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옆얼굴로 먼저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를 상상해보았다. 카리스마, 결단력, 고집스러움, 높은 자존감. 그렇게 그러졌다. 88년생, 한국 나이로 31세인 조진주는 2006년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20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 이어 2014년에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실력파 연주자이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가서 현재는 캐나다 맥길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데다가 연주 솜씨뿐 아니라 말 솜씨와 글솜씨가 대단하다. 내년엔 '객석'에 연재하던 에세이를 모아 출간한다니 다재다능해서 더욱 매력적이다.
https://youtu.be/C9Z_YFjszUY
2019년 4월 중반부터 말까지, 조진주는 서울에 한참 머무르려나 보다. 4월 19일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회"를 시작으로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 무대에 연일 오르는 스케줄이 잡혀 있다. 30대에 들어섰어도 연주하는데 체력적 변화가 없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동감이요! 4월 19일 독주회는 인터미션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한 90분 연주였건만, 객석의 성원에 "나의 살던 고향"을 앵콜곡으로 가뿐히 들려주었으니 말이다.
음치, 박치, 클래식 백지상태인 나는 '가나다라' 배우는 마음으로 공연장 순례를 다니는데, 이번 '조진주의 독주 무대'는 익숙한 뷔페가 아닌, 아주 드문 기회에나 맛볼 수 있는 명인의 밥상을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연주된 4곡 중에서, 오로지 "Bach"의 "파르티타 제2번 D단조"만 익숙했다. 처음 들어보는 나머지 3곡 중 2곡은 2010년대에 작곡된 컨템포러리 음악이었다. 조진주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rock and roll," 그 중에서도 "메탈리카 Metallica" 느낌의 곡이다. '귀에 친숙해서 쉽게 소비되는 음악만 하려고 이렇게 애써 연습하고 공부하지는 않았다'며 혁신적 시도를 꾀하는(연주회에 드레스가 아닌 정장 팬츠 차림인 것도 그 한가지로 보고 싶다) 그녀는 포스터 얼굴 옆선에서 전달하는 만큼이나 '고집 세고, 소신 있는,' 실로 그런 성향의 예술가인듯하다.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 공식 누리집(Photo by Denis Kelly)
2019년 4월 19일 독주회 선곡의 이유를 조진주는 이렇게 밝힌다. 2014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조진주와 선의의 경쟁을 했던 이들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를 두고 한 남성 전문가가 비아냥 거리는 뉘앙스로 칼럼을 썼나보다. "어떻게 최종에 오른 6명이 모두 여성냐?"라고. 조진주는 "속된 말로 '빡쳤다. 여성 예술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통쾌하게도 그녀는 "인디애나 콩쿨"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지는 카네기 홀 무대에서 일부러 21세기 "여성 작곡가"의 곡을 2곡이나 선곡하며 카운터펀치를 날렸다고 한다. 두 곡중, 제목부터가 힘 넘치는 "String Force"는 조진주의 연주로 유튜브에서도 들어볼 수 있다.
매력 넘치는 예술가이다. 4월 19일 티엘아이 아트센터 연주, 고맙습니다.
사족..... 티엘아이 아트센터, 클래식 음악 전용 아트홀로서 이름값하는 좋은 공간이지만 객석 앞줄과 뒷줄에서의 청음 경험이 사뭇 다르다. 뒤 줄에 앉았더니, 앞 좌석 관객들 몸 뒤척이는 소리, 겨울 점퍼 입고 사각거리는 소리, 구둣발 바닥에 대는 소리, 잔기침하는 소리, 정말 별 소리가 다 섞여 소리 뭉치가 돼서 날아오는 기분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처럼 잔 소음이 많았지만 Bach 연주할 때만큼은 조진주의 연주에 모두 몽환상태일 정도로 몰입했는데 잡음이 전무했다는 점! 이 많은 청중을 완전히 몰입시킬 수 있는 조진주의 바이올린 선율이란! 음악의 힘이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