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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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적으로 사세요!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 중에 하나다.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이 낫잖아. 시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져." 곳곳에서 긍정이 넘쳐난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곳곳에서 이러한 비결을 가르쳐 준다면서 긍정의 심리학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신문들은 잊을만 하면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병을 이기는 비결이다,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논지의 기사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우리는 이 주장에 세뇌되어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긍정만이 살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일까?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이 절대 진리에 도전한다. 과연 긍정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유방암 판정을 받기 전의 저자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유방암 앞에서 이 절대 진리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긍정의 심리학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서 깊이 파헤치기 시작한다. 정치, 경제, 문화, 심지어는 종교가지 파헤치면서 그녀는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오히려 긍정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사회를 변혁시킬 의지를 빼앗아 가버린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맑스가 말했다면 저자는 긍정은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한다. 박진영의 말 중에 내가 공감하는 한 가지는 희망 고문이라는 말인데 저자는 긍정을 희망 고문이라고 말한다.

 

  긍정의 심리학의 매커니즘은 분명하다. 그가 긍정의 심리학을 말하면서 지적했던 행복 공식을 살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H=S+C+V"

 

  행복(happiness)은 개인이 타고난 성향(S)과 사회적인 조건(C)과 자의적인 노력(V)의 합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의적인 노력(V)이다. 사람이 타노난 성향은 바꿀 수 없는 유전적인 것이며, 사회적인 조건(C) 또한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의적인 노력(V)이다. 긍정의 심리학자들은 이 자의적인 노력을 통하여 우리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왜 사회적인 조건(C)가 불변의 조건이 되는가라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이는 긍정의 심리학자들이 민중을 기만하는 행위가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구조 조정을 통하여 실직을 했다. 긍정의 심리학자들은 실직자들에게 지금 상황에 분노를 표현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그리고 칭얼대지 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바구라고 조언한다. 언뜻 보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절말 그럴까? 이는 구조조정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깔고 들어간다. 경영가들의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한 행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 또한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저자는 그들의 중요한 고객들이 구조 조정을 단행한 경영인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무 일반적인가? 그렇다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과거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군에 입대한 이등병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할 때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자 친구 문제로 고민하지만 그것이 너희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가령 100명이 입대했다면 그 중 50명은 이등병이 끝나기 전에 나머지 40명은 상말 병초에 헤어진다. 그러면 10명이 남는데 그 중에 8명 정도가 기다려준 여자친구를 차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대체로 지금 여자 친구와 결혼까지 이어질 확율은 100명 중 2명에서 1명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이등병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거의 모두가 이 사실에 동의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이등병들이 자기는 98명이 아니라 2명에 들어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제만 일자리로 바꾸어 놓아도 동일한 결론을 얻는다. 사람들은 사회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2%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긍정의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경향을 더 부채질하여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맑스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종교대신에 이러한 긍정의 심리학을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을 것이며, 박진영이 사회과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랑 대신에 일자리 문제를 가지고 희망 고문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긍정적으로만 산다면 문제가 된다. 시각은 긍정적으로 가져야 하지만 삶은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만약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면, 만약 정규직에 취업하지 못한다면, 만약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금을 갚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것이 개인의 수준에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면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어야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빚내서 집을 사라는 말에 속지 않는 비결이요, 증세 없이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달콤한 사탕 발림에 넘어가지 않는 비결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다. 이미 747은 추락했고, 깡통집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하우스 푸어가 렌트 푸어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C보다는 V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카피의 허구성을 알면서도 오늘날에도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만 아니면 되지, 난 괜찮아를 외치면서 각개 전투에 열을 올린다. 취업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인문학 책을 읽고, 스펙을 쌓고,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잘 살게 해주겠다는 그분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게 해주겠다고 외치는 그분은, 4만 불 시대를 열면 모든 사람들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분은 땅을 밟고 사는 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그네를 타고, 휠체어를 타시는 그분들이 고무신 신고, 삼디다스 신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자게서를 읽어 제끼는 우리의 심정을 알기나 할 것인가? 이제는 인정하자. 우리는 절대로 그네들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합리적인 의심과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해 보자.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카이사르의 말을 충분히 곱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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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0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정은 attitude를 그렇게 갖고 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장사꾼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4차원적인 이론을 만들어 판거죠. 즉 개인적인 마음자세로써의 긍정이지, 방법론이나 해결책으로써의 긍정은 성립하기 어려운데도 말이죠. 특히 사회문제에 대한 '긍정'이론은 '예수'만 부르짖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던 '주문'이론과도 같은 우민정책으로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saint236 2013-11-06 10:20   좋아요 0 | URL
긍정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생각들이 한국 사회에서도 횡행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게서가 곳곳에 넘치거든요.

transient-guest 2013-11-07 02:32   좋아요 0 | URL
'긍정'의 산업화와 상업화죠. 지금 '독서' 자기계발이나 자기경영 '강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그들 모두가 '뽕꾸라'는 아니겠지만요.

BRINY 2013-11-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횡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긍정적 사고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특히 어르신들!

saint236 2013-11-06 20:4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긍정의 배신이라는 제목 속에는 긍정의 강요라는 말도 들어 있지요.
 
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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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윤동주 시인을 참 좋아한다. 자기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며 갈등하는 그의 치열한 시가 좋고, 소년처럼 수줍게 세상을 바라보고 노래하는 그의 동심이 좋다. 그런 그의 시 가운데 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시가 있다.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는 그 한 구절에 내 마음이 콱 박힌 것이다. 별을 노래 하는 마음이라...어떤 이는 별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어떤 이는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워가고, 어떤 이는 사랑을 속삭인다. 별을 동경과 신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윤동주가 말했던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세이건의 책을 보면서 윤동주의 서시를 얼마나 읊조렸는지 모른다. 세이건이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책 읽는 자세를 고쳤던 것이 몇번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라면서 수도 별을 봤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인류의 이야기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 밤 하늘의 별을 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저 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별의 역할은 무엇이지, 누가 저 별을 저 곳에다 가져다 놓았을까 등등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문학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신화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는 신화적인 설명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고, 오늘날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주를 이룬다는 차이는 있지만 최대한 성실하게 진심을 담아서 설명했다는 것에는 동일하다.

 

  칼세이건은 이 책을 통하여 과거의 비과학적인 점성술들을 비판한다. 별들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비과학적인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별은 어떤 과정을 밟아가면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학이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모토를 신봉하던 그 시대이니만큼 그는 자기의 신념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폄하하던, 그리고 깎아 내리던 별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들 또한 진심으로 별의 신비에 대하여 경의와 경건함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다루자면 세이건의 방법과 그가 비판했던 방법들이 방향만 다르지 자세에서는 동일하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철저하게 과학자의 시각으로 우주를 분석하는 세이건의 모습을 보면서 이정도면 또 다른 종교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원래 텔레비전 다큐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던 것을 책으로 풀어 놓은 것이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양서적으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중 앞 머리에 위치한 책이다. 어떤 이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읽지만 재미 없다고 덮어버리고, 어떤 이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덮어버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우주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여러 잡지를 통하여 접했을 것들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가 첫 방영된지 벌서 30년이 흘렀으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우주 과학 분야에서 이 시간은 거의 기원전과 같이 먼 시간이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이건의 이 말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너와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수십 억, 수백 년의 우주 시간 속에 바로 지금,  그리고 무한한 우주 속에 같은 은하계, 같은 태양계, 같은 행성, 같은 나라,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당신을 만난 것은 1조에 1조배를 곱하고 다시 10억을 곱한 확률보다도 작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시선이 흔히 생각하듯이 날카롭고 차갑지 않고 이렇게 뜻할 수도 있다니!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를 탐색하는 그의 눈은 우주 이외의 것들을 하찮다고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들을 우주처럼 무겁게 여긴다. 우주가, 더 나아가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의 선물인 우리의 이웃에 대하여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세이건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우주 산업이란 이름 하에, 나로호를 쏴올리기 위하여 그렇게 애를 쓰지만, 그것이 순수해 보이지도 않고, 경이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신비해 보이지도 않는 이유 또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세이건의 책을 덮었지만 난 여전히 오늘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런데 별이 보이지 않는다. 시대가 별을 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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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3-08-1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제가 좋아하는 스탈은 아닌데, 읽을 때 큰 감동을 얻었던건 기억이 나네요.

'너와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위에 인용하신 글, 너무 좋아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 오늘 내일 모레 이 이야기 써 먹어야겠어요.

너와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saint236 2013-08-17 12:14   좋아요 0 | URL
칼 세이건이 우주를 대하는 태도는 경건하다 못해 종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더군요. 한용운이 말했던 것처럼 칼 세이건에게는 우주가 님인가 봅니다.
 
고장 난 거대 기업 - 우리 시대 기업에 따뜻한 심장 달기
이영면 외 지음, 좋은기업센터 기획 / 양철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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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4월 프로메테우스 출판사에서 한스 바이스와 클라우스 베르너가 쓴 나쁜 기업이라는 책이 나왔다. 까만 표지에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기업들의 로고를 잔뜩 장식한 책으로 세계의 내노라하는 거대 기업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부를 쌓았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는지, 그 과정에서 그 기업들이 어떻게 불법을 저질렀으면,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했는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이 내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의 일등 기업이라고 하는 삼성이 당당하게 그 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역시 삼성! 외국 사람이 기록한 책에도 그 이름으로 올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고장난 거대 기업은 말하자면 나쁜기업이라는 책의 청소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이 씌여지던 시기나 혹은 그 이후의 일들을 제외하고는 나쁜 기업이라는 책과 이 책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네슬레와 나이키가 대표적인데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고장난 거대기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지면의 차이도 나고 타겟 독자층이 청소년이다 보니까 좀더 쉽게 기록하기 위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디테일들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중요하지 않은 디테일을 생략했다고 해서 주된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집고 넘어간다.) 여러가지 내용들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어떠한 횡포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꽤나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평점으로 별 세개, 즉 보통이라고 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과연 목적에 맞게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읽히게 될까라는 점이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많이 바쁘다. 시험 성적 1점이 자기 인생을 결정한다고 굳게 믿고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에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간단하게 스킵하는 스킵신공이 대단하다. 국사도 스킵하고, 교양도 스킵하고,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들어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 붐이 분다는 말을 많이하는데 착각하지 마시라. 입시에 도움이 되니까, 면접에 도움이 되니까 읽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을 쓰면서 목적을 좀더 분명하게 두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의 잘못된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할 것인지, 아니면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살펴 볼 것인지 조금만더 목적을 세밀하게 선정했다면 더 큰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삼성과 BP의 태도를 비교한 것이다. 모두 똑같이 대규모의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지만 이에 대한 대응방법은 정반대였다. 한쪽은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면서 꼬리자르기와 모르쇠로 일관하고, 다른 쪽은 자신들의 실책을 분명히 인정하면서 최대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비극적인 사실은 한국에서 만큼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꼬리 자르기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삼성 중공업의 실책을 온 국민들이 나서서 수습해 주었지만, 삼성 중공업은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고 있으면, 여전히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아리 눈꼽만큼의 보험금을 받아서 배상하면서 자신들은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삼성이야말로 책의 제목처럼 고장난 거대 기업이 아니겠는가? 그들에게 어떻게 따뜻한 심장을 달아 줄 것인가? 달아 줄 수는 있는 것일까? 책을 덮은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도 횡설수설하면서 끄적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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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7-1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무엇이 합리적인가가 문제인데, 한국법/정부/사회풍토에서는 삼성의 방법이 효율적이겠고, 외국에서는 BP의 방식이 효율적이라서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외국의 기업이라고 삼성보다 더 착하다기 보다는, 실제 피해액수보다 천문학적인 액수로 부과되는 징벌적 피해보상이나 집단소송제도가 무섭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거죠. 한국에서는 권력과 부가 있는 피의자는 피해자보다도 더 보호되고, 99%가 1%를 상대할 법적인 제도와 절차가 부족한 것이죠.
그나저나 1점을 소중하게 아껴서 학생때부터 경쟁해서 가고자하는 곳은 대기업/공기업 등등이죠. 이게 진짜 한심한거에요 사실...-_-: 우리들 모두 포함해서요.

saint236 2013-07-18 10:45   좋아요 0 | URL
그 사실이 가장 씁쓸하죠. 한국에서 모르쇠와 떠넘기기로 일관하게 기업들의 온갖 편의를 다 봐주는 이런 풍토를 아무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말하기에 앞서서 경제 정의를 먼저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 경제 민주화와 경제 정의는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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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난의 역사가 뿌리 깊다는 말일 것이며, 가난을 없애기 위해서 많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그것들이 어느 것하나 유효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난에 대한 더 적절하고 유효한 정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포기해야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가난이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더라. 이런 것으로 보아 정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라는 것이 가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시선이며, 가난에 대한 뿌리깊은 고정관념이 아닌가?

 

  그 결과 청년 실업을 외치는 이들에게 "바보야, 그것은 너희들이 제대로 일하지 못해서야, 너희들이 공부해야할 때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너희들이 게으른 거야."라는 말로 정죄하지 않았던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알바를 전전하며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좀더 열심히 해봐라 실력이 없으니까 그런거야 실력을 키워라는 김미경, 혹은 이지성 식의 호통을 치든지, 아니면 괜찮아 이러다가 나아질거야라는 김난도 식의 위로를 건네면서 우리는 할일을 다했다고 뒤짐을 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청년 실업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닌가? 물론 너희들 왜 그렇게 살아 힘들다고 짱돌이라도 집어던지면서 발악이라도 해봐라는 우석훈 식의 훈수도 있지만 모두다 공허한 이야기일뿐이다. 그 어떤 것도 청년들에게 위로도 되지 못하고, 그들의 지친 삶에 조금의 힘도 보태주지 못한다. 비단 청년뿐이겠는가?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다시 재기할 수 있겠지, 쨍하고 해뜰날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일터로 나가지만 그 믿음에 배신당하는 수없이 많은 우리 친구들이 있고, 아버지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위로를 주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얼마나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노동 유연성이라는 말이 경제계에서 성서가 되어 버렸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노동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가 퇴보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과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단가를 낮추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낮출 수 없다는 주장이 한국 경제의 황금율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황금율 아래에서 복지 혜택도 사라지고, 수당도 깎이고,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노동자들의 의무이자 책임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상 최대의 무역 흑자를 냈다는 신문 기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은 낮아지지 않았는가? 누구의 말대로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가?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시작하는 사회 구조가 올바른 것이기나 한가? 능력도 없으면서 왜 대학가냐고 몰아붙이기 전에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왠만한 일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사회를 탓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도대체 물건을 생산하는 현장직에서 일할 사람을 찾으면서 토익과 토플 점수를 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 물건을 생산해서 직접 외국에 나가서 팔고 오기라도 하나는 소리인가?

 

  월가를 점령하라는 말을 마치 "김정일 장군 만세"인 것과 동일할 정도로 빨갛게 포장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기본급을 조금만 올려달라는 말이, 복직시켜달라는 말이 빨갱이들의 투정으로 둔갑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외국 사람의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곳곳에서 바겐세일이 성행한다. 1+1이 아니면 물건을 팔기도 힘들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자꾸 싼 것을 살 수밖에 없는 주머니 사정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아무리 싸구려를 사려고 노력하고, 싸구려를 먹고 입을지라도 사람이 싸구려일 수는 없다. 사람은 사람이다.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존재다. 이 사실이 부정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닌 사회요, 시대에 역행하는 사회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사회가 꼭 이렇다. 사람은 돈으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참 때려놓고 돈으로 무마하는 사람들이나, 법을 위반해 놓고 사회에 재산을 기부하면 정상참작이 되고 용서받을 거라 생각하는 사회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사회일리는 없다.(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딱 한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사람 값이 참 싸다는 것이다. 돼지보다 사람값이 싸고, 오이보다 사람값이 싸고, 편의점 물건보다 사람값이 싸다. 50원 올려주면서 대폭 임금을 인상했다는 말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묘하게도 책 제목이 아렌트의 제목과 일치한다. 나치에게 유대인이 사람일리 없었던 것처럼, 이 사회 속에서 일용직이, 비정규직이 사람일리는 없다. 그러니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나를 사람으로 봐달라고 절규하면서 말이다. 나꼽사리의 노래가 자꾸 떠오른다. 씁쓸한 마음으로 나꼽살 노래 가사를 적으면서 달래본다.

 

  yeah 완벽하신 가카께

  도둑적으로 완벽하신 가카를 위해서

  밤잠까지 설쳐가며 용감한 넷이 뭉쳐

  정치에겐 쫄지마 또 경제에겐 속지마

  세상이 밝아질 때까지 끊임없이 외친다.

  국민에겐 헛소리 다 들켜놓곤 큰소리

  나꼽살이 밝혀내는 권모술수 눈속임

  사람값이 싸구려인 물질만능 사회

  빚더미에 파묻혀버린 희망은 어디에

  당신이 골프장 룸싸롱에서 미소 짓고 있을 때

  우리 아들들은 몇 년 지난 중국쌀로 밥을 져

  세금으로 재테크를, MBC에서는 공화국

  못살겠다 못참겠다 도대체 이게 뭐냐고

  강자아들이 약자아들을 가지고 노는 게임

  싸우고 부딪쳐봐도 처절히 정해져 있는 선택

  모두가 원하는건 그저 작은 희망인데

  이미 병든 나라는 우리를 씹어 뱉어 black Korea

  지금은 위급함의 챕터

  90%가 개털되는 미쳐버린 괴물

  인생을 게임으로 바꾼 가카에게 외쳐

  도둑적으로 완벽한 당신이 바로 챔피언 black Korea

  지금은 위급함의 챕터

  90%가 개털되는 미쳐버린 괴물

  인생을 게임으로 바꾼 가카에게 외쳐

  도둑적으로 완벽한 당신이 바로 챔피언 black Korea

  yo ha ha 나는 꼽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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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값이 싸구려인 세상에게 우리는 싸구려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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