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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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마키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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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체 비율 꽤 좋고 군살하나 없는 구리빛 몸이 작가의 뒷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2009 [2007]) 표지 위 남성이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일까 순간 궁금했다. 하지만 서문을 읽으며 그런 의심이 이내 부끄러워졌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6[2015])를 읽었던지라 알고는 있었지만, 하루키는 직업정신의 연장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진지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히" 달려왔으니까. 그 진정성이 신체화된, 구리빛 몸을 의심한다는 것은 하루키의 정신성을 부러워한 나머지 의심으로써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하루키가 2005년에 쓰기 시작하여 2006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이 단행본을 3분의 1쯤 읽다 말고, 충동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러닝화의 줄을 팽팽히 당겨 묶고는,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서 1시간 가량 뛰었다.  풀코스 30~35?km쯤에서인가 진행차량에 실려 청소된 후, 정형외과 신세를 졌던 막가파인 나로서는, 하루키가 페이지 곳곳에서 암시하는 '러너runner'들만의 연대감을 말한다는 자체가 우습지만, 달리면서 하루키의 문장을 몸으로 곱씹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적었다.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대체로 오랜 시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이라고. 하루키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친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36)고 말한다.  나에게도 달리기는 비어있는 상태로의 리셋이자 교감의 행위이다. 나의 날숨이 초록생명의 들숨이 된다는 개체 차원 이상의 교감.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읽는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루키에게 달리기는 육체성과 정신성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통합적 의례이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중략) … 소설가는 '이야기'라고 하는 의상을 몸에 감싼 채 온몸으로 사고하고, 그 작업은 작가에 대해서 육체능력을 남김없이 쓸 것 - 대부분의 경우 혹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25) 친구에게 아래의 문장을 꼭 들려주고 싶은데, (하루키 자신의 근육은)  "전형적인 '장거리형' 근육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랙) …그런 근육의 특성은 그대로 내 정신적인 특성과 결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특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또는 반대로 정신의 특성이 육체의 형성에도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정신과 육체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며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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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직업적 소설가로서의 연장인 자신의 육체성을 집요한 장인 정신으로 가다듬는다. 뛰어난 재능을 단거리 레이스에 몰아서 소진하고 요절하는 일부 예술과와 달리, 재능을 고루 안배하며 오래 가기 위한 정신의 근력을 기르는 데 마라톤(심지어는 100km 울트라런까지!)를 활용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집요하며, 천성적으로 남이 시키는 일은 중간만 하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일에 끝장 몰입하는 그에게 딱 맞는 선택이다. 물론 '물만 먹어도 찌는 체질'로서 몸무게와 건강 관리를 도모한다는 보다 현실적 유용성도 있는 달리기이지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읽으면서, 비록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기 꺼리는 성향이여도  자신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솔직하면서도 안전하게 문을 열어두는 전략을 취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국 달리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 글 쓰는 행위, 소설가로서의 직업 정신, 나아가 그만의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의 독자와 교감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하루키처럼 말할 특정한 무엇이 없는 이들은 무엇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 나만의 컨텐츠는 무엇인가?라는 실용적 질문이 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나에게 화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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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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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인이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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