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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평점 :
나는 인간의 본성이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은, 그야말로 생 날 것. 선도 악도 아닌, 그야말로 날 것. 그런데 이사람 조르바는 바로 그 날 것인 상태의 사람같았다. 그야 말로 날 것. 원하는 대로, 가슴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 사람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보이기도 했다. 그가 하는 말을 한마디 한마디 곱씹고 있자면, 그는 현자였고, 또 한명의 붓다였다.
그의 모든 깨달음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가 스스로 몸으로 살아내면서 체득한 것이요 머리가 생각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라 몸이 체험하여 깨달은 바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정신과 육체는 각각 제갈길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였다. 사실, 난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육체와 정신의 분리란 것은 결국 인위적이고 작위적은 구분이 아닌가라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적 활동과 육체적 활동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야말로 그에 반박하는 논리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머릿 속에서 생각하는 것은 즉시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공상을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사실, 공상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가 그만큼 현실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상은 얼마나 현실에 충실하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공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했다.
"조르바야, 뭐하고 있느냐?"
"밥먹고 있다"
"그래, 그럼 열심히 잘먹어라"
"조르바야, 뭘 하고 있느냐?"
"일하고 있다."
"그래, 그럼 열심히 일해라"
"조르바야, 지금 뭐하고 있냐?"
"키스하고 있다"
"그래, 그럼 아무 생각도 하지말고 그것만 열심히 해라"
아, 정말 온몸에 전율이 흐르게하는 대화가 아닌가! 정말이지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나는 살았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어떤 점에선 니체가 말한 초인인 것이다. 정말 저게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경의를 표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바로 초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화자는 글쓴이 자신이다. 호메로스와 니체와 붓다를 배우고 글을 쓰는 니코스 카잔차스키 바로 그 자신이다. 조르바는 그를 두목이라 부른다. 종이를 5만 톤이나 씹어먹은 두목이라 부른다. 그에 비하자면, 조르바는 정말 하찮다. 5톤, 아니 500g의 종이도 씹어넘겨본 적이 없고, 수중엔 일원 한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신의 돈도 아닌 것을 여자에게 갖다 바친다. 정말이지 거의 인간 쓰레기라 불러도 할말이 없는 사람이다. 뭐, 사실 그렇다. 그를 대한민국에 데려다 놓으면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지하철에서 노숙자로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에비해 글쓴이는 어떤가. 부와 명예를 한몸에 누리고 있는 대작가가 아닌가. 어딜가도 추앙 받을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지 않았는가.
하지만, 부러워하는 쪽은 조르바 쪽이 아니라 글쓴이 쪽이다. 조르바는 글쓴이의 지식과 부를 전혀 부러워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책만 좀먹고 살아가는 그를 답답하게 생각한다. 자신 안에 살아있는 수많은 악마 가운데-악마가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단 한마리에게도 귀를 귀울이지 않는 그를 답답하다못해 불쌍하다고 느낀다. 사실 나도 그랬다. 글쓴이는 불쌍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그가 답답하고 불쌍했으며 비겁하다고 느꼈다. 바다를 알고, 붓다를 알고, 악마를 알고, 그것에 대항해 싸우고, 대지를 느끼면 뭐하는가. 그로인해 변하지 않는 것을. 아무리 그래봤자, 마을 사람들의 뭇매에 죽어가는 과부를 위해 몸을 던지지도 못하는 것을. 몸을 던져 보호하려 했던 쪽은 그가 아닌 조르바 쪽이었던 것을.
그래서, 글쓴이는 조르바를 부러워했고 그렇게 사랑했던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사랑하고, 그여자 모르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그러고 돌아와서 그 여자의 바람대로 그 여자와 결혼하고, 그 여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러고나서 일에 몰두하는 그를.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흥이 나면 춤을 추고 웃어대는 그를. 그래서 나도 그를 사랑했다. 글쓴이 만큼이나 그를 사랑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할수만 있다면 나도 그를 곁에 두고 싶었다. 묻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도, 조르바가 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인줄 알았다. 그런 인간은 실재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조르바는 실존 인물이란다. 살아있는 인간이란다. 인간이 그럴 수도 있었다. 오 하느님, 이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