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 - 1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독서 모임에서는 연간 계획으로 토지 전권(20권) 읽기를 시작했다.

매월 격주로 1권씩, 월 2권씩 읽고 나면 한 해가 저물듯하다.

첫번째 모임에서는 토지 1부 1권을 각자 읽어 온 후 부록에 있는 '등장 인물 소개'편과 제1편 어둠의 발소리 '서(序)' 부분을 함께 낭독했다.

별도의 발제 없이 낭독만으로도 깊이 읽기가 가능할 수 있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다음 주 모임에서는 2권을 각자 읽고 한 가지씩 발제를 해 오기로 했다.

2권을 다 읽고 난 지금 내 머릿속에는 '무명번뇌(無明煩惱)' 네 글자가 선명히 남아 있다.

최참판댁 일가의 비극이 결국은 무명번뇌(無明煩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무명번뇌(無明煩惱)가 무엇인지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번뇌(煩惱)란 중생의 심신을 혼돈시키고 불교의 이상을 방해하는 장애.

무명(無明)은 우치이며 가장 근본인 번뇌이다이는 자기 중심으로 인해 공평, 정확한 진실된 지견(知見)이 없는 것이다아집에 의한 삿된 분별성이 무명이며, 삿된 마음가짐이 무명의 몸이다일체의 사악과 번뇌의 근원이 무명에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다음 주 독서 모임에서는 윤씨부인과 최치수의 무명번뇌(無明煩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볼까 한다.


1. 윤씨부인의 눈물은 어떤 의미이며, 윤씨부인에게 김개주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윤씨부인의 무명번뇌(無明煩惱)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윤씨는 김개주가 전주 감영에서 효수되었다는 말을 문의원으로부터 들었을 때, 무쇠 같은 이 여인의 눈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81)

 

윤씨부인은 끊임없이 매질을 하던 형리를 잃었다. 생전의 최치수는 아들이 아니었으며 가혹한 형리였던 것이다. 그것을 윤씨부인은 원했다. 원했으며 또 그렇게 되게 만든 사람이 윤씨부인이다. 그 사실을 지금 윤씨부인은 공포 없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엾은 형리, 세월을 물어뜯으며 물어뜯으며 지겨워서 못 견디어 하다가 그 세월에 눌리어 가버린 사람, 최치수는 윤씨부인을 치죄(治罪)하기 위해 쌓아올린 제단에 바쳐진 한 마리의 여윈 염소는 아니었던지, 사면(赦免)을 받지 아니하려고 끝내 고개를 내저었던 윤씨부인이기에 매를 버릴 수 없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단 앞에서 지겨운 시간을 뜯어먹어야 했던 한 마리의 여윈 염소는 아니었던지. 산에서 돌아오던 날 어머님 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달려온 치수를 뿌리친 그때부터 윤씨부인은 죽은 남편의 아내가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편의 아들인 치수의 어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의식의 심층에는 부정(不淨)의 여인이며 아내와 어미의 자격을 잃은 육체적인 낙인이 빚은 절망 이외의 것이 또 있었다. 핏덩어리를 낳아서 팽개치고 온 뼈저린 모성의 절망이었다. 전자의 경우 어미의 자격을 빼앗은 것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스스로 어미의 권리를 버린 것인데 결국은 두 경우가 다 버렸다 함이 옳은 성싶다. 그러나 버림은 버림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적악(積惡)이며 그 무게는 짊어져야 하는 짐이었다. 짐은 땅이 꺼지게 무거운 것이었다. 양켠에 실은 무게를 느끼면 느낄수록 허리는 휘어지고 발목은 파묻혀 들어갔다. 조금만 움직여도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그러나 윤씨부인은 이십 년을 넘게 모질게 지탱해 왔던 것이다. 자신의 살을 가르고 세상에 태어나서 젖꼭지 한 번 물려주지 못한 채 버리고 온 생명에 대한 소리 없는 통곡과 고독한 소년기를, 비뚤어진 청년기를, 권태에 짓이겨져 폐인을 방불케 했던 장년기를, 그렇게 변모되어온 최치수를 바라보며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쪽 짐짝은 땅바닥에 굴러떨어졌고 한쪽 짐짝은 반공중에 곤두선 채 윤씨부인은 그 아래 서 있는 것이다. 그 균형이 부서져서 윤씨부인이 산산조각으로 난 것은 아니었다. 윤씨부인의 의식의 심층을 한층 더 깊이 파고 내려간다면 죄악의 정열로써 침독(侵毒)되어 있는 곳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그의 바닥에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비극이 삼줄과 같은 질긴 거미줄을 쳐놓고 있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 남자, 그 남자의 비극과 더불어 살아온 윤씨부인이 사면을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요 피맺히는 아들의 매질을 원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뜻밖의 재난으로써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운명을 원망하지도 않았었다. 영원히 사면되기를 원치 않았던 그에게는 그와 같이 끈질기고 무서운 사랑의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몹쓸 어미로고, 이 죄 많은 어미,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거짓으로라도, 아픔 위에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라도 치수에게는 어머니였어야 했던 자기 자신을 깨달은 것이다. 산산조각이 난 것은 저울대에 실렸던 무게의 변동 탓이 아니었다. 그것은 회한 때문이었다. 공포 없이 생각할 수 없는 치죄자(治罪者)로서의 최치수, 그는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도현의 고초를 겪는 망모의 구원을 위해 석가에게 법을 물었던 목련존자(目連尊者)일 수 없는, 심판장의 형리로 그 어미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이다. 목련존자의 악모 이상의 악모임을 윤씨부인은 깨달은 것이다.(402~404)


2. 윤씨부인에게서 비롯된 무명번뇌(無明煩惱)가 아들인 최치수에게도 이어집니다. 치수는 끊임없이 충동과 분별 사이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결국 살해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고 마는데요, 치수의 이 싸움에서 승자는 누구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무명번뇌(無明煩惱)에 빠지지 않고 벗어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한편 치수 역시 우관과 흡사하게 밖으로 튕겨져 나가려는 충동과 그것을 거머잡는 분별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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