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평전 - 사람을 아껴 난세를 헤쳐 나간 불굴의 영웅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난 삼국지덕후다. 삼국지 관련한 책들은 꽤 많이 섭렵했다. 시중에 나온 삼국지 책은 거의 다 보는 편이다. 물론 내가 보는 삼국지는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 연의에 기반을 둔 책들이 중심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 삼국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정사 삼국지는 보지 않았지만 정사 삼국지를 비롯해서 삼국지에 관련된 여러가지 역사적인 내용들을 점검해보면서 비평을 가하는 삼국지 관련 서적들은 꽤 많이 봤다.


  유비,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 조조, 하후돈, 하우연, 장합, 허저, 손권, 감녕, 제갈공명, 가후, 주유 등등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이야기하라면 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주워 섬길 정도는 된다. 이는 내가 특별하기 때문은 아니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지에 빠져살던 고등학생 시절 이문열의 삼국지를 만났다. 그리고 삼국지를 이렇게 비평하면서 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이문열은 오늘날의 이문열하고는 좀 달랐다. 게다가 평역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신선했었다. 채 1년이 되지 않아 창천항로라는 만화를 접하고 조조 중심으로 읽는 삼국지에 대해서 신선함을 느꼈다. 만약 스토리 작가가 작고하지 않았다면 대작이 되었을 것이기에 꽤나 안타까웠다. 용랑전이라는 만화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 빠져 살면서 삼국지의 전투가 어떠한 과정으로 전개되었는지 잘 모르는 중국 지도를 펴 놓고 전략 연구에 골몰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내게 유비 평전, 역사를 기반으로 실제적인 유비의 모습을 살펴보자는 책 소개는 주저없이 이 책을 사게 만들었고,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 시간을 내어서 읽게 되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삼국지 연의와 삼국지에 대한 비평 서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 신선한 내용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유비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우리가 아는 것과는 약간은 달라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비가 사람을 정말 아껴서 사람을 얻기 위해서 꽤 많은 애를 썼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등용한 사람은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이것이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던 유비가 중국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황제를 칭하게 된 비결이라고 거의 모든 자게서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유비가 사람을 아끼는 것은 맞고,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람을 등용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사람을 아껴 난세를 헤쳐나간 불굴의 영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사람을 아낀다"는 부분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사람을 아낀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일단 내 사람으로 등용을 하면 전폭적으로 신뢰를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밝힌 유비의 모습은 약간 다르다. 수어지교라는 말의 주인공인 제갈량조차도 유비에게 전적인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유비의 후계자인 유선을 구해온 조자룡조차도 유비가 죽기 전까지는 황충에 비해서 한단계 낮은 대우를 받았다는 것, 촉 출신의 인사들 중에서 유비에 의해서 중용된 사람이 손가락 안에 꼽는다는 것은 그가 사람을 아끼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유비가 사람을 아끼는 기준은 그 사람이 언제부터 그와 함께 있었는지, 개인적으로 그와 어느 정도의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의 명령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라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사람을 아낀다는 것이 한 나라의 왕이 되어서도 그가 여전히 유협집단의 지도자라는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가 아낀 사람은 유협집단 시절 자기와 함께 호형호제했던 사람들, 자기에게 항상 예스맨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에 한정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유비가 한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가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이유도 분명해진다. 유비는 사람을 아낀다는 평판을 들었지만 그 평판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을 뿐이다. 한 나라를 세우는 것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으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나라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로 이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천하인으로서 유비에게 부족했었던 것은 진정으로 인재를 아끼는 태도였다.


  유비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 묘한 느낌을 받는다. 꽤 친숙하다는 것, 어디선가 많이 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매일 텔레비전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모습들이다. 정권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내 사람만으로 가능할 수 있다.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것을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정권을 유지하고, 정권을 획득한 이후 역사에 좋은 기록을 남길만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인재풀이 넓어져야 한다. 내게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거침없이 대드는 사람들도 받아들여야 그 안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 끊임없이 인재풀의 외연을 확장하기를 멈추는 순간, 그 집단은 고인물이 되고, 결국 썩을 수밖에 없다.


  회전문 인사라는 말이 있다. 인재풀 돌려막기라고도 한다. 어느 정권이고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돌려막기가 유별났다. 그런데 현 정권은 더 하다. 회전문 인사라는 말 앞에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그 회전문 인사도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급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 비극이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할 정도로 아끼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진짜 재미있는 것은 유비의 몰락을 초래했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관우와 장비에 의해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현 정권의 몰락을 가져 온 것은 대통령이 그렇게 아끼던 최순실과 그 일당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비단 정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업의 가신단으로 비롯해서, 각 조직에서 조직의 수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조직이 몰락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은 조직이 몰락하고 난 다음에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 더 비극적이다. 인재를 사랑한다는 이미지 메이팅에 열중했던 유비, 그리고 거의 비슷하게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하는 정부의 수장! 이 정권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삼국지 연의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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