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고전강의 2
양자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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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무수한 풍문의 사나이. 내겐 언젠가 꼭 알고 싶었던 사람 이였다. 인문학 서적이면 으레 들어볼 수 있는 이 마르크스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손꼽히는 지식인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며, 명명백백한 '공산주의'라 선언한 이 사람을 어찌하여 당당히 거론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위해 필히 읽어봐야 할 책 『자본론』은 수많은 학식을 지닌 사람들 조차도 고개를 내 저을 정도로 쉽게 접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논증법은 하나의 가설에 하나의 주장이 아닌 하나의 가설에 세 개의 주장과 또 뒷받침해줄 세 개의 논증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본론을 쉽게 풀어줄 입문서가 필요했고 그렇게 선택한 책이 양자오 저자가 쓴 『자본론을 읽다』이다. 그런데 제목 보다도 '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유'라는 부제목이 더 마음을 끌었다. 그러니까 100년도 더 지난 사상을 왜 알아야만 하는가,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하는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것 같았다.

 

 

 

 

『자본론을 읽다』는 서양 고전강의 시리즈로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다』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다』에 이어 '자본론' 정독에 필한 역사적 맥락과 개념을 정리한 세 번째 책이다. 타이완 학자인 저자는 반공주의가 팽배하던 시절 남몰래 도서관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자본론을 쉽사리 꺼내들지 못하고 복사본을 만들어 하루에 한 두장 들고 다니며 읽었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금서에 대한 야릇한 감정 때문 이였을까. 저자의 책을 읽다보니, 마르크스의 사상에 흠뻑 취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내용을 더 쉽게 풀이해주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영력했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지 상태였기에 신중성을 기해야했다. 정치, 경제, 사회, 국가와 세계관등의 거시적 안목으로 들여다봐야만 볼 수 있는 특성 때문에 나의 책은 노트인냥 필기들로 넘쳐나게 되었고, 나의 노트는 정리한 생각들로 넘쳐났다.

 

 

 

 

 

우리가 자본론을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

 

' 생산의 결과는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이윤을 가져다 주었고, 이 바늘도 분명히 노동자가 노동한 결과인데, 더 많아진 이윤은 노동자와는 무관하다. 이 여덟 배나 차이가 나는 이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이론은 단 하나.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하는 만큼의 이익을 왜 분배받지 못하는가' 에 있다. 한땀 한땀 정성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은 자신이 생산해 놓은 양만큼 보상을 얻었다. 생활 속에서 시간과, 노력을 적절히 배분하여 배분한 만큼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셈이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수많은 자본가들의 세력 아래서 노동력을 소모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보상은 장인의 보상과는 사뭇 다른 개념이 되었다. 자본가들이 산출해놓은 일정한 금액만 받을 수 있게 된 것인데, 여기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분명히 노동자들의 생산 효율에 따른 이익은 발생하는데 그 발생된 이익 즉 '잉여 가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왜 노동자에게 분배되지 않는 것일까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루기가 쉽지가 않다. 노동자의 가치 문제는 자본 사회를 설명해야 했고 자본 사회는 정치와 경제 더 넓게는 국가간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단순한 철학 사상서가 아니라 정치, 경제학서 이면서도 정치 경제학 비판서이며, 노동자를 변론하는 변론서 이자, 오늘날 우리가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실 그의 목적은 복잡한 조작 아래서 자신의 노동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자신에게 노동력의 가치를 이해하고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노동자에게 자기 평가 기회를 주는데 있다'p201

 

 

노동 가치산출과 자본주의 사회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 거대한 자본들의 움직임, 자본을 움직이는 자본가들의 행태, 노동력의 가치 산출과 불평등한 임금임에도 노동력을 제공할 수 밖에 없는 모순들을 설명하기 위한 논증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 가치산출은 노동자의 하루 생활비로 산출하는데,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노동자가 1만원을 생산하고 하루 필요한 생활비는 2000원이라 가정 했을때, 노동자의 '하루 생산금액 - 하루 생활비 = 잉여 가치' 라는 공식을 얻게 된다. 즉 1만원에서 2000원을 뺀 8000원이 잉여가치이며, 자본가들은 축적된 잉여 가치를 노동자와 나누지 않고 스스로 축적해 버림으로써  부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일과 불가분(不可分)관계에 놓인 노동자는 불균형한 현실 속 에서도 자본가에게 묶일 수밖에 없는 노동도구로 전락되었다는 사실로  노동자의 생활은 변질되고, 여가 생활의 축소를 불러온 것이다..우리의 삶은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비춰 나아지지 않고 더 빈곤해져만 가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조롱이 아닌지 생각이 든다. 불가분의 관계속에서 지속적인 불균형의 관계로 연결된 쇠사슬을 우리는 묵묵히 동의 해야만 하는 것일까?

 

 

자본의 흐름은, '사용자가 필요에 의한 가치'를 뺀 '공급' 과 '수요'라는 중점만 두고 조절 하므로써 이익에 가격을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본가 혹은 국가 간의 이익에 의해 얼마든지 조절될 수 있는 ‘공급’과 ‘수요’는 노동자들의 가치를 상실 시키므로써 노동비를 절감시켜  불균형을 초래하고, 착취에 가까운 잉여 가치의  이익을 취하는 자본가들은 계속된 불균형에도 부를 누릴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 . 현재  자본가 마져도 통제불능의 상태에 이르는 수많은 금융 산업의 문제가 오늘날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이 불균형 상태였음을 지적하는 셈이 되는 것이며, 이 또한 마르크스 사상을 부정하지 못하는 하나의 근거가 되는 셈이 되었다.

 

 

 

또한 헤겔의 사상을 이어받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살펴보면 공급의 수요로 인해 양적인 창출은 질적인 창출로 이어지고, 이때 발생된 질적인 창출은 처음 갖었던 순수한 목적을 잃게되므로써 부패하고, 새로운 가치 창출 되었다. 예를 들어 그 옛날 과자는 값싼 가격과 넉넉한 양에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점차 과자에 다양한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면서 과자의 가격은 상승하고, 양은 줄어들면서 부족한 부분은 질소로 충만한 과자가 생산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설명한 것이 ' 정립- 반정립- 종합' 이라는 변증법이다.

 

 

이 새롭게 창조된 가치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면, 의식주 어느 하나 안전한것이 없고, 불안하기만 하다. 모두다 이익을 위한 일이였음에도 공평하지 못한 이익의 분배가 옳은 일을 옳지 못한 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내다본 100년의 미래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음이 여기에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꼭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국경없이 흐르는 자본들이 더 높은 수익에 의해 흐르고, 세계 국가의 다양한 수익 창출의 꿈과 맞물림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내린 상하 구조에 얽힌 가치들이 옳은 것인지 우리는 하나하나 살필 필요가 있음이 절실히 느껴지는 사회속을 살게된 것이며, 무수히도 쏟아져 나오는 자본에 관한 책들이 이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다.

 

 

' 현재의 경제 생활은 평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교환체계에 집어 넣어 원시 상태에서 교환상태로 타락시켰다. 계량화 시킬 수 없는 것들까지 계량화 시켜 '교환가치'를 얻게 되고 교환가치가 화폐로 통합 되면서 '금전'이 가치의 높고 낮음을 드러나게 했으며 그로인해 원래 계량화 될 수 없고 소외될 수 없는 근본 가치를 망각 시켰다'p154

 

 

자본론은 이런 종합적인 문제점을 통해 자본 시대에 발생되는 부를 공평하게 나누며 불필요한 노동가치를 줄임으로써 소외될 수 없는 삶의 근본 가치를 찾아 자본이라는 물질적 욕망에 휩쓸리지 않도록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주는 것이다.

 

 

 

잠재적 자본가가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과 공산주의의 잘못된 편견.

 

' 모든 사물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환경 속 에서 살고 있고, 필연적으로 가격으로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구축 하는데 길들여져 있다'p117

 

' 우리는 이처럼 추상적인 시각으로 화폐를 대하며, 화폐를 늘리고자 하는 욕구를 가질때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의 논의에 따라 잠재적인 자본가가 된다'p249

 

우리는 금전적 욕구 크기에 의해 판단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값비싼 의식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이 되어버렸으며, 자본가의 모습을 모방하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거대한 자본사회에 휩쓸려 자신의 주관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들이 과연 옳은 일일까. 잠재적 자본가가 되어가는 우리의 미래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때  자본주의 사회속에 처한 인간의 억압과 모순, 착취와 거짓이 난무하는 집단 논리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 판단을 일깨워주며, 노동가치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이 사상서가 어쩌다가 '공산주의'라는 나쁜 인식을 갖게 된 것일까. 

 

그것은 마르크스 사상을 신봉했던 레닌과 스탈린의 강렬한 권리욕 으로부터 생겨났으며, '공산주의' 하의 나라들이 지금도 강렬한 권리욕 을 앞세워 부패시킴 으로써 좋지 못한 사상으로 낙인 시키고 있음에서 유발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권리욕은 절대 권력을 낳고, 절대 권력은 끊임없는 검증과 개선, 현실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을 잃고 외곡과 독단을 발생시켜 오늘날 부패된 공산주의라는 인식이 우리 머릿속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말할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자본 사회를 살아가는 내게, 진정한 가치의 기준이 무엇인지, 금전적 기준으로 사람들을 재단하는 사회에서 어떤 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여러 매체들이 전해주는 집단 논리에 빠지지 않고 집단 논리 속 모순을 찾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생각을 선사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마르크스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거시적 안목을 갖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인데 그렇더라도 꼭 인생에 한번쯤은 누가 가르쳐주는 안목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안목을 갖기 위해서라도 만나봐야 하는 사상서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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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0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유출판사 사장님이 좋은 책인데 안 팔려서 아쉬워한다는 책입니다. 혹시 페이스북 계정이 있으면 유유출판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좋아요` 누르면 페이지 관리자(출판사 대표님)께서 직접 번역하고 소개한 양자오의 칼럼을 볼 수 있어요. 아까 방금 유유출판사 페이지에서 확인했는데 마르크스에 대한 양자오의 글이 있더군요. 해피님께서 페이스북 계정이 없으시다면 내일 제가 그 글을 블로그에 올릴께요.

해피북 2015-01-05 00:05   좋아요 0 | URL
왓!! 이런 꿀팁!! 역시 좋은 이웃을 둔다는건 좋은 일이예요 ㅎㅎ 저 방금 페이스북 계정 어찌어찌 어렵사리 찾아서 읽고 오긴 했는데 블로그에 올려주신다면 (혹시 번거럽지 않으신다면) 다시 은미해가며 읽어보고 싶어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