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서 말씀드렸으면 합니다˝

2006년 2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였던 유시민 작가는 치열했던 인사청문회를 마무리 하면서 시 한 편을 낭송했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여기까지 온 것이다/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그 어떤 쓰라린 길도/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 이다


˝한 개인의 삶은 다 이런 것 같아요. 어떤 길은 가지 않았어야 했고, 어떤 길은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 모든 길을 걸어서 내가 여기 있는거다˝

˝옳지 못한 일들, 안했더라면 더 좋았을 일들, 했더라면 더 좋았을 일들, 했지만 더 많이 했더라면 또 좋았을 일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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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계가 무너지면 그 옆의 수많은 세계가 잇달아 무너진다. 추모는 늘 그러한 상실 이후 일어난다. 떠난 이를 간절히 그리며 생각하는 일. 다시 말해 떠난 이와 연결을 유지하려는 힘이다. 그러므로 추모는 고요한 순간에조차 뜨겁다. 애통히 떠난 이를 그리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룰 때, 그 행렬은 새로운 길이 되었다.˝

어떤 일을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누군가의 하늘이 무너질 때 나의 세상도 잇달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믿게 하려면, 그 공통 감각을 사이에 피어나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나 법과 제도를 바꿀 수도, 책임 있는 모든 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말하는 것.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고 세상에 전하는 것. 이 책에 담긴 것은 매일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서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누군가는 망각의 역사를 기억의 역사로 바꿔 쓰며 10년을 버텨 왔다

-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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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그것이 어떤 공부든 타인인 고통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공부로서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는 무거운 질문으로 읽힌다

저자는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주 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의학 교과서에 적힌 대로 “다친 허리를 치료하려면 며칠은 조심하며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할 때 허망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해 약으로 증상을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돌아가야 하는 곳은 이전과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저자가 임상의사가 아니라 보건학자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어떤 고통은 치료아니 응답이 필요하다
존재마저 지워진 채 고통받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당신이 정상인이라면, 그것은 특권층이라는 뜻

한 사회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목숨이 계속 부당하게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목격자‘인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생존경쟁에서 이들을 취하고 있는 세력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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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기주 기자는 2022년 9월 미국 뉴욕 순방 동행 취재 중 비속어 논란 발언을 최초로 발견해 ‘바이든 날리면‘ 사태에 불을 붙였다. 또한 MBC가 대통령 해외 순방시 전용기 탑승 배제를 당한 이후의 도어스테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뭐가 악의적이에요?˝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비서관과 공개 설전을 벌여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끝장낸 장본인 이기도 하다

삼성 SDI에서 2차 전지 해외 영업을 담당하던 저자는 2008년 6월 광우병 시위 현장을 지나다 경찰 곤봉에 시민이 맞아 쓰러진 장면을 목격했다. 3년 차 직장인이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였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발생한 모든 논란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점이 있는데, 실수든 잘못이든 인정하면 안 된다는 기조가 깔린 것 같다. 피의자가 검찰 조사받을 때 뭔가 하나라도 시인하면 그게 고리가 되서 기소가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도 인정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진 것 같다

이 책이 나에게 기자 그렇게 하는 것 아니라며 손가락질했던 이들에게 보내는 답장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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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4-03-13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러한 자를 ‘자기애성 인격장애‘자로 부르죠. 자신의 전제성을 손상시키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고, 부정하는 것인데, 자기애로 똘똘뭉친 성장하지 못한 자아 때문에 그런답니다. 이런 자에게 최고권력이 주어졌으니 이 아기 폐하는 독재자가 되는 것이지요, 아~ 수치스러워서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나와같다면 2024-03-12 20:54   좋아요 2 | URL
자기애성 인격장애 동의합니다

지도자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데 늘 전 정부 탓하고, 희생양 만들고 책임을 전가하고

본인이 주체고 당사자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사과를 할 필요도 못 느끼고. 다른 사람이 잘못했으니까요

악직적인 편가르기. 상대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대화 상대로 조차 인정하지 않고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니... 고통스럽습니다

총선에 희망을 기대해봅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세월호 10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구나...‘
그 뒤에 생략된 많은 말들,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모를 말들 속에는 아마 이런 말도 담겨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이제 3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겠구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송 제작이 일방적인 통보로 중단되자 해당 프로그램을 만들던 KBS 방송작가 이재연씨가 2월 27일 한겨레에 글을 기고합니다

˝새파란 생명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고, 끔직한 사고였음에도 슬퍼하는 데 눈치를 봐야 했다고, 심지어 10년이 지난후에도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입을 틀어막혔다고 기록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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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3-09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영방송 마저도 모든 걸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판단하는
모습이 기가 막힐 뿐입니다.

시청료가 아깝네요 정말.

나와같다면 2024-03-09 21:38   좋아요 1 | URL
총선은 4월10일이고 방영은 4월 18일이다. 프로그램이 선거에 무슨 영향을 주느냐고 PD가 묻자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 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느라 잊게되는 공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책무다
KBS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