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
노은주.임형남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는 단독 주택에 살았다. 동네에 우리 집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집은 없었다. 아버지는 외형도 그렇고 내부의 구조도 그렇고 내가 커가면서 조금씩 변형을 주셨다. 처음 이사 간 집에서 내가 결혼하고 다른 집으로 이사 갈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본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내부적으로 살기 편하게 그리고 우리가 성장하는 속도에 따라서 그리고 출가하는 자식들이 생기면서 조금씩 그 용도와 구조가 바뀌었다. 지금은 단독이 아닌 아파트에 살다보니 가구의 배치 이외에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베란다 확장? 혹은 실내 인테리어 정도 그렇다고 뼈대가 바뀌거나 구조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 일이다.

 

책을 읽다 그런 생각을 했다. 궁궐 사찰 오래된 고택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속에서 역사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작은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의 우리가 선호하는 아파트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보다는 부동산에서 표시하는 그래프로 시세 변동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그런데 더 간사한 것은 지금이라도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또 싫으니 편리함의 덫에 걸린 내 습관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저자가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그들의 집은 조선의 왕들을 모신 종묘였다. 두 번째 들고 나온 곳은 우리나라 초기서원인 소수서원이다. 고택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보아야 하니 왕을 모신 곳 그리고 성리학을 가르치는 곳 두 곳을 먼저 들고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두곳은 최근에 내가 다 방문해 보았던 곳이다. 그냥 엄숙하고 웅장하게만 느껴졌던 종묘 그리고 작은 방과 툇마루로 구성된 소수서원의 제자가 붙은 건물들 작은방하나와 마루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곳을 저자는 좀 다른 의미와 해석을 해 준다. 도산서원을 방문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소수서원은 회의나 토론장 같은 건물배열이었고 도산 서원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일종의 수도를 하는 느낌의 건물 배열이었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두에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집은 그 집을 만든 사람 살아온 사람의 이력을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같은 모양이 없으며 조금씩 다른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사람의 일생과 역사 속에서 담아내고 싶은 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집의 구조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세의 건축학자가 보는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해본다.

 

조선의 마지막을 걱정하던 왕의 아버지가 살던 곳이 있다. 그 건물은 지금 복원사업으로 만들어 지고 있지만 그 역사 속에서 대원군 아니 일반적인 왕의 아버지가 대원군이니 흥선 대원군이 맞는 표현이라고 했으니 흥선대원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살았던 운현궁은 어떤 마음을 표현하는 곳이었을까? 임금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에 폭탄이 터지는 일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흥선대원군은 무슨 꿈을 꾸고 있었을까? 지금은 서울 한 복판에 잠겨 있다는 운현궁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애잔하지만 모든 사람이 한 집의 주인공이라면 그 애잔함의 정도는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건축이라는, 집이라는 것은 그냥 지붕 있고, 벽 있고, 바람 막고, 비 피하는 그런 껍질이라는 의미 외에도 자기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 짓는 이의 사고와 철학을 담는 하나의 조형물이며 영조의 산물이 바로 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후략- Page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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