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땅 아이들 한울림 지구별 그림책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안민희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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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땅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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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함의 상징, 아이들과 폭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종종 총칼의 희생자로 묘사되어 어른들의 동정과 부끄러움을 유발할지언정 자발적으로 총칼을 집어 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기의 아이들>에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폭력을 추구하고, 폭력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아이들은 여느 세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에 삽니다. '무기의 땅'이라는 그 공간은 온통 무기 투성이입니다.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 아이들은 무기 사용법을 익히고 폭탄을 가지고 놉니다. 부모님 역시, 아이들의 사격술이 늘어갈수록 흐뭇해하며 모의 사격 놀이를 장려합니다. 여섯 살 난 꼬마 독자의 시선에도 이런 세상은 어이가 없어 보이나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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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땅' 아이들은 낮에 폭탄으로 만들어진 축구공을 차고 노는 것으로 모자라는지, 밤에도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곰 인형을 안고 잡니다. 교육의 힘을 다시금 무섭게 느낍니다. '전 국민의 군인화'를 추구하는 '무기의 땅'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병기로 커나가니까요. 생각도, 행동도, 감정도 부지불식간 통제당하여 군인과 다를 바 없이 자랍니다. 어린시절부터 폭력에 하도 길들어서 폭력성에 무감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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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인 '무기의 땅' 어린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대상도 형체도 없기에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 적은 바로 꿈이었습니다. 온통 초록인 '초록의 땅' 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꿈속에 나오는 꼬마들이 자꾸 자신들을 초록의 땅으로 불러대는 것 같아 불안해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을 억압하기 위해 다양한 약을 먹입니다. 소용없었습니다. 초록 땅의 꿈은 아이들을 자꾸 찾아왔습니다. 결국, 직접 그 초록의 땅을 찾아가서 꿈속의 아이들을 혼내주기로 한 무기의 땅 아이들. 탱크를 타고, 총과 총알로 무장하고는 남쪽으로 행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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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초록의 땅에서 적을 찾아내 혼쭐내려던 무기의 땅 아이들은 '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뭔가 증오하고 파괴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아예 '적'이란 존재하지조차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초록 땅에서 '적'을 찾아다니는 사이 자연스레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에 길듭니다. 아이들은 더는 '적'을 찾거나 총과 총알을 쓸 필요조차 없어졌습니다. <무기의 땅 아이들>을 그린 마야 카스텔리츠는 전쟁의 폭력성,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회색은 차차 거두어가는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초록과 파스텔톤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웁니다. 어린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합니다. '증오하고, 싸우는 세상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초록의 평화가 자연스러움이다.'
*
<무기의 땅 아이들>을 읽고, 비교적 책장을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는 독자라면, 그는 '무기의 땅'을 단지 상상 속 공간으로 한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 브라네 모제티치는 <무기의 땅 아이들>을 실제 전쟁의 참혹함을 일상으로 무디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존재함을 통감하며 썼을 거예요. 그래서, 읽고 나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아무리 평화를 이상으로 추구하고, 염원할지언정 2016년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아이가 전쟁의 무고한 피해자로 생을 마감하는지요. 혹은 성찰할 사이도 없이 인간 병기로 길러지는지. 어떻게 해야 달라질 수 있을지.
비록 한 줄로 답은 내릴 수 없지만, 평화를 희구하는 기도를 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끌어내게 해준다는 점에서 <무기의 땅 아이들> 참 고마운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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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대장 조 - 세상을 울고 웃긴 조셉의 진짜 이야기 딱따구리 그림책 11
캐슬린 크럴.폴 브루어 글, 보리스 쿨리코프 그림, 김난령 옮김 / 다산기획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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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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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어렸을 때부터 적성 교육을 '자~알' 받아왔어도,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찾기도 어려워하는 어른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럴 땐,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 사람이 더 부러워집니다. 여기 부러워할 만한 꼬마가 있습니다. 고작 여덟 살 때, 자신이 탁월한 괄약근 조절력을 지녔음을 알게 된 꼬마이지요. 이름은 조셉 푸졸(Joseph Pujol 1857~1945)이고, 프랑스인입니다. 조셉은 여덟 살 때 우연히 발견한 자신을 재능을 갈고닦았습니다. 엄청난 훈련과 연습을 거쳐서 괄약근으로 공기를 빨아들였다가 의지대로 밖으로 뿜어내며 다양한 소리를 내었지요. 그의 독특한 재능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어요. 군대에서도 대포 소리를 흉내 낸 조셉의 방귀 소리는 전우들을 포복절도하게 해주었습니다. 제빵사로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가장이 되어서도, 방귀 하나로 열 명이나 되는 처자식을 웃게 만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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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거리에서 광대분장을 하고 공연했습니다. 낮에는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빵 굽던 제빵사였지만, 밤이 되면 골목 안을 방귀 소리와 거리 관중들의 웃음소리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이 탁월한 인기 스타가 되었다지요. 인기가 커지자 조는 당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물랭 루주에서도 공연했어요. 공연 티켓값이 평범한 노동자의 한 달 월급에 맞먹었어도 공연 표는 불티나게 팔렸고, 조는 하룻밤에 8,000프랑을 벌 정도로 성공했다지요. 심지어는 대통령에 왕과 왕비까지도 기꺼이 조의 공연을 보러 물랭 루주를 찾았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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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공연이면, 점잖은 파리지엔느가 관객석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웃었을까요? 조셉은 방귀로 휘파람 소리, 재채기 소리, 총소리, 닭 소리, 심지어는 베토벤의 명곡까지 연주했다고 해요.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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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대장 조>는 '휘~리리리~뽕,' '뽕보로 뽕!,' '뿡빠라 빠빠 풍팡퐈!' 등, 방귀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 덕분에 꼬마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크게 선물합니다.  나아가, 직업의 귀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근엄했던 파리지엔느들에게 공적인 장소, 사람들 앞에서 방귀 뀌는 일은 금기에 가까운 결례였는데, 조셉은 사회적 금기를 조롱이라도 하듯, 방귀 뀌기를 하나의 공연 장르화 시키고 성공했잖아요. 만약 그가 여덟 살 때 자신의 재능을 알고도, 이후 노력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가 이 세상 전무후무한 유쾌한 전복자로 기억될 수 있는 이유야말로, 그의 노력이겠지요? 노력했기에 방귀대장 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셉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진짜 이유야말로, 그의 방귀 뀌는 재주가 아니라 그의 성실한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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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위대한 클래식
요한나 슈피리 지음, 김수진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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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Hei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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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소녀'라는 별명의 '하이디'를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친숙하게 여기는 이도 많겠지만, 나는 책으로 더 친숙하다. 어린 시절, <하이디>는 읽고 또 읽던 책 중 한 권이었다. 돌이켜 생각건대 상당한 수준의 완역본이었다. 알프스 풍경의 섬세한 묘사며, 하이디와 클라라의 우정, 하이디의 태양 같은 환한 성품이 문장 속에서 살아 있었다. 커서도 종종 생각나는 <하이디>, 참 흥미롭게도 그 다양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나는 유독 '흰 빵'을 기억한다.  아니 하이디는 왜 그렇게 '피터네 할머니'께 그 흰 빵을 사드리고 싶어 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와 30년의 시차를 두고 <하이디>를 읽은 어린 딸도 대뜸 같은 질문부터 한다. "하이디한테는 왜 그렇게 흰 빵이 중요해요?" 어린 아이의 마음과 30년 전 내 어린마음이 묘하게 공명하면서 눈물이 흐른다.

*

<하이디>를 몇십 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또 울었다. 어렸을 때도 이렇게 벅차오르는 감동을 매번 느꼈는데. 그래서 고전인가? 그래서 사람더러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하이디'라는 순수한 존재, 주변에 기쁨을 주는 태양 같은 존재에 경외감까지 느낀다.

 

 

 

 

 

 

 

 

 

 

 

<하이디>의 작가 요한나 슈피리(Johanna Spyri 1827-1901)은 스위스 태생의 늦깎이 작가이다. 의사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변호사인 남편 사이에서 외아들을 두었다. 1884년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잃고, 1886년 홀로 알프스로 돌아가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이디>는 작가가 불과 4주 만에 탈고한 작품이라고 한다. 1830년에 출판된 라는 작품이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2010년에 제기되었지만, 요한나 슈피리 안에 뜨거움이 있기에 이 아름다운 작품이 4주 만에 태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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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는 '태양의 아이'로 타고난 듯, 밝고 꾸밈이 없다. 부모님을 아주 어려서 여의고 이모 손에서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에게 인도된다. 알프스로 오던 첫날, 두꺼운 외투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갓 짠 염소젖을 꿀꺽꿀꺽 들이켜는 하이디는 태양의 아이라 거침이 없다. 그 자신이 이미 사랑의 화신이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온기와 생명력을 나누어주고도 본인은 정작 모른다. 의식하고 '베푸는' 선행이 아니라, 그 존재감 자체로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경우이기에. 하이디의 존재감으로 '피터네 할머니'는 음울한 노년의 어둠에서 빛을 찾았고, 고집스레 은둔 생활을 하던 하이디의 친할아버지도 마음을 연다. 부자집 딸이지만 다리를 쓰지 못해 온실 안 화초로 자라던 클라라 역시 하이디를 통해 생명의 활기를 열망한다.

*

빛의 화신, 하이디. 그러나 보살핌이 필요한 여덟 살, 아이이다. 타고난 생명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빛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고향 알프스와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몽유병까지 걸려버린다. 그런 하이디를 클라라의 아버지는 좋은 약으로 치료하자고 하지만, 현명한 의사 선생님은 진정한 처방을 한 방에 내려준다. 그것은 바로, 하이디의 마음이 원하는 그것. 하이디의 내면이 부르는 그곳, 그 사람들.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치유한다. 하이디는 알프스로 돌아갔고, 다시 초록 풀처럼 싱그럽게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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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용 하우스 출판사에서는 한국의 어린 독자를 위해 <하이디>를 출간하면서 완역 대신, '뒷이야기'라는 타이틀의 15장에서 클라라와 하이디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한다. 하이디가 떠난 뒤, 건강이 나빠진 클라라가 다시 하이디를 만나러 알프스를 찾은 후의 이야기가 몇 페이지에 요약된다. 압축된 이야기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자연의 치유력, 사람의 생명력. 근본이 가지는 힘을.

*

요즘 한국 어린이들의 입에서도 '착하게만 살아서는 안 된다. 착하면 바보.'라는 뉘앙스의 세속적 처세를 종종 듣는다. 1970, 80년대, 한국 사회를 채색하던 집합적 차원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는 사뭇 다른 강령이다. 어느 것이 맞다 그르다를 판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마다, 사회마다 이상화하는 어린이상, 인간상에는 변이가 있을테니. 그런데 그 변이조차 어쩔 수 없는 근본이 있다. '하이디'라는 상징적 존재가 보여주는 그 근본. 따뜻한 생명력이 넘쳐나는 존재는 타인의 삶까지도 밝히고 뎁혀준다.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그런 따뜻한 존재가 되도록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빛을 감아들이는 블랙홀같은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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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얄라알라 > 김선진 작가님의 작은 집 모델, ‘삼색 스튜디오‘ 다녀왔습니다.

<나의 작은 집>

 홍대 삼색 스튜디오 방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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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따사로움'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이 따스하며, 그 따스함을 기꺼이 타인에게 전해주고 싶어 하는 예술가. <나의 작은 집>을 읽고 상상한 작가, 김선진의 모습이었어요. 상수리 출판사의 초대를 받아 홍대 삼색 스튜디오에서 작가님을 만나보니, 상상 그 이상의 미모와 온화함을 갖추신 분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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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로율 99%. <나의 작은 집>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실제 삼색 스튜디오의 외관을 보고 탄성을 지릅니다.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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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는 이어집니다. 그림책 속, 소품과 가구들이 실제 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기꺼이 삼색 스튜디오의 이층까지 꼬마 손님들에게 개방해주셨어요. 노란색을 사랑하는 김선진 작가님. 책에서 본 똑같은 노랑 매트가 깔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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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 하나하나에서도 작가님의 예술가적 감성이 마구 느껴지네요. 손으로 직접 만든 종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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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 쉬링크 아트(Shrink Art)를 했어요. 작가님께서 쉬링크 아트 기법으로 아이들의 이름표를 일일이 만들어 주셨지요. 예쁜 이름표를 달고, 아이들도 각기 자신 작품 만들기 삼매경.  전자레인지에 넣고 몇 초후면 원래 사이즈의 1/7이 되기 때문에 쉬링크 아트라 한 다지요? 엽서 크기의 그림이 작은 사이즈의 작품으로 태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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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수리 출판사의 초대로 가을 날, 금요일 오후 행복한 시간 보냈습니다. 김선진 작가님의 아름다운 미모는 앞으로 실제 만나실 분들을 위해 아껴놓겠습니다. 초상권이 걱정되어서요^^ 아름다운 그림책만큼이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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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존스의 전설 산하세계문학 11
야코브 베겔리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산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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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존스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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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면, 작가를 '조금이나마' 알았다는 생각에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사그라지는 편인데 <샐리 존스의 전설 (원제:Legendem om Sally Jones)>의 작가인 야코브 베겔리우스(Jakob Wegelius)에 대해서는 달랐다.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책 읽고 난 후, 도리어 강렬해졌다.  그의 홈페이지(http://www.jakobwegelius.com/를 방문해보니, ' 1966년 스웨덴 태생' 수준의 소개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저절로 그려진다. 야코브 베겔리우스가 인간 존엄성을 추구하며 문학과 역사, 철학에 정통한 휴머니스트임.

*

웨덴 최고 문학상인 아우구스트 상을 받은 <샐리 존스의 전설>은 어린이 책으로는 드물게, 어른 독자를 위해 작가가 500여 쪽 분량으로 길이를 늘여 다시 썼다 한다. 그 정도로, 세대를 넘어 큰 감동을 주는 책이겠다. 처음엔, 단순히 모험 이야기로 알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가는 한 고릴라의 삶에 빗대어 인간 역사의 착취, 차별과 억압, 동시에 인간 존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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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의 고릴라는 '그놈의 스마트 폰' 에 필요하다는 콜탄 때문에 서식지를  빼앗기고 죽어 나가는 가련한 존재이건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00여 년 전에도 마찬가지로 인간 때문에 고달프게 살았다. 주인공 새끼 고릴라는 벨기에 군인의 습격을 받아 고릴라 무리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밀렵꾼들에게 팔렸다.  고릴라를 사람 아기로 위장한 인간 때문에 이 가련한 존재에게는 '샐리 존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여자가 샐리 존스를 수렁에서 구출해서 잘 돌봐주었다. 주로 숨바꼭질 놀이를 유도했는데, 샐리 존스는 점점 어려워지는 찾기 놀이의 진짜 목적을 몰랐다. 그 목적을 위해, 샐리 존스는 철저히 도구로써 이용당하는데도 몰랐다. 독자도 몰랐다. 알고 보니 그것은 도둑질이었는데, 교활한 여인은 샐리 존스를 훈련해서 귀금속을 감쪽같이 훔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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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때문에 고릴라 동족에게서 강제로 떨어져서 노예처럼 팔린 이후, 또 배신을 당했다. 재판부는 샐리 존스를 동물원에 넘겼다. 비탄에 빠진 샐리는 거기서 다시 유랑 서커스단에 팔리는 신세가 된다. 탈출해서 배에 올랐지만, 운 나쁘게도 선장에게 들켰다. 원숭이 종류를 끔찍이 싫어하는 냉혈한이었다. 배 밖으로 당장 내던져질 뻔한 샐리는 다행히 일등 기관사의 중재로 목숨을 부지한다. 샐리가 겪는 고난에 끝이 보이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독자가 인간을 대신하여 사과하고파 지는 순간, 이번에는 자연재해이다. 샐리 존스가 탄 배는 태풍을 만나 가라앉아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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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처럼 팔리고, 감금당하고, 관람 당하고, 배신과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이 정도 가혹한 운명이라면, 웬만한 인간이어도 생을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만, 샐리 존스는 묵묵히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근본을 지킨다. 자신을 믿어주는 이에 대한 신의, 스스로에 대한 존엄. 참 마음을 진하게 울린다.

야코브 베겔리우스는 샐리 존스의 전설을 광대한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펼쳐 놓았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터키 이스탄불, 싱가폴, 보르네오 섬,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거쳐 다시 아프리카에서 막을 내린다. 광활한 서사시 같은 이 모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억압과 착취를 당했을지언정, '생은 계속된다. 역사는 계속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 가을에 읽은, 아름다운 걸작이다. <샐리 존슨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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