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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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꾸준히 한 일은 '니아 먹는일'

본격 나이 탐구 에세이

지금 사는 세상은 젊으나 늙으나 처음 살아보는 세상이다

 

 

저자는 갱년기 안면홍조는 수줍음으로, 가슴 두근거림은 설렘으로 포장 중 이라는 작가이다.

자신의 소개를 이처럼 하는 것으로 책의 분위기는 유쾌한 분위기는 시작부터 드러난다.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이고 두 아들의 엄마이자 주부로서 바쁘게 살던 50대 초반의 저자는 몇년전 폐경을 맞은 후 갱년기에 접어든 몸의 쇠퇴에 대해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의 생활에 대해 지금의 나이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과 생각들을 적은 글이 이 에세이 집이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호르몬의 흥망성쇠가 뚜렷다다고 볼 수 있다. 평생 생성되는 정자와 달리 난자는 유한개이고 그 유한성의 끝은 폐경이다. 사춘기는 남녀 모두 겪지만 갱년기는 폐경후 여성의 몸과 정신에 어쩌면 사춘기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족적을 남긴다. 딱 갱년기에 접어든 저자의 나이는 이런저런 변화의 시점이다. 50대의 여성이 쓴 에세이를 몇 권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갱년기 삶의 우울함을 떨쳐낸 극복기 처럼 쓴 에세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저자는 일찌감치 자신의 자리를 챙겨가는 삶을 살아왔고 그랬기에 적어도 내가 보기엔 갱년기 우울증은 겪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갱년기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의 에세이를 시작하는 그림 몇 페이지는 어찌됐든 저자에게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처방약이 필요했음을 저자의 스타일대로 보여주고 있다.

 

 

 

                             

'늙다'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라는 걸 아시는지? '늙다'는 움직임과 과정이지만 '젊다'는 어떤 상태나 성질을 나타낸 것이다. '늙어갈' 수는 있지만 '젊어질' 수는 없다 (p. 10)

본문 첫 페이지에서 본문 글도 아닌 ( ) 안에 쓰여진 보조문장이 wow 싶었다. 그랬구나...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랐다. '늙다' 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라는 것이, 그래서 늙어갈 수는 있지만 젊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 이 동사와 형용사의 구분이 신선하면서도 굉장히 의미가 강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중요한 건 '변화'다. 변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변하지 않음'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우정', '한결같은 마음, '언제나 처음처럼' 등등의 말을 여기저기다 마구잡이로 갖다 썼다. 좋은 말,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그런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게다가 변하지 않는 것이 꼭 옳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음이 아집과 관성, 무기력의 증거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귀찮아서 안 변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변하려면 안 쓰던 것을 신경을 써야 하고 모르던 것을 새로 알아야 한다. '아, 아무일이라도 생겨라' 하는 마음이 젊은 마음이다. '제발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하면 늙은 것이다. (p. 45~46)

소설과 극본, 시나리오를 두러 써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자의 문장은 재치있으면서 편한하게 읽힌다. 나이들수록 변화는 귀찮거나 두려운 것이고 그래서 꼰대가 되기는 쉬워도 어른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변화가 전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변하는 게 좋은 것이 있고 변하지 않아야 좋은 게 있다. 그 구분을 할줄 아는 것이 지혜이고 변화를 위해 배울 준비가 되있는 자세가 겸손이 아닐까.

나이가 든다 해도 쇠락과 비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채워지는 내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일을 믿으며 오늘을 산다. 연습이란 그런 것이다. (p. 139)

저자는 에너자이저 경향이 있어 보인다. 아들 둘이 고학년이 되었을때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고, 다양한 운동도 꾸준히 배우고, 그림도 배우며 일정시간은 카페에서 글도 쓴다. 그러한 여력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러한 에너지가 있었기에 남들보다 활기찬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나이들어 가면서 비움보다는 자신을 위한 채움을 하고 있다. 나이든다고 늙어간다고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나이대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온갖 책들이 비움을 강조한다. 뭔 문제만 있으면 비우라고들 한다. 하지만 채워진게 있어야 비울수도 있는 법이다. 바쁘고 열심히 사느라 비워진 내안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은 어쩌면 나이들어가며 받게되는 선물같은 시간들이다. 누군가를 위한 시간보다 나를위한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을 쇠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할 듯하다.

운동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녔다. 가기 싫은 발걸음을 어떻게든 스포츠센터까지 옮기게 만든 에너지가 뭐였을까?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두 돌 된 애를 어린이집에 맡겼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운동한다고 애를 맡겼으니 그 시간에 꼭 운동해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이 있었다. '엄마가 얼른 몸도 마음도 튼튼해질게. 그래서 더 많이 놀아줄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정신과 약과 비싼 상담 치료 대신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p. 155)

두 아들이 어릴때 저자는 우울증을 겪었다. 바쁘고 치이는 반복되는 일상이 하릴 없이 눈물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약은 듣지 않았고 상담은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의사의 권유로 운동을 하면서, 처음엔 그야말로 꾸역꾸역 다니면서 몇년이 지나서야 운동의 건강한 매력이 저자에게 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저자는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이제는 하루라도 빠지면 몸이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적응이 됐다. 그 사이 몸도 정신도 건강해졌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와 초보엄마의 좌절감은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한다. 정신적인 병은 뚜렷이 신체적으로 뚜렷이 드러나지 않기에 경제적 부담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헛돈 쓰는 것 같고 소용없는 것 같고 그래서 더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

운동이 효과적이고 좋은 것이라는 건 알지만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신체를 가진 나로서는 저자의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살기란 얼마나 불편할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몸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없는 임신부가 이용하기에 대중교통은 얼마나 불친절한지 체험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안에 손톱만큼이라도 지장을주는 사람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지 느끼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 주변부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p. 222)

나는 나이든 싱글이나 결혼한 신혼부부 지인이 생기면 아이를 꼭 낳으라고 조언하곤 한다. 결혼을 했건 안했건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내가 성장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자란다. 신체적 성장이 멈추면서 정신적 성장도 멈추었던 것이, 아이를 키우면서 성장이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아질 텐데...

평범한 사람이 무언가 계속 노력해서 '발전' 이라는 걸 하려면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한다.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재미도 있다. 그리고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 (p. 248)

완벽주의는 힘들다. 나이들면 더 힘들다. 그래서 나이들면서 좀 덜 하라고 내려놓으라고들 이야기 한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이룰 꿈을 갖기 보다는 선택적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으나 늙으나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은 삶의 활력소이다. 하고 싶은 것을 잘해서 발전하고 싶은 것은 때로는 에너지가 되고 때로는 강박이 된다. 어느 나이에 무엇을 하던 재미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도 재미를 느끼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더 잘하고 싶어서 어느 순간 재미는 사라지고 힘들어지곤 하는데, '재미' 를 꼭 염두에 두어야 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마음은 18세 풍랑기 이고 장래 희망은 웃긴 할머니 인 저자의 유쾌 발랄 인생 성장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이 먹을 수록 소화력도 떨어지는데 나이 때문에 체하면 정말 약도 없지 않겠는가 ㅎㅎ 누구나 공평하게 매년 한살씩 먹는 것 같지만, 그 나잇값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약이 없으니 조심해야지. 나이를 자~알 먹어 가는 과정중에 저자의 갱년기 에세이는 따듯한 공감과 편안한 일상을 공유하는 책이라 재밌게 읽었다. 설날 이라는 나이먹는 명절을 보내자마자 이 책을 읽고 나니 왠지 더 쑥쑥 읽히고, 명절의 피곤함도 가시게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 나이를 잘 먹어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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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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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렬한 사회 비판과 해학적 인물 묘사로 만들어낸 가장 '디킨스다운' 소설이자 19세기 최고의 영국문학 완역본

차가운 도시 밑바닥에서 피오오른 선한 용기와 삶의 희망

영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단권 완역본



원전 완역본! 중요하다. 제목이 널리 알려지고 익숙한 책일수록 그 책이 축약본인지 중역본인지 완역본인지 아는 것은 내용 이해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원전 완역본 이라 할지라도 출판사와 번역가에 의해 얼마나 충실하게 번역되었는지도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현대지성 에서 나오고 있는 클래식 시리즈는 무척 반갑다. 익숙한 고전들에 대해 원전을 완역해 내고 있는 이 시리즈는 이전의 번역본들이 했던 실수들을 (원전에서 멀어졌던 번역을 다시 원전에 가깝게)수정하면서 현대적인 매끄러운 문장들로 가독성도 높이고 있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중 4권 읽어봤는데, 그중 2권은 이전에 다른 번역본으로 읽어봤던 책이서 더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읽었던 4권 모두 좋았어서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설가이자 영국인이 사랑하는 소설가라는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작품을 원전 완역본으로 읽었던 첫 책은 '두 도시 이야기' 였다. 혁명의 시대를 배경으로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러브스토리이자 역사소설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가장 디킨스 답지 않은' 소설이라는데, 디킨스의 첫 책으로 읽고나니 내게 작가의 첫인상은 만연체의 지루한 문장임에도 몰입하게 되는 서사적 매력을 가진 소설가였다. 그런데 <올리버 트위스트> 를 읽으며 인상을 확 바꿔갖게 되었다. 완전 호감 급상승!!!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범죄자들과 런던 인구의 하류층에서 선정되었다는 것이 아주 조잡하고 충격적인 설정으로 보일 것이다. 사익스는 도둑이고, 페이긴은 장물아비이며, 소년들은 소매치기에다가, 주인공 소녀는 매춘부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된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이런 정신으로, 나는 모든 역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승리하는 선의 원리를 소년 올리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의 보편적 본성에는 최상과 최악의 색조들이 뒤섞여 있다. 상당 부분이 추악한 색조를 띠지만, 가장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이자, 변칙이며, 일견 불가능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그것이 의심받는다면 나로서는 도리어 기쁘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상황이야말로 그것이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얻기 때문이다. ( 저자 서문 中)


디킨스는 서문에서 자신의 의도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하고 있다. 잡지에 연재되던 글들을 책으로 묶어 내면서 그동안의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했을 이 서문은 저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고 이런 인물들을 골랐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 의도만으로도 왜 영국인들이 디킨스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사람들을 동정했다. 이 사람의 죽음으로 세상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는 묘비명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디킨스는 누구도 애정어린 눈으로 보지 않았던 계층을 따뜻하게 보고 있던 작가였고, 따듯이 봐줄수 없는 사람들도 그 나름의 개연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의 작가였다.


노부인은 지혜와 경험이 풍부한 여성으로, 무엇이 아이들에게 좋고 자기 자신에게 좋은지 아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부인은 주급에서 자기 몫을 더 크게 떼고 난 후, 교구 아이들에게 원래보다 훨씬 더 적은 몫을 할당했다. 노부인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끝을 모를 정도로 아이들의 몫을 뜯어낼 수 있을 만큼 뜯어내고 있었는데, 대단한 경험주의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p. 24)


디킨스 만의 풍자와 해학이 어떤 것인지 시작부터 느낄 수 있었던 이 작품은 읽는 내내 우리나라 판소리를 생각나게 했다. 비참한 현실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 표현방식에 있어 웃음이 나게 하고, 시작을 항상 주변적인 배경설명부터 해서 인물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까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있었다.

'고아 농장' 이라 할 수 있는 어린 고아들의 보육시설 책임자인 노부인에 대한 표현방식은 당시 빈민시설들에 대한 설명과 관리인들에 대한 표현에세 내내 유지되는데 그 반어적 설명들이 그 인물들의 어리석음을 배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낡은 밧줄의 실밥을 푸는 간단한 과정 속에서 교육과 기술이라는 두 가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올리버는 말단 교구관의 지시에 따라 꾸벅 감사인사를 올린 다음, 서둘러 커다란 보호소 건물로 끌려가서 거칠고 딱딱한 침대 위에서 훌쩍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이 축복받은 나라의 자상한 법률에 따른 사례를 어디에서 이토록 고귀하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가난한 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다니! 가엾은 올리버! 올리버는 행복하게도 주위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잠이 푹 들어서 생각도 못했겠지만, 바로 그 날 이사회가 올리버의 미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결정을 내렸다.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이 이사회의 신사들은 아주 현명하고 깊은 철학을 지닌 분들로, 구빈원에 관심을 두게 되자 단번에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결코 발견하지 못하는 점인데, 바로 가난한 사람들은 구빈원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구빈원은 공공오락을 제공하고 공짜 술집이자 1년 내내 아침, 점심, 저녁, 차를 얻어먹는 곳이니, 놀고먹기만 하고 일하지 않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지은 낙원과도 같았다. 그래서 이사회의 신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구빈원 안에서 서서히 굶어죽든가, 아니면 바깥에서 빠르게 굶어죽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규칙을 세웠다. (p. 32~33)


신랄한 비난보다 비트는 문장이 상황을 더 극적이게 만든다. 어린 올리버의 처지는 더 딱하게 다가오고 구빈원 관계자들은 더 악독하게 다가오지만 그 총체적인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자꾸 나오니 이런것이 풍자와 해학인가 싶으면서 디킨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 광경을, 배 속에서는 고기와 술이 썩어나고 얼음 같은 피와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철학자들이 좀 보았으면 싶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개도 거들뗘보지 않을 진수성찬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말이다. 허기로 잔뜩 독이 오른 올리버가 고기뼈를 갈기갈기 찢어내듯 뜯어먹는 끔찍한 탐욕의 광경을 직접 목도하면 그 감상이 어떨까? 이보다 더 바라는 소원이 딱 하나 있다면 그 철학자도 똑같은 음식을 올리버와 똑같이 탐욕스럽게 먹는 것이다. (p. 59)


어린 올리버가 구빈원에서 장의사 도제로 넘겨져 받은 첫 식사는 살점이 너덜너덜 붙은 고기뼈였다. 구빈원에서는 멀건 귀리죽만 먹었는데, 주인네가 먹고 남긴 뼈다귀부스러기도 걸리버에는 처음 먹어보는 진수성찬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이들이 직접 겪어보기를 디킨스는 톡 쏘아붙인다기 보다는 은근히 힐난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해방은 성실한 영국인들이 가장 먼저 당당하게 내세우는 자랑거리이므로, 모든 공적이고 애국적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이러한 행위가 칭찬받을 만하다는 점을 굳이 독자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이렇게 인간은 언제나 자기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실은 심오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지닌 철학자들이 모든 대자연의 행위와 행동의 주된 원인으로 규정한 공리주의 법칙을 입증해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철학자들은 아주 현명하게도 대자연의 절차를 공리와 이론의 문제로 좁혀놓았고, 대자연의 높은 지혜와 이치만을 단순하고 멋지게 칭찬함으로써 감정이나 너그러운 기분, 충동의 문제는 고려대상에서 치워버린 것이다. (p. 142)


올리버가 런던으로 도망쳐와서 소매치기 패거리들에 섞이게 되고 처음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했을 때 너무 놀라 달아나다가 도둑으로 오인받아 잡히게 되는데, 이때 정작 소매치기를 했던 소년들은 올리버를 쫒기게 두고 도망간다. 이 상황을 두고 저자는 철학과 사상을 들먹여가며 풀어내는데 그 고급적 비꼬는 문장들을 읽다보면 저절로 피식피식 웃게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작품 전체내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이런 날에는 굶주림에 지친 부랑자들이 수도 없이 텅 빈 거리에서 눈을 감는다. 이들의 죄가 무엇이건 이보다 더 쓰라린 세상에서 눈을 뜨는 일은 없을 터였다. (p. 258)


풍자와 해학 사이 끼어있는 이런 문장들은 순간순간 짧고 굵게 가슴을 파고든다. 웃다가 접하는 참혹함은 훨씬 더 극적으로 비통하게 느껴진다.


"구빈원 밖 구제라는 게요, 잘만 관리하면 교구의 안전 장치가 되지요. 가장 큰 원칙은 극빈자들에게 정확히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만 주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지쳐서 구걸하러 오지 않거든요" 교구관이 우월한 지식을 뽐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p. 262)


비참한 극빈자들의 삶을 우롱하는 극빈자 관계자들의 대화는 갈수록 기가 막히지만, 저자는 결말에 가서 기가막히게 마무리 처리도 깔끔했다.


"그 아이의 이야기 중에서 안 좋아 보이는 부분은 증명이 가능하고, 좋아 보이는 부분은 전혀 증명을 할 수가 없어요" (p. 338)


올리버가 전혀 증명할 수 없는 좋아보이는 부분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안좋아보이는 부분을 증명하던 허울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저자의 스토리구성능력은 탁월했다. 짜임새가 딱딱 들어맞아서 600여페이지 두께의 내용을 지치지 않고 읽게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자신감에 찬 사람들만큼이나 가장 천박하고 타락한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약점이 바로 자존심이다. 낸시는 도둑과 악당들의 비참한 동료이자 천한 소굴에 버려진 부랑자였고, 늘 교수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을 오가는 인간쓰레기들과 한패였다. 이렇게 타락한 존재조차도 자존심 때문에 여성스러운 감정을 미미하게나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낸시는 이런 감정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감정이야말로 낸시에게도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닳고 닳아서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된 인간성이었다. (p. 448)


디킨스가 이 작품의 여자주인공으로 표현한 인물은 낸시 였다. 소매치기일당의 멤버이자 난폭한 사익스의 애인인 낸시는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면서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밑바닥삶이었던 낸시의 현실적 존재감과 올리버와 엮이면서 순간순간 드러나는 인간애의 비현실적 감정은 디킨스가 논리로 설명되지 않지만 인정할수밖에 없는 감정을 지닌 인물로 내세운 대표적 캐릭터다. 그리고 읽다보면 어쩔수 없다는 낸시의 선택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꾸준한 선함의 상징으로서의 올리버보다 더 종교적일 수 있는 인물인 것도 같다. 작품속에서 올리버는 지상에 강림한 천사같은 순수 그 자체 이지만, 타락한 천사같은 낸시를 보며 더 반성적인 삶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올리버로 시작해서 내내 올리버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뒤로 갈수록 주변인물들과 삶이 조명되면서 올리버는 부수적인 존재로 밀려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의 중심엔 올리버가 있고, 모든 사람들의 엮어주는 존재는 여전히 올리버다. 수없이 악한 상황에 내몰리면서도 한번도 악함에 물들지 않는 올리버는 종교적 상징 같기도 하고 현실적 꿈 같기도 하다. 올리버의 환경을 통해 본 당시 극빈자들의 생활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올리버의 삶을 통해 본 상징적 희망이라도 심어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은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너~무 깔끔한 마무리라 읽는 내내 무겁게 마음을 누르던 안타까움들이 희석되는 듯 했다. 전에 읽었던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와 <올리버 트위스트> 는 한 작가의 작품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깔끔한 서사구조와 몰입도 높은 전개로 디킨스의 매력을 느끼기엔 둘 다 훌륭한 작품이었다. 현실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되, 시선이 따뜻한 작가를 좋아하는데 그런 작가 리스트에 디킨스의 이름을 굵직하게 새기게 한 <올리버 트위스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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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녀 새소설 4
김하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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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두 여자의 간절함이 빛의 위로가 되다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새소설 시리즈의 4권인 이 책은 앞서 읽었던 3권 <밤의 행방> 을 생각나게 했다.

<밤의 행방> 에서의 죽음을 미리 보는 나뭇가지 '반' 과 <빛의 마녀> 에서의 마녀 니콜은 판타지적 요소를 사용하는 듯 하면서도 차라리 현실이 아닌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잔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앞서 나온 1권 과 2권도 그러할지 궁금해진다.


마녀 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것들은 대부분 어둡고 음습하고 잔악하고 괴이한 여하튼 나쁜것들의 총체적 집합체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마녀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종교재판은 사실 나약한 제물을 골라 공개살인한 집단폭력일 뿐이었기에 언제부터인가 마녀는 약간은 억울하고 슬프고 한서린 성격도 부여받은 듯 하다. 하지만 그래도 마녀는 어둠의 존재였다. 그런데 이 소설은 <빛의 마녀> 이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소설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밤의 행방> 도 <빛의 마녀> 도 제목을 참 잘 지었다. ㅎㅎ


나는 순진함 속에 고집스러운 악의로 가득 찬 그 애들의 검은 눈동자가 좋아요. 그 애들을 보고 있으면 벼랑으로 무섭게 질주하는 검은 야생마가 떠올라요. 내가 야생 흑마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떨리고 흥분되죠. 그 애들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p. 10)


금발에 초록눈을 가진 영국인 니콜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200년 넘게 숨어살고 있는 마녀라고 말한다. 쇄골과 쇄골 사이 움푹 파인 곳에 새겨진 표식을 문신이 아니라 뜨거운 불로 지져 생긴 화인 즉 마녀라는 존재임을 알리는 표식이라고 생각한다. 니콜은 자신의 딸 샬럿이 야생마 같았다고 생각하지만, 벼랑끝으로 달려가는 검은 야생마는 니콜 자신이었다.


열두 시간 만에 만난 그녀의 주치의는 이제 아이 머리가 보이니 최대로 힘을 줘보자고 했다. 그녀는 너무 고통에 지친 나머지 그 말에 아무런 감응을 받지 못했다. 그녀가 기다리는 건 오직, 이 고통이 끝나는 것이었다. 수간호사가 그녀의 배를 사정없이 누르고 주치의는 노련하게 아이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똑같은 과정을 세 번 거친 후에야 아이의 머리가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이의 어깨, 가슴, 배, 엉덩이, 다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 고통이 썰물처럼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첫 울음소리가 들렸다. 너무 희미하고 생경해 어린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p. 23)


태주는 불안한 여자였다. 임신하고 나서는 세상에 얼마나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것들 깨닫고 늘 웅크리며 태동에 집착했다. 태주의 불안을 먹고 자란 아이는 태어나고 26시간만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태주는 한겨울에 맨발로 병원앞에 피켓을 들고 서기 시작했다. 그러다 니콜을 만났다.


나는 그녀가 스스로에게 벌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혼자 살아남은 어미의 애끓는 가슴. 유리 조각이 깔린 길을 온종일 걸어 피투성이가 되어도 갈기갈기 찢긴 마음의 고통을 대신하지 못할 거예요. 사람들은 그녀를 바라볼 뿐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어요. 그녀의 불행이 자기에게 옮겨붙을가 봐 달아나기 바빴죠. 사람들의 염려는 틀리지 않아요. 불행은 회색 먼지 같아서 누구의 어깨에나 내려앉아요. 그게 불행의 법칙이에요. 부자든, 가난하든, 젊었든, 늙었던, 공평하게, 예고 없이, 순식간에 악의 꽃을 피우죠. (p. 27)


니콜은 한눈에 태주를 알아보았다. 자신과 같은 상처의 소유자라는 것을.


그러나 마녀도 영원히 불멸할 수는 없어요. 안 그러면 세상은 넘쳐나는 마녀들과 인간의 숨은 욕망이 결탁해 광기와 피로 어지럽혀지겠죠. 마녀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어요. 그들에게 붙잡히면 정말 먼지처럼 사라지죠. 마녀사냥꾼. 그들만이 마녀를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멸시킬 수 있죠. 누구도 모르는 마녀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도 오랜 시간 마녀사냥꾼에게 쫓기며 살아왔어요.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p. 36)


니콜이 두려워하는 니콜만을 쫓아다니는 에드워드를 니콜은 기억하지 못한다. 에드워드가 누구인지. 에드워드였던 사람은 기억하면서 지금의 에드워드를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니콜의 약점이라서...


마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사람들의 숨은 열망, 검은 유혹, 악의를 현실로 만들어줄 뿐이죠. 잊지 말아요.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건 오직 검은색 뿐이라는 걸. 별이 아름다운 건 그 뒤에 존재하는 어둠 때문이에요. (p. 51)

마녀는 고독한 삶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도 누군가의 이해와 친구가 필요해요. 다만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은 거예요. 마녀도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p. 67)


니콜은 끊임없이 자기자신은 마녀라고 마녀는 이렇다고 이야기한다. 태주에게 죽은 아기를 되살릴 방법이 있다고 접근하고 태주는 니콜이 마녀라는 것을 믿을만큼 간절했다.


그날은 노오란 개나리가 만발한 눈부신 봄날이었다. 모든 불운한 일들은 눈부신 빛 아래 일어난다. 불운은 더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빛을 선택한다. (p. 79)


소설속에서 노란색은 불행의 색이다. 니콜의 남편이 바람피우던 여자에게 선물한 꽃이 노란 장미였고, 태주의 귀가 안들리게 된 원인이 되었던 것이 노란 병아리였다. 노란 색은 눈부신 색이다. 봄의 색이다. 한겨울 맨땅바닥에 맨발로 서있는 여자 태주와 계절과 상관없이 사는 니콜에게 봄의 색은 불행의 색이다.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 해봤니 비오는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 라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렸다면 흐름에 방해가 되려나 ㅎㅎ


우리가 두려워하는 존재는 늘 우리를 쫓는 마녀사냥꾼이에요. 그들은 우리가 잠든 순간에도 우리를 쫓고 있어요. 그들을 잊고 사는 순간에도 그들은 우리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어요. 제일 끔찍한 사실은 마녀사냥꾼은 한 마녀만 쫓는다는 거예요. 보통 사냥꾼하곤 다르게 타협이라는 게 안 통해요. 사냥을 멈추는 순간은 그들이 쫓는 마녀가 잡힐 때뿐이죠. 에드워드는 나를 쫓는 마녀사냥꾼이에요. (p. 109)


니콜은 에드워드 몰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한국까지 왔고, 에드워드도 마지막에는 니콜을 찾아낸다. 니콜이 그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불행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 자신이 초래한 불행을...

이 슬프고 가슴아픈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한놈만 패' 라는 영화대사가 떠올라 나도모르게 피식 웃었지만 작가에게 미안할 만큼은 아니었다. 정말 잠깐 이었을뿐 바로 소설속에 다시 빠져들었으므로 나는 작가에게 당당하다!


나는 남아 있는 에스프레소를 모두 들이켰어요. 나에게 슬픔은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들이켜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쓰고 뜨거운 것을 가슴속에 단숨에 밀어 넣는 거죠. 그리고 숨을 참듯 그 순간을 견디는 거예요. 슬픔은 에스프레소처럼 씁쓸하지만 결국엔 혀끝에 진한 향기가 남게 돼요. 에드워드와 나는 슬픔을 나누듯 에스프레소를 나눠 마셨어요. (p. 140)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남자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여자가 나눠가질 수 있는 불행은 딱 에스프레소 한잔 만큼의 양이었을까... 그 진한 향기도 곧 기억하지 못하게 된 여자는 자신이 마녀라고 믿게 되버렸다.


태주는 작은 빛이 방금 묻어준 새의 영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 그 빛이 가슴속으로 들어와 영원히 묻힌 것을 알았다. 주위를 돌아보자 여자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걸까. 스산한 풍경 어디에도 집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다. 태주는 검푸른 하늘의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p. 248)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한채 형벌의 길을 가던 태주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멈출 수 있었다. 태주가 꾼 꿈은 니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니콜은 늘 천사의 꿈을 꾸었다.


그날 짧은 순간 봤던 황금빛 드넓은 밀밭을 찾을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고 떠돌 거예요. 그곳을 찾으면 나는 진짜 자유로운 바람의 딸이 될 거예요. 바람이 되면 당신에게도 찾아갈게요. (p. 264)


깜깜한 우주를 통과해 이 세상에 온 천사가 눈에 보이는 듯해 태주는 눈가가 뜨거워졌다. 태주는 어린 엄마의 등을 쓸어주며 가슴에 수천 개의 꽃잎이 날리는 듯 벅차올랐다. 어디선가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태주의 귓가에 속삭였다.

믿는 순간, 당신이 바라는 걸 이루게 될 거예요.

마녀 니콜의 목소리였다. 부드러운 바람은 태주의 머리칼을 흔들고 알지 못하는 머나먼 곳을 향해 떠나갔다. 햇살이 금가루처럼 그들 머리 위로 따사롭게 내려앉았다. (p. 267)


니콜이 여전히 바람처럼 떠돌고 있을지 아니면 천국을 찾았을지 알수 없다. 하지만 태주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홀가분해졌다. 이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니콜의 독백은 서서히 미쳐가는 한 여자의 내면을 읽는 듯 했고 미칠만큼 컸던 상처의 크기를 가늠해보게 했다. 태주의 고통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이 혼자만의 고통이었기에 가슴아팠고 처절함이 쓰리게 다가왔다. 니콜도 태주도 한 아이의 엄마였고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였다. 그녀들의 상처가 상실된 모성이었을지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이었을지 어느쪽이 더 컸을지 모르겠다. 혹은 둘다였을지도... 스스로 마녀가 되고자 했으나 그녀들은 빛의 마녀였다. 한명은 빛을 쫓아가고 한명은 빛에 눈을 뜬, 어둠에 있어봤기에 마녀이고 어둠에서 나왔기에 빛의 마녀가 되었다.


'지금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 시리즈' 라는 자음과 모음의 젊은 작가 새소설 시리즈는 창작과 비평 출판사의 '내일을 향한 질문, 젊은 문학의 새로운 발견' 이라는 소설Q 시리즈의 젊은 작가 작품들을 생각나게 했다.

창비의 소설Q시리즈는 1,2,3권을 읽어보니 예민하거나 참신하거나 독특하게 기존 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소설의 다양한 표현법이 새로웠고, 자음과모음의 새소설시리즈는 3,4권을 읽어보니 현실문제를 직시하되 타성에 젖지 않은 작품을 써내는 젊은 작가들의 발견이 느껴졌다.

앞으로도 두 소설시리즈에는 관심이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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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게 길을 묻다 -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존재의 발견 (10주년 컬러 개정판)
김용규 지음 / 비아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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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존재의 발견

숲의 가르침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사랑하는 힘을 회복하다

 

 

'숲 철학자' 라 불리는 저자의 이 책은 2009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이후로도 꾸준히 읽혀져 십년만에 개정판으로 새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30대에 벤처기업 CEO가 되기까지 성공가도를 달렸던 그가 40을 앞두고 홀연 숲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숲에서 글을 쓰고 숲의 가르침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 그 어떤 때보다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서가 아니라 숲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언제는 유행처럼 반려동물 붐이 일면서 동물관련 책들이 쏟아지더니 최근에는 식물로 그 방향이 바뀐 듯한 느낌에 이런 저런 식물 생태계 관련 책들로 관심이 가던 차였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자기계발서 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성찰을위한 자기계발이라 힐링서처럼 읽히기도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간 사람을 보면 후렴구처럼 떠올려지는 '월든 의 소로' 라는 표현처럼 저자는 '여우숲 의 소로' 였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규명하여 전하려 할 때 인과의 요소만을 주로 따지는 것은 서양의 전통적 방식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것도 단순하고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신속하고 명쾌하며 효율적입니다. 이 방식은 살펴보려는 사물이나 생명, 사태 등이 전부 대상화되는 특성을 갖습니다. 한편 동양의 전통적 방식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연 緣 이라는 요소를 함께 넣어 사태를 살핍닏. '인-과'라는 직선성보다 '인-연-과'라는 곡선상은 더디고 덜 선명하며 자못 복잡하여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보다 풍성합니다. 헤아려보려는 그 무엇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것보다 더 깊게 파고들어 존재 그 자체로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p. 5)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이 책의 첫문장첫단락인 위 구절이었다.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면서 저자의 관점을 잘 드러낸 부분이기도 했지만, 내게도 가장 와 닿은 부분이었다. 서양 동양 굳이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다른 건 다른것이므로 어쩔 수없이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할때가 있는데, 요즘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동양적 마인드 일것 같다. 자연친화적이면서, 집단적이 아닌 개인의 집합으로서의 공동체 문화가 필요한 때인듯 싶어서...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

루쉰은 많은 사람이 걸어가는 곳이 길이 된다 했지만, 그 길이 반드시 내게도 희망일 수는 없습니다. 그 길이 내게 더 이상 희망일 수 없을때, 그 길은 죽은 길이 되고 절망이 됩니다. 한때 희망이라고 믿었던 길 위에서 우리는 지금 절망의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도 한때 걷던 길 위에서 그런 곤란함과 대면한 적이 있습니다. (p. 13, 14)

 

여러 사람들이 앞서 다지고 간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내게도 옳은 길일 수는 없다. 누구나 성공가도를 추구하지만 모두 같은 모습의 성공을 원한다면 결국 탈락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탈락은 실패인가? 길은 한 갈래만 있지 않다. 고속도로가 막히면 국도로도 하고 논밭사잇길로도 간다. 산을 오르는 길이 어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겠는가? 남들이 다져놓은 편한길만 찾다가는 작은 돌에 걸려 넘어져도 다리가 부러질 수 있다. 내 발로 흙길을 조금씩 다져가는 길을 가야한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이렇게 글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은 왜일까...

모든 생명은 저마다 고유하고 유일합니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의 근원성입니다. 나는 생명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특성을 바로 대체 불가능성에서 찾습니다. 그대라는 존재를 대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정치·경제·사회질서가 요구하는 표준과 규격을 따르도록 훈련받아왔고 그 과정에서 유일함을 존중받지 못하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결국 '나'라는 씨앗 안에 무엇이 접혀 있었는지를 잊게 되었습니다. (p. 32)

태어나는 모양과 자리와 시간이 다를 뿐, 생명 모두의 씨앗 속에는 자기 완결의 힘이 이미 담겨 있습니다. (p. 36)

우리 눈에 누추해 보이는 곳이나 그저 길섶에서 자라는 어느 풀 한포기, 어느 나무 한 그루라도 이유없이 자라는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뿌리를 뻗고, 키를 키우고, 꽃을 피워대느라 고단하지 않은 초목이 없는 것입니다. (p. 64)

 

저자의 어투는 굉장히 평온하다. 종교인인가 싶을 정도로 명상적인 문체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특정 종교를 생각나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행이다;;;) 그저 숲 속에 자리 하나 펼치고 앉아, 이나무 저나무 이풀한포기 저풀한포기 둘러보며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 그 자체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듯 조곤조곤 듣고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숲에 가면 왠지 크게 소리치기보다는 조용조용 대화하게 되는데, 그러한 말투가 몸에 배인듯한 저자의 문장들은 굉장히 조용하게 읽게 된다.

나는 가시를 떨어뜨린 나무들을 찬찬히 살펴본 후 그들이 가시를 버린 이유를 알았습니다. 즉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긴 나무들만이 가시를 버렸던 것입니다. 동물들에게 쉬이 꺾이지 않을 만큼 자신의 줄기를 살찌웠을 때 비로소 스들은 그동안 키워온 가시를 떨어뜨렸습니다. 자라면서 그들은 가시에 쏟아부었던 에너니와 양분을 차단했습니다. 그러면 가시는 자연스레 삭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시가 있던 자리는 말끔하게 껍질로 덮였습니다. (p. 98)

두릅나무, 아까시나무, 주엽나무 등 성장의 초반에 가시를 달고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를 통해 저자는 사람도 이와 같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웠던 사람들도 나중에 튼튼해지면 가시를 버릴 수 있으리라고, 그러니 가시를 버릴 만큼 튼튼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가시를 여전히 달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가시를 뽑지 말고 이해해주기를 권하고자 한다. 숲에서 살며 숲을 통해 배우는 것들로 은유하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명상적이고 철학적이 된다.

대부분의 식물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영역을 넘어 타자의 영역을 빼앗음으로써 자신을 성장시키는 무리한 경쟁에 골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자신을 꽃피우기 위한 공간을 열기 위해 오로지 자신과 다툽니다. (p. 109)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 동물보다 굉장히 제한적으로 생태계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식물은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큰나무가 있으면 어떻게든 옆으로 가지를 뻗고, 꽃이 볼품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수분할 방법을 찾는다. 타자를 의식하나 자시을 바꿔나간다. 내것을 갖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인간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지구가 있어 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이 있어 지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가 있어 서로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살뜰히 잡아주는 것으로 세상이, 별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꾸 잊어가고 있는 이 위대한 법칙을 반드시 되살려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홀로 온전할 수 없었고 앞으로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p. 121)

도시와 떨어진 숲에서는 별이 잘 보인다. 빛 공해가 없는 곳에 가서 밤하늘 보는 것을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한다. 도시에서도 밤에 불을 좀 끈다면 별을 볼 수 있을 텐데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별을 보려 도시가 아닌 곳으로 간다. 저자는 숲에 산다. 외딴 숲에서 일출과 일몰에 의해 생활리듬을 잡고 있기에 밤에는 별을 잘 볼 수 있다. 숲에는 식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낮에 보이는 숲이 가르쳐주는 것과 밤에 보이는 별이 가르쳐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 수 있어 해주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작게는 모든 생명이 생명으로서 지니고 있는, 스스로 개척하고 이루며 사는 자립의 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자, 그 재미를 빼앗는 것입니다. 또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려움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회적 적응력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화된 적응력이 대를 이어 재생산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식들에게 지나친 재산과 기회를 구축하여 상속해주고, 이것이 반복된다면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자식들은 구조적인 불평등 속에서 삶을 시작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낳을 것입니다. 성년이 된 자식이 그 삶을 더 안락하게 시작하도록 배려하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만, 도가 지나칠 경우 부모의 삶이나 자식의 삶이나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숲에 사는 생명들은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p. 171)

자연은 자신의 새끼나 씨앗을 발아래 두려하지 않습니다. 품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새끼는 무서운 맹수나 맹금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위태로울 것이고, 부모의 발아래에서 발아한 씨앗은 결국 부모의 그늘에 살면서 부모와 햇빛을 나누고 양분을 다퉈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식이 스스로 서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이 어찌 참다운 사랑이겠습니까?숲은 비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숲은 날로 깊어가는 법을 압니다. 굳이 날갯짓을 배우지 ㅇ낳아도 새가 스스로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를 수 있듯이 자연의 모든 생명은 이미 그 안에 스스로 자라고 익어가는 법을 품고 있습니다. (p. 179)

 

뒤이어 들려주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라는 책 이야기는 유익한 사례였다. 섬진강 변에서 큰오색딱따구리를 50일간 관찰한 사진과 기록을 담아 펴낸 책으로 부부새의 육아를 온전히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자연의 삶이 대개 그러하듯 자식을 독립시키는 철저함도 교훈적이었다. 숲에 사는 저자가 감동적으로 읽을만한 책이었다.

얼마전 티비에서 치타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치타는 집단을 이루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번식기에 잠깐 상대방 치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어미는 새끼를 홀로 낳아 키운다. 집단이 아닌 만큼 주변 맹수들로부터 새끼를 지켜내는 것은 제아무리 치타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 새끼를 낳았던 어느 치타는 결국 하이에나에게 새끼를 모두 잃었다. 그 경험으로 이제 치타는 다음번 태어나는 새끼들은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새끼를 잃는 경험으로 새끼를 지키는 법을 배울 정도로 어찌보면 냉혹하고 어찌보면 철저하다. 하지만 그래야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대부분의 나무가 노동과 휴식을 철저히 자연의 흐름에 맞춤으로써, 지구상에서 가장 유구하고 장대한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눈에 이것은 철저하게 '지금'을 살아가는 지혜를 익힌 자들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걱정하여 밤을 지새우지도 않고,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불면하지도 않으며, 부질없는 욕망에 위둘려 밤을 배회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순간에 순간을 더하여 지금에 충실합니다. (p. 201)

사람이 나무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은 나무로부터 배울 수는 있다. 나무는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의 삶은 충분히 사람에게 시사하는 내용이 있다. 식물은 고민하지 않는다. 식물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생명력을 발휘하고 생태계를 순환시키는데 일조한다. 의도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사람이 식물처럼 살 수는 없지만 식물처럼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식물의 자세를 조금 응용한다면 사람의 삶이 좀더 평화로워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숲에게서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깨달음을 전하고자 하지만 직유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은유는 해석자에 따라 다양한 범위로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한 종의 새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30여 종의 곤충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소멸은 소멸을 낳고 그 소멸은 다시 더 빠른 소멸을 낳습니다. 우리 인간이 오로지 인간의 편리와 안전과 행복만을 욕망하는, 이대로의 탐욕을 유지한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멸의 법칙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간마저도 소멸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아직도 늦추려 하지 않고 계속 달리기만 하는 이 소멸의 연쇄를 상생의 연쇄로 바꿔내지 않으면 분명히 그런 날이 오겠지요. (p. 208)

한 종의 새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30여 종의 곤충이 사라졌다는 의미라니... 최근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며 생명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읽을 때마다 깨닫고 있는 중이라서인지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파괴력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수한 품종만 간단하게 남기는 것은 그 우수종을 죽일 수 있는 균이 나타났을 때 멸종 이외의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없게 만든다. 다양성이 곧 생명력이다. 인간에게 필요하건 필요치 않건 모든 생명은 다 존재의 이유가 있고 그 존재의 이유를 무시해나가는 발전은 발전이 아니다. 눈앞의 편리보다 먼미래의 공존을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인간의 삶인가 보다.

저자는 인생에서 깨달아야 할 가르침들을 숲에서 얻었고, 그렇게 자신처럼 숲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숲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숲에 가서 느낄 수 있는 가르침들을 책 한권으로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숲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그렇게 숲이 주는 가르침을 직접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숲에 가보도록.

제목이 생각나진 않지만 유명한 그림책이 떠오른다. 도시의 사람들이 휴가로 시골에 왔다. 오기 편하려고 길을 닦고 집을 짓고 마트를 들여오고 사람이 모여들자 도시와 똑같이 되버려서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한곳한곳 망쳐놓고 떠나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림책 속에서 너무나 어리석게 표현되어 있었다. 지구는 무한하지 않다. 그렇게 한곳한곳 망치다가는 온 지구를 다 망치게 될 것이다.

대부분 산전수전 다 겪고 마음이 지치고 삶이 힘들때 이런 책과 이런 가르침들을 찾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숲 가까이에 살면서 종종 숲에 가서 숨쉬고 올 수 있는 환경속에서 산다면 일찍 부터 숲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숲이 멀어져 가는 요즘이 더 안타깝기만 하다. 자연은 존재 자체로 늘 깨달음을 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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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역사 속 28가지 스캔들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이영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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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역사 속 28가지 스캔들

허위와 날조의 기록부터 추악한 살인사건의 진상까지

역사 속 28가지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힌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승자가 바뀌면 역사의 해석도 달라질 수 있는지라, 그렇게 뒤바뀌는 역사적 판단 속에서 다시보니 이게 아닌데... 하는 것들이 어디 한두가지 이겠는가? 그러나 기록이 사라지고 ~카더라 소식만 풍문처럼 전해질때 역사의 어떤 장면들은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대단한 신비적 요소가 있지 않아도 비양심적인 한두명의 의식적인 의도로 당시에 감쪽같이 진실을 묻어 놓으면 후대는 그것을 답이 모호한 역사적 미스터리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세계사는 서양사와 동의어이다. 세계사 라는 역사는 유럽과 북미의 역사이다. 세계사 속에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의 역사는 없다. 이 책의 원제는 'The Mysteries of History' 이다. 영국의 저술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에서 기존 상식적 역사들과 배치되는 근거들을 밝힌 글이 우리에게는 세계사의 미스터리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서양인이 신기하게 보았던 다른 대륙의 이야기는 사실 그들이 오해한 것들일 뿐이었다. 자신들이 오해한 걸 자신들이 미스터리라고 얘기하며 진실을 밝힌다는 것도 사실 웃픈 현실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오류를 지적해낸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어차피 서양인들이 오해하거나 말거나 다른 대륙에 사는 현지인들은 그들이 오해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사실은 이것이라고 말해봤자 서양인들은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을테니, 오해한 서양인들 중 누군가가 사실은 이렇다 라고 말해주어야 그나마 들어주고 생각해볼테니 말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잔 다르크를 15세기 초의 여성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프랑스인이 아니었고, 군대를 지휘하거나 전투에 출정한 적도 없으며, 마녀사냥으로 처형된 적도 없는 듯 하다. (p.13)


영국인인 저자가 영국와 역사적으로 오랜 숙적 관계인 프랑스의 잔다르크 이야기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이 책을 시작부터 가볍게 만든다. 아마도 영국내에서 읽힐때는 더 잘 팔렸을 원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당시 프랑스인들이 처한 시대상황은 영웅이 필요했기에 적절한 인물을 골라 영웅신화를 창조해냈고, 이 영웅신화를 지금도 역사로 배우고 있는 것은 아마도 여전히 그런 영웅신화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서 영웅이 창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드라큘라 백작 부인으로 유명한 바토리가 자신의 빼어난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처녀들의 피로 목욕을 하는 등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선정적인 판타지일 뿐이다. 바토리는 자신의 재산을 노린 이들의 탐욕과 정치적 조작의 희생양이 되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포함한 몇 개 국어에 능통할뿐 아니라 당시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자기분수알기' 를 거부하는 독립적인 여성인 바토리에게 자기 분수를 알게 할 어떤 조치가 내려져야 했다. (p. 23~25)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닌데, 일요일 오전에 하는 서프라이즈 라는 프로그램은 종종 본다. 거기서 이 부인의 얘기를 봤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를 짧은 드라마식으로 보여주는 그 프로그램에서 의외로 많은 반전 상식들을 얻게 되곤 하는데, 티비로 볼때도 못믿을 이야기겠구나 싶었던 것이, 당시 시대에서 너무 뛰어났던 여인을 응징한 설화라는 내용을 읽고보니 더욱 씁쓸해진다.


'닌자' 역시 유럽인들이 그 용어를 만들어낼 때까지 일본에서는 쓰이지 않던 말이다. 'Japan'도 실은 중국에서 기원한 지명이었지만, 여행업을 부흥시키고 싶었던 일본 상업 분야에서 일부러 채택하여 사용해왔다. 옛날부터 일본 원주민들은 자기 나라를 니폰Nippon 이나 니혼Nihon으로 불렀다. 둘 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을 나타내는 동일한 상형문자 日本 의 음독이다. 둘 중에서 일본의 기성 세대는 니폰을, 젊은 세대는 니혼을 선호한다. '재팬'을 빵의 일종으로 여길수도 있다.('재팬' 의 'pan'은 스페인어로 '빵'이라는 뜻이다) 고대에 훨씬 대국이었던 중국은 일본을 작고 순종적이라는 의미에서 '왜 倭'라고 칭했다. 그런데 이 업신여기는 듯한 용어가 야기하는 외교적 문제로 인해, 중국은 왜를 버리고 일출을 뜻하는 중국어 '지푼Jihpun' 을 선호하게 된다. 이 용어에는 '해가 떠오르는 땅'이라는 시적인 의미가 가미돼 있다. 당시 중국과 교역하던 서양인들은 일본에 대해 왜나 지푼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p. 38)


일본이 아시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섬이었기에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 되었는데... 그 위치가 조금만 더 남쪽이거나 서쪽이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태양' 신의 후예로 여기지 않게 되었을까? 일본 지명에 대한 이야기는 '닌자' 미스터리를 시작하는 초반에 나오는 이야기라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내게는 일본 지명 자체가 미스터리다. 너무 자만심 가득한 이름 아닌가 말이다.

여하튼, '닌자' 는 <두 번 사는 인생> (1964) 이라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여 19세기 서구 영어 사용자층이 만들어낸 말이다. '닌자' 의 이미지도 물론 서양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본에서도 진짜 자객들은 신무기인 총이나 폭탄이 등장하자마자 이것들을 바로 주요 무기로 선택했다고 한다. 검은옷을 입고 지붕을 날아다니며 검과 표창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가라테 가 포악한 사무라이의 대나무 갑옷을 뚫을 수 있도록 일본 봉건 시대에 개발되었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 당시에는 사무라이의 갑옷도 보강된 가죽과 금속판을 소재로 만들어졌고, 가라테도 일본 초기에 개발된 무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무술은 당나라(618~907) 소림사 승려들이 고대 독립국 류큐 왕국의 섬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소개되어 수 세기 동안 '중국 공수도'로 알려져 왔다. 일본 교육부가 1922년에 오키나와의 무예 고수 후나코시를 초빙하여 무예 시범을 보이게 하자, 일본은 이 중국의 맨손 무술에 열광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가 지속되어 왔기에, 일본인들은 이 새로운 취미의 명칭을 중국과 연관이 없어 보이게 하려고 '맨손' 이라는 뜻의 가라테로 바꾸기로 했다. (p. 43)


가라테의 기원이 중국무술이다 라는 얘기를 중국학자나 한국학자가 했다면 일본이 득달같이 일어나 반기를 들었을 테지만, 그들이 선망하는 영국인이 말했기에 아마도 아무런 대꾸 없이 무반응으로 이 책이 읽히게 되겠지 싶다. 일본에서 이 책이 읽힌다면 말이다.


마르코 폴로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은 이 늙은 허풍재이와 그의 여행기이자 회고록인 <백만 가지 이야기>(보통 동방견문록 으로 불린다)로부터 전해진 것들이다. 초기 회의주의자들은 이 제목을 <백만 가지 허풍>으로 바꾸기도 했다. 전체 원고 중 18개 문장만이 1인칭으로 전달되는 이 원고가 그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폴로에게 큰돈을 벌어다 주었으며, 아직도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랍다. (p. 79)

실제로 폴로 집안의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멀리 갔다고 쳐도, 칸을 알현한 최초의 유럽인 혹은 이탈리아인은 그들이 아니었다. 폴로가 태어나기 8년전인 1246년에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출신인 지오반니 다 피안 델 카르핀이 이미 교황 인노첸시오4세의 친서 서신을 가지고 징기스칸의 손자 귀위크 칸을 알현한 적이 있다. 귀위크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라는 카르핀의 청을 거절하면서, 오히려 교황과 모든 서역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그런 다음 귀위크는 인노첸시오4세가 불분명하게 이해하는 용어가 없도록, 몽고어, 아랍어, 라틴어로 사본을 만든 편지와 함께 그를 돌려보냈다. 마르코가 태어난 해인 1254년에는 플랜더스의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루부룩의 윌리엄이 바투 칸 과 몽케 칸 을 만난 뒤 40쪽 짜리 책인 <루부룩의 윌리엄 동방 여행기> 를 펴냈다. 이 책은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아직도 중세 지리학 문헌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실은 이 책에서 재정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폴로가 출간에 도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p. 81)


우리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대해 왜 의심을 품어보지 않았나? 서양인들이 보고싶은 데로 보고 판단하고 싶은데로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도 높은 책이었던 그 책에 대해 내용을 제대로 보기는 했던가? 책 내용이 뭔지도 모른채, 그저 중국을 최초로 방문한 사람으로 마르코 폴로를 그가 쓴 책인 동방견문록이 역사적 사료인 것처럼 배우지 않았나? 마르코 폴로는 중국을 방문한 적도 없다는데?!


폴로가 칸과 교황을 중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중국 쪽이나 바티칸 쪽에 그 접촉을 확인해 주는 기록은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양저우시의 기록에도 그의 통치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가 중국의 주변을 여기저기 여행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조차 심각한 의문점들을 제기한다. 그가 여행을 다녔다는 지역들을 가기 위해 소요된 시간이, 이미 알려져 있는 거리나 다른 이들이 충분히 입증한 기록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서 17년 동안 머물렀다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대 칸의 영토에서 사용되던 언어에 친숙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외교적 논의를 이끌었을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책 안에서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명칭들을 사용하지 않고 페르시아어 명칭들만을 가용하고 있다. 중국의 중요 지역들의 위치와 관련하여 그가 알고 있던 지식에도 허점이 있다. 그 기간의 어떤 중국 기록에도 그의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르코 폴로가 그 나라 땅을 밟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많은 역사가들은 폴로가 흑해보다 더 멀리 나간 적이 없으며, 흑해 근해에서 동방국들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거기서 만난 이들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교황청은 모든 이가 사망할 때 그들 재산의 1%를 거둘 권한이 있었다. 탐욕스러운 성직자들이 눈을 희번덕이며 그의 모든 재산목록을 상세하게 작성해두었는데 그 꼼꼼한 목록 가운데 그 주인을 중국과 연관시켜 주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중세의 유럽과는 매혹적으로 다른 중국에서 17년을 보냇으면서, 어떻게 중국 물건을 하나도 집에 안 가져올 수 있었는지 상상이 가는가? (p. 82~85)


중국의 기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바티칸 기록에 중국과 왕래했던 폴로 이전 사람의 기록은 있어도 중재자로 많은 일을 했다던 폴로의 이름은 바티칸 기록에도 전혀 없는데, 왜 폴로 혼자 주장한 그 책이 아무런 증거도 확인도 없이 받아들여지고 지금까지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걸까? 역사는 승자가 보고싶은 것만 보여주려 한다. 주류는 그런 것이다. 그 주류에 휩쓸리지 않는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학자들의 자성을 기대해 볼 뿐...


미국인들은 아직도 도시 이름에서 우주 비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콜럼버스'라는 이름을 사용할 만큼 이 인물을 매우 중요시한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카 땅을 밟아본 적도 없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의아하기만 하다. (p. 87)

콜럼버스와는 달리 포르투갈의 위임을 받아 항해를 떠났던 피렌체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남아메리카 북쪽에 닿았다. (p. 88)

지명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인물은 좀 덜 알려진 부유한 스리스틀 상인 로버트 아메리크 이다. 아메리크는 1497년5월에 존 캐봇이 래브라도에 도착했을 때 타고 간 마테오 선을 후원했다. 베스푸치 보다 2년 먼저 신대륙에 도착한 캐봇은 북아메리카 해안선을 탐사했다. 따라서 신대륙의 지명은 오랜 전통에 따라, 캐봇의 후원자인 로버트 아메리크의 성이 붙여진 것이다. 지명을 정하는 전통을 살펴보는 것이 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는 탐헌가나 후원자의 이름이-성이 아닌- 지명이 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17세기 초반에 헨리 허드슨이 현재의 뉴욕이 된 지역에서 새로운 강을 발견했을 때, 그 강은 헨리강이 아니라 허드슨강이라고 불렸다. 따라서 아메리카 지명의 영예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자격없는 어깨에 올라간다면, 신대륙은 아메리카가 아닌 베스푸치로 불려야 될 것이다. (p. 89)

진짜 미스터리는 어떻게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에 대한 모든 영예를 거머쥐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당시 영국과 신흥국 미국 사이에 대서양을 가로질러 피어오르던 적대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1775년과 1783년 사이의 전쟁이 끝난 후(미국 독립전쟁), 미국은 영국과 관련된 사람이나 일을 모두 피했다. '마스터' 같은 단어가 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보스'에 자리를 내주고, 흰 가발을 쓰고 대중앞에 나설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은 언어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적개심의 대상이되었다. 혁명 후 미국은 시베리아인, 일본 원주민, 바이킹 등의 발견을 등한시하며, 영국인이 아닌 콜럼버스와 영국의 지원을 받았던 존 캐벗 사이에서 신대륙을 발견한 주인공을 결정하려 했다. 승자는 미국 해안 근처에도 가지 못한 콜럼버스가 되었고, 독립전쟁을 통해 혐오한는 영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게 된 미국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콜럼버스의 영토, 콜럼비아 라고 불렀다. (p. 93)

그러나 자신이 '발견한' 섬의 주민들을 살육하고 노예로 전락시킨 죄로 족쇄를 차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던 콜럼버스의 잔학 행위들이 알려지가, 그의 명예가 허울을 벗게 되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콜럼버스의 기념일에 실시하는 행사가 꾸준하게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 시민들은 센트럴 파크에서 콜럼버스 동상을 없애달라고 유욕시장에게 요청하는 상당히 많은 시위들을 벌였다. (p. 95)


아메리카 대륙이 미지의 땅으로 불리던 시절에도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사람들과 교류하던 구대륙의 민족들이 이미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과 미국의 패권은 자신들의 대륙과 그 대륙을 발견한 역사를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으로만 채워놓았다. 콜럼버스도 베스푸치도 미국땅은 밟은적이 없다. 하지만 독립한 신생국이 선택한 두 이름은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아메리카 가 아니라 베스푸치 (혹은 여성형으로 베스푸치아?) 로 불렸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좀 웃긴다. 선택한 역사만 진짜 역사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 자체가 웃긴 상황이긴 하지만...


기원전 338년의 기록에 보면, 베이징의 황제 동물원에서 캥거루를 전시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호주의 동부 해안선 지도가 그려져 있는 2,000년 된 중국 화병도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알수 있듯, 고대 중국인들도 호주를 자주 방문했다. 중국에서 호주를 본격적으로 처음 탐사한 것은 1422년 정화장군에 의해서였다. 이 중국인들이 오기 5,000년 전에 이미 아시아와 다른 많은 지역에서 사냥꾼 겸 상인들이 자기 나라의 사냥견들을 데리고 들어왔으며, 그중 야생으로 도주한 일부 개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딩고로 진화했다. 유럽인들이 들어온 것은 한참 후였다. (p. 98)

쿡이 용감한 항해자였고 꼼꼼한 지도 제작자였다는 사실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호주 발견에 대한 영예를 얀스존으로부터 빼앗아 갔는지는 미스터리이지 않은가? 당시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인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자주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역사서들 안에 그저 '요리하듯' 쿡을 최초의 발견자 자리에 집어넣고, 네덜란드인인 얀스존은 빼버린 것이다. (p. 101)


호주를 발견한 사람이 제임스 쿡 이라는 영국인이라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는데, 호주 역시 원주민들이 있었고 그들과 교류하던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처음 발견한 유럽인도 제임스 쿡은 아니라는데.. 그들 자체의 역사보다 그들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이 당시 패권국의 누군가여야 했다는 사실은 그 어느 발견자들의 이름을 봐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그러한 역사적 명예?! 조차도 가져야 했나 보다. 승자들은.


'걸어가는 모아이'가 나오는 노래가 여러 곡 있었는데, 뱃노래 같은 노동요로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동안 박자와 리듬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라파누이의 언어에는 심지어 '다리 없이 걷기'를 의미하는 '네케네케'라는 표현도 있다. 흥미롭게도 마오리 언어에서 '네케'는 뱀을 의미한다. 민족학자 겸 모험가인 토르 헤예달이 레오나르도 하오아 파코미오 라는 섬 주민에게 '네케네케'의 시범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일어서서 양팔은 옆으로 펼치고 몸의 모든 부분과 무릎을 꽉 붙인 채 심술궂은 펭귄처럼 약 2.5cm씩 몸을 흔들며 움직였다. 파코미오는 정상적인 자세로 돌아온 후, 그것이 그 말이 의미하는 동작이라고 하더니, '이 세상에 누가 그렇게 걷고자 하겠어요' 라고 되물었다. (p. 126)


그런 모습으로 걸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모아이 석상이다. 해변가에 늘어서 있는 모아이 석상의 미스터리를 푼다고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그러다 2011년 두 학자가 원주민 들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어 그 모습으로 석상을 옮기는 실험을 했고, 그렇게 미스터리는 풀렸다. 석상을 세워 양쪽에 밧줄을 연결해 마치 석상이 뒤뚱거리며 걷듯이 앞으로 이동시킬 수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밝혀내지 못하면 미스터리이고 원주민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미스터리의 답은 절대 모를 것이라는 오만이 이토록 오해 석상의 이동방법을 미스터리로 남겨두었던 것이 아닐까.


셰익스피어는 1670년에 탄생시킨 초대형 베스트셀러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쓸때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기초로 삼았다. 만일 토머스 노스 경이 1579년에 이 <영웅전>의 번역본을 간행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클레오파트라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녀가 대중문화 속에서 그렇게 잘못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p. 135)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대작이고 대부분이 엄청나게 유명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많은 부분을 고대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랬고 리어왕도 그랬다. 또 다른 작품들도.... 물론, 신화나 설화 몇줄에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셰익스피어 혼자서 창작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사실 그 능력이 좀 작게 느껴지기는 한다는 말이다.


이집트 독사에 물리면 죽음이 빠르고 편하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클레오파트라처럼 평온하게 누워있을 수 없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2~8시간을 보내야 한다. 따라서 그녀가 자살했다면 아마 다른 수단을 썼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시대의 통치자들은 모두 마지막 순간이 오면 먹을 수 있도록 효과가 빠른 독을 가까이에 간직했다. 클레오파트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가발에 꽂는 머리핀에 독약을 넣어 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녀가 독사에게 물렸다는 터무니 없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 석상을 과감하게 로마 전역에 전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녀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고, 거기에 이집트 코브라가 그녀의 오른팔뚝 위를 두르고 올라갔다가 그녀의 가슴께로 머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의 동상을 만들었다. 이것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니라, 옥타비아누스가 굴복시킨 왕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엉뚱한 쪽으로 생각했다.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 의해 죽었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뿌리내리자, 옥타비아누스 일당은 그런 여세를 계속 몰아갈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p. 140)


로마가 이집트를 굴복시켰을때의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그대로 우리까지 전수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굴복시킨 자가 마음대로 왜곡시킨 그 모습 그대로 이야깃거리로서 역사를 대하고 있는 만큼 이집트나 로마나 다 우리에겐 너무 먼 역사라서일까? 하지만, 그 역사를 지지기반으로 삼은 세력들이 세계를 쥐어잡고 있으므로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으면 안되지 않을까?


모차르트가 음악적 천재라는 것은 아마도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그의 교향곡 중 절반이 8세에서 19세 사이에 지어졌다. 한편 그는 배설물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광적인 변태여서, 그와 비슷한 성향인 어머니와 교환한 편지 내용들은 여기서 언급되거나 인용될 수 없을 정도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뮤지크(소야곡)를 작곡해 낸 똑같은 머리가 자신의 B플랫 장조 캐논 231번에는 '레크 미히 임 아르슈 Leek mich im Arsch'(내 엉덩이를 핥아줘) 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정도만 말하고 싶다. 여기에 밝힐 수 없는 제목으로 이 곡의 후속곡을 쓰기도 했다. (p. 143)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간에 서로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특별한 증거는 없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던 모차르트는 이미 매독, 장티푸스, 천연두, 기관지염, 폐렴, 세 차례의 류마티즘 열병을 겪다가 1791년11월에 들어 급작스럽게 쇠락해졌다. 당시 겨우 35세였다. 그는 2주 만에 몸 전체가 부어오르더니 의식불명상태에 빠져 죽음을 맞는다. 실은 병상에 눕기 시작할때부터 자기 아내 콘스탄체에게 횡설수설하면서 독살설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p. 144)

모차르트는 돼지고기를 매우 좋아했다. 돼지고기에 종종 감염되는 선모충이 제대로 조리가 안 된 음식에 살아 남아서 인간을 감염시킬 경우 실제로 모차르트가 겪은 것과 유사한 증상이 유발된다. (p. 146)


모차르트의 독살설에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아내가 나쁜 아내라는 증거도 아무것도 없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와 건강한 경쟁자 였으나 악의적인 소문에 피폐한 최후를 맞이했고, 모차르트 사후 그의 아내가 남편의 작품들을 잘 관리한 덕에 그의 죽음이 그의 명성으로 남게 했음에도 극적인 이야기를 원했던 대중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희곡과 영화의 장면들이 사실처럼 역사에 남게 되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비단 승자만이 아니다.


기자 대피라미드는 그 지역의 재료를 사용한 230만 개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대부분은 평균 2.5톤의 석회암 벽돌이지만, 일부 내부 화강함 벽돌드른 그 무게가 15톤에서 70톤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철기시대 이전 사람들이 어떻게 벽돌들의 이음매가 딱 오차2mm미만이 되도록 그 많은 석회암들을 정확하게 잘라낼 수 있었을까? 또한 어떻게 그 암석으로 된 벽돌들을 채석장에서 옮겨 계속 쌓여 올라가던 피라미드의 측면을 따라 끌어올렸는지도 의문이다. (p. 188)

석회암은 작업 시 파편이 튀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300만 개가량되는 벽돌을 생산했을 경우 수백만 개의 파편이나 부서진 벽돌이 생성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파편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p. 191)

프랑스 과학자 다비도비츠는 건설 현장보다 아래쪽에 있는 와디에서 위로 옮기려면 힘이 더 많이 듦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화강암벽돌을 조달하기로 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정신상태에 의문을 품게 됐다. 와디에 갔을 때 그는 거기에서 돌을 채석했거나 깎았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부식과 연마라는 유화 과정을 거쳐 부드러운 물결무늬의 표면을 남기는 무른 석회암이 거기서 나온 것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가 그 다음 단계로 발견한 것은, 나무틀의 내용물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 나오는 벽화에 쓰여 있는 '액체 돌' 이라는 상형문자였다. (p. 192)


모아이 석상의 이동 미스터리처림 이집트 대피라미드의 벽돌에 대한 미스터리도 이미 당대인들이 다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비도비츠는 석회암 가루와 잡석이 와디에서 운송돼 와서 나일강 물이 흘러 들어오는 거대한 웅덩이에서 녹여진 다음 나트론과 섞였다는 가설을 세웠따. 나트론은 이집트에서 풍부하게 발견되었던 천연 소다가루로 미라의 방부제로도 사용되었다. 나일강 물이 증발되고 나면, 제작자들의 손에는 석회석 시멘트 형태가 남게 된다. 이제 그 가루는 바구리들에 담겨 구조물 위로 옮겨져서 기름칠이 칠해진-마르는 동안 달라붙지 말라고-얇은 나무틀에 넣어진다. 이 초기 단계 벽돌들을 이집트의 태양아래 놓고 잘 말리면, 그것들 자체가 다른 벽돌들의 주조를 위한 틀 역할을 한다. 새 벽돌들이 놓일 때마다 벽돌들의 그미한 수축으로 인해 그 사이에 공예적인 이음매 같은 1~2mm의 선이 남게 된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것이 바로 벽돌 사이에 선이 생기게 된 과정이다. 다비도비츠는 실험단계로 넘어가, 이런 방식으로 몇 개의 석회암 벽돌을 만든 다음 피라미드에 보이는 동일한 이음매를 재현했다. 그의 벽돌들은 육안으로 보면 천연 석회암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p. 192)


수천년 전 혹은 수만년전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 원시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거대한 구조물들을 보면서 밧줄과 통나무 같은 도구들만 떠올리며 무식한 방법으로 이동시키고 건축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미스터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굉장히 과학을 잘 이용했었음을 많은 유적/유물들이 알려주고 있다. 수천년전 고도로 발달된 제련술의 증거들이 최근 고고학에서 밝혀지고 있고, 피라미드의 인공벽돌 제조법 또한 그들이 화학적 원리를 알았건 몰랐건 간에 여하튼 고대인들은 충분히 과학을 이용하고 있었다. 고대인들을 무식하게 보고 현대인들만 유식하다는 입장에서 보니 고대 유적/유물들이 모두 미스터리하게 보이는 것이다.


유대-기독교의 문화에서 유대인들이 이 피라미드 건설 현장의 노예였다는 설은 유명하다. 그런데 뜻밖에, 이런 신분 구조가 성경이나 토라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AD1세기에 활약했던 요세푸스는 BC4세기 헤로도토스의 저서를 자기 책의 기반으로 활용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중요 노선에 따라 역사서를 썼다. BC449년과 BC430년 사이에 이집트를 방문했던 헤로도토스는 대 파리미드의 건설을 지시했던 케옵스 왕(=쿠푸왕)의 이미 훼손된 명성을 의도적으로 폄하하기 시작했다. 헤로도토스는 대부분 머릿속에서 지어낸 쿠푸 왕의 많은 잔인한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그가 허영심을 위한 기념물로 대피라미드를 세우려고 백성들을 노예화시켰고 그로 인해 미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요세푸스의 윤색은 더욱 치밀하고 복합적으로이루어졌다. (p. 195)

하지만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는 노예가 없었다. 매점 같은 식당 구역에 쌓인 쓰레기 더미는 풍부하고 다양한 식단을 보여주고 있고, 그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수의 묘실들은 노예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존경과 경의의 장례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증거에 따르면, 기자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들은 헌신적이고 자유로운 이집트 노동자들이었음을 알 수있다. (p. 196)


역사에서 윤색을 완전히 거두어낼 수 있을까? 대중들이 학자들처럼 자료 원본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확인해가면 역사서를 읽을 수도 없을진대, 도대체 제대로 된 역사의 진실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그 고대의 역사서를 쓸 당시에도 이미 마음먹고 왜곡해서 쓴 역사서라면;;; 그나마 내가 선택하고 있는 방법이라면 다양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다. 교차검증이 가능하도록...


'종교재판'이라는 단어에는 늘 '스페인'이라는 단어가 따라붙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스페인 재판소가 종교재판을 집행한 유일한 곳이었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실 스페인은 후발주의자 였다. 당시에는 포르투갈에서 페루에 이르기까지 모든 카톨릭 국가에서 종교재판을 실시햇다. 그렇다면, 스페인 종교재판이 그중 제일 관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심한 비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16세기 당시 나머지 유럽 지역들이 스페인이 군대와 해상에서 패권을 잡는 것을 싫어했다는 사실과 여교황 요안나의 근거없는 낭설을 퍼뜨리던 개신교 선전 운동가들의 파괴적인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p. 198)


나는 종교재판 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그저 유럽 중세시대에 무차별적인 폭력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었던 것일뿐 그것이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유럽인들은 '스페인' 을 떠올리나 보다. 스페인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남미에 무슨짓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이정도 오명은 감수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스톤헨지의 모양은 본래의 형태가 아니다. 스톤헨지의 큰 입석들의 출처로 보이는 인근의 에이브베리에 있는 환상열석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이 두 곳에서 만나고 있는 기념물들이 사실 20세기의 창작물이라고 많은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p. 211)

1934년 마멀레이드 잼 사업을 크게 하던 알렉산더 케일러가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에이브베리의 총3.7㎢ 규모의 부지를 그 안의 마을과 함께 통째로 사버렸따. 그리고 그 부지의 5,000년 전 모습을 재건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p. 211)

스톤헨지 부지는 에이브베리보다 규모가 훨씬 작지만, 똑같은 '재구상' 작업을 비록 작은 수준으로나마 거쳤다. 존 컨스터블이 1835년에 이 장소를 그려놓은 그림을 인터넷으로 빠르게 검색해 볼 마음이 있는 독자라면 돌들이 대부분이 붕괴 직전의 상태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스톤헨지가 국내외 관심을 끌어 모으기 시작하자, 1901년에 그곳을 '정돈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 움직임은 많은 분야에서 좋은 호응을 받지 못했다. (p. 213)

따라서 우리 앞에 있는 이 기념물은 그것의 수천 년 전의 모습을 20세기의 상상력으로 복원한 결과물이다. (p. 214)


헐. 그야말로 헐. 이었다. 스톤헨지를 모티브로 한 창작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고대 환상 열석 연구드를 하면서 스톤헨지가 빠지는 경우가 있던가? 그런데 지금의 스톤헨지가 재구성된 것이라면 그냥 커다란 돌 덩어리이지 고고학적 의미는 없어진 것 아닌가? 형태가 변한 유적지가 과연 어떤 과거를 알려줄 수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여전히 스톤헨지의 위상이 드높기만 한 것을 보면 영국의 태양이 아직은 완전이 지지는 않은 것이리라.


남아메리카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남아메리카 문화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아일랜드의 영향에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는 칠레에서 두드러지고 아르헨티나의 관광객들도 아일랜드식 술집과 음식점들이 많은 것에 놀랄 것이다. 남아메리카와 아일랜드를 묶고 있는 연결성의 기원은 15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스페인과 아일랜드 남부의 카운티들은 강력한 동업 조합들을 결성하였고, 이는 중요도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로 이어졌다. 이는 같은 세기에 멕시코와 남아메리카를 침략했던 스페인 정복자들의 뒤를 따라 발생했다. (p. 226~227)


아일랜드는 국가다. 아일랜드는 영국이 아니다. 아일래드와 영국은 굉장히 인접해 있는 섬들이라 나는 같은 국가겠거니 하며 합쳐셔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엄연히 다른 각자의 국가였고 심지어 역사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였다. 한국와 일본처럼. 하지만 아일랜드는 영국에 비해 세계적으로 국가적 위상이 낮은 편이다. 따라서 아일랜드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미국의 근간을 이룬 사람들도 아일랜드 이주민들이었지만, 미국은 미국일뿐인 것으로 여겨진다.


각 역사마다 스페인 침공군들은 잉카나 멕시코 아즈텍인들에 비해 선천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에 별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남아메리카인들이 매우 미개해서 비교적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던 스페인 사람들을 이교도 신들의 현현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진실과 매우 다르다. 실제로 두 침략군들을 스페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조차 과장돼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스페인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스페인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당시 아라곤 공국과 카스티야 공국의 표면적으로만 결합된 상태에 있던 독립 공국들의 불안하 동맹이었다. (p. 227)


유럽의 역사를 이해할 때 가장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국가개념이다. 유럽의 역사는 지금의 국가형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대의 국경선은 세계대전 지나고서 정해진 것이다. 유럽은 한덩어리로 서로 얼키고 설켜서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마을단위의 연합체로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영국에 가면 런던출신 웨일즈출신 이라 하고 이탈리아에 가면 시칠리아출신 로마출신 이라 하고 스페인도 카탈루니아출신 바스크출신 이라고 하지, 영국인 이탈리아인 스페인 이라고 자신들을 표현하지 않는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다 그렇다. 유럽은 땅덩어리 자체도 생각보다 작은데 작은나라들이 또 그렇게나 많은데 그 작은 나라들 안에서도 자신들을 국가의 소속이 아닌 지역출신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국가개념이 약한 만큼 유럽연합이 가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즈텍의 지도자 몬테주마는 코르테즈를 켓잘코틀의 화신으로 여겼고, 잉카인들은 피사로를 비라코차의 살아있는 현현으로 여겼기 때문에, 두 종족 모두 침략자들엥게 금을 퍼부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혀 없는 데 비해, 이를 반박하는 증거는 많다. 이는 두 사람이 탐욕에 눈이 멀어 그들에게 가한 대대적인 살육을 스페인 역사가들이 은폐하기 위해 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들은 그 일들이 일어나고 수십 년이 흐른 뒤에 등장했다. 더구나 잉카인과 아즈텍인들이 침략자들의 끔찍한 행동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치명적으로 끌리어 그들을 신성시 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p. 229)

약간은 칙칙한 얘기지만 아일랜드의 디아스포라를 유발한 1845년의 감자기근의 원인이 감자 역병균이라는 곰팡이라고 오랫동안 알려졌는데,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아일랜드에 유입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최근에 연구자들은 그것이 남아메리카로부터 유입되었고, 아일랜드 항구로 거래하러 온 프레인 배에 실려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p. 234)


스페인은 남미를 멸망시켰고, 남미의 곰팡이는 아일랜드를 굶주림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 남미에는 로마의 문화였을 테지만 지금은 로마에서 사라진 라틴문화가 자리잡고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잉카와 아즈텍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그들의 억울함은 풀길이 없어 보인다... 일본식민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을까... 온갖 왜곡과 오해들이 사실인것처럼 진실로 남아서...


미스터리의 세계사라고 하지만 사실 미스터리 라는 신비스러움 보다는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날조된 역사들을 파헤쳐내고 있는 책이었다. 세계사라고 하기엔 영국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들 위주였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나 앞으로도 그닥 중요해보이지 않는 사건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흥미보다는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되는 안타까움과 유럽사가 세계사인 것을 재확인하는 씁쓸함을 주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널리 알려져 있는 역사들이 사실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으로서 읽을가치는 충분한 책이었다. 설사 저자의 말도 사실이 아니고 그저 역사적으로 널리 퍼진 스캔들을 모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너무나 확고하게 믿는 지식들이 잘못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자세를 갖도록 해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식을 넘어 지혜로 가는 길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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