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위기에 내몰린 개인의 생존법은 무엇인가?
브래드 에반스.줄리언 리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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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믿을 이유를 갖게 되면, 생명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형들을 보면서 절망의 구름 위에 아름답고 시적인 것들이 있음을 믿고 긍정하게 되는 방식으로 새로운 윤리적 감수성을 가지고 세상과 계속해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213)



활자중독이 과했던 꼬마 시절, 리더스 다이제스트사의 "세계의 불가사의"로 기억하는 두꺼운 백과사전에서 얻은 정보가 이후 세계관에 영향을 미쳐왔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등을 예로 들며, 인간의 집합적 상상력은 자기실현적 예언력을 발휘한다는 요지로 기억한다. Sci-Fi 영화를 즐기고나서도 께름칙했던 이유는, 대다수의 영화가 암울한 인간의 미래 혹은 되돌이킬 수 없는 대절멸을 기정사실화하고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빈곤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대로 미래가 회색 구름 아래 펼쳐진다면, 날개펼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보험가입도 허무하다. 사과나무 동산을 일구는 상상도 허무하다. 저출산의 기저에는이런 허무주의도 작용할까?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원제: Resilient Life: the art of living dangerously)』를 읽기 전까지는,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적 불안이 나만의 유산, 즉 꼬꼬마때 읽었던 쪼가리 정보 탓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내게는 "eye opener"가 되어준 이 소중한 정치철학서에서 공저자 브래드 에반스(Brad Evans)와 줄리언 리드(Julian Reid)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처: Julian Reid 의 Twitter   


질투날 만큼, 쿵짝이 잘맞는 공저자(본문에서는 계속 "We"라는 주어를 쓰지만, 목소리가 갈리지 않아서 마치 한 명의 학자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리드에 따르면, 인류세의 종말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과 이에 대응하는 회복력 담론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전략이라고 한다.  
 "안전"과 "경계가 확실한 공동체"이라는 자유주의 통치체제 아래의 개념은 이제 "불가피한 재앙"으로 대체되었다. 이제 불안정과 불안정은 되레 정상으로 여겨지고 주체는 그 안에서 "회복력"을 갖출것을 요구받는다. (이 '회복력(resilience)' 담론이 어찌나 급속히 보편 도그마로 작동하는지, 이제 일상의 대화에서조차 "울 아이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육아를 해야겠다"든지 하는 말을 자주 들을 지경이다)
불가피한 "전지구적 위험" 앞에서 인간은 한낱 죽음 앞에 서서 두려워하는 취약체로 전락한다. 두 저자는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회복력 담론이,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환경 담론, 허무주의와 결합하여 인간이 더 이상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회복력" 혹은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을 사회과학서, 미디어, 심지어는 육아 코칭 수업과 일상에서조차 익숙하게 들으면서도, 그 기저의 불손한 정치적 함의를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은 소심해진 주체의 몸사림과 탈정치화를 꼬집 각성시킨다다. 회복력 담론은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위험에 적응할 것인가(51쪽)"을 핵심 문제로 규정하고, 안전을 병리화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개인도 병리화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즉, 인간 본질의 이상을 꿈꾸는 시인은 되려 강제로 거대 시스템에 연결되거나 셀에 감금당한다) 게다가 "실제로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여겨지니." (34쪽) 세상의 빈자,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은 생명자격시험에서 탈락하여 방치되고 벌거벗은 존재로 전락한다.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리드는  "생태논리와 경제 논리가 맞물려 생명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역량마저 훼손하는 데 공모하는 지점"(119)을 드러낸다. "냉전 종식 직후의 자유주의 통치가 '개발 - 안전 결합'의 형태였다면, 21세기의 자유주의 통치는 '지속가능개발(sustainable development) - 회복력 결합'의 형태"(106)임을 밝힌다. 



"회복력은 거대한 비즈니스다. (143)"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덕분에 나는 익숙하다 못해 당연시 했던 개념들을 불편하게 헤쳐본다. "중년의 위기" "아이의 회복탄력성" 의 대중서적 제목이 암시하듯, 인간의 생애주기는 전 주기에 걸쳐 병리화되고 영속적 위기에 처해있다는 신호를 내보낸다. 신자유주의 통치전략 아래, 사회적 책임은 자연스럽게 개인에게 전가되고 개인은 "자기돌봄"의 기술을 내면화한다. 2018년 대한민국 사회에 유행하는 "각자도생"이나 "자기계발서"의 베스트셀러화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성공"이 곧 "정상성(nomalcy)'가 되는 사회에서, "시장의 고려사항에 맞는 특정한 종류의 주체, 열망,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교육 프로젝트"(150)에 세뇌된 우리는 과연 어떤 전복을 꿈꿀 수 있을까? 



지적 테러리스트인 두 저자는 그렇다면 21세기를 지배하는 재앙 담론의 함의를 까발리며,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난무하는 지구멸망의 시나리오가 헛되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런 대종말의 시나리오 앞에서일지라도, 우리가 "인간 존재의 자기실현적 엔드게임을 어떻게 넘어설지 말하는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220)라고 반문한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반드시 극복"(226)하고 "상상과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낸 비전이 열어준 길을 따라가고 긍정할 수 있는 주체"(276)가 되어보자고 촉구한다. 흠, 어렵다. 자크 아탈리의 『언제나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나서의 헛헛함과 살짝 겹친다. 



그럼에도 나는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무어가, "파시즘적 지구를 구성하려 하는 정치적 상상에 맞서서, 우리의 삶을 계속 변혁시켜나가자"는 촉구의 의미를 담아 쏜 화살, 즉 이 책,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에 탄복한다. 그들이 쓴 다른 책들도 차근 차근 읽어나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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