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반(伴)을 의미합니다. 동반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환희'는 절반의 비탄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희망'은 절반의 절망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승리'는 절반의 패배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희망과 절망,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신영복, <더불어 숲>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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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4-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반의 자리를 얻을수 있으리라는 의미...참 어려운 의미인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 "삶은 선택의 경계선을 얼마나 현명하게 걸어가는냐의 문제다" 라고 떠들곤 했는데, 일맥상통하는것 같기도 하고...
참, 퍼갑니다.

stella.K 2004-04-0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구절을 읽으면서 거울 저쪽의 세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학교를 갓입학했을 때 명찰이 미처 다 만들어지지 않아서 임시 명찰을 달고 다녀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두꺼운 도화지를 조그맣게 오려 제 이름 석자를 써서 가슴에 대고 거울을 비춰봤는데 왠걸 글자가 거꾸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 끝에 거꾸로 써 보았더니 거울에선 재대로 비췄습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달고 학교를 가야하나 생각해 봤는데 결론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만약 그렇게 하고 학교에 갔더라면 웃음거리가 되었을것입니다.
하지만 전 지금도 때론 거울 저쪽에서의 시각이 더 옳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엉뚱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