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미 죽은 후에 다시금 시간을 부여받은 기분이.
거기에 원하는 대로 가짜 역사를 살아갈 수 있다면?
나의 한을 풀지 않고 이대로 더 오래오래 이승에 남아있을 것인가, 아니면 저승으로 되도록 빨리 돌아갈 것인가.
소설 [걸리버여행기] 에서는 주인공 걸리버가 대인국, 소인국, 말이 주인인 나라, 천공의 섬 등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럭나그(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부분이고,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럭나그 안에서도 영생을 누리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있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영생을 누리는 이가 어떠한 표식을 달고 태어나면 그 집안은 저주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생명이 끊어지지 않을 뿐, 그 삶은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총기는 모두 다 사라지고,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도 모두 죽은 상황에서 작은 지렁이 같은 영생을 누리는 자가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만 살아있지않고 존경받지도 못한다.
라이트노블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에서 추가 시간을 받게 된 사자들도 조금은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돌아다니지만 그것은 진짜 삶이 아니고, 내가 저승으로 돌아가자마자 지워진다.
다시 말해서, 죽은 후 만드는 역사는 아무리 화려하게 잘 그려도 사라질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한계가 있는 제2의삶(?)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그 후의 공허함은 어찌할까.
그럼 술래잡기 하자. 상대방 가슴을 터치하면 공수 교대. 자, 시작.
좋아... 뭐라고?
사쿠라 왜 그래? 얼굴이 빨개. 우히히히.
이게.
판타지소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의 여주인공 하나모리 유키는 완전 나의 롤모델이다.
외모가 뛰어나고 성격이 좋으며 잘 웃고 남자아이들에게도 거리낌이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대는 면이 있고 요샛말로 '관종(관심종자)' 으로 여겨질 만한 행동들을 많이 하지만,
워낙 그녀 자체가 호감형이고 예쁘기때문에 전부 용서된다.
내가 있는 공간에 함께 있는 이성들은 모두 나를 좋아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녀인 듯하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그들은 넘어올 것이지만, 그래도 왠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 명이 신경 쓰인다.
"내게 관심이 없는 건 네가 처음이야." 라는 분위기?
또한, 하나모리 유키는 성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고 한다.
만약 같은 말을 못생기고 뚱뚱한 여학생이 했다면 성희롱일 수도 있지만, 예쁜 아이의 예쁜 입에서 나온 말이라 유쾌할 뿐이다.
그래서 그녀가 부럽다.
산중턱에 자리한 신사로 이어지는 도로에 야키소바를 비롯한 갖가지 노점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렇게 비좁은 곳을 남녀노소가 유카타 차림으로 오간다. 사과사탕,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소다, 다양한 동물 모양의 거대한 풍선. 잡다함, 떠들썩함, 설렘이 뒤섞여 우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분위기만으로도 배가 부른 풍경이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사자와 사신이라는 다소 클래식하고 무거운 소재를 택했을 진 몰라도, 읽으면 정반대로 유쾌하고 생생하며 사랑스러운데,
그 이유는 사쿠라 신지를 둘러싼 여학생들의 썸 분위기와 그들이 노는 광경을 기분 좋게 감상하는 듯한 문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껏 도쿄, 오키나와, 오사카, 이렇게 총 3번 일본에 가보았지만 축제 시즌에 축제를 하는 장소에 있어본 적이 없기에
그 분위기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간접적으로 접해보았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일본의 풍경은 예쁘고 아름답고 설레이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일본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와 유카타를 좋아한다고 할 순 없지만, 나도 축제에 참여하여 일원이 되고자하는 마음은 크다.
그들과 어울려서 노점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싶다.
소설은 살랑살랑 가볍고 부담스럽지 않으며 사랑스럽다.
일본 소설엔 관심이 적고 일본 애니나 일드가 오히려 취향에 맞는 나조차도 맘에 들었으니 말 다한거다.
오랜만에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학창 시절 연애담을 목격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