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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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거의 매주 들렸던, 그러나 코로나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까페에 일부러 왔다. 2층 네트워크가 불안정 한 건 여전하고, 블루리본 명성을 배반하지 않는 커피 맛도 여전한 데, 1잔 구매마다 스탬프 한 번씩 찍어주던 쿠폰 제도는 사라졌다. 이 공간에서 노트북 자판 많이 두드렸는데, 쌓인 글은 없고 공간만 여전하니, 배가 싸르르 아파온다. 




아멜리 노통브 (번역된) 작품이라면, 거의 다 읽어왔다. 어느 작품에서도 되바라진, 조숙한 꼬마의 냉소미가 느껴졌는데, 그래서 열광했던 걸까? 간혹 밋밋한 작품도 있었지만, 독특한 냉소미를 통해 어린 시절 노통브를 상상해보곤 했다. [너의 심장을 쳐라] (2017)는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그녀의 작품이지만, 아주 오래 전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이나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내 정신세계를 해부당한 기분이라, 이 책을 내가 아는 누군가는 행여라도 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 책을 당장 선물하고 싶은 마음 사이를 오가며 읽었다. 


옮긴이 이상해 역시 지적했지만, "잠시 등장하는 의사를 제외하고 남자들(아빠와 아들)은 여자들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한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존재감이 없다(192).


엄마와 딸, 자매들, 친구관계의 여성들 

그토록 냉담한 심장으로 누군가의 삶의 수로를 틀어놓고, 늙어가면서 망각하고 스스로 죄를 사하는 캐릭터. 

퍼내도 퍼내도 넘쳐나는 "경멸"을 우아한 학자적 언어로 위장하여, 타인을 자신의 장기판에 '말' 삼는 캐릭터.

그 복잡미묘한 정서를 겪어보지 않고 어찌 이입할 수 있으리! 


그렇다고 아멜리 노통브는 여성"들"의 관계를 시니컬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차원에서 화해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처를 스스로 핥으며 커온 주인공이, 또다른 상처 입은 이에게 문을 열어 줄 때, 그것은 '인간애'라는 낭만적인 표현보다는 신경증과 신경증의 만남이 아닐까. 비록 그럴지라도, 그 만남, 그 보듬어안는 마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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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09 12: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아멜리 노통브 한때 좋아하면서 너덧권 봤었는데 그후로는 통 못 읽었네요. 복잡미묘한 정서, 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21-09-09 16: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노통브의 책들을 읽고서
참신하고 대단하구나 싶었는데...

글다가 언제부터인가 멀리 하게
되었네요.

푸른 수염인가 부터 다시 읽어야
하나요.

얄라알라 2021-09-10 03:50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사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초창기 작품의 그 강렬함 이후, (지극히 주관적인 평이지만) 좀 맥빠지는 작품들이 연달아서. 푸른 수염도 기대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너의 심장을 쳐라]는 공감 얻기 더 좋은 작품일 것 같아요.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가족관계가 있고, 그 관계가 평탄한 것만은 아닐 것이기에..


그러고보니 본격적 부자(아빠아들관계)의 미묘함을 드러낸 작품이 뭐 있을지 고수님들께 여쭤보고 싶네요^^

2021-09-09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0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9-09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적의 화장법은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ㅜㅜ 안 나네여
그냥 오 참신하다 제목 강렬하다 이랬어요 ㅎㅎ

얄라알라 2021-09-10 03:54   좋아요 0 | URL
초딩님. 저도 줄거리가 살인자의 건강법과 막 섞이려고 합니다. 갑자기 서글퍼지네요.. 책 읽었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데 오늘도 나는 이 새벽에 책 쌓아놓고 앉아 있구나....^^;;;;;;

그레이스 2021-09-09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살인자의 건강법 읽었어요
이 해에 무엇때문인지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의 해석을 연달아 읽었어요^^

아!
적의 화장법도 읽은것 같네요

얄라알라 2021-09-10 03:54   좋아요 0 | URL
살인의 해석은 또 무슨책인지 잠시 검색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그레이스님

얄라알라 2021-09-10 03:56   좋아요 0 | URL
오호!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추천도서네요. 그레이스님께서 올해 요 책들을 연달아 읽으신 건 우연이겠지만^^ 스릴러 좋아하시나봐요?^^

그레이스 2021-09-10 11:00   좋아요 1 | URL
저는 스릴러 안좋아하는데,,,
아마도 범죄심리때문에 읽게 된것 같아요.
올해는 아니고 시간이 조금 됐습니다^^

존그리샴은 거의 전작읽기를 했습니다.

붕붕툐툐 2021-09-09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통브 책 막 찾아 읽었었는데, 신간 소개에서 만나고 반가웠어요. 북사랑님이 읽고 리뷰 써주시니 더욱 반갑! 이거 읽으면 북사랑님 속마음까지 알 수 있는 거예용? 헤헷~

2021-09-10 0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1-09-09 2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살인자의 건강법 읽고 있어요 ㅎㅎㅎㅎ 😆

얄라알라 2021-09-10 03:58   좋아요 0 | URL
syo님의 종횡무진 독서야....익히 알고 있지요. 곧 리뷰를 읽을 수 있겠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9-10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장 찜. 저도 한때 노통브 쭈르르 읽었어요. 저는 오후 네시 를 젤 좋아했음요. 노통브가 50대가 되었다니 더 친숙해졌음요^^

얄라알라 2021-09-10 04:01   좋아요 0 | URL
작가 프로필 사진은 백자도자기 피부에 새빨간 립스틱에 목을 감는 깃털 의상,
50대, 40대를 떠나서 도도미 그 자체네요^^

행복한 책읽기 님께서도 늦게 깨어 계셨네요^^
까페에서 decaf라 판매한 커피가 실은 카페인 어마어마 담고 있었나봐요...., 디카프 마시고 4시까지 잠을 못 잘리는 없고.. 항의하고 싶음^^:;;; 새벽 4시에 행복한 책읽기님께 댓글^^;;;;

서니데이 2021-09-11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 좋아지면 주말이나 저녁에 카페에 가서 맛있는커피랑 간식 먹으면서 책읽고 싶어요.
얄라알라북사랑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1-09-11 22:4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까페 방문도 자제하실만큼 조심하시나봅니다. 서니데이님처럼 열심히 지켜주시는 분들께 죄송해지네요. 저도 한 1년은 참다가, 요즘은 다시 까페 순례 다니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남은 토욜 밤, 그리고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기를

서니데이 2021-09-11 23:01   좋아요 1 | URL
저도 참다가 너무 생각나면 가끔 커피전문점에서 포장해올 때가 있어요.
네, 좋은 밤 되세요.^^

고양이라디오 2021-09-1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멜리 노통브 읽어봤어요ㅎ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읽은 기억이 나네요ㅎ <너의 심장을 쳐라>도 재밌을 거 같네요^^

페크pek0501 2021-09-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다 읽으셨다면 광팬이시네요. ^^

coolcat329 2021-09-25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사랑님 노통브 책 거의 다 읽으셨다니 팬이신가보네요. 저는 <적의 화장법> 딱 하나 읽어봤는데 ‘신선한 충격‘ 저도 받았습니다.
얇은 책이니 조만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비룡소" 편집실에 사과 말씀부터. "비룡소=어린이출판사" 등식으로 기억해 둔 터라, [헤이, 나 좀 봐]를 그냥 지나칠 뻔 했어. "중2 격동기"를 그린 책인가 봐 하면서. 아니지. 사실, 좋은 책은 독자를 나이, 성별, 국적으로 차별하지 않잖아? 그냥 좋은 책이지. 


격하게 울었다고. 대낮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읽고 펑펑 울었던 때도 대낮이었는데. [헤이, 나 좀 봐] 가 이런 만화책인지 상상도 못하고 집었던 거야.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 아닌 부재(스포일러 되지 않기 위해 이 정도로만)" 속에서, 조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란 재럿 크로소치카. 그의 TED 강연 조회수가 어마어마하다지만, 아직 작가에 대한 이 뜨거운 감동(+환상)을 깨기 싫어서 나중에 찾아보려 해. 


인품이 좋은 작가. 재럿. 

완벽주의 성향이 상당하고. 

[헤이, 나 좀 봐]의 주조색이 톤 다운된 주황색인데, 의도된 선택이야. 게다가 자서전적 이야기 중간 중간 등장하는 편지, 사진, 그림 등은 실제 작가가 차곡차곡 수집한 자료들을 활용한 거지. 자신의 재능이 엄마에게서 왔다고 감사하는 문장에서, '엄마의 재능까지 독자가 어떻게 확인해?'하는 의심도 들었는데, 다시 책 뒤지다가 찾았어. 꼬마 재닛이 받은 엄마의 편지 속에 엄마가 그린 그림이 있었지. (촌스럽다 싶은) 파인애플 디자인이 왜 여러 번 이 책에 등장하는지도, 당신이 책 읽고 직접 확인해본다면 나처럼 울지도 모르지. 재럿 크로소치카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니까. 의도된 선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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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9-02 00:4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아 부모 사랑을 바라기도 하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의 부모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찾고 그걸 해서 다행이네요


희선

얄라알라 2021-09-02 00:55   좋아요 6 | URL
희선님, 제가 스포일 안하겠다며 스포일러 했나봐요^^:;; 책 내용 핵심을 딱 언급해주셔서^^

조부모께서, 작가의 만화 수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분, 작가 재럿이 꿈을 소중히 가꾸고 현재형으로 그 꿈을 끌고가는 점에서 감동이 컸답니다. 희선님 말씀처럼 ˝좋아하는 것도 찾고, 그걸 해서˝ 참 다행이라고 저도 느꼈어요.

붕붕툐툐 2021-09-02 08: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엄훠~ 너무 끌리네용~ 읽고 싶은 책장에 쏘옥~~~😍

얄라알라 2021-09-02 08:19   좋아요 5 | URL
툐툐님께서도, 툐툐님께서 애정하시는 제자들도 요 책 좋아할 것 같아요. 책 후기에 만화를 그린 자세한 방법도 얘기해주는데, 뭔가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생작품, 정성을 다 쏟아부었다˝를 느끼겠더라고요^^ 힘들었던 어린시절이지만 이렇게 소중하게 추억하고 그림으로 되살려낸다는 게 작가가 삶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느끼게 해줘요^^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두 쏘옥쏘옥~~~~딸한테 강력추천해야겠어요.^^

얄라알라 2021-09-02 10:58   좋아요 3 | URL
^^ 그럼 행복한책읽기님 따님과 저는 얼굴 한 번 안 보고 작은 공통 조각 하나 생기는 셈이네요^^ 감사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1:47   좋아요 4 | URL
바로 상호대차 신청했어요~~^^

얄라알라 2021-09-02 13:30   좋아요 2 | URL
^^ 상호대차 시스템 넘나 좋아요^^ 행복한책읽기님 댁으로 이 책이 간다니 기쁩니다!

독서괭 2021-09-02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나의라임오렌지나무를 읽고 아침에 펑펑 운 사람 여기요✋
이 책도 그렇게 좋으셨더니 봐야겠네요!

얄라알라 2021-09-02 13:31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어렸을 때는 도리어 안 울고 읽었던 것 같은데 어른 되어 읽고 펑펑펑^^ 독서괭님도 우셨군요^^

페크pek0501 2021-09-04 18: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화책 하나 사 놓고 빨리 읽고 글 한 편 써야지, 하고 있어요. ^^
펑펑 울 수 있는 책도 좋습니다.

파이버 2021-09-0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룡소 제목]보다 북사랑님 리뷰가 더 끌리네요 자전적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은 그 아픔을 견디어낸 것 같아 정말 강해보여요…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 마음이 자라는 나무 38
지아다 파베시 지음, 이현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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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가끔 '내가 동화를 쓴다면, 주인공은 10대?'라고 상상해봤다. 그러나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 을 읽으며, 그 꿈 매우 허황되다는 걸 알겠다. 중3 농구 선수이자 주인공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새 누가 페이스북을 해요? 이건(사진은) 인스타에 올릴 거예요." '아니! 이건 무슨 말인고! 요즘 10대에게 페북은 한 물 갔단 말인가? 나만 몰랐나?' 하며, 검색창을 뒤져보지만 모양새가 참 아니올시다! BTS 팬덤과 Army의 글로벌 결집력이 궁금하다고 검색 키워드를 바꿔본들 보라색 결정체는 결코 찾을 수 없을 텐데?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어플, 농담, 제스처, 등등을 모르면서 무슨 10대 이야기를 상상해본다는 것인지? 게다가 향수만 스쳐도 반응 올라오는 10대의 호르몬, 만병통치 은어 PP(피자파티), 텃세와 왕따 은따 전략 등등을 모르고서는 도무지 이야기에 재미난 양념을 칠 수가 없는데?



https://www.bookonatree.com/en/giada-pavesi



아니나 다를까,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 의 저자는 젊다. 벌써 2권의 책을 내었고, 이탈리아에서 젊은 작가 발굴 프로젝트에서 수상했지만 앳된 외모는 그가 10대 주인공 캐릭터 함께 농구하거나 PP하기에 충분히 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태생인 지아다 파베시Giada Pavesi는 현재 밀라노에서 외국 문학을 공부 중인 학생이다. 한국이나 이탈리아 10대 관심사의 공통분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지,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의 3대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설레는) 사랑의 조짐,' '(완벽하지 않아 반쯤 숨기고 싶은) 우리 가족,' '학교생활에의 적응'일 것 같다. 다만, 책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에 무려 3대의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암시하듯, 이 책의 가장 중심 모티브는 바로 10대 사이에 유행하는 APP이다. 계속 강조하지만, 10대와 외모뿐 아니라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작가는 10대들의 온라인 소통방식과 그로 인한 문제들을 실감나게 그렸다(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여기까지!).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는 10대뿐 아니라, 10대의 세계가 궁금한 어른에게 유용한 작품임을 인정함. 단, 아직도 왜 "요새 누가 페이스북 해요?"라는 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음. ㄹㄸㄲㄷ 소리 들을 날 머지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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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15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체가 왠지 인스타에서
많이 보던 거네요 :>

얄라알라 2021-08-15 21:42   좋아요 1 | URL
^^ 이탈리아판 표지는 이 책이랑 사뭇 달라요. 레삭매냐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급 호기심 발동이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8-1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딸이 좋아하겠어요. 찜!! 페북은 노땅들의 놀이터라죠. 애들은 인스타!! ㅋ

페크pek0501 2021-08-1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 쓰는 사람, 멋지죠.
저는 페북 안하는데... 시대를 못 쫓아가는 1인입니당~~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 라임 청소년 문학 40
코슈카 지음, 톰 오구마 그림, 곽노경 옮김 / 라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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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푸른숲 출판사 "라임" 의 편집회의가 궁금하다며 독자의 애정어린 욕심을 보인 적이 있다.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를 읽으니, 확신이 강해진다.  편집회의에서 "라임청소년 문학" 시리즈 수록 작품을 선정할 때, '환경' '인권' '휴머니즘' 등 큰 우산을 씌웠으리라는. 


시리즈의 40번째 신간,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 역시 그 우산 아래 있다. 이 소설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환경 재앙, "기후난민"이라고 통칭되는 이들이 경험하는 상실과 실존적 불안, 피부색이나 국적에 근거한 차별, 또 그 차별을 넘어 하나 되려는 인류애를 담아냈다.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는 섬과 섬사람들 소식은 그림책, 다큐멘터리, 소설을 통해 섬 밖 세계에 꾸준히 전해져왔다.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는 현실에서 진행형의 비극과 극복의지를 액자형 소설에 담았다. 휠체어를 떠날 수 없기에 섬에 남은 할아버지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산호섬을 떠나야만 하는 손녀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소설 도입부 외에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나는 할아버지의 편지가 열리는 페이지마다 눈물을 쏟았다. 공공장소인데, 그나마 마스크로 얼굴 반을 가리니 다행이었다. 


바다에 잠길 섬과 함께 수장될 운명임을 알면서, 손녀에게 글을 쓰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감정 걷어내고 말해 '편지'이지, 실은 여러 편으로 나눠서 쓴 '유언장'이 아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터전, 산호섬을 떠나야 새 삶의 터를 잡을 수 있는 소설 속 인물들.  바다 아래로 섬,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잠겨버린 것은 그들의 의지도 잘못도 아니건만, 고향도, 삶의 터전도 잃고, 이름 대신 "기후난민"이라 불린다. 그러나 작가는 "기후난민"이라 통칭되는 이들의 고결한 생의지, 가족애, 긍정적인 마인드를 통해서 위기 극복의 희망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작가, '코슈카'는 고양이라는 레바논 말로서 필명일 뿐이다. '코슈카'는 레바논에서 전쟁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 정착해 변호사가 되었다. 네 아이의 엄마로서 변호사 일을 그만 둔 후 쓴 작품이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다. 작가의 성숙한 인생관과 휴머니즘은 소설 속 할아버지의 편지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코슈카'의 다른 작품들, <머릿결을 쓰다듬는 아이>와 <깡마른 마야>도 리스트에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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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5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8-05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도 담아봅니다~ ˝라임 청소년 문학‘ 이런 좋은 시리즈가 있었군요! 학교도서관에도 신청해서 애들도 좀 읽도록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당!!^^

2021-08-05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8-05 23:40   좋아요 2 | URL
저는 이 시리즈 중에서도 SF 장르 작품이 특히 좋았어요. 다만 제목을 기억 못해서 찾아봐야 하지만요^^ 툐툐님, 시원한 여름 밤 되세요. 30도 이하로 내려왔네요. 이시각엔^^

붕붕툐툐 2021-08-06 00:39   좋아요 0 | URL
이제 시원한 바람 부네용~ 오~ 혹시 찾아봐서 알게되면 알려주세용~ 저도 찾아보긴 할건데, SF인지 설명 보면 모를 수도 있어서용~ 글치 않아도 사실 북사랑님께 젤 좋으셨던 거 추천 받고 싶었어요~-학교에서 전권은 안 사줄거 같아서요ㅋ

얄라알라 2021-08-06 11:40   좋아요 1 | URL
지금 검색해보니 시리즈 벌써 50권이 넘었네요. 저는 그 중 20권도 채 못 읽은 거고요^^;;; 반의 반도 안 되는 경험으로 추천드리기 민망합니다만

SF로는 [남극의 아이 13호] [조작된 세계]
현실적인 청소년 소설로는 [사랑이 반짝]

그리고 ˝마음이 자라는 나무˝ 시리즈 중 ˝미나 뤼스타˝ 작품, 저는 흥미롭게 보았어요^^
툐툐님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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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이 무료로 제공하는 "미리 보기" 서비스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사이다 들이켜기 전, 김 빼기 일부러 하는가? 종이책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김 빼기, 굳이 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의 '미리 보기'를 클릭했다가, 그대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자가 이제는 훌쩍 큰 아들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편지 형식 도입부였는데, 부담스러울 만큼 저자의 고백이 솔직했다. '미리 보기'까지만 읽고 끝냈다면, 저자 정상훈을 '세속적 성공 면에서는 엘리트겠으나, 일상을 꾸리는 능력 면에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할 열패자'로 낙인찍을 뻔했다. 그렇지 않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다 읽고 나니, 저자의 과잉 솔직함은 오롯이 아들을 향한 애정과 자기성찰로 벗겨져 나온 피부 비늘이란 걸 알겠다.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얼룩덜룩한 피부의 비늘을 벗겨내고, 새 살을 돋우려 했던 것이다. 책 제목에서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지만, 그가 진정 희구하는 것은 극단적 선택이나 단절이 아니라, 충만하게 지속되는 하루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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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의 저자 정상훈은 서울대학교 의대 출신으로 '행동하는의사회' 창립자이자 '국경없는의사회' 해외구호활동가였다. 굳이 "서울대 의대" 출신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릴 때 그의 지인들은 "서울대 나온 의사가 뭐 아쉬울 게 있어서"의 반응을 보였고, 그의 어머니에게 그는 "서울대 나온 의사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타인의 시선, 특히 어머니의 기대는 저자의 정신세계에 상당한 독이었다. 나는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읽으며, 가족,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한 개인의 정신세계에 이렇게 압도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곱씹어 생각하였다. 정상훈의 자기 파멸적이고 가족을 질식시키는 우울증은 뿌리를 두었는데, 바로 작가의 어머니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았다.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하는 게 일상이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라면 한 박스를 들쳐 매고 와서는 매일 저녁, 어머니가 차린 밥상 옆쪽에서 따로 입 꾹 다물고 라면을 드셨다는 일화는 듣기만 해도 폭력적이다. 저자는 결국은 가정을 깬 엄마와 같이 살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가 8살 난 아들과 아내 자궁 속에 둘째 아이를 남겨두고 아르메니아, 레바논, 시에라리온으로 떠나간 이유의 근원에도 어머니가 있었다. 저자는 어머니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입만 열면 서로 화를 내거나 상대를 정서적으로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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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가로서 정상훈 작가가 직접 경험한 건강 불평등 현장과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사이사이, 작가의 정신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한국을 떠나 시에라리온에 있어도, 저자에게 그 어머니는 제 몸의 세포 덩어리와 같아서 떨치려야 떨칠 수 없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의 현장에서도, 다제내성 결핵 감염의 공포 앞에서도, 에볼라로 인간이 존엄의 존재에서 그저 몸뚱어리로 전락하는 현장에서도 침착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그의 우울증, 더 나아가서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정상훈 작가는 왜 '아빠, 할머니한테 무섭게 말 안 하면 안 돼?"라고 부탁하는 큰아들에게 왜 할머니 앞에서는 그렇게 화가 나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의 큰 아들은 올해 성년의 나이에 들어선 것 같던데,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읽으며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성찰적인 인물인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겠다.

정상훈 작가의 솔직함에 압도 당해서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작가의 개인사와 정신적 문제 측면에서만 소개했기에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몸으로 기록한 현장일기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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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7-18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어떤 책인지 알겠어요. 리뷰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요.
서울대 나와서 왜 우울증인가가 아니고, 제 시각에서 보자면 우울증은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을 듯합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인간 관계에 서툴고 고립되어 공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떤 문제로 스트레스가 생기면 잘 풀 수 있는 방법을 모를 것 같아요. 운동을 좋아한다면 운동으로 풀 텐데,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사람이 드물 것 같아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서울대 출신이라서 오히려 정신이 덜 건강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씀이에요.
이게 저의 편견일 수 있겠어요. ^^

얄라알라 2021-07-18 17:14   좋아요 0 | URL
저는 저자 정상훈에 대해 이 책에서 전하는 정보 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이 정도 솔직한 자기성찰을 독자에게 드러낸 것도 결국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책의 후반부에서는, 저자가 어머니의 발병(치매)과 간병,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어머니와 화해한 내용이 등장하며 한결 톤이 부드러워집니다. 쓰면서 치유되고, 또 치유되었기에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 뭉클해집니다.

페크님 좋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7-18 2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리보기 하면 거의 사게
되더라구요...

아주 책쟁이들을 낚는 그런
서비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7-19 11:23   좋아요 1 | URL
ㅎㅎㅎ 미리보기 서비스는 레삭매냐님을 낚기위한 서비스군요^^

얄라알라 2021-07-19 23:42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께서 졸지에 ‘낚인˝ 분이 되어버리셨어요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1-07-19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꼭 읽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2021-07-19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7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8-05 19:09   좋아요 0 | URL
<낯선 이와 느린 춤을>
고양이라디오님께서 소개해주신 이 책도 챙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