마도 조금더 자세했으면 좋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정작 팔레스타인 토작민들의 신화는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

카스피 2018-07-09 17:37   좋아요 0 | URL
고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만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오해하는데 팔레스타인은 고대부터 다민족 지역으로 가나안족, 헷족, 히위족, 브리스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여부스족 등 원주민이 ㅇ살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들 민족은 여러신을 믿었기에 그리스 로마와 같은 신화가 있었겠지만 이들의 신화는 유대인의 정복과 그 이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그리스), 히타이트, 앗시리아, 로마의 침략과 정복으로 아마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독교 1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양혜원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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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진영 쪽에서 주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사도신경은 전혀 복음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적인 것의 의미에 대해서 논란의 의미가 있지만 과격한 보수주의자들은 예수님이 말하지 않은 것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진보진영에서는 사도신경은 사도들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오랜 역사를 두고 사도신경은 Apostles' Creed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암송되어 왔고 교육되어 왔다. 이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맥그라스는 사도신경으로부터 시작해서 기독교 역사상 존재해왔던 여러 신조들의 역사적인 유래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신조가 제정되고 고백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면서 교회 안에서 신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기록하고 있다.

 

  이 시대 최고의 변증가라 불리우는 맥그라스답게 내용의 깊이는 있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 루이스의 책을 읽기가 쉽지 않은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이 책도 상당히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쉽지 않다.

 

  루이스는 신조가 교회 안에서 공동체성을 상기시키고 믿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신조를 외우면서 믿음을 보호하는 교리적인 내용들을 재교육하고, 이를 통하여 믿음을 강화하고, 믿음의 공동체성을 강화하게 된다. 사도신경을 예배 시간에 외울 때 너무 익숙해서 주문처럼 외우지만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의 마운더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어떤 예수님을 믿으며, 어떤 성령님을 믿고, 어떤 종말론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를 사도신조는 몇가지의 간단한 문장으로 상기시킨다. 그외에 다른 신조들을 살펴보면서 사도신경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역사의 결과물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다시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교회 안에서 청년들을, 혹은 교리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교육할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의 시리지들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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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6 0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16 0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 세월호와 기독교 신앙의 과제
박영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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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에 화정감리교회가 있다. 내가 다니는 교단에 속한 교회이기 때문에 약간이나마 그 사정에 대해서 풍문으로 들은 것들도 있고, 인터뷰 기사도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화정교회 담임목사인 박인환 목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눈물이 났던 적이 있다.

 

  사고난 아이들 가운데 예은이라는 아이가 있다. 세월호 대변인 유경근씨가 예은이 아빠다. 예은이 엄마는 화정교회 심방전도사이다. 사고를 당하고 박인환 목사는 뭐라고 위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교단 회의에 서명지를 내밀면 친한 후배들도 자신을 피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교단은 수없이 많은 서명지를 가져오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속도 많이 상했다고 한다. 박인환 목사가 예은이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열심히 싸우라고 그렇지만 주일날은 꼭 예배에 나오라고. 힘들고 어렵고, 소상하지만 주일에는 예배에 나와서 새로운 힘을 얻고 또 싸움하러 나가라고.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도 예은이 아빠에게 한달에 한번마이라도 예배에 나와서 심신을 충전했으면 좋겠다고, 지금까지 애를 썼으니, 잠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겨두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그가 하는 말이 단순히 시간 벌기가 아니다. 박목사는 교회 앞마당을 보면서 그 안에서 뛰놀던 예은이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이 나간 후에 교회는 이상한 말을 했다. 세월호 사건을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이 종북 좌빨이라는 말에 동의하면서, 유가족들이 더 많은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면서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도대체 교회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을 향하여 최소한의 공감도, 연민도 느끼지 못하면서 인류를 사랑한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몇년 전 동남아에 있었던 쓰나미 사건에 대해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놀러가니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던 그 분도 내가 다니는 교단의 목사님이다. 그런데 그 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단을 막론하고 왠만큼 크다고 했던 교회들은 대체로 공감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분위기였다. 도대체 교회가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팽배한 물신주의도 문제지만, 신학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특별히 신정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세월호 같은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 이렇게 묻게 된다. "하나님, 제게 왜 그러세요. 하나님 그 때 당신은 어디계셨습니까?" 2차대전을 겪었던 유대인들도, 독일의 고백교회도, 일제의 침략에 신음하던 한국 교회도 그러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교회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싸웠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러한 공감 능력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신학은 둘째로 치고, 최소한 인간이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러한 말은 하지 못하리라.

 

  이 책을 읽고 신학적으로 말할 거리도 많다. 신정론에 대해서 알기 쉽게 풀어 놓았다. 그러나 난 이 책을 읽고서 신학적인 말을 하려고 하지 않겠다. 다만 교회가 최소한 위로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이 곁에 있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흐느끼는 어깨와 등을 쓰다듬어 줄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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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09-0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라도 언제든지 어떻게든 잊지 않아야 하죠. 기억해야죠.

saint236 2015-09-09 10:39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기억한다는 것이 힘들겠지만 기억해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요

transient-guest 2015-09-16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int236님 같이 생각하는 분들이 제 주변에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은, 멀쩡한 고객이 저한테 반말쓰고 이름부르다가 자기는 xx선생님 또는 xx장로님이라고 부르라는 사람을 만날 확율이 더 높어서 문제지만요. 주변에 좋은 분들도 많은데, 유독 저는 교회분들하고는 인연이 없네요. 그래도 saint236님을 생각하면, 또 저도 천주교인으로서 신을 믿는 사람인데,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함부로 욕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하구요. 좋은 분들도 많은데, 주류의 방향,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권위의식과 기득권의식이 큰 문제가 아닌가 해요. 공감을 막고 일단 비난하고 정죄하게 만드는 주요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saint236 2015-09-16 10:35   좋아요 0 | URL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걸 포기하면 기독교가 아니니까요. 다만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타인에 대해서 예의는 갖출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한국의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많이 어긋나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는 왜 죽었는가 - 신화가 아닌 역사
빌 오라일리 외 지음, 이광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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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출판사에 속았다.

 

  역사적인 예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앙서적도 아닌 어중간한 책이다. 전혀 복음서를 반영하지도 못했고, 신학 입문을 위한 책도 아니다. 게다가 오타는 왜 그리 많은지. 처음에는 오타를 찾아보겠다고 사진도 찍고 체크했지만 나중에 오타가 너무 많아서, 게다가 똑같은 오타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띄어 쓰기와 조사 사용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이해가 부족한 책이다. "의"와 "에"를 구분하지 못하는 책을 보고 싶은 독서가들이 있겠는가? 이 책은 딱 그런 책이다.

 

  진심으로 돈이 아깝다. 지금까지 한번도 중고서점에 책을 팔아본 적이 없는데 만약 내가 책을 판다면 이 책이 일순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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