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던 참이었다. 저자 유현준 교수는 많아야 4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책날개에 소개된 약력이 화려하고도 크레셴도 진행형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학력깡패"라는 애칭으로, 홍익대에서는 우수 명강의 교수로, 공공건축 부분 대한민국에서 인정하는 건축가로서 유명한 분인가 보다. 나는 오로지 활자를 건너 다니며 그의 생각을 엿보았을 뿐이나, 왠지 공식적 약력 이상으로 포스를 지닌 분일듯하여 강연을 꼭 듣고 싶었다. 늦은 7시 30분 시작하는 강연이어서 좀 무리했다. 예상대로 청중석은 만석. 중고등학생부터 장년층까지 청중이 다양했다.

유현준 교수는 강연장에 입고 온 티셔츠가 배너 사진 속 티셔츠와 똑같(지만 실은 여벌 옷이 더 있)다며 농담을 던졌다. verbal warm up은 그 농담이 전부, 역시 베테랑은 다르다. 바로 강연 시작,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그 많은 청중을 미동도 않고 집중하게 한다.



강연 타이틀은 "도시 이야기"라지만 궁극은 공간,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90분이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유익한 강연이었다. 유현준 교수는 목소리 작은 젠틀맨 이미지와 사뭇 다르게, 비속어와 "쎈" 표현으로 소신 발언하는 강경파(?)의 매력은 덤.


1. 90분 강연에서 제기한 문제들

1) 대한민국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서의 장기적 안목 결여

공공건축은 사람들의 심리, 사회적 관계양상 등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잠재적으로,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교실 천장 높이와 학생들의 창의성에는 보이지 않는 상관관계가 있다. 뉴욕 맨하탄과 서울의 경우, 녹지 분포는 30% 후반대로 큰 차이가 없으나 왜 서울에서는 '공원이 부족하다'는 말이 더 나오게 될까? 이는 단순히 공간 면적이 아니라 분포와 지형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고속 성장, 도시화가 진행된 한국의 경우 평지에 아파트 단지를 세우고 녹지와 공원을 경가가 지는 산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거꾸로 간 경우. 공원은 평지일 때 더 접근성과 활용도가 높아진다.

높은 건축물은 권력욕의 과시와 관련된다. 높이 올리는게 중요한가? 소통하고, 그 안의 사람들이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 필요한데 공간의 문제를 간과해버린다. 이렇게 우후죽순 위로만 획일적으로 올린 건물들, 그래서 생겨난 공간은 20,30년 후대에 영향을 미칠텐데 사람들은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듯 하다.



2) 높이 솟구치며 권력을 과시하는 건축에서 소통하고 화목하게 하는 건축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물리적이고도 심리적인 벽으로서의 분할과 심화된 계층화 → 공간의 분할은(SKY캐슬 거주자와 달동네) 경험의 동심원 자체가 생길 여지를 줄여버림으로써 경험을 괴리시키고 공감과 소통 여지마저 낮춰버린다. 결국 단절과 분할로.

3) 자연에서 스스로 소외시키는 건축: 왜 당신이 TV리모콘 버튼을 눌러대고, 유투브 채널 옮겨다니는지 생각해보았는가? 단조롭게 찍어낸 듯한 아파트 생활에서는 사계절 변화를 느낄 수도, 경험의 다양성에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어렵다. 뭔가 생동감 있게 변화하는 이벤트 거리를 찾고 싶은데 공간에서는 얻기 어려우니 TV라도.


영드 "Black Mirror" 한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모티브였던 다리를 유현준 교수의 책과 강연에서 다시 만났다. 이 다리는 강 이북과 이남이 소통시키는데, 한강은 다리 개수는 많지만 교통수단 이동이 위주인지라 사람들은 소외된다.

한강가야말로 도시공원이자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기 좋은데, 고급 아파트 단지가 폐쇄적으로 점유함으로써 다른 활용 여지를 차단했다고 한다.



학교를 살리자!

두 아이의 학부모이기도 한 유현준 교수는 자신이 강연하러 다니는 이유가 결국 이 때문이라고 하며 PPT 슬라이드를 넘겼다. "어떤 학교에서 아이를 키울 것인가?"



위로 위로 높이고 운동장은 좁히고, 교실 수는 늘리되 아이들이 뛰놀 공간은 정작 없는 학교.

감옥과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학교. 그 곳에서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12년을 지내는데 정작 학교 건축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낮다는 중요한 지적이다.

대학입시제도, 교육 커리큘럼을 조금씩이라도 변화하는데 학교 건물은 반세기, 아니 1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고 같다.

교장실과 교무실, 행정실은 1층 혹은 저층. 고학년 아이들은 학교 탑층으로 몰아올리고. 쉬는 시간 10분 동안 5층에서 걸어 내려와 놀고 다시 5층 교실에 올라갈 수가 없다. 복도에서 놀면 선생님들은 사고 위험 있다면서 들어가라고 하거나 복도에 많이 나오는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낙인찍는다........

90분 강의를 들었을뿐인데, 강의 듣기 전후 도시와 공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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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책상 배치를 바꾸니 "하루 두 권 책 읽기"가 껌 씹기 수준이었습니다. 비워낸 휑한 공간에서의 책 읽기, 집중이 잘 되었거든요. 그러다 점점, 스마트폰이 손에 착착 들러붙어버리니 '하루 2권' 행진은 사오 일 만에 STOP. 역시, 이노무 스마트폰!!!!!!

다행히, 연휴에 다시 불붙었습니다. 어제는 4권이나 읽었네요. 글 밥 적은 청소년 책들이었거든요. 『지구를 살리는 영화관』, 『밍기민기』,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노랑무늬영원』.

요즘 친구들, 참 복받았습니다. 이렇게 재미난 책들, 다양한 장르에서 신간이 쏟아지니 말입니다. 초등학교 때 문학전집과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셜록 홈스 전집, 동아백과사전을 반복해서 보던 기억이 나, 원하기만 한다면 책의 홍수에 풍덩할, 요즘 친구들이 부러워집니다.


『지구를 살리는 영화관』은 환경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서 의기투합해 쓰셨습니다. "환경과교육연구소"라는 협동조합 소속의 연구자이자 교육자들이십니다. 어린이들 친숙해할 SF 영화를 '환경'을 키워드로 여러 저자가 나눠 맡아 썼습니다. "레버넌트"와 "매드맥스" 분석 에세이가 그중에서도 인상적입니다. 분석이 예리하거나 참신해서 인상적이라기보다, 누구나 영화 보며 스치듯 생각할 수 있던 주제들을 '환경문제와 생존(공존)'이라는 키워드 아래 뜻 모은 일군의 저자들이 실제 활자로 옮겨냈다는 그 실천성이 인상 깊었습니다.



『밍기민기』는 (아마도 저 그림책을 그리던 당시 30대 중반, 미혼이었을 작가가 조카 덕분에 수집한 에피소드를 제목처럼 맹랑명랑하게 그려낸 만화책입니다. 몇 대목에서는 킬킬 웃으며 읽었어요.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아! 이 책 엄지척입니다! 한동윤 저자는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온몸으로 힙합을 좋아하고 알고, 대중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분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스트리트 댄서, 댄스 강사였다다 음악평론, 저술가로 활동하는 분이라네요. 인터뷰를 찾아 읽어보니, 이 분도 "Soul Train"에서 영감받았군요. 한동윤 저자 인터뷰는 아래에서~~http://naver.me/xJIMkXo7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젊은 작가인데 이처럼 어두울까 하며 읽었던 기억. 그녀가 이렇게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을 줄 모르고 그저 음울한 분위기만 기억했네요. 『노랑무늬영원』, 세 번째 소설집이라는데 여전히 힘들게 읽었습니다. 가깝건 멀건, 아프거나 죽고, 신체이건 마음이건 마비당해서 의지대로 못 살고, 가족이 있어도 점점 점으로 존재해서 외롭고 뭐 한강 소설집의 느낌이 여전합니다. 이채롭게도 이 책에는 문학평론가들의 '평론'이 실려있지 않네요.

2월 책 읽기 행진은 계속됩니다. 리베카 솔닛의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와 『자살폭탄테러』를 동시에 읽고 있습니다. 가을에 모아둔 밤을 까먹듯, 겨울에 양분 쌓았다가 봄에 개구리처럼 튀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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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빵 터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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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3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기가 아주 직설적인 성격이네요... ㅎㅎㅎㅎ

2019-01-30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에 온라인에서 떠도는 쪽글 중 인상 깊어 기억하는 문장은 "모두가 책 쓰려고만 하려 들고(작가 타이틀 달고 싶어 하지만) 읽지는 않는 시대" 이다. 소장용 책 사기는커녕, 대출하려 도서관 가는 일도 손꼽는 경우가 대다수. 이 와중에 동네 서점들은 어떻게 살길을 모색할까? 어떻게 변별할 것인가? 요즘 작은 동네 서점이 뜨는 이유이다.

한 열흘 전 우연히 과학책방 "갈다," 이름을 들었다. 검색해보니 오호, 콘텐츠뿐 아니라 설립 취지까지도 '과학' 중심으로 특화된 독특한 서점. 뜻을 같이한 과학계 종사자 100여 명이 합심해 연 과학전문서점이다. 단순히 책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저자와의 만남이나 강의 등을 통해 대중에게 과학을 친숙하게 소개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려는 서점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흥미로운 공간을 새로 알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내친김에 바로 강연 예약을 한다. "항공우주연구원- 우주와 항공 이야기"


사진: 과학책방 갈다 인스타그램


찾기 어렵지는 않았는데, 금요일이라 명동 종로 거쳐 이동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 책방 대표인 이명현 박사가 어린 시절을 지냈다는 삼청동에 위치한 서점이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지라 사진이 어둡다. 로고 "갈다"는 "갈"과 "다"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는데, 과학사의 위인을 잘 모르는 이들도 금방 유추할 수 있겠다! "갈릴레오"와 "다윈"!


이명현 박사의 인터뷰 내용 중, 어린이를 따로 염두에 두고 꾸린 공간이 아닌 이유로 엄마들 손에 끌려서 아이들이 이 서점 찾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었다.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더 반갑다는 이야기인데, 오늘 강연에는 놀랍게도 9살 꼬마가 '강릉'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맨 앞줄에서 어찌나 리액션을 강렬하게 하며 유쾌한 분위기를 주도하던지! 게다가 척척 박사. 항공우주에 관심과 열정이 큰 친구이구나를 느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강연장에서 7시 30분에 예정된 강의는 실제로는 7시 40분쯤 시작했는데 강의자인 '임철호' 원장님이 어찌나 분위기를 잘 리드하며 청중과 소통하던지 90여 분이 훌쩍 지나간 듯. 12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PPT 자료 중 청중이 더 흥미롭게 듣는 부분에 집중해서 우리나라 항공우주 발전상과 현 모습을 알려주었다.


강연 듣고 나니, 서점 문 닫을 시간이라 2층에 있다는 카페를 구경하지는 못했으나 1층 서가는 비교적 매의 날카로움으로 스캔하고 왔다. 저 "시녀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추천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여태 미루고 있었다. 2월 도전작으로 선정!


"갈다"에서는 앞으로도 많은 강연, 강의가 열린다니 예의 주시! 이명현 대표의 말처럼 "과학문화" 분위기를 주도하는 공간으로 성장하여 오래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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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3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명헌 박사의 그 갈다!
요즘 동네책방이 뜨는가 본데 그렇게 시간 날 때마다
한군데씩 다녀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2019-01-30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카오톡 손가락 풀기가 덜 된 탓이라 핑계를 댈까요? 저도 맞춤법 참 많이 틀리고, 글 쓸 때면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에 손을 내밀거나 네이버 맞춤법 자동 검사 기능을 켜둡니다. 어느 정도의 오탈자는 되레 친밀함을 주는 실수라 칩시다. 그런데, 간혹 아니 기막힐 정도로 자주, 온라인 기사 읽다 보면 '이 기자님 대체 생각의 속도대로 타이핑해서 바로 기사 송고하셨나? 검토 단 한 번도 안 하고 전송 버튼 눌렀나?' 싶은 글들이 '나 좀 봐주소!'하며 손들고 있지요.

최근의 예로는, 심석희 선수를 '손석희'라 잘못 표기한 기사 이야기를 JTBC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가 직접 전한 걸 들 수 있습니다. 심석희 선수만 잘못 표기했냐고요? 가관입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조재범 코치는 어느덧 김기덕 감독과 나란히 추잡한 범죄를 폭로당해 이름이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진 '조재현' 배우와 이름이 바뀌어 기사화됩니다. 안 믿기시면 녹색창에 검색해보세요.

 

 

 

 

 

 

 

그제, 우연히 제목만 보고도 '읽고 싶어진' 책을 발견했습니다. 오호! 2015년에 나온 책을 여태 몰라보고 지나쳤구나 하며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모방 사회』, 교보문고에서 출간했습니다. 서문 마지막 문장이 이렇습니다. "물론 사회 분야"여야 하는데, "물론"을 "물로"로 잘못 썼습니다. "물론"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서문부터 오타라니 편집자님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본문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나 편집 엉망이야'의 페이지가 연달아 나오더군요.

 

 

 

 

 

 

 

 

 출판사 작업은 전혀 모르지만, 요새 편집자분들이 개인적으로 책들을 많이 펴내시기에 편집 작업의 노고가 어떠할지 짐작은 합니다. 칼퇴근 개념 없이, 집에까지 일을 들고 와서 오탈자를 잡아내고 편집 일하기 일쑤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얇은 책의 서문, 그리고 첫 페이지, 그리고 본문 구석구석, 이런 식의 편집이면 독자는 배려가 아닌, 무시당한 기분이 듭니다. 다행히 친절하게도 편집자 성함과 연락처가 적혀 있어서 연락도 드렸지요. 혹시 '2쇄' 발행하실 때는 제가 찾아낸 오류들을 수정하고 발간해주셔서 다른 독자들 배려해주십사 하고 말씀드렸는데 이런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더 찍지 않습니다. 말씀 전달하겠습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다음에 **문고에서 발행한 책들은 오탈자 깔끔하게 잡아서 최소한 수준의 편집이 이뤄진 완성본으로 만나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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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오탈자가 있는 건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오탈자를 찾아내서 알려줬는데도 출판사 측이 고치지 않으면 화가 나요. 그건 독자의 목소리를 무시한 태도입니다.

2019-01-14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19-01-2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토를 안하고 출판했나봐요 책만 찍어내고 수정을 안하다니
독자를 무시했네요

2019-01-23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모르텔 2019-02-07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책장에 제 취향의 도서들이 ? 엄지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