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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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권력의 최정점에서도 유머와 진실의 힘으로,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 부흥기를 열다.

<돈키호테>저자 세르반테스, 그리고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준 역작

고전을 이 시대에 맞는 현대어로 번역하면서도 원전을 완역함으로써 그 완성도를 높인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45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고전 시리즈다! 믿고보는 현대지성 클래식!! ^^) 이번엔 라틴어 원전 완역본 <우신예찬>이다. '어리석음의 신' 우신을 등장시켜 그 어떤 신보다 찬양하는 풍자와 해학으로 당대를 신랄하게 꼬집으면서도 책장을 넘길때마다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대표 저작 이다.

당신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독창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행동거지와 성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고 친절해 어느 때나 누구와도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작은 연설문을 친구가 주는 기념품으로 기꺼이 받아서 읽고 간직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글을 당신에게 헌정합니다. 그러니 이 글은 이제부터 내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입니다. (p. 12) 글이 가볍고 장난스럽다며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이런 글을 내가 처음 쓴 것이 아니고, 이미 과거에도 위대한 저술가들이 자주 써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p. 13)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농담을 허용하면서도 학문에서는 농담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것, 게다가 실없게 들려도 사실은 진지한 성찰로 이끄는 농담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정말이지 부당합니다. (p. 14) 다른 사람들이 나름대로 판단하겠지만, 내가 자아도취에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리석음을 예찬하되 결코 어리석지 않게 예찬했습니다. (p. 15) 분별력 있는 독자라면 내가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것입니다. (p. 16)

- 서문 中 -

'로테르담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친구 토머스 모어에게' 라는 제목의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연설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따라서 책이 내게 말해주는 듯 읽혀지면서 읽다보면 어느새 약간 우스꽝스럽고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청중의 웃음을 유발하며 호쾌하게 연설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읽혀지는 책이다. 서문부터 그 발랄함과 당돌함이 느껴지는 듯 한데, 자신은 우신을 예찬할 뿐이므로 분별력 있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어주리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을 읽고 기분나빠할 누군가에게 마치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덤벼들 건 아니죠?' 라고 미리 당부하는 것만 같다.

작가는 우신이 누구인가 라는 출생?!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로마적 고대의 신들로부터 계보적으로 엮어내기 시작한다. 우신은 어리석은 신이 아니라 삶에 쾌락을 더해준다며, 우신이 최고의 신이고 우신 없이는 인간의 모든 관계가 유지될 수 없으며 우신을 통해 국가와 영웅 그리고 제도 또한 탄생하고 유지되는 것이라고 예찬을 거듭하는 것을 읽다보면 '세상 뭐 있어 마냥 즐겁게 살자'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언제 시작됐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풍자를 읽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학자들은 배고프고, 과학자들은 춥고, 천문학자들은 조롱당하고, 논리학자들은 멸시받아도, 오직 '의사만은 일당백의 몫을 해냅니다.' (중략) 특히 오늘날 너 나 할 것 없이 의사가 되어 행하는 의술이라는 것은 수사학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아부술에 불과합니다. 의사 다음으로 높은 자리는 법률가의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에게 최고 윗자리를 내주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p. 104)

이 구절이 특히 현실적으로 와 닿았는데 그 옛날 부터 의사, 판사 등의 '사'자 붙는 직업들은 이토록 선망의 직종이었나 싶어서. ㅋㅎㅎ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종교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았는데 '가톨릭에 만연한 온간 미신들' 같은 경우 우상숭배를 그토록 처벌하던 종교에 이토록 고대로부터 내려온 우상들이 성인들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었구나 싶어서 저절로 쓴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귀족, 예술가 부터 철학자, 신학자, 수도사, 군주, 주교, 추기경, 교황, 사제 등 콕콕 찍어 풍자에 풍자를 거듭한다.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이 맞물려 있던 시대에 나온 이 책은 에라스무스가 가벼운 마음으로 쓴 것과 달리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르네상스 시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저작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에라스무스가 이토록 신랄하게 당대를 풍자했다고 해서 종교개혁에 찬성했던 것은 아니다. 에라스무스는 가톨릭 신앙을 바른 방향으로 다시 세우길 원했다. 여하튼, 이 책의 <해제>에서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특유의 상세한 설명까지 읽고 나니 가볍게 읽었으되 가볍게 마무리한 것 같지는 않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역시 고전은 제대로 된 원전번역본을 읽어야 한다. ㅎㅎㅎ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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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조주관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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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성과 속, 미와 추, 생과 사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를 체화한 도스토옙스키의 통찰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러시아문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그림전문 책은 아니지만 한 페이지를 과감하게 그림에 할애함으로써 그림 보는 재미도 있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읽을 수 있으니 딱히 문학책이라고 할순 없지만 문학적으로 읽히는, 그러니까 미술과 문학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에서 융합되어짐을 알게하는 그런 책이다.

지금부터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그의 삶 그리고 그가 사랑한 그림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책에 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그건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의 미술관'이 되리라.

여기서 '미술관'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회화·조각 따위의 미술품을 모아 전시하는 곳을 가리키는 미술관(美術館)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나 비평가가 미술을 보는 관점을 뜻하는 미술관(美術觀)이다. 세계적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미술애호가로도 유명했지만 그 스스로 뛰어난 미술평론가이자 시사평론가이기도 했다. (p. 10)

우리는 이 책에 '전시'된 미술작품들을 통해 도스토옙스키의 미술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물들지 않은 자기 자신만의 시각으로 미술작품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으로 다시 한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어본다면, 우리 역시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확장될 것이다. (p. 12)

-작가의 말 中-

저자에 따르면 러시아문학가들 중에서 도스토옙스키만큼 여행을 자주 다닌 작가가 없다고 한다. 또한 도스토옙스키는 여행가는 곳마다 미술관에 꼭 들렀고 어쩌면 미술관을 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 듯도 보일 만큼 그림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이러한 미술경험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문학은 그런 영감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 탄생의 순간을 초상화를 통해 조금 짐작해 볼 수도 있기도 한데,

'흥미롭게도 유럽 미술관들에는 왕과 귀족, 성직자의 초상화가 많은 반면 트레티야코프미술관과 러시아미술관에는 작가와 예술가의 초상화가 더 많다. (p. 85) 화가 바실리 페로프는 '예술적 사고에 몰입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창작의 순간'을 초상화에 담았다. 이 초상화의 진수는 작가의 영혼을 훌륭하게 포착하고 있다. (p. 86)' 작가는 그림을 사랑하고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도스토옙스키의 초상화를 남김으로써 우리에게 작가의 몰입어린 순간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사랑한 화가 역시 라파엘로다. 그는 라파엘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꼽았고, 그의 작품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격찬했다. 바로 이 성화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류의 이상을 찾았다. 그가 '라파엘로 그림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 121) '그림 읽기'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음미하면서 감상함을 뜻한다. (p. 130)

나도 라파엘로의 그 부드러운 그림들을 좋아하는데 도스토옙스키는 굉장히 종교적 찬미감으로 라파엘로의 그림들을 극찬했던 것 같다. <시스티나의 마돈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부분이 있으니 '라파엘로 그림의 배경에는 수많은 아기 영혼의 얼굴들이 그려져 있다. (p. 145)' 라는 점이었다. <시스티나의 마논나> 머리 위 부분을 확대하여 책에 실어놓았는데 배경으로 희미하게 수많은 아기 영혼들이 보여서 새삼 놀라웠다. 어린이에 대한 종교적 순수성을 찬미했던 도스토옙스키였기에 이런 아기영혼 그림들을 심어놓은 라파엘로의 그림에 더욱 심취했던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두 가지 기준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성(聖)과 속<俗)의 아름다움을 구분하고 있다. 그에게 최고의 아름다움은 '성스러움'이다.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저 너머'의 초월성을 상기시키는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발견한 도스토옙스키는 영성의 아름다움을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속<俗)의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략) 성(聖)과 속(俗)의 아름다움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것은 '어리석음의 미학(美學)'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아름다움은 어리석음을 내포한다. 그의 미적 세계관은 '어리석음의 미학'에서 나온다. (p. 149) '유로디비'란 중세 러시아 정교 전통의 '세상 속에서는 바보스러우나 영적으로는 가장 지혜로운 하느님의 사람'을 가리킨다. '유로디비'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속된 세상의 물정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그들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삶의 신성함을 발견한다. 세상을 구원해줄 사람은 지식이나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말한다. 그들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p. 150)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순수한 어린이와 세상이치엔 어두워 백치처럼 보일지라도 영적으로 아름다운 캐릭터를 자신의 작품에 꼭 등장시켰다고 한다. 그가 좋아했던 그림들이 대부분 종교적이되 아름답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인 것을 보면, 그가 자신의 문학세계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을때 그런 그림들이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크게는 '성과 속' '미와 추' '생과 사' 라는 3부로 구성된 책이었지만 대부분의 글에 등장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었다.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 그림이 라파엘로의 작품이었다면 라파엘로의 그림을 글로 써 놓은 것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았달까. 따라서 이 책을 읽고나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꼭 읽어야겠구나 싶다.

도스토옙스키가 강조한 '눈'은 시각예술인 그림을 논하는 이야기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언급하는 화가들은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눈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화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스토옙스키에게 창작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눈'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예술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시각예술은 현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p. 331)

-에필로그 中-

이 책을 읽으며, 도스토옙스키는 그림을 본다기 보다 읽었다고 느꼈기에 그런 그의 문학작품을 우리는 읽는다기 보다 '보는' 경험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유독 어리석이보이나 순수한 캐릭터들에 관심을 갖고 읽어야 겠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런 면에서 읽는 내내 미켈란젤로가 떠올랐다. 천재예술가들은 종교에 대해서도 남다른 믿음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그러한 영감으로 그토록 천재적인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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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반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4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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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수상작

"도망쳐야 한다. 그놈보다 더 빨리"

소설Y클럽 작품으로는 5번째이고 책권수로는 여섯번째 책인 <폭풍이 쫓아오는 밤> 가제본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작품이 좋았고 이번 작품도 역시 좋았다. 더구나 이번 작품은 '창비X카카오페이지'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제 소설Y클럽 시리즈는 영어덜트 소설 분야에서 믿고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된 것 같다.

개 짖는 소리,라고 부를 만한 소리일까 저것이. 이서에게는 정신없이 내지르는 그런 비명. 뒷덜미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유독 차서 몸서리가 쳐졌다. 역시 이 여행은 오는 게 아니었다. (p. 34)

신이서.

고1여학생의 발랄함은 1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없는 얼굴에 짧고 차가운 말투 그리고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진 화상흉터를 가진, 한마디로 사연많아 보이는 소녀. 이서는 나이터울이 많이 지는 유치원생 동생인 이지와 아빠 이렇게 셋이서 처음으로 여행을 왔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자연적인 산속의 펜션에. 하지만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던 이 여행은 시작부터 찜찜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넷이었던 가족이 셋이 된 그날 이후로, 이서 가족은 내내 이런 식이었다. 아빠는 이서를 건드리면 터지는 비눗방울 대하듯 했다. 이서는 오히려 바윗돌 흉태를 냈다. 겉으로 보기엔 다정한 아빠와 예의바른 딸이었지만 그들 사이의 거리는 다섯 걸음 이하로 좁혀진 적이 없었다. 둘 사이를 마음껏 오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지뿐이었다. (p. 35)

이지만이 오직 이지만이 이서의 삶의 이유였다. 엄마를 잃은 이후, 그날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속에 이서는 오직 이지만을 위해 지금을 버티고 있었다. 이지에게서 엄마를 뺏은 것이 자신인것 같아서.

두 팔을 활짝 벌린 너비의 두 배 그키였던 창문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를 가득 채운 채로 그것은 손발로 바닥을 기느라 엎드린 이서의 바로 코앞을 지나고 있었다. 철사처런 억센 섬유가 통나무 벽에 비벼지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마찰음을 만들어 냈다. 털가죽이다. (p. 44)

성수기도 아니었고 유명휴양지도 아니었기에 방문객은 많지 않았다. 이서네 가족과 바로 옆 펜션의 등산복 일행과 좀 떨어진 단체숙소에 머무는 손님이 전부였다. 그런데 갑작스런 폭풍우 속에 통신이 두절되고 상황을 알아보러 아빠가 나간 사이 옆 동이 습격을 받았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거대하고 시커먼 그것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찢어 삼켰다. 다른 곳들도 차례차례...

"거기 누구 있소?" (p. 109)

"여긴 다 살았네!"

남자는 묘하게 뒤틀린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p. 110)

남수하.

축구를 좋아하지만 얼마전 그만두고 엄마의 부탁에 의해 교회캠프를 따라온 수하는 관리동 매점에서 이서를 마주쳤을때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습격을 피해 이지를 업고 온 이서를 다시 만났을때 수하는 이서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이서 자매와 함께 캠프 숙소로 간 수하 일행은 '그것'의 습격을 받지만 사냥총을 든 낯선 사내에 의해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내에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그들은 아직 폭풍 가운데 있었다. (p. 128)

일행들을 봉고차에 태워 산 밖으로 내보내고 이서는 홀로 그 자리에 남기를 선택한다. 아빠를 찾아야 했다. 이지를 위해. 이지에겐 아빠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수하가 덩달아 봉고차 밖으로 뛰어내렸을때 이서는 의아했다.

수하는 이서를 혼자 둘 수 없었다. 그 표정을 그 표정 속에 숨은 것을 그 표정이 남긴 것을 지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했기에.

그런 수하 덕분에 이서는 폭풍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일단 사냥총을 들고 있는 낯선 아저씨부터.

"아저씨네 개죠?"

"아니야!"

박사장이 펄쩍 뛰었다. (p. 159)

"내 개가 아니라고! 나는 맡아서 관리만 하고 있었을 뿐이야!"

"아니, 내 말은... 됐다. 그러니까, 어. 상관없어. 일단 빨리 잡아야 해. 그러면 돼" (p. 160)

펜션이자 단체 캠핑장으로 이용되던 수련원에 손님이 줄어든 이유는 단순히 가까운 근처에 리조트가 새로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관리동 아저씨는 종종 들려오는 이상한 짖음을 근처의 개농장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 농장은 평범한 농장이 아니었다. 대체 무엇이 농장에 살고 있는 것일까, 누가 왜 그런 것을 사육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을 그처럼 참혹하게 습격했던 것일까, 그런 현장을 보고서도 왜 신고하기보다 일단 잡아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서와 수하의 상처는 이 사건과 맞물려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 허세를 들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아니까. 우리는 너덜너덜하게 해진 허수아비다. 잔뜩 기울어져서, 한 번만 바람이 훅 불면 뒤로 넘어가고 말겠지. 하지만 저기 새 떼가 밀어닥치고 있으니 지금은 서 있을 수 있어야 했다. (p. 207)

'지루할 틈 없는 사건들, 맞서 싸우며 성장하는 주인공' 이라는 'YA심사단'의 평가처럼, 단숨에 읽히는 소설이었다. 폭풍같은 하룻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이 개인 아침으로 끝나는 소설이었다. 웃을 수 없던 아이들이 이제야 미소를 되찾은 것을 보며 안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역시 소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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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맥베스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공민희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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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사람]의 시카고플랜 고전문학 시리즈 002

고전을 읽을 땐 가장 원문에 가까운 책을 골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개인적으로 그닥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현대어판으로 쉽게 풀어썼다는 맥베스를 별생각없이 펼쳐들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임에는 분명하지만 고대고전을 읽으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작가 스스로의 창조가 아니라 고전에서 많이 인용해왔다는 것을 알고 개인적으로 작가의 그 위대함을 좀 폄하하게 되었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4대비극의 한 작품이면서 짧은 내용에 비해 휘몰아치는 전개가 강렬한 작품이라고들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검색해보면 엄청난 수의 책이 나오는데 의외로 그 책들 중 대부분이 산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소설로 자신의 작품을 쓰지 않았다. 희곡으로 쓰고 연극무대에 올렸지.

따라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게 된다면 희곡으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워낙 오랜 세월 읽혀지고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다보니 각색과 변형이 된 작품도 다종다양했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읽기 쉽게 현대어로 풀어 쓴' 다는 것은 문장이 쉬워질 뿐 각색까지는 아닐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맥베스>를 이 책으로 처음 읽은 것이라 원전에 가깝게 번역된 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 속의 문장 자체만으로도 번역에 문제가 좀 있어 보였다.

75p의 대사 중 개의 종류가 나열되는 부분이 있는데, '하운드와 그레이하운드, 잡종개, 스패니얼, 똥개, 푸들, 삽살개, 반늑대종도 개니까.' 에서 '삽살개'는 한국의 토종개이므로 영국개의 목록에 쓰면 안되지 않을까. 어차피 정확한 개 종류를 쓴 것이 아니라면 그냥 똥개 라는 표현처럼 일반적은 특징을 잡은 개로 쓰면 될 것을... 뭐 개종류 하나가지고 트집잡았다고 할 수도 있을 터이니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맥더프 내 아내는 어떤가요?

로스 잘 있습니다.

맥더프 내 아이들은?

로스 잘 있습니다.

맥더프 폭군이 그들의 평화를 깨지 않았나요?

로스 네, 제가 길을 나설 때 그분들은 평온했습니다. (p. 129)

맥더프 내 이야기라면 얼른 말해보세요.

로스 당신의 귀가 제 혀를 영원히 혐오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결코 들어본 적 없는 가슴아픈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맥더프 흠! 그렇군요.

로스 당신의 성에 기습 공격이 있었습니다. 부인과 자녀들이 야만적으로 살해당했습니다. 그 살인자 무리의 행태에 관해 더 이상 설명하면 당신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전 매너를 지키겠습니다. (p. 130~131)

맥베스의 횡포가 거세졌을때 로스가 맥더프에게 와서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다. 다른 날의 대화가 아니고 로스가 도착해서 계속 주고받고하는 대화이다. 그런데 앞에서는 맥더프의 아내와 아이들이 잘 있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살해당했다고 말하는 이 대화가, 인물이 바뀐 것도 아니고 계속 맥더프와 로스가 주고받고 있는 대화였는데 이 앞뒤 안맞는 표현이 과연 나만 이상한가?;;; 그래 뭐 비극적인 일을 나중에 말하려는 의도가 있었겠지, 자신이 출발할땐 괜찮았다가 나중에 사고가 생긴걸 알았겠지, 그렇더라도 뭔가 좀더 맥락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어야 할 부분 같은데, 뚝뚝 끊겨서 영 앞뒤안맞는 대화가 되어버렸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사실 곳곳에서 발견되서 작품의 줄거리 파악도 좀 힘들게 한다.

아무래도 다른 책으로 <맥베스>를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원문의 앞뒤 대사가 이상한건지 이 책의 번역이 이상한건지 확인하려면...

여하튼,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오랫동안 읽혀져 온 만큼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만큼 어떤 작품이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은 고전원문에 가깝게 옮겨진 책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은 시간이었다. 역시 쉽게 가면 그만큼 얻을게 없다. 어려운 길은 어렵게 가야 얻어지는 것도 많아지는 법... 그러나 쉽게 가는만큼 그닥 남기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을 읽어도 가볍기만 하면 된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든 그것은 개인의 취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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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강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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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타임스·AP통신·백악관 사진부·로이터 통신 포토저널리스트

강형원 기자의 눈에 담긴 한국의 문화유산

책을 받아본 순간 '아, 이 책은 진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보다 사진이 중심이라는 강조점을 보여주는 듯한 큰 사이즈와 컬러판의 사진을 제대로된 색감으로 볼수 있는 최적화된 재질의 책은 표지부터 이미 그 아우라를 넘사벽으로 뿜뿜하고 있었달까.

2020년 나는 한국에 들어와 우리 문화유산을 취재하며 한번 보면 잊지 못할 사진으로 기록하고 한국어와 영어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서로 사용하는 문자가 달라도 소통할 수 있는 만국 언어이다. 특히 이미지로 정보를 접하는 것에 익숙한 비주얼 세대에게는 사진이야말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무엇보다 사진에는 소중한 시간을 영원히 멈추는 힘이 있다. (p. 7) -작가의 말 中-

저자의 직업을 간단히 말하자면 사진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간 저자는 미국식 교육을 받았음에도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않았고 영어권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국문화유산이 제대로 번역되지 못해 묻히거나 왜곡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던 것 같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리고자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였고 이 책은 그러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진행됐던 것에서 25개의 문화유산을 엄선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사진이 가장 압도적이긴 하지만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설명되어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이 책 자체로서의 유용성과 가치면에서 더욱 빛나는 듯 했다.

크게 세 챕터로 구분되어 소개되는 문화유산에는,

[세계가 기억할 빛나는 한국의 유산]으로 고인돌, 백제 금동 대향로, 경주 첨성대, 신라의 유리그릇,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종묘 제례와 종묘 제례악, 서원,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골 / [한국의 찬란한 역사를 품은 유산] 으로 연천 전곡리 주먹 도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정문경, 가야,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성덕 대왕 신종, 민간 인쇄 조보, 이순신, 독도 / [한국의 고유함을 오롯이 새긴 유산] 으로 토종개, 한글, 하회 별산굿 탈놀이, 온돌, 한지, 증도가자 금속 활자, 김치, 제주마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이 역사인문서라기 보다는 걸출한 사진작가의 책이니만큼 감각적인 사진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지만 역사적인 내용도 쏠쏠히 배우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역사덕후라거나 역사책 쫌 읽었다 하는 이들이 읽어도 재밌고 역알못 독자들이 읽어도 재밌을 책이라는 말이다.

첫번째 유산인 고인돌에서부터 길지 않은 내용에서 벌써 흥미로운 관점이 시선을 끈다.

세계에서 고인돌이 한국에 가장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전 세계에 6만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 가운데 4만~4만5천 기가 한반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 옛날 그토록 많은 고인돌을 만들만큼 번성했던 한반도 땅의 인류는 현재의 한국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서양인의 DNA가 고인돌에서 발견된 유골에서 나왔고 '돌'이라는 어원을 쫓아 올라가보면 한자가 우리 문화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까지 해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문화유산 이야기 이기에 뿌듯함은 당연히 깔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문역사학자가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바탕으로 사실을 짧고 굵게 전해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엄청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문화유산 그 자체에 대한 가치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그 유명한 백제 금동 대향로에는 한반도에 살지 않는 코끼리, 원숭이, 악어 등이 조각되어 있고, 경주에서 발굴된 유리잔은 기원전 2세기에 이미 로마의 유리잔을 수입할 만큼의 교역력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며, 전곡리 주먹 도끼는 구석기 인류마저 서양이 우월했다고 믿던 학계의 학설을 완전히 뒤집은 증거였다. 정문경 이라는 청동거울은 현대 과학으로도 재현하기 힘든 최고의 '나노 테코놀로지'기술을 보여주고 있고, 가야의 고분군은 다양한 미스테리를 ㅍ품고 있으며, 성덕 대왕 신종을 옮길 때 새로 제작한 쇠막대기는 결국 사용치 못하고 오래된 녹슨 쇠막대기를 사용해야 했을때 부러지지 않고 그 육중한 무게를 거뜬히 버텨내는 것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우리 고유의 한지도 우수하지만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우리에겐 삼국시대부터였지만 서양은 한참 후였고 종이가 이모양이니 활자는 당연히 우리가 더 앞선 시기에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오래된 금속 활자본 이라고 알려진 '직지'보다 138년 앞선 시기에 사용되었던 금속활자 '증도가자' 이야기는 호기심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활자말고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 유일한 것들이 한반도에는 참 많다.

수학여행가면 사진에 배경으로나 찍히는 첨성대는 원래 모습 그래도 보존되어 있는 천문대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기상 관측대 이고, 종묘 제례는 동아시아의 왕실 제례 의식 가운데 500년 넘도록 원래의 의식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유일한 왕실 제례의식이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그림과 고래잡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유산 관련 사진들이라고 해서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그런 사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월송대 사진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임시로 모셨던 그곳이 풀이 나지 않기로 유명하다니... 왜인지 이유가 짐작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일제 강점기와 연결짓는 내용이 독도 관련해서인데, 강치의 멸종과 향나무 이야기 그리고 토종개 도살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였으니까 그렇다쳐도 미군에 의해 벌어졌던 '독도 조난 어민 위령비' 관련 이야기는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내용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신선한 이야기도 꽤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품종개라고 하면 진도개와 삽살개 밖에 몰랐는데 동경이, 풍산개, 바둑이, 릿지백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하회탈이 웃는 탈인줄 알았는데 별신굿 탈놀이에 등장하는 12개의 탈을 의미하는 것도 처음 알았고, 너무나 당연한 온돌이 한국에만 있던 고유한 난방 기술이라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니, 바닥을 뜨듯하게 하는 것에 그 오랜 역사 기간 동안 전세계인들이 그토록 무심할수 있었다니 하면서 ㅋ

문화유산 사진집이라고 할수 있는 책이지만 박물관 도록 같은 책을 생각했다면 책장을 넘길수록 예상밖의 사진에 놀라게 될 것이다.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2회나 받은 사진작가라니 역시~! 하게 된다고나 할까. 표지부터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유명한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인데 표지에 떡하니 있는 사진은 뒷모습이다.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왔던 것은 모든 유산의 앞모습만 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이제 뒷모습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을 봐야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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