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81페이지

 2차 수술이 끝난 뒤,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에서 기생충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날 선 비판이 튀어나왔다. 나는조직에 속한 일개 외과 의사일 뿐이다. 환자는 군을 비롯해 국가기관의 관리를 받고 있고, 이 환자에 관한 한 내 의지는 끼어들 수없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내 뜻과 무관하게 그 말들 한가운데에놓였다. 말이 말을 낳는, 말의 잔치 속에서 이리저리 뒤채는 인생이 한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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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다. 애당초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한 세상을 어찌할 방도가 나한테는 없다. 하지만 내 일신 파괴할 힘만은 아직 내 수중에 남아 있다. 만약 내 손으로 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세상은 나를 더는 어쩌지 못할 것 아닌가. 내가 없어지고 난 자리에 남은 세상이란 실상 나한테 아무런 위협도 못 될뿐더러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죽음으로써 나하고 순번 바꾸어 이번에는 세상이란 놈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할 차례가 되는 것이다. 내 의지로 의기양양한 세상 골탕 먹이고, 내 힘으로 건방지고 되바라진 세상에 치명타 가하고, 그럼으로써 견고하고 완악한 세상 응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선 나 자신부터 미련 없이 결딴내버리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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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숲에서 참매미가 서녘으로 기우는 해를 아쉬워하며 아까 부터 서글픈 가락으로 마냥 울어대고 있었다. 해질녘에 이르렀건만 낮 동안 한증막같이 후끈 달아올랐던 산골 분지에는 좀처럼물러갈 줄 모르는 더위가 아직도 상머슴 고봉밥처럼 수북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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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먹잇감은 새끼들이다. 아무리 사자라도 새끼라며 드개드의 식사거리가 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를 떠나 사회 M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도 범죄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청년들은 발끄하겠지만 야수 같은 사회에서 그들은 물 밖에 나은 물고기와 같L 모로 야수 같은 사회라고 하여 야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무관심하고 야수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 야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평생 야수 한 마리 안 만나겠는가. 야수 한 마리로도 세상은 충분히 지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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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쏟아진 드럼통 더미에 깔려 다리 아래부터 하복부까지의 봄이 롤러에 말려 들어가듯이 으스러진 환자가 실려 왔다. 간 신히 살려냈는데 걷기 힘들어했다. 환자는 기타를 잘 친다고 했다.
 회진을 돌 때마다 눈에 기타가 들어왔다. 환자한테 다시 기타를 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주었다. 훗날 외래 진료 때 만난 환자는 연 말 공연에서 연주를 잘해냈다며 즐거워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논문을 들여다보고 교정을 보았다. 논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전 죽은 환자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책의 활자는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의 환영이 논문 더미 위에서 돌아다녔다. 산 자와 죽은자가 논문의 종잇장처럼 갈라져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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