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규장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 2
A. 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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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사람들에게 희생 없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유약한 그리스도인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들로 즐겁게 해주어야만 교회에 나온다. 그들은 신학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하며, 유명한 기독교 소전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종교 소설이나 흥미로운 영화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연약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을 힘 빠진 손으로 겨우 붙들고 있다.(p20)  

  신자들의 육신적인 목숨을 끊는 것이 사탄의 전력에 더 잘 들어 맞을 때도 물론 있겠지만, 그의 전략의 핵심은 그들을 육신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요 전력은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이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p24) 

  결신자들을 만들겠다는 열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최근에 우리는 현대의 세일즈맨들이 사용하는 기법을 사용한 죄를 범한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판단이다. 세일즈맨들은 상품의 좋은 점들만 이야기하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산허리의 양지 바른 곳에 아늑한 집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그분이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고, 사업이 번창하게 해주시고, 가정을 지켜주시고, 언제나 행복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믿고 교회에 나온다. 그들에게 첫 찬바람이 몰아치면 그들은 떨면서 카운슬러에게 찾아가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다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다.(p33) 

  꽤 긴 부분을 인용해 놓았다. 어설프게 추천 한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서평을 쓴다는 오해를 받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 마음에 콱 들어와서 박힌 부분들이기 때문에 여기에 인용해 본다. 얼마전 리서치 결과가 나왔다.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가 꼴찌를 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열심히 사회를 섬기고 봉사해도 그것들은 당연한 것이다. 몰라준다고 억울해 할 것도, 서운해 할 것도 없다. 그것이 교회의 본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마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를 하게 만든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교회에서 벌어진 사건들 때문일 것이다. 장로 대통령을 배출하신 강남의 ㅅ 교회에서 부목사가 담임 목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서로 고소하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온 사건인데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속사정은 더 복잡할 것이다. 같은 교회에서 청와대 출입 목사를 사칭하여 신도의 재산을 가로채기도 했다. 분당의 모 교회는 담임자의 연봉이 6억이란다. 물론 부풀려진 부분도 있고 이해하려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녀 유학비로 1년에 2억을 쓴다는 것이고, 여자 문제가 결려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이야. 감리교는 감독회장 문제로 연일 막말과 싸움이 오가고 있다. 이런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게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는 복음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혹 우리가 붙잡고 있는 복음이 평안함이라는 한 부분만을 강조하고 십자가를 부정하는 반쪽짜리 복음이라면 우리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멸시와 천대와 십자가는 주님 홀로 지고 나는 영광을 받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인양 가르친다. 

  예수 믿으면 잘 살고, 복 받고, 세상에서 성공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큰 교회에서 목회한다고 말하면서 신학생들은 너도나도 대형 교회 목회를 꿈꾼다. 그렇다면 소는 누가 키우는가는 박영진의 말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작은 교회는 누가 섬기냐?" 

  마케팅에 물들고, 경제 논리에 물들고, 심리학에 물들고, 엔터테인먼트에 물들고! 교회가 점점 약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점점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짜 복음을 붙들지 못하고 내 입맛에 맞는 편집된 복음, 가짜 복음을 붙잡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진짜 복음은 이런 것이고, 가짜 복음은 이런 것이다."라며 사자후를 토하는 토저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말하는 세례 요한이 겹쳐보이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일까? 복음에 대한 진지하고 치열한 그의 고민이 너무나 고마워 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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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타이밍 - 당신을 들어 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준비 과정
오스 힐먼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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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미치기 전에 주셔야 합니다." 

  교회 근처에 있는 옐로우 트리라는 커피숖에서 발견한 문구이다. 옐로우 트리라는 이름에 맞추어 나무에 노란색 포스트 잇에 쓰고 싶은 말들을 써서 달 수 있는 나무가 있다. 여기에 씌여 있는 글들을 읽어보노라면 쏠쏠한 재미와 더불어 마음에 남는 글귀들이 있다. 위에 있는 글귀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을 구하는 것일까? 배우자를 구하는 것일까? 아니면 직장을 놓고 기도하는 중일까? 그것도 아니면 진로? 아니면 비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 미치기 전에 주셔야 합니다."라는 문구에 담긴 그 간절함이 애처롭다. 얼마나 간절하면 미치기 전에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께 떼를 쓰던 내가 아니었던가? "왜 안주십니까, 내 기도를 들으시기는 하시는 것입니까?" 떼를 쓰면서 정말 미칠 것 같지 않았던가? 나만 그런가? 아니다. 지금 내 주위에도 간절하게 기다리던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서 낙심하고 있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 정말 미칠 것 같은 그 때. 우연히 이 책을 통하여 위로를 얻었다. 하나님의 타이밍를 기다리는 법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익히 알고 있던 것들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그대로 살 수는 없는 법. 남의 일이라면 충분히 냉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라면 조급해지고, 미쳐버릴 듯이 답답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는 지혜를 제공해 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요셉이라는 인물은 참 흥미로운 인물이다. 집안의 귀한 자식이었다가, 형제들의 시기로 외국에 종으로 팔려가고, 성실하게 일했지만 감옥에 갇혔으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몇년간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지만 자기를 팔아버린 형제들, 자기의 호의를 무시했던 이집트의 고관들에게 단 한번도 복수하지 않는 사람이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비유하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다. 그런 요셉을 하나님의 타이밍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다른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요셉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유다의 시험과 성실성의 시험, 인내의 시험, 성공의 시험을 거치게 된다는 말이다.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부인하고 싶어하는 시험이 먼저 찾아오고 다음으로 맡겨진 일에 성실한가 하는 시험, 그리고 그 성실함을 꾸준한 인내로 유지할 수 있는 시험, 마지막으로 성공 후에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시험이 우리에게 순차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시험은 우리를 충분히 넘어뜨릴 수도 있고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험을 이겨냈을 때 우리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때를 따라 쓰임받는 사람이 된다. 

  말은 쉽다. 너무나 분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실제로 이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세가 믿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믿음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믿음일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세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것 얼마나 힘들고 답답한 일이겠는가? 그래서인지 "하나님 미치기 전에 주셔야 합니다."라는 기도가 남의 이야기같지 않다. 

  시험에 실패하고 고민하던 청년에게 건네주었는데, 어떻게 이 책을 받아들였을까? 조만간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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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실 때 - 맥스 루케이도가 전하는 희망과 격려 이야기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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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 목수 엘리와 아무 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 펀치넬로, 딱지가 붙지 않는 루시, 많은 나무 인형들. 맥스 루케이도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너는 특별하단다의 주인공들이다. 자존감이 낮아 스스로를 비하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한편의 멋진 동화로 어루만져 준 사람, 이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 저자 등 맥스 루케이도에 대해 표현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이다. 그 사람의 이름만으로 책이 팔리는 실정이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게다가 그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으며, 그 안에 영혼을 터치하는 영성을 담고 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실 때"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 범상치 않은 제목과 아지자기하지만 귀여운 표지, 그리고 그의 이름값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사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마음이란 감동보다는 허전함이 앞선다. 그의 책이 전부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맥스 루케이도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기대감이 없이 읽었다면 꽤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의 이름에 걸맞는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신변잡기적인 일들을 가지고 영적인 부분으로 풀어나가는 능력은 역시 독보적이다. 귀뚜라미와의 일화, 주변에서 경험한 이야기들, 오즈의 마법사 등 일상적으로 많이 접하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풀릴 줄이야. 역시 루케이도의 글솜씨는 대단하다. 그런데 글솜씨는 대단하지만 묵상과 글의 깊이가 다른 책에 비하여 얕은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이 책을 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실 때... 

  책의 제목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이고, 나의 이름을 부르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름을 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다. 일례로 어느 문화권에서는 여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가족과 남편에 한정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에게 특별한 존재, 엘리에게 펀치넬로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겠지? 이 사실이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한없이 키워준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실 때가 있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삶의 어느 한 부분에서 내 삶에 개입을 하신다는 것이다. 잘못된 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이든지, 아니면 나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기 위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를 만나기 위해서인지. 이유야 여러가지겠지만 분명하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 옆에 오신다는 것이고 그 순간 나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 순간 나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혹 못들은척 무시하지는 않을런지? 이 책이 내게 단순히 희망과 격려로 끝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다른 책과 함께 읽는다면 훨신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은 이 책을 토대로 소그룹 인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나오는 루케이도의 책들이 대개 이렇게 편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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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2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그림책으로도 있어요.
아이들한테 이런 책 보여주면 참 좋을거 같아요.^^

saint236 2010-12-21 19: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애니메이션도 있고.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가서 싫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자존감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기에 가장 좋은 책인 것 같아요.
 
닉 부이치치의 허그(HUG) - 한계를 껴안다
닉 부이치치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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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 부이치치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이다. 어느 날 설교를 하시던 중 갑자기 보여준 영상 속에는 팔다리가 없는 잘 생긴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자기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당당함,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데 서핑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 여운을 다시한번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런데 젠장이다. 며칠을 읽었는데도 진도가 잘 안나가는 것이다. 요며칠 자기계발서만 줄창 읽어대서인가? 간신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고무지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한참을 미뤄 두었다가 늦은밤 심심하던 차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그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그의 장애를 사람들 앞에서 거침없이 보여주는 모습이 당당하다. 오리발같은 발 하나로 드럼을 치는 그의 모습이 유머러스하다. 넘어졌다가 힘겹게 일어서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가 대단해 보인고, 그런 사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오묘하기만 하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나의 교만한 생각(그렇다 교만이다.)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 

  그가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그의 부모님이 그를 자식으로 인정하고 키우기 위하여 얼마나 상심했었는지를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아, 남들보다 더 낙천적이라 그렇게 된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그의 뒷 모습에는 그의 눈물과 부모님의 눈물이 있었다. 팔다리가 없는 그가 다른 사람을 안아 줄 수 있을리 없다. 그럼에도 그의 책 제목을 허그라고 한 것은 그의 넉넉한 마음과 그 너머에 있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그대로 보여준다. 어찌보면 허그라는 제목은 "나를 안아주세요.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세요. 이럼으로 인해 당신은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라는 무언의 가르침이 아닐까? 

  그의 삶이 왜 그렇게 험난하면서도, 투쟁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아름다운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닉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팔다리를 만들어 줄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나오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 가능성만 믿고 기다리기보다 모든 일을 손수 처리할 힘을 기르기로 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해답을 찾고 제 손으로 행복과 성공의 길을 열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가족과 친구들이 적절한 순간에 지원의 손길을 내밀 때 나로서는 언제라도 환영이다. 그러나 결국 상황을 끌고 나가는 주체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더 노력할수록 더 많은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P.7) 

  언젠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그러한 희박한 가능성에 매달려 지금 해야 할일을 하지 못하는 인생이 되지 않겠다는 그의 삶의 태도가 그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행복과 성공은 다른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들고 찾아 가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몸으로 실천하기 때문에 그의 삶이 그렇게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삶 앞에서 겸허해진다.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막연한 희망이 내 삶을 이끌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의 삶과 내 삶이 비교되어 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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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8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11-2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다시 올리자니 그것도 그렇고^^; 대신 열심히 다른 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올해 100권이 목표인데 97권까지 완료하고 98권째 진도 나가고 있거든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연습 (양장)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은 책 1
로렌스 형제 지음, 오현미 옮김 / 좋은씨앗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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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는 제목이 어떤 사람에게는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임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인데 사람이 연습하고 훈련해서 이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자칫 교만하다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임재야 그분의 권한이지만 최소한 내 곁에서 그분에게 다가가도록 노력하는 몸부림은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은 매우 유명하다. 어느 특별한 자리가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하나님을 만났던 그의 경건한 삶은 우리에게 경건한 삶이란 무엇인지 보다 잘 가르쳐 준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경건이라는 말을 많이 오해한다. 경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번잡한 곳을 떠나서 조용한 곳을 찾아야 하며, 무엇인가 뜨거운 체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건하기 위해서 터가 좋은 기도원을 찾아가고, 능력이 많이 일어난다는 집회를 찾아다닌다. 무슨 집회, 무슨 집회라는 타이틀 밑에는 웃기지도 않는 글들이 써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마음에 근심이 있는 사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 무슨 일을 하든지 안 풀리는 사람. 집회를 통하여 병이 치유받고, 소원이 성취되고, 인생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이런말 하면 그렇지만 점집을 찾아가서 점을 보고 굿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한 쪽은 신령님의 이름으로 다른 한 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이게 과연 경건이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겠는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이 양을 치던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그 거룩한 곳은 그가 매일 양을 몰고 다니던 곳, 즉 그의 삶의 자리였던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 하나님은 일요일만의 하나님이 되어버리는 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던 엘리야는 불, 지진, 바람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세미하게 들리는 음성을 들었다. 로렌스 형제도 마찬가지다. 설거지 가운데, 포도주를 사러 떠나는 먼 길에서, 청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세밀한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나 또한 이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쉽지가 않다. 내 삶의 자리가 너무 번잡하고, 하나님의 음성은 너무나 세밀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번잡함을 줄이고,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PS. 번역이 그래서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일까? 글이 주는 감동이 매우 약하다. 생각보다 못한 책의 감동이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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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1-1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오래 전에 읽었어요.
정말 말씀대로 유명한 책이라고 하면서 감동은 그다지 없었죠.
번역이 좀 그런가 봐요. 그땜에 기독교 서적 읽는 걸 꺼려하기도 했구요.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던가? 그 책도 보십시오.
난 도무지 이해 못하겠던데 십중팔구는 번역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아졌는지 모르겠어요.ㅜ

saint236 2010-11-10 14:04   좋아요 0 | URL
그것도 보고 있는데 그나마 이것보다는 조금 낫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