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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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 출신 전과 7범 생계형 범죄자에서

[전태일 평전]을 펴낸 출판사 대표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

[전태일 평전]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책을 몰래 숨어 읽던 세대까지는 아니지만 이 책이 어린이 동화책으로까지 나와 읽혀질 줄은 몰랐던 나로서는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만큼의 향수는 아니더라도 뒷세대로서의 어렴풋한 존경심을 갖고 있던 책이다. 그 책을 펴낸 돌베개 라는 출판사는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으로도 나의 학창시절에 깊은 인상을 남겨놓았지만 그 출판사의 사람들까지는 몰랐다. 그저 막연하게 그 시절 난무하던 지식인들의 발자취중 하나였겠거니 싶었었는데... 생계형 범죄자에서 돌베게 출판사 대표라...

돌베개 출판사의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나는 지업사를 차렸다. (...) 전두환 정권 시절 출판사를 경영할 때는 거래하던 지업사에서 혹시 모를 감시를 두려워해 종이 자체를 잘 공급해 주지 않거나 비싼 값에 제공하는 바람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내가 지업사를 양심적으로 직접 운영하여 출판사들이 종이를 편하게 쓸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이 들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p. 7)-프롤로그 中-

책의 내용은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1993년 돌베개 출판사 대표직을 내려놓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담고 있다. 지금이 2023년인데 1993년에 끝난 이야기를 지금 왜? 그래서 그 다음은? 의문이 들자 마자 아차 싶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자연스레 들던 의문에 대한 답은 사실 프롤로그에 이미 나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사실 초판이라고도 볼 수 없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수십년전에 이미 [걸밥]이라는 책으로 저자의 인생이야기가 다루어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시 이 책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저자나 출판사의 설명이 충분할지라도 각자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삽자루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 어릴 때 고아가 되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운 바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주로 생각보다는 동물적인 본능에 따라 살았다. 그런 본능을 갑자기 억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바짝 선 마음속 칼날을 한 번만 드러내면 감방살이가 편안해질 터였다. 그것을 억지로 참으며 삽자루를 붙들고 나 자신과 씨름했다. 전부 [새 마음의 샘터] 때문이었다. (p. 60)

저자의 인생 지향점을 바꾼 것은 한 권의 책 이었다. 책 내용도 내용이겠지만 책을 읽고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꾼다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므로 그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적 구호보다는 이렇듯 한 사람의 경험담이 풀어내는 실전은 또다른 감상을 안겨줄 터이다.

출소한 정 형이 대전교도소 소장에게 서신을 보냈던 것이다. 나만큼 순수하고 인간적인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비록 고아에 전과는 많지만 사회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마음잡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기술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장으로 출역을 시켜주면 고맙겠다고 사연을 적어 보냈고 여기에 감동을 받은 소장이 나를 인쇄 공장으로 출역시킨 것이었다. (p. 110)

전태일 평전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에게 노동법을 쉽게 설명해줄 대학생 친구가 한명만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고... 임승남 저자에게는 그런 대학생 친구가 한명 있었던 것이다. 출소후에도 인연은 이어졌고 그렇게 저자는 출판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영업부장으로 열과 성을 다해 책을 팔러 전국을 다녔다. 신바람 나는 와중에 세상에 대한 눈도 뜨이게 되었다.

좋은 책을 내면 사회라는 흐린 물을 맑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144)

출판업계의 시작이 인문사회분야였던 만큼 연줄연줄하여 그가 옭겨다니게 된 출판사들의 성향은 뚜렷했다. 사회개혁적이었고 인문학적이었다. 의미가 있는 책들이 세상에 널리 읽혀졌으면 좋겠다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전태일평전을 만났다.

일본에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열사의 전기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승옥 주간이 어렵사리 책을 구해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번역을 시켰다. 조판까지 다 끝내서 본문 인쇄를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마침 전태일열사와 평화시장에서 같이 활동했던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 민종덕 씨가 일본 출판사 원고는 복사본이며 원본은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여왔다. 그 즉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 이소선 여사를 찾아가 책을 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다칠까 봐 걱정했다. (p. 192)

이 책을 읽다보면 시간적 배경상 80년대 운동권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시대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출판분야에서의 그들의 활동을 잘 몰랐기에 그 당시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는 내용도 꽤 있어 흥미로웠다.

나는 그들이 그물에 옭아 넣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간첩이라는 그 그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자전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인 [걸밥]의 출간을 결심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편집자와 한두 달을 붙어 지내다시피하며 원고를 정리했다. 책은 1986년 5월 청년사에서 출간되었다. (p. 204)

출판사 청년사... 향수감이 올라온다. 학생시절 이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책을 읽고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었는데... 너무 좋아서 나중에 아이에게 읽혀주려고 다른 책들이 버려지는 와중에도 그 역사책은 소중히 들고다녔었는데 얼마전 보니 아이에게 읽으라고 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당시 책의 인쇄상태며 문장상태가 그당시엔 몰랐는데 지금와서 다시 보니 지금의 인쇄물들에 익숙해진 세대가 읽기엔 영...;;; 그땐 그런 책도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었는데... 뭐... 그땐 그랬다. ㅎㅎ

여튼 숨고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시대였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던 시대였다. 당시의 정치인들도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전두환 정권은 툭하면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에게 국가보안법의 올가미를 씌웠다. 대표와 편집자가 구속당하는 것은 물론, 책도 수시로 빼앗겼다. 대학가 서점 주인들까지 연행되기 일쑤였다. 이에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모임을 꾸려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거름, 공동체, 녹두, 두레, 동녘, 돌베개, 민맥, 석탑, 백산서당, 새길, 실천문학, 사계절, 아침, 역사비평, 이론과 실천, 일월서각, 이삭, 온누리, 지양사, 청년사, 풀빛, 한마당, 한울 등 30여개 출판사들이 주축을 이뤘다. (...) 출판인들은 1986년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한출협)'라는 민주적 출판운동단체를 발족시켰다. 한출협은 1987년 6월 항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p. 208)

저 출판사들중 살아남은 출판사들은 얼마나 될까... 나의 대학시절 책들은 대부분 저 출판사들의 명함을 박고 있었는데...

여하튼 저자는 결국 국가보안법에 걸려 잡혀들어갔다. 하지만 시대는 또 변해있었고 저자의 안위는 그전보다 위태롭지 않았다. 저자는 출소후 성장중인 돌베개 출판사의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토록 사랑하고 애독했던 '전태일 평전'의 출판사를 운영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떠나게 되었다. (p. 249)'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출판사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문구에서 저자의 마음이 정말 진심이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이토록 삶을 사랑하면 그 삶이

세상에 조금은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정말인 것 같아서 진짜 실현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나직하게 응원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

(책의 글밥은 성기고 저자의 기억은 완전치 않지만 수십년 전의 한 사람의 인생경험이 지금은 고루하다고 재미없어 할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지금 시대에도 책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배우고자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책책책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다시한번 말해주고 싶어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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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의 부 - 고대 점토 석판에서 발결된 세기의 책들 20선, 천년의 지혜 시리즈 경제경영 편 1
조지 사무엘 클레이슨 지음, 서진 엮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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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쉽고, 가장 확실하며, 가장 빠르게

즉시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이 담긴 5천년 전 유물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신화에 가까워지는 고대의 역사를 가장 흥미롭게 즐긴다. 특히 김산해 님의 수메르 관련 서적들을 통해 고대 역사에 개안?!을 했던 터라 고대 역사중에서도 수메르 관련 책이라면 일단 홀려버리고 만다. 그러니 '부'에 관한 자기계발서고 뭐고 간에 고대점토석판에서 뭔가 내용을 가져왔다는 이 책에 홀리지 않을 수가. ㅎㅎㅎ

이 책을 읽은 세계 여러 나라 독자들이 재정적인 근본 가치를 배웠다는 소식을 오랫동안 알려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읽을 새로운 독자 역시 그들과 똑같은 영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p. 12) -서문 中-

이 책의 책날개에서 저자 관련 약력을 보면 이 책이 1926년에 발표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로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왔기에 '천년의 지혜 시리즈 경제 경영 편'의 고전?으로 새롭게 다시 나온 것인데, 책의 가장 첫글 '책 소개/편저자의 말'을 통해 원전 번역본은 아님도 확인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좋아했을 법한 우화와 소설 형식의 긴 글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덜어내면서 지금 즉시 실행할 수 있는 근본적 메시지는 철저하게 남기는 방식을 지키고자 애썼습니다. (p. 8)' 즉, 옛 사람의 글이고 우화와 소설 형식의 글이며 핵심 실천 메세지만 추린 글 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이 책은 얇고 글밥도 성긴데 우화형식으로 쓰여있으니 그야말로 호로록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석판에 바빌론 최고의 부를 이룬 아르카드라는 인물과 자신의 빚을 완전히 없앤 다바시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이 겪는 문제가 5천 년이나 지난 지금의 우리들이 겪는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면 놀라실 겁니다. (...) 하지만 먼지로 뒤덮인 이 바빌론의 잔해에서 나온 지혜로운 노인은 제가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빚을 처리할 방법과 후손에게 남겨 줄 부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오래된 점토판이 저를 일깨우고 즉시 적용할 만한 방법을 제시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p. 20)

어느 고고학자의 편지글로 시작되는 본문의 내용은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이 '빚을 처리할 방법과 후손에게 남겨 줄 부를 얻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5천년 전의 조상이 백년 전의 조상에게 준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며 인간으로 살아온 세월동안 그 시간이 5천년이건 백년이건 얼마나 지나건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사람사는 방식은 늘 비슷했다. 다른 책에서 읽었었는데 수메르 점토판에도 공부하기 싫다는 낙서나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푸념이 있었다. 그 이후의 역사가 5천년이건 백년이건 아무리 지났건 사람 사는 방식은 거기서 거기였던 것이다.

남아있는 역사기록물 내용중 많은 부분이 경제적인 내용이다. 문자가 있던 없던 무언가를 기록할 필요성 중 가장 큰 필요성은 '부'에 대한 기록이었다. 가진 것에 대한 확인, 준 것에 대한 확인, 그 들고 나감에 있어 다른 사람과의 계약에 대한 합의와 그 보증으로서의 기록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했다. 단순했던 기록들은 점차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남기게 되고 '부'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속에 '빚'에 대한 기록도 쌍둥이처럼 함께 존재했다. 이 책에도 한쌍의 조상이 등장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

가난한 사람은 부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알았어도 실천하지 않은 두 가지 경우일 뿐, 행운으로 부가 오고 가는 게 아니란 말일세. (p. 57)

고대의 부자가 고대의 빚쟁이에게 충고를 해준다. 빚을 없애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

책속에서는 실천적으로는 7가지 교훈적으로는 5가지 등으로 나오긴 하지만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3단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덜 써서 모은 종잣돈으로 투자해서 부를 쌓은 뒤 현명하게 지키는 것. 새롭지 않다고? 앞서 말했듯 사람 사는 게 5천년 전이나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당연히! ㅎㅎ

그렇다고 에이~ 하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지 않나? 실천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그 실천의 원동력이 될 깨달음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고 그 깨달음을 얻는 방법 중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다. 5천년 전 누군가의 조언이 지금도 먹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겠나? 진리는 진리에 가까워질 수록 단순한 법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이 작고 얇은 책에서 깨달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득템 중의 득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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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소설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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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에 마주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부조리에서 반항으로, 반항에서 연대로…

재난 속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

-출판사 서평 中-

코로나시대가 되면서 필독서로 급상승한 책 중 하나가 <페스트>가 아닌가 싶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일단, 무차별적인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필독서가 될 이유는 충분하다. 카뮈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이방인>이 짧고 굵게 느낌을 퐉! 준다면 <페스트>는 길고 뭉근하게 느낌을 주는 것이 전혀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방인>에서 외로움이나 스산함 혹은 부조리 등으로 카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 <페스트>는 굉장히 상반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될 것이다.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소설 <페스트>는 휴머니즘 이다.

이 연대기가 주제로 다루는 기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발생했다. 일반적인 의견에 따르면,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에서 좀 벗어나는 사건치고는, 그것이 일어난 장소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 오랑은 사실 하나의 '평범한 도시'로서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하다. (p. 11)

소설의 시작은 이러하다.

이 소설은 1940년대 언젠가 알제리의 프랑스령 오랑 이라는 평범한 도시에서 기이한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을 기록하는 연대기라는 것.

연대기 서술자는 '솔직히 말해서 도시 자체는 못생겼다. (p. 11)' 라면서 너무 평범하고 특징도 없고 보잘것 없다보니 '이 도시를 어떻게 설명하면 상상할 수 있을까? (p. 11)' 라고 난감해하는 척 하며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p. 12)' 라고. 또한 '우리 도시에서 보다 더 독특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에 이르러 겪는 어려움이다. (p. 14)' 라고. 그렇다. 이 도시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은 '어떻게 죽는가' 와 상관이 있는 것이다.

4월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p. 17)

그후 리유는 온 동네가 쥐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p. 20)

키가 작달막하고 어깨가 딱 벌어지고 결단성이 있어 보이는 얼굴에 눈이 맑고 총명해 보이는 랑베르는 활동적인 옷차림이었는데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서 자유분방한 인물 같았다. 그는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어떤 큰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자로서 아랍인들의 생활 조건을 취재하는 중인데, 그네들의 보건 상태에 대해 기삿거리를 얻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p. 23)

의사는 그와 악수를 하고 나서 지금 이 도시에서 발견되고 있는 수많은 죽은 쥐들에 대해서 취재해보면 흥미 있는 르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 24)

자, 중요한 인물과 핵심 사건이 초반에 바로 등장했다. 의사 리유와 파리에서 온 기자 랑베르 그리고 수많은 쥐들의 죽음.

아, 핵심인물로 한 명을 더 언급해야한다. 장 타루. '그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왜 그곳으로 온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 40)' 하지만 페스트가 퍼지고 도시가 폐쇄된 이후 타루의 활동은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여하튼, 쥐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너무나 급격한 속도로 너무나 괴상한 모습으로.

'마치 그 광경은 우리의 집들이 자리 잡고 서 있는 땅 자체가 그 속에 고여 있던 고름을 짜내고 지금까지 안으로 곪고 있던 응어리와 악혈을 표면으로 내뿜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건강한 사람의 짙은 피가 돌연 역류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여태껏 그렇게도 고요하기만 했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발칵 뒤집혀 버린 이 자그마한 도시의 아연실색이 어느 정도일 것인가를 상상만이라도 해보라! (p. 29)'

코로나 초반의 우리 주변을 떠올려 보라.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갑자기 발칵 뒤집혀 버렸는지.

시민들은, 이제부터는 차차 깨닫겠지만, 하필이면 우리의 이 자그마한 도시가 쥐들이 밖으로 기어 나와 죽고 수위가 괴상한 병으로 목숨을 잃는 도시로 특별히 지정될 수 있으리라고는 결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p. 39)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p. 60)

재앙이 항상 지나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p. 61)

재앙인줄 몰랐지만 엄청난 재앙이었다.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기에 무시하고 그냥 넘기려 했지만 그저 모른척하려 했지만 더이상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갔다. 차근차근 진행되는 과정들이 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오랑은 폐쇄되었다. 그리고 사실 <페스트>라는 작품의 주요 시사점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전염병으로 인해 폐쇄된 장소에서의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더 핵심적이다. 폐쇄된 도시에 남은 사람들의 폐쇄에 대처하는 모습들 이라고나 할까.

이 질병의 무지막지한 침범은, 그 첫 결과로서 우리 시민들을 마치 사적인 감정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p. 102)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고 제각기 혼자서 저마다의 근심에 잠겨 있었다. (p. 113)

시민들은 자기들에게 닥쳐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별이라든가 공포라든가 하는 공통된 감정은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개인적인 관심사를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그 질병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p. 117)

하지만 폐쇄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계절이 바뀌어가고 환자는 늘어가고 물자는 부족해지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시민들의 인식과 태도는 변해가기 시작한다. 어쩔수 없이.

그런데 페스트가 절정에 이르고 그 재앙이 이 도시를 공격해 완전히 삼켜버리려고 있는 힘을 다 모으는 동안의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꼭 적어둘 것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가령 랑베르 같은 마지막으로 남은 개개인들이 그들의 행복을 되찾기위해서, 또 그들이 그 어떤 침해의 손길과 맞서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그들 자신의 몫을 페스트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 기울인 절망적이고도 단조롭고 꾸준한 노력들이다. (...) 그 나름의 허영과 심지어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대로나마 그 당시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자랑스럽게 깃들었던 그 무엇을 증명해주기도 했다고 믿는다. (p. 206)

제목이 페스트이고 연대기를 시작한다고 서두를 뗀 초반부터 죽음을 거론하긴 하지만 이 두툼한 소설을 읽어가는 중에 전염병이라던가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묘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감정 예를들면, 고립감이라던가 억울함이라던가 진정성이라던가 무성의 같은 사람들의 감정 표현에 집중한다. 하지만 묘한것이 읽으면서도 그 문장이 그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읽는순간에는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부러 연대기라고 밝혀놓은 시작에서 객관성을 담보로 한 글이라는 특징 때문일수도 있지만 카뮈라는 작가만의 독특한 문장표현이 더욱 그 격렬한 감정을 너무나 무감하게 읽도록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p. 302)" 라는 핵심적 문장에서조차 읽는 그순간에는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가 좀더 읽고 한참 지난후에야 아차차 싶어지는 것이다. 어? 아까 그 장면 생각해보니 되게 감동적이어야 했는데? 왜 그냥 지나쳤지? 싶어지는 것이다.

여하튼, 4월에 시작된 일은 12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그러다

"그놈들이 다시 나와요" "누가요?" "쥐 말이에요, 쥐!" (p. 382) 사라졌던 쥐들이 다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펄펄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다시 희망을 가져볼 법한 징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군분투했던 의사와 봉사자들은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마지막에...

"오! 그럴 수야 없지, 지금 와서!" (p. 404)

재앙은 더 이상 이 도시의 하늘을 휘저어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방 안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직이 색색거리고 있었다. 리유가 몇 시간 전부터 듣고 있던 것이 바로 그 소리였다. 그는 그곳에서도 페스트가 멎고, 그곳에서도 페스트가 패배를 선언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p. 410)

리유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결정적인 패배, 전쟁을 종식시키면서 평화 그 자체를 치유할 길 없는 고통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패배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p. 415)

도시에 휘몰아치던 재앙은 확연하게 물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극이란 것이 그렇듯이 안심할만한 바로 그때 그동안 지속해왔던 긴장감을 살짝 늦춰도 괜찮겠지 싶어진 그때 비극의 절정이 돌연 등장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평화의 시기가 왔다고 말하지만 전쟁이 남긴 고통때문에 결코 승리라고도 평화라고도 말할 수 없는 바로 그러한 패배감을 던져주는 사건이 벌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들은 인간이 언제나 욕구를 느끼며, 가끔씩은 손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431)' 라고 해도 그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누군가가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꺾이지는 않았다.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p. 442)

연대기를 쓰고 있는 화자는 본인을 서술자라고 지칭하며 이 휴머니즘 넘치는 글에 대해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442)' 라고 또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p. 442) 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마무리하지만 씁쓸할지라도 평화는 평화였고 고통을 남겼을지라도 승리라면 나름 승리였기에 마무리는 희망적이었다고 총평할 수 있을 것같다.

고전명작인만큼 작품 뒤에 해설도 상당히 긴 분량으로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 소설의 작품해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의 해설은 작가와 작품서술에 대한 배경지식을 넓혀주고 있어서 정보를 얻는 재미가 쏠쏠했다.

1947년 6월 10일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 <페스트>가 출간되었을 때 서른네 살의 작가 카뮈는 아직 일반 대중들에게는 광범하게 알려지 있지는 않았지만 이미 여러 면에서 뚜렷한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p. 445)

첫 구상에서부터 마지막 결정고의 마무리까지 7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소요된 작품이 <페스트>다. (p. 447)

사실상 <페스트> 착상의 기폭제가 된 것은 이듬해 9월에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볼 수 있다. (...) 작품의 1부에서 페스트 상황임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기까지 아무도 그것이 페스트임을 단언하지 못한 채 그 '부조리한 사건'을 불신하거나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분위기는 전쟁 발발 초기의 그것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p. 449)

카뮈는 장차 이 소설을 구상하는 과정에 있어서 톨스토이, 다니엘 디포, 세르반테스와 더불어 현실 경험의 신화적 형상화라는 측면에서 가장 주요한 모범으로 삼게 될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을 정독하고 노트를 한다. 멜빌은 카뮈의 창조를 상징과 신화의 차원으로 승격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p. 453)

'연대기'라는 형식을 통해서 페스트라는 질병의 육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고통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산출해낼 수 있는 작품의 '상징적'의미는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한 동시에 보편적인 것에까지 확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체 5막으로 이루어진 고전 비극처럼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단 하나의 장으로 된 짧은 3부를 중심으로 해서 비교적 길이가 긴 앞의 1, 2부와 뒤의 4, 5부가 대칭을 이루는 균형 잡힌 형식을 갖추고 있다. (p. 461)

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랑과 코타르의 관계는 <이방인> 속에서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뫼르소와 레몽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빛과 어둠처럼 서로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p. 483)

- 해설 [부정을 통한 긍정] 中 -

해설에서의 정보들을 읽고나니 이제야 궁금해진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여기저기 녹인 것은 알겠는데, 전쟁을 왜 전염병으로 바꿨을까? 어디에 모비딕의 무언가가 반영되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소설에 굳이 고전 비극의 형식을 갖춘 이유는 무엇일까? 코타르 라는 인물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부정적 인물인데 그가 지은 죄는 무엇일까? 전염병에 대처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 혹은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빛과 어둠을 드러내기 보다 다른 핵심적 인물들과 코타르를 비교시킨 것은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 소설 발표 당시나 지금까지 읽혀져 오는 과정에서 나처럼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까? 등... 명작은 역시 생각해봄직한 질문들을 남긴다. 해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해설의 끝부분에 인용되어 있는 카뮈의 노벨상 수상 소감이었다.

"그렇다. 나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게는 정확한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우선 나는 부정否定을 표현했다. 세 가지 형태로 말이다. 소설로는 <이방인>이었고 극으로는 <칼리굴라>와 <오해>였으며 이념적 형태로는 <시지프 신화>였다. 만약 내가 그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그것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겐 전혀 상상력이 없어서 지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있어서 이를테면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람은 부정 속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시지프 신화>의 서문에서 그 점을 미리 밝혀 놓았더랬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세 가지 형태의 긍정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소설로는 <페스트>, 극으로는 <계엄령> 과 <정의의 사람들>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반항하는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벌써 사랑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째의 한 층위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내가 구체화해가는 중인 계획들이다" (p. 488~489)

1957년 프랑스 작가로는 아홉 번째이며 최연소(마흔네 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가 1960년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카뮈의 세번째 층위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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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사 - 고대에서 현대까지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3
마르쿠스 앙케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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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와 무기고로서의 정치사상사

북캠퍼스 출판사의 지식포디움 시리즈 3권인 이 책은 시리즈의 1권과 2권을 읽고 반해서 읽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 4권이 나온다면 또 찾아읽게 될 듯한 시리즈 다) 200여페이지의 비교적 얇고 사이즈도 작아서 상대적으로 글밥양도 적게 느껴지는 이 시리즈는 작고 얇아 가볍에 시작할 수 있게 하지만 읽다보면 보기보다 깊이 있는 내용에 놀라워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

시리즈 1권의 제목이 <민주주의>, 2권의 제목이 <20세기 철학 입문>, 3권의 제목이 <정치사상사> 하나같이 직접적으로 어려운 주제임을 제목부터 드러내고 있지만 시집크기의 작은 사이즈로 인해 그럼에도불구하고 일단 시작할 마음을 먹게 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책장을 펼쳐들면 온갖 생소한 학자들과 그 학자들의 이론이 쏟아져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짧은 요약적 분량으로 인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노골적으로 나 어려워요 하는 제목을 가진 이 책들에 왜 관심이 가는가? 지금의 시대가 그 필요성을 절절이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민주주의가 있는가? 라고 생각하면 대체 민주주의가 뭐길래? 하는 의문이 들고,

이 시대에 철학이 있는가? 라고 생각하면 대체 시대의 철학은 어떠해왔는가? 라는 의문이 들고,

이 시대에 정치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하면 대체 정치사상이란 무엇이고 어떤 이력을 가져왔길래? 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수천 년이 된 오랜 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해석자와 해석된 텍스트를 연결하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정치에서 정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 누구를 통치해야 할까? 이처럼 정치사상사는 정치 이론가들의 텍스트와 그 해석자들의 텍스트가 모여 있는 이론 논쟁의 연속체로 구성된다. 텍스트들은 차례로 담론 내에 배열되며 특수한 정치사상의 상황 속에서 움직인다. 그 같은 상황은 (위기나 전쟁 같은) 정치적 사건이나 (평화나 정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통해 결정된다. (p. 5) -서문 中-

저자는 서문에서 '정치사상사는 관련 논쟁을 재구성하고 텍스트를 해당 담론에 착근着根하여 맥락화한다. (p. 6) 착근 과정에는 2가지 측면이 있는데 이를 정치사상사의 아카이브, 즉 기록 보존과 정치사상사의 무기고武器庫라고 부를 수 있다. (p. 7)' 라며 '착근'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붙을 착 에 뿌리 근 이라는 한자를 통해 뿌리에 붙다 라는 근본적 해석은 정치사상의 이해에 있어 그 원론적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래서 현재시대의 정치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치사상사의 맥락을 왜 알아야 하는지를 설득시켜주고 있는 용어가 아닐까 싶었다.

고대 그리스의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문제에 몰두했다. 이제 사회구조의 변동으로 인해 현대 민주주의는 더 이상 그리스 민주주의와 비교하기 어렵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이 가능한 한 폭넓은 참여에의 요구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고대의 저자들은 가능한 참여의 조건과 그 장단점을 직접 관찰하고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었다. 그런 한에서 정치 이론 작업의 다양성을 아카이빙, 즉 보존하는 것은 정치사상사 분과의 본질적 기여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망각되었을 '민주주의'같은 이념이나 '권력' 같은 개념의 이론적, 실천적 잠재력이 이렇게 해서 기억에서 소환된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카이빙은 현대와 얼마나 가깝고 시의적이며 현대와 얼마나 관계되는가라는 질문과 무관하게 사상사의 이론적 잠재력을 보존한다. (p. 7)

모든 역사의 시작은 고대그리스일 때가 참 많다. 문학도 철학도 정치도... 고대의 정치는 당연히 지금과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옛날옛적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가? 라고 의문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한 개념의 이해에는 그 개념이 생성되기까지의 역사와 거슬러 올라가 기원을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지금의 이 정치가 어쩌다가 이렇게 혼란스럽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정치를 정치사상을 역사적으로 훝어내려오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과정이다. '특정 시대의 지배적 문제가 무엇인가, 이 시대의 저자들이 그들의 이론으로써 담하려 했던 문제는 무엇인가 (p. 11)' 라는 질문을 역사적으로 훝어 내려와야 지금 시대의 정치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게될 수 있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는 우선 이론의 형성 과정을 발생기의 맥락에서 기술하고 현대의 이론 형성에 대한 그 관련성을 지적하려 한다. 사상사에 관한 자료는 저자 쌍 들에 따라 편성되었다. 그들은 서로 직접 참조하고 서로 비판하며 서로 엇갈리는 이론들을 내세우지만 한 시대 이론 작업의 범위를 대표한다. 어느 저자도 한 시대의 유일한 대표가 아니었으며 모든 이론에는 대안이 있었다. 오늘날 정치적 사유를 위한 사상사의 가장 큰 소득은 바로 이론들의 끊임없는 경쟁에 대한 통찰로부터 생겨났다. (p. 13)

정치는 항상 논쟁을 통해 발달해왔고 따라서 정치사상사를 살펴보는 것은 한쌍의 세트로 묶어 핑퐁처럼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철학이나 문학 혹은 예술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사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것 같은데 정치는 정치사상사는 하나의 대표로 설명될 수 없다. 늘 논쟁하는 양방향의 '쌍'으로 존재하며 그렇게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는 경쟁속에 시대를 관통하는 메세지를 남기곤 했다. 따라서 저자가 시대별로 대표적 두 정치사상을 묶어 설명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근현대의 카를 슈미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 까지 대표적 정치사상의 양 측면은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지금의 시대를 반추하게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챕터 [현대-인권의 시대]에 이르면 세계대전 이후 현대국가들의 국경선이 확정되면서 그 지역적 쪼개짐만큼 각 지역의 정치사상이 얼마나 다변화되었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사실 문제는 이것이다. 현대시대는 너무 다종다양하다는 것.

이 책에서 다루는 '쌍'으로 설명되는 정치사상은 사실 1948년 까지를 설명한다. 민주주의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들이 자리잡아 가면서의 정치사상사는 더이상 세계를 아우르는 '쌍'으로 설명할 수 없어졌다. (사실 서양사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사상사의 '쌍'으로의 설명도 세계를 아울러 설명한다고 하기는 좀 부족한 부분이 있긴하지만...)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 이 시기 이후에야 민주주의사상이 들어왔다고 할 수 있으므로 더더욱 난감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사상사를 읽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정치사상사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나타난 정치적 사유들을 관찰하고 정치와 사상의 상호작용을 조명하여 기술함으로써 정치의 지평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 (p. 212)' 시켜주기 때문이다.

독일 아우구스부르크대학의 정치 이론 교수인 앙케는 고전기 그리스에서 20세기 세계인권선언(1948)에 이르는 정치적 사유의 장구한 역사를 간명한 필치로 설명하는 가운데 사상사적 담론들에 대한 통시적, 공시적 분석을 시도한다. (p. 213)

<정치사상사>는 정치철학과 정치 이론의 역사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유용할 것이다. (...) 현대 세계의 복잡한 정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정치사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라는 점을 상기시켜줌으로써 말이다. (p. 215) -옮긴이의 말 中-

본문의 내용은 저자가 이미 압축시켜 설명하고 있는터라 내가 더 압축하여 정리하는 것엔 무리가 있었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얇고 작은 책이니 어렵더라도 시간을 두고 읽어가기를 권한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솔직히 지금 시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라도 이 학문적인 책이 널리 읽혀지길 바란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가 무엇인지 원론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정치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그렇게 내 삶이 변할 수 있으므로... 아니 그렇게 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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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행성 1 - 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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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부 모은 곳,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에

"다양한 가상 예술 작품들을 독특하고 산뜻한 SF의 렌즈를 통해

살피는 재미가 탁월하다" - 김초엽 -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에 눈길이 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작품은 늘 다른 책보다 먼저 손이 간다. 더구나 박물관이라니, 나는 박물관을 정말 좋아한다. 김초엽 작가가 추천하는 SF 장편소설인데 배경이 박물관 행성이기까지 하다니 눈이 돌아가 다른 것들은 미처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선택한 책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이 책이 일본작가의 소설인 것을 알고 멈칫하긴 했다. 게다가 시리즈였다니... 개인적으로 일본작가의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감성이 맞지 않는달까;;; 또한 시리즈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완결이 다 나온 것이라면 모를까... 나와 같은 걱정을 할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몰라서 책 뒤편에 실린 '옮긴이의 말' 부터 몇줄 인용해 놓아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심해도 된다는 소리긴 하다 ^^;;;)

'박물관 행성'시리즈는 지구 밖에 건설된 거대 박물관 아프로디테를 무대로 예술과 과학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아름답고 따뜻한 SF 연작 소설집입니다. 2000년에 발표된 [박물관 행성1:영원의 숲]을 시작으로, 무려 19년 만인 2019년에 [박물관 행성2:보이지 않는 달]이 나왔스비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박물관 행성3:환희의 송가]가 출단되면서 시리즈 3부작이 완성됐습니다. 1편은 국내에 2012년에 한 번 출간됐는데, 이번에는 저자 개정판을 2편과 함께 새롭게 번역해 선보이게 됐습니다. 3편은 현재 열심히 번역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p. 496)

배경과 기법은 분명 SF인데 시선은 오히려 과거를 향해 있지요. 단정하고 절제된 스토리가 고요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저자의 독특한 성장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스가 히로에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교토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려섭터 일무日舞를 배워 예명까지 얻었고, 어머니는 일본 전통 가면인 노멘을 제작하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교토에서 지내며 기모노를 일상복으로 입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단편에는 일본 전통색이 짙게 묻어나지요. 옛것과 SF의 결합, 스가 히로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p. 498)

꽤 두툼한 책을 보며 장편소설이라 하니 거대한 서사가 펼쳐지려나 싶을수도 있지만 이 책의 구성은 단편집에 가깝다. 주요 화자는 한명이지만 아홉 개의 에피소드마다 각각의 다른 인물과 소재가 등장하면서 스토리가 풀려나가는 방식이라 딱히 연관성도 긴밀하지 않아서 순서대로 읽지않아도 무방할 정도다. 따라서 3편의 시리즈라고 하지만 굳이 시리즈로서의 연속성이 있다기보다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3권의 책으로 나뉘어있는 것으로 봐도 될것 같다.(3편마다 화자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화자의 역할이 큰 편은 아니라서 역시 무관하달까) 옮긴이가 설명해주었듯이 작가 특유의 일본문화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것 같다. 일본적이라기보다는 전통문화적이라고 표현할 법한 분위기였는지라... SF인데 전통적이라고? 좀 더 궁금해졌으려나? ㅎㅎ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 속으로~! ^^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 균형점 중 하나인 제3라그랑주점에 두둥실 떠 있는 행성 거대 박물관 아프로디테에는 인류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동식물과 미술품과 음악과 무대예술이 수집돼 있다. 소행성대에서 끌어온,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맞먹느 면적의 암석 표면에는 수집물을 위해 과학으로 실현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놨다. (p. 16)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 조직도'가 있다.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의 주축은 학예사들이다. 크게 3개의 부서가 있고 이 부서들을 총괄하는 부서가 아폴론인데 이 아폴론의 학예사가 소설의 화자 다시로 다카히로 이다. 3개의 부서 학예사들이 자신들의 주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데이터에 직접 접속할 수 있다면 다카히로는 이들을 종합한 데이터에 직접 접속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라고 가장 많은 접속 권한을 가진 다카히로의 주업무는 좋게말하면 중재이고 실상은 따까리다. 그렇다보니 이 책의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다카히로의 불행이 어떻게 행복으로 변해가는가 라고나 할까. ㅎㅎㅎ

자네가 할 일은 임금님이 어쩌면 정말로 입고 있을지도 모르는 투명한 옷을 찾아내는 거야. (p. 28)

<아이를 위한 선율>이라는 그림은 화가가 아니었던 사람이 유작으로 남긴 그림인데 보기엔 추상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엉터리 그림이었지만 왠일인지 정신병동 사람들이 그림에서 음악이 들린다며 감동해 마지 않고 있었다. 박물관 관장은 이 그림을 다카히로에게 맡긴다. 과연 이 그림은 미사여구가 어울리는 멋진 옷이었을까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벌거숭이 였을까

저와 달리 직접 접속자라서 많은 도움이 돼주실 겁니다. (p. 81)

자료실 직원이 노부부를 다카히로에게 데려왔다. 인형의 이름을 찾고 있다며. 다카히로 같은 직접 접속자들은 머리에서 컴퓨터와 바로 연결이 되어 검색이 빠르고 데이터가 풍부했기에 수작업으로 자료를 찾아야 했던 자료실 직원은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다카히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카히로가 일하는 방식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기에 다카히로는 그 직원과 협업을 하기로 하는데...

뭐죠, 이 묘한 홍보 문구는? (p. 125)

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는 기적을? (p. 126)

유서깊은 일본의 피리 가문에서 독주회를 열기 위해 아프로디테에 왔다. 그런데 연주자는 장자가 아닌 둘째 손자이고 수련을 위해 공연일에야 온다 하고 매니저라는 첫째 손자는 하는 행동이 영 수상쩍다. 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는 기적의 비밀은 기모노에 있었는데...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 이곳 제3라그랑주점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대략 두 부류로 나뉜다.

꿈을 보고 싶은 사람과 꿈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꿈을 보고 싶은 사람은 단순 명쾌하다. 이곳에는 1헥타르의 황야에 펼쳐져 있는 환경예술부터, 화성의 채굴 시설에서 변이한 곰팡이가지 박물관이라는 이름 아래 세상의 온갖 것들이 모여 있으니까.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그저 28시간의 공허한 여행만 견디면 된다.

복잡한 것은 꿈을 보여주려고 찾아오는 사람이다. (p. 179)

꿈을 보여주려는 사람이란 공연이든 전시든 학회발표든 여하튼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사람들이다. 아프로디테에서 이런 발표를 하려는 사람들이 북적일 때마다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같아 다카히로는 마음이 쓰리다. 그럴때 보게 되는 것이 아폴론 청사 로비에 놓여 있는 여신상이다. 손바닥 이라는 제목을 가진 르네상스 양식의 여신상은 젖힌 손바닥을 얼굴앞까지 들어 올려 허공을 향해 내뻗고 있다. 손바닥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 그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시켜줄 한 사람이 찾아왔다. 나이 삼십 줄의 한물간 댄서라며 자기비하적 냉소를 퍼붓는 시타 였다. 그녀가 바친 것은...

이름 미삼바 오자칸가스. 아프로디테 전 직원, 직접 접속자입니다. 지구 거주자로 현지에 가족은 없습니다. 홀을 관리하는 아레나의 네네 샌더스가 지인을 자처하며 현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출동 요청은 네네 샌더스에게서 온 것입니다. (p. 254)

어느날 다카히로에게 긴급호출이 온다. 오래전 학예사로 일했던 노인이 쓰러졌다며.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최첨단이라고 추대되던 기술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자신은 과도기의 사람이 돼버렸을 때, 그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p. 245) 아프로디테에 최신버전 직접접속자였던 매슈가 여기저기서 분란을 일으키고 다니던 때였다.

분명히 화제가 될 거야. 허수아비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 전시는 허가했을 거야. 정동 기록 방식 공개, 오랜 논쟁에 종지부, 게다가 물건은 극상품, 심지어 한판 승부 (p. 287)

직접 접속의 최신레벨자라며 선배들을 무시하고 다니던 매슈가 사고를 제대로 쳤다. 그가 자랑하는 정동기록방식을 증명하기 위해 기획한 전시는 20년째 표절논란에 재판까지 갔던 두 작품의 동시 전시였다. 그런데 사실 이 두 작품의 배경에는 애절한 로맨스가 얽혀 있었으니...

인간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

하나는 아름다움은 아낌없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심미안이 없는 사람도 예술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이른바 성선설의 친척뻘 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예술은 무척 오만해서 희구하는 자에게만 비로소 모습을 보인다는 것. 아름다움을 외면하는 인간은 아름다움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섣부르게 추구해서는 영원히 진가를 알아낼 수 없다. (p. 321)

다카히로는 종종 일기를 쓰곤 하는데 일기의 주내용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일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SF라기 보다는 예술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그 '진정한'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과 예술의 두가지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두 사람, 천진한 어린아이와 최첨단 시대에도 핸드메이드를 고집하는 조각가가 등장한다. 인어만을 만드는 이 예술가에게는 비밀이 있었는데...

인류가 갑자기 아프로디테에 주목한 것은 불과 2주 전부터다. 소행성대에 있는 자원 개발 기지가 미지의 물체를 발견한 것이 일의 발단이었다. 이들은 토성 근처에서 되돌아온 소행성 이달고를 탐사했고, 거기서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식물 종자 두 개와 한 변이 14밀리미터에 두께가 3밀리미터인 오각형 채색편 수백 개를 찾아냈다. (p. 374)

무엇인지 모를 물체를 아프로디테가 맡아 분석하게 되면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난항이 거듭되는 분석의 시간동안 의외의 곳에서 황금비가 발견된다. 이 황금비의 의미는 더욱 의외였는데...

일흔 두 살의 늙은 피아니스트가 그렇게 까탈을 부리는 데는 이쪽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다카히로는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 피아노를 어느 부서에서 담당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뮤즈는 물론이고 아테나와 데메테르까지 나와 삼파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명성이 자자한 '흑천사'는 나스타샤 사후에 아프로디테가 양도받기로 일찍이 이야기가 돼 있었다. 요컨대 이 공연을 담당하는 부서가 언젠가 천사의 수호자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p. 430)

'97건반의 흑천사'라 불리는 그래드 피아노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나스타샤의 피아노였다. 노년의 피아니스트는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 될지 모를 공연을 아프로디테에서 하게 됐는데 피아노를 둘러싼 박물관 내부의 갈등도 문제였지만 나스타샤의 태도가 바뀐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음은 분명한데 그것이 이달고에서 발견됐던 종자와 연결이 될 줄이야 다카히로는 거듭 혼돈에 빠지고...

학예사로서의 다카히로의 고민은 '아름다움'에 대한것이 대부분 이었지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이 그동안 잊고 있던 '사랑'이었다.

분석은 필요 없다. 그저 느낄 뿐이다. 궁극의 미학, 천계의 음악, 지상의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p. 492)

한 권의 책을 읽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편씩 나오는 연재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작품은 SF인데 SF아닌것 같은 SF같은 SF 였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SF이지만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소재들이었기에 박물관에 있는 것들 혹은 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하기도 한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따듯함 이었다. 무엇을 보든 어떤 시대에 보든 관점에 따라 경험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름다움도 아름다운 사람이 보아야 아름답게 보인달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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