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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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시대도 변하고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그때와는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중략)

 

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긴 세월이 지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나는 과거의 나 자신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은 무척 흥미롭고 놀라운 체험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320쪽)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저자는 '농촌법학회'라는 대학 내 학습 서클에 가입해서 "좋은 책을 읽고,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한 발제를 하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에서 "진짜 지성인"으로 길러졌다고 고백한다.

또한 내 인생 최고의 책으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꼽으며,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제도의 전제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인간의 결의를 가지고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영향받았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불량 식품'을 판다.  '불량 식품'은 색깔과 냄새, 모양, 가격이 모두 매력적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불량 식품'을 먹으면서 자란다.  반면 필수영양분이 풍부한데도 맛을 몰라서, 또는 그게 몸에 좋은 것인지 몰라서 먹지 않고 지나간 식품도 있다.  책도 그런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읽지 말았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은 책을 적잖이 읽었다.  균형 잡힌 지성을 키우려면 꼭 읽어야 할 책인데도 잘못 생각하거나 몰라서 빠뜨린 것이 적지 않다.(207쪽)

 

그렇게 선택되어 씌어진 이 책은 총 14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문학이 5권, 비문학이 9권이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저자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책을 골라서 다룬, 지도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 몇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인이 읽기에 만만치 않은 책들이다.

그마저도 『역사란 무엇인가』를 제외하고는 청소년용으로 축약된 『죄와 벌』과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광장』을 접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 소개되어 있는 책 모두가 내게는 너무도 유명해서 제목은 익히 알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생경한 책들이었다.

그런 책을 저자는 20대에 읽었다니 역시 지식인은 우리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40년 넘게 살면서 아직도 그런 책들을 읽어 보지 못한 나의 무지에 부끄러웠다.

대학 생활 4년 내내 전공 공부도, 동아리 활동도, 스펙 쌓기도, 소위 말하는 '데모'조차도 제대로 한 일 없이 졸업해서 취업 전선에 내던져졌으니,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라도 열심히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노력을, 그 '정신적·문화적 유산'을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정진해야겠다.

 

그런 평범한 소시민인 내게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이 바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였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처음 읽은 후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솔제니친과 수많은 소련 국민을 가두고 죽였던 강제노동수용소와, 그런 야만적 장치를 불가결한 구성 요소로 보유했던 사회주의 체제는 이미 사라졌다.  동서 이데올로기 전쟁의 포화 속에서 때로는 부당하게 비난받았고 때로는 터무니없이 찬양받았던 작가 솔제니친도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면서, 그런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다 견디고 내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25년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201쪽)

 

저자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소개하면서 "노동하는 인간은 아름답다"라는 꼭지에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존엄을 빼앗긴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하루"라는 꼭지에서는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면서 주인공 '슈호프'가 『죄와 벌』에 나오는 '소냐'와 '두냐' 그리고 『대위의 딸』에 등장하는 '마리야 이바노브나'를 연상시킨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들은 대체로 이런 사람을 건전하고 전형적인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은 단순한 원칙에 따라 소박하게 살면서, 자기에게 맞는 분수와 품격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이다.(190쪽)

 

결국 지금 '나의 소망과 수준에 맞는 말'이 바로 위의 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를 하면 할수록, 높은 수준의 지성인들이 써 놓은 저작물과 대화하며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그들이 이룩한 결과물과 비교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는 내 모습이,

책 속을 벗어난 현실 세계에서의 주변인들과 비교해서도 여전히 한참 무능력한 내 모습에,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많다.

그런 내게 "단순한 원칙에 따라 소박하게 살면서, 자기에게 맞는 분수와 품격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독서를 통해 "균형 잡힌 지성"을 키운다는 것 역시 땀흘리며 노동하는 생활인의 모습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순간이었다.

 

이제 무엇이 되기 보다 어떻게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작고 하찮은 일,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마저도 최선을 다하는 품격있는 인간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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