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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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의 상징은 붉은 동백꽃이다. 제주도 동백꽃을 치면 4월에는 꼭 놓치지 말아야할 풍경, 여행지라는 말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4.3의 상징이 붉은 동백꽃이 된 이유를 알면 그 꽃이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프다.


  동백꽃은 질때 벗꽃처럼 흩날리지 않는다. 툭툭 소리를 내는듯이 통으로 떨어진다. 붉은 동백꽃이 통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느 재일 문학가는 4.3이 생각이 나서 차마 볼 수 없다고 한다. 그 꽃을 바라보면서 4.3 당시 피해자들의 목이 떨어지던 모습이 생각이 나서 그런단다. 끔찍하다 못해 섬뜩한 말이다. 어째서 그렇게 처참한 일들이 제주도에서 일어난 것일까?


  여러가지 말들이 있다. 남로당의 지원을 받아서 빨갱이들이 일으킨 일이라고 아직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육지 것들이 들어가서 판을 쳤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서북청년단들의 만행은 유명하다. 장모와 사위에게 사람들 앞에서 성관계를 가지라고 협박하고 죽이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런데 서북청년단들이 당시 영락교회 청년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데, 아직도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다고 하늘을 가릴 수 없겠지만 말이다.


  4.3을 비롯하여 한국 근현대사는 많은 부침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침의 대부분은 우리 민족에 의해서 주동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들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다. 일제에 의해서, 미국에 의해서, 소련에 의해서, 자본주의에 의해서, 공산주의에 의해서... 외부에 들어온 세력들에 의해서 날나라가 토막이 나고, 그들은 어느새 우리를 지배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이북에 있던 한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 기독교와 공산주의, 지주와 소작인 등 평화롭게 어울리던 마을이 토막이 났다. 친구가 친구의 가족을 학살하고, 이에 대한 복수로 다시 그들을 학살하고. 등장인물의 마음에 깊이 남겨진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다. 마음 깊은 속에 자리하여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그리고 외면하고. 그러다가 죽음을 통해서 화해의 실마리가 보인다. 지금까지 서로를 위해서 가지고 있었던 상처 받음과 상처 줌이 한 자리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면서 풀려간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서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그들고 피해자이고, 나도 피해자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서 갈라져 있던 인연의 물줄기가 다시 하나로 합쳐져서 저승의 강으로 흘러간다. 어린 시절 함께 어울렸던 시절을 추억하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간다.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던 그 땅, 외부 세력이 들어와서 지배했던 그 땅, 손님이 주인 행세를 했던 그 땅에 조그마한 유골이나마 묻히는 일은 우리의 마음에 작은 위안을 건네준다. 


  전체적으로는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로 잘 쓰인 소설이고, 우리에게 던지는 감동도 만만치 않다. 다만 요섭에게 갑자기 등장했던 샤먼은 흐름을 끊어버리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유골을 담아갈 뼈를 건네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의 등장은 굳이 그러한 설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갑자기 등장한 신비한 인물은 소설의 장르를 판타지로 착각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후로 이 인물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을 가져봤지만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부분을 감안하고 읽으면 이 책은 소설이 가지는 묵직한 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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