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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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독서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관은 1인용 필사실을 꾸며 놓은 전시관이었는데 줄이 길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머무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오전에만 잠깐 다녀왔다.
그 중 ‘문학동네’관에 갔다가 독서 동아리 지원비로 ‘소설가 50명이 추천한 2016 올해의 한국소설’ 『쇼코의 미소』와 2017년 버전 『바깥은 여름』을 구입했다.
그 중 『바깥은 여름』이 내게로 왔다.
제목 탓이었는지 정말로 한 여름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는데 7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입동』은 5살 어린 아이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그 깊은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물론 우리에겐 단 일원도 건드리지 않은 보험금 통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한푼도 써서는 안 되는 돈이었다. 한 번도 상의한 적 없지만 아내도 나도 암묵적으로 그렇게 약속하고 있었다.”(24쪽)
“-그 돈 헐자. 빚 갚아야지.
-……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겨우 참았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잠을 설치다, 혹 그 돈을 쓰자 하면 아내가 나를 괴물로 보지 않을까 뒤척인 날들이 떠올랐다.”(32쪽)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36쪽)

문득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보상금으로 떼돈을 번 것처럼 호도하는 언론과 어이없는 죽음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부모들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한 짐승들이 떠올랐다.
신이 있다면 저들을 용서하지 말기를.

『노찬성과 에반』은 골육종을 앓던 아버지가 자살을 한 후 할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찬성에게 나타난 유기견 ‘에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할머니는 찬성이의 끼니 외에 마음까지 돌봐줄 여유는 없다.
그런 찬성에게 에반은 상처를 핥아주고 정을 나누지만 이미 늙은 개는 노화와 함께 암까지 걸린다.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찬성은 초등생의 몸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지만 어린 찬성을 유혹하는 물건들은 넘쳐난다.
그렇게 에반의 안락사는 미루어지고 결국 에반은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고 만다.
이 비극적 이야기 속에서 문득 개가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람에겐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으니까.
찬성의 아버지에게도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금지된 상상을 해 본다.

『건너편』은 오래된 연인들의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만난 연인들이 한 쪽은 시험에 붙어 공무원이 되고 다른 한 쪽은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마는, 그래서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해보지만 그마저도 잘 풀리지 않는 연인들에게 벌어지는 균열의 이야기.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115쪽)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118쪽)

이수도 도화처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함께 번듯한 직장 생활을 했다면 아마 둘은 이미 결혼을 했을 게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날도 있었을 게다.
그때도 도화는 이혼을 결심했을까?
어쩌면 결혼은 연인들의 이별을 막기 위한 예방 주사가 아닐까?
예방 주사를 맞는다고 항상 병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니까.
이별은 언제나 가슴 아프고 잔인하다.
그럼에도 삶은 현실이니까 내가 도화의 엄마라면 쌍수 들어 환영하겠지.
나는 속물이니까.

『침묵의 미래』는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사는 ‘소수언어박물관’ 속의 화자들의 ‘언어(영)’에 대한 이야기다.
읽는 내내 김영하 작가의 단편 『오직 두 사람』이 떠올랐다.
내게는 다소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반복해서 읽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풍경의 쓸모』는 바람 나 집을 나간 아버지의 이야기와 시간 강사의 애환을 담은 정우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소설이 진행된다.
또한 이 책의 제목 『바깥은 여름』이 탄생한 단편이기도 하다.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 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 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158쪽)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173쪽)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쪽)

『가리는 손』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선입견, 이혼 가정에 대한 편견, 노인 혐오 등등이 잘 버무려진 이야기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214쪽)

결국 인종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사회 폭력에 대해 부모와 자녀에게는 육아서로서, 성인에게는 다양한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소설이란 생각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함께 사망한 남편을 잃은 아내 명지의 이야기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266쪽)

어린 아이의 죽음을 다룬 『입동』과 비교할 때 남편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덜 슬프게 읽혔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모 없이 동생과 단 둘이 살다가 혼자 남은 누나의 슬픔을 대면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입동』에서는 부부가 함께 슬픔을 나누고, 명지는 친정 식구들과 슬픔을 나누는데 홀로 남은 어린 누나는 누구와 슬픔을 나눌까 싶어 가슴이 먹먹했다.

‘소설가 50명이 추천한 2017 올해의 한국소설’이라는 문구를 보고 책을 구입한 건 맞지만, 그럼에도 마케팅용 수사가 아닐까 의심하며 읽었다.
소설을 모두 읽고, 후기를 쓰느라 다시 한 번 되새기다 보니 한 편 한 편이 다 보석 같다.
한 때 소설은 시간 때우기용이나 오락거리가 아닐까 싶어 멀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지혜와 부모로서의 올바른 자녀 양육법과, 세상살이에 지쳐 위로받고 싶을 때 심리 상담용으로 소설만큼 좋은 분야는 없는 것 같다.
‘소설가 50명이 추천한 2016 올해의 한국소설’ 『쇼코의 미소』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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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집안의 형제들 1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서상범 옮김, 홍정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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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고 돈 있는 사람 앞에서 자꾸만 비굴해지려는 것처럼 세계적인 고전이라고 널리 알려진 책 앞에서도 나는 주눅이 든다.
남들은 읽자마자 바로 책 속에서 보석을 건져 올리는데 나만 그 가치를 몰라 볼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데 망설임이 있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 훌륭한 해석들을 해주었고 내가 딱히 더 덧붙일 말도 없거니와 설령 있다해도 고전에 문외한인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줄 이는 없을테니까.
게다가 나는 이 고전을 원문 그대로 번역한 책이 아닌 청소년용 축약본으로 읽었기에 더더욱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없기에.
그럼에도 이렇게 몇 자 적어보기로 한 건 나중에 축약본이 아닌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제대로 된 책을 읽었을 때의 후기와 어떻게 다른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의 세계 명작 시리즈는 비록 청소년용으로 제작된 책이기는 하지만 고전을 많이 접하지 못한 성인이 읽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현직 국어 교사들의 작품 해설이 덧붙여져 고전에 대한 깊이 읽기를 도와주고 있다.
나 또한 이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앎과 배움의 기쁨을 살짝 맛보았다.

부끄럽게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집안의 형제들』이 미완성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어쩐지 책의 첫 머리에 십삼 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서 내내 십삼 년 전의 이야기만 하다가 소설이 끝나서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작품 해설을 통해 이 소설이 십삼 년 후 알렉세이가 황제를 암살하고 십자가에 매달리는 내용을 그릴 예정이었다는 내용을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순수하고 고결한 청년 알렉세이가 어쩌다 과격한 혁명 전사가 되었을지 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아쉽기만 하다.


작품 해설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러시아 사람들의 독특한 이름 체계였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겨뤘던 스웨덴 선수들의 성이 하나같이 '무슨 무슨 손'으로 끝나는 걸 보면서 스웨덴의 이름 체계에 대해서 알게되었는데 러시아도 비슷한 이름 체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인도 이름만 알면 그 아버지의 이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 이름의 특징은 '본인 이름+아버지 이름+성"으로 불린다고 한다.

표도르의 아들이라면 무조건 이름 가운데 표도로비치가 들어가고 표도르의 딸이라면 표도로브나가 들어가는 식이다.

그러니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도스토옙스키 가문의 미하일의 아들 표도르라는 뜻.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처럼 성을 제외한 '이름+부칭'으로만 부르는 것이 러시아식 존칭이라고 한다.

따라서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경우 반드시 이름과 부칭을 함께 불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 인의 모든 이름에는 애칭이 존재하는데 가까운 사이에서는 누구나 이름 대신 애칭을 사용하기에 원작에는 인물 간 애칭을 많이 사용하는데 청소년용 책에서는 독자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애칭을 생략하고 있다.

원작에서 '드미트리'의 애칭은 '미챠'인데 애칭의 애칭은 '미첸카'라고 한다.

애칭의 애칭은 가족이나 부부, 또는 연인 사이에서만 부른다고 한다.

처음부터 원작을 읽었다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이름을 구별해내느라 정작 사건의 내용이나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에 대해서까지는 제대로 된 이해조차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내가『죄와 벌』 이후 두 번째로 읽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다.

다음 백과 사전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 사상, 종교 등에 관한 도스토옙스키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작품으로, 그리스도교와 무신론의 대결을 담고 있다.  뛰어난 심리 묘사와 신에 대한 대담한 저항, 도덕적이고 지적인 긴장감 등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가 보다.


'친부 살해'라는 소재를 가지고 아버지와 네 명의 형제가 돈과 애정, 무신론과 깊은 신앙심 사이에서 끝없이 다투며, 또한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의 과정이 밝혀지기까지 주요 인물들의 다양한 내면 심리와 사건의 묘사가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재미있게 읽히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했던 마음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히 죄인이라며 유죄를 인정하는 모습과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채 절제된 삶을 살던 무신론자 이반이 자신의 부추김 때문에 스메르쟈코프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부분에서는 『죄와 벌』의 창녀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결국 작가는 신에 대한 깊은 믿음만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그리스도적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비록 그리스도교인은 아니지만 이반의 '대심문관'을 통해 인간이 '양심의 자유 vs 평안함'과 '자유로운 사랑(신앙) vs 복종(기적의 노예)'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시험에 들지 않고 자유와 사랑과 평안함 모두를 쟁취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너는 그들에게 하늘의 양식을 약속했지만, 무력하고 죄 많은 비천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과연 하늘의 빵이 지금 땅 위에서 먹는 빵만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인간이 선악의 자유로운 선택보다 평안함을 더욱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잊었느냐? 물론 인간은 양심의 자유를 가장 매혹적으로 여기지만, 또한 그것보다 더 괴로운 것도 없다. 그런데 너는 인간의 양심을 영원히 평안케 할 확고한 근거를 주지 않은 채 수수께끼처럼 아리송해서 인간이 힘에 겨워하는 자유만을 주려 한다. 너는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 양심에 책임을 지워 더 큰 괴로움을 주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그 결과 인간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각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력한 인간들의 양심을 영원히 정복해서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바로 기적과 신비와 권위이다. 그런데 너는 이 세 가지 모두를 거부했다.

너는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걸 믿겠다.‘라고 희롱할 때에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때도 역시 인간을 기적의 노예로 삼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신앙을 심어 주려고 내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너는 자유로운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 복종하고자 하는 의지를 외면한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했다. 기적을 부정하는 인간은 신까지도 부정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신보다 기적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의 사업을 수정해 그것을 기적과 신비와 교권의 위에 세워 놓았다. 그러자 민중은 다시 자기들을 양 떼처럼 이끌어 줄 목자가 생기고 끝없는 고통의 원인인 그 무서운 양심을 마침내 제거해 줄 거라며 기뻐했다.(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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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내가 제일 어렵다 - 마음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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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을 걷어내고 긍정적인 면을 조명하며 그 효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읽고 나면 나를 지키는 비밀과 사랑스러운 거짓말에 대해 죄의식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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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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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시대도 변하고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그때와는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중략)

 

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긴 세월이 지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나는 과거의 나 자신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은 무척 흥미롭고 놀라운 체험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320쪽)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저자는 '농촌법학회'라는 대학 내 학습 서클에 가입해서 "좋은 책을 읽고,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한 발제를 하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에서 "진짜 지성인"으로 길러졌다고 고백한다.

또한 내 인생 최고의 책으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꼽으며,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제도의 전제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인간의 결의를 가지고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영향받았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불량 식품'을 판다.  '불량 식품'은 색깔과 냄새, 모양, 가격이 모두 매력적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불량 식품'을 먹으면서 자란다.  반면 필수영양분이 풍부한데도 맛을 몰라서, 또는 그게 몸에 좋은 것인지 몰라서 먹지 않고 지나간 식품도 있다.  책도 그런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읽지 말았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은 책을 적잖이 읽었다.  균형 잡힌 지성을 키우려면 꼭 읽어야 할 책인데도 잘못 생각하거나 몰라서 빠뜨린 것이 적지 않다.(207쪽)

 

그렇게 선택되어 씌어진 이 책은 총 14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문학이 5권, 비문학이 9권이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저자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책을 골라서 다룬, 지도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 몇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인이 읽기에 만만치 않은 책들이다.

그마저도 『역사란 무엇인가』를 제외하고는 청소년용으로 축약된 『죄와 벌』과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광장』을 접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 소개되어 있는 책 모두가 내게는 너무도 유명해서 제목은 익히 알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생경한 책들이었다.

그런 책을 저자는 20대에 읽었다니 역시 지식인은 우리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40년 넘게 살면서 아직도 그런 책들을 읽어 보지 못한 나의 무지에 부끄러웠다.

대학 생활 4년 내내 전공 공부도, 동아리 활동도, 스펙 쌓기도, 소위 말하는 '데모'조차도 제대로 한 일 없이 졸업해서 취업 전선에 내던져졌으니,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라도 열심히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노력을, 그 '정신적·문화적 유산'을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정진해야겠다.

 

그런 평범한 소시민인 내게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이 바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였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처음 읽은 후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솔제니친과 수많은 소련 국민을 가두고 죽였던 강제노동수용소와, 그런 야만적 장치를 불가결한 구성 요소로 보유했던 사회주의 체제는 이미 사라졌다.  동서 이데올로기 전쟁의 포화 속에서 때로는 부당하게 비난받았고 때로는 터무니없이 찬양받았던 작가 솔제니친도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면서, 그런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다 견디고 내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25년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201쪽)

 

저자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소개하면서 "노동하는 인간은 아름답다"라는 꼭지에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존엄을 빼앗긴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하루"라는 꼭지에서는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면서 주인공 '슈호프'가 『죄와 벌』에 나오는 '소냐'와 '두냐' 그리고 『대위의 딸』에 등장하는 '마리야 이바노브나'를 연상시킨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들은 대체로 이런 사람을 건전하고 전형적인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은 단순한 원칙에 따라 소박하게 살면서, 자기에게 맞는 분수와 품격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이다.(190쪽)

 

결국 지금 '나의 소망과 수준에 맞는 말'이 바로 위의 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를 하면 할수록, 높은 수준의 지성인들이 써 놓은 저작물과 대화하며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그들이 이룩한 결과물과 비교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는 내 모습이,

책 속을 벗어난 현실 세계에서의 주변인들과 비교해서도 여전히 한참 무능력한 내 모습에,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많다.

그런 내게 "단순한 원칙에 따라 소박하게 살면서, 자기에게 맞는 분수와 품격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독서를 통해 "균형 잡힌 지성"을 키운다는 것 역시 땀흘리며 노동하는 생활인의 모습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순간이었다.

 

이제 무엇이 되기 보다 어떻게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작고 하찮은 일,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마저도 최선을 다하는 품격있는 인간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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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0
로얼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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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제임스는 마음씨 고약한 두 고모와 살면서 온갖 구박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그 할아버지의 마법에 빠진 메뚜기, 지네, 거미, 지렁이, 반딧불이, 누에, 무당벌레와 함께 슈퍼 복숭아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온갖 상상할 수도 없는 신기하고 놀라운 모험 속에서 일행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각자의 주어진 재능을 발휘해 위기를 헤쳐나가며 결국엔 여행을 안전하게 마친다.

제임스는 지혜를 발휘하고,
메뚜기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흥을 돋우고,
반딧불이는 어두운 공간에 빛을,
지렁이는 제 몸을 미끼로 갈매기를 유인하고,
거미와 누에는 실을 뽑아 튼튼한 밧줄을 만들고
지네는 줄을 끊어 착륙을 시도하고,
무당벌레는 따뜻한 마음으로 팀을 위로하는 등
모두가 한 팀이 되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에 대해,
저마다 주어진 재능이 다르지만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며,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공동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어린이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어른의 눈으로 읽는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는 너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 전개에 이야기 속으로의 몰입이 어려운 책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라면, 특히 공상과 상상의 세계로의 스릴 넘치는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틀림없이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을게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이어 '로알드 달'의 두 번째 작품을 읽으며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다른 작품들도 모두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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