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나를 찾는 길 - 4,300킬로미터를 걷다 처음 맞춤 여행
김광수 지음 / 처음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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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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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T (4277km),  CDT (4900km),  AT (3508km)라는 영어 대문자 조어가 트레일을 나타냄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세 트레일 모두를 완주한 독일 여성이 쓴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 (원제: Laufen, Essen, Schlafen: Eine Frau, drei Trails und 12700 Kilometer Wildnis)>덕분이었다. 그동안 걷기(의 효용성)을 예찬한 고매한 분들의 글을 기웃거려본 적은 있으나, 이처럼 '걷기 자체가 목적'인 걷기의 희노애락을 본격 이야기한 책이 처음이었기에 꽤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 독일인 저자 크리스티네 튀르미야  마찬가지로 회사를 다니다 그만 두고 PCT에 도전한 한국인이 책을 썼다기에 놓칠 수 없었다. 400여 페이지의 길고 긴 에세이였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는 사진이 많아서 페이지를 술술 넘기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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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김광수는 사남매 중 맏이 아닌 아들로서 한국나이로 35세의 미혼남성이다. 원체 산을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인 스스로 수십 차례 "짧은 영어," 혹은 "서바이벌 영어"라는 수준의 영어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도전할만큼 그는 용감하다. 또한 400여 페이지의 에세이의 반 이상이 트레일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묘사나 그들과의 친교활동에 할애되는 만큼, 김광수는 사교성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같다. 그러니, <나를 찾는 길>을 통해, 자아의 심연에 침잠하여 자신을 성찰한다거나 걷기의 명상을 대리체험하고 싶은 독자는 기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고독한 4277km의 길에서 온통 고마운 인연, 놓치지 싫은 인연은 끊임 없이 만나고 만든다.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그의 성격 덕분에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관계도 따뜻한 인연이 된다. <나를 찾는 길>을 읽다보면, 왁자지껄하고 취기가 올라오는 흥겨운 술자리가 자꾸 연상된다. 조용한 명상의 걷기가 아닌, 다국적 친구사귀기 프로젝트로서의 걷기. 아무튼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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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위에서의 5개월간 하루도 빠짐 없이 쓴 일기처럼 <나를 찾는 길>은 놀랍도록 시시콜콜하고 자세한 묘사가 특징이다. 신라면을 누구에게 나눠주었다든지, 어디어디 브랜드 신발은 어떤 점에서 약하다든지, 누구랑 누구 누가 삼각관계라든지, 언제 먹은 맥주는 미지근했다거나 혹은 시원했다든지의 내용 말이다. 마치 일기인양 당황스러우리만큼 개인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 적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김광수 저자처럼 처음 PCT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조언과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을테니까. 또한 저자 혹은 저자의 트레일 동료들이 직접 찍은 사진 덕분에 활자로만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천혜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독자가 간접적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현재 트레일 러닝화 브랜드 소속 하이커로 활동중이라니 김광수가 다음번엔 CDT, AT에 도전하리라는 데 한 표 내기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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