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 - 마이 페이보릿 시퀀스
이민주(무궁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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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물음표를 느꼈다.

나의 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던가..

단언컨데 수도 없이 많았지 않았나 싶다.


이불킥을 하고 싶을만큼 부끄러웠던 순간.

눈물나게 행복했던 순간.

다시 없는 기회를 잡아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던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줬던 뼈아픈 말한마디를 던졌던 순간.

정지버튼을 누른다음 되돌리기를 하여 다시 한번 그 기쁨과 영광을 느끼고 싶다거나

다시 지우고 새로 쓰기를 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책을 읽기도 전에

제목을 읽는 순간 영사기를 돌리듯 드르륵 그 순간들이 돌아간다.


무궁화라는 필명으로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민주 작가의

에세이는 그녀가 영화를 보고 마음에 남았던 장면들과 명언들을 작가가 살아왔던

짧고도 긴 인생의 여러 장면들에 대비하여 서술하고 있다.


에세이에는 26편의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개중에는 내가 본 영화도 있고 제목마저 생소한 영화도 있다.

본 영화는 본대로 공감이 되고, 미처 보지못한 영화는 못본대로 이민주 작가의 글을 읽으며

영화의 한 장면이 사진처럼 또렷하게 그려졌다.


 

 

따뜻한 우롱차 한 잔 같은 어른- 벌새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영화가 개봉되고 각종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자주 소개 되었던 영화 벌새는

성장기 청소년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흔들리는 청소년 시기..아무데도 기댈데 없는 그 시기에 내 마음을 알아주고 믿어주고

따뜻한 격려 한마디 건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면

위태했던 사춘기 시절을 좀 더 안전하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눈을 맞춰주고 말 한 마디만 해주면 충분할 때가 있다.

사춘기의 우리를 잡아주는 건 작은 온기가 담긴 손길이다.


나는 운좋게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나의 사춘기 시절은 나에게 촛점을 맞춰주신 부모님덕분에

크게 흔들림없이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사정없이 흔들리며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며 그들의 한기서린 가슴을 녹여줄

따뜻한 우롱차 한 잔 같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변화라는 마술-바그다드 까페(1987)

이 영화는 몇번을 보려다 못보고 저번달에서야 무료영화 코너에서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에 보게된 영화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별볼일 없게 보이는 모텔겸 주유소,

까페이기도 한 '바그다드 까페'

영화 배경부터 어찌나 황량한지 처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내 마음에는 모래로

서걱거리기 시작했다.

까페의 여사장 브렌다는 그녀의 삶이 너무 팍팍하여 여유라고는 1도 없다.

그래서 모텔 투수객인 야스민의 친절과 배려에 오히려 예민하게 굴며 화를 낸다.

그런데 그런 까칠한 브렌다를 보며 나도 한때를 보는듯 하여 오히려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내가 인생의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기를 걷고 있었을때 친구들의 관심은 나에게

자격지심이 되어 패배감과 부담감으로 친구들을 멀리하였다.

연락을 피하고 숨어지내듯 했던 나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기다려줬던 친구들을 최근에 다시

만났다. 이제서야 털어놓게 된 나의 과거 이야기를 자기 일인냥 안타까워하며

함께 눈물흘려주는 친구들을 보며 나의 뾰족했던 그때 그날들이 다시 떠올리며 브렌다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영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얘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던 영화.


 

 

소유라는 단어는 물건에만 붙일 것- 그녀(2014)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영화중에 인간인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사만다의 감정적 교류를

다룬 문제작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지쳐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테오도르는 맞춤형

인공지능 운영체재 '사만다'를 구입하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그녀'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는

테오도르는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들..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듯하여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함께 느꼈던 영화였다.

사랑뿐 아니라 타인과 인연을 맺는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방이

내게 오롯이 집중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자신 외에도 그녀가 8,316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중이고 그중 641명의 사람과

사랑하는 중이라는 사만다의 말에 테오도르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녀를 떠나게 되고 아내 캐서린에게 진짜 감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게 된다.

우리들은 이 영화를 통해 나에게만 집중하지 못하는 연인에게 받은 상처를 곱씹게 된다.

관계의 끝에서 우리는 end가 아닌 and에 집중해야 한다.



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 ..이 에세이는 인생을 살아가며 겪었던 일들은

영화를 통해 공감하며 지나온 순간들을 다시 살펴보며 더 나은 나를 위해 반성도 하고

위로도 받으며 더욱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책이다.

우리의 인생은 정지버튼을 누를 순 없지만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다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겼을때 다시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나를 살펴보는 책이기도 했다.

 


이 책에 소개된 26편의 영화를 기회가 되면 차근히 정주행하고 싶어진다.

차근히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며

나를 단련시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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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일 - 출근, 독립, 취향 그리고 연애
손혜진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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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자기 기준대로 느끼는 것 같다.

청소년 요금제에서 성인 요금으로 바뀌는 순간, 바라던 직장에 입사하여 첫 월급을 받는 순간,

독립하여 원룸의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결혼하여 첫아아의 건강한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등등.. 최소한 인생에 있어서 무언가 묵직함과

무엇으로도 표현 못할 진한 감동을 받을 때 내가 어른이 되었나 싶을때가 있다.

그 순간의 감정 또한 사람마다 다르겠지.

성취감, 긴장감, 불안감 또 어떤 감정이 있을까..


이 책은 글쓰기 좋아하는 손혜진 작가가 단단한 어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여기저기 부딪히며 손으로 적어내려간 에세이다.

무작정 세련되고 달달한 에세이가 아니라 김치찌개, 된장국 맛이 나는 리얼하게 솔직한

에세이다.  작가의 나이는 짐작하기 어려우나 30대 전후반을 달리는 이 시대의 젊은 여성들이

읽으면 꽤나 공감할 내용들이 많을 것이다.


출근 - 나를 먹여 살리는 일

독립 - 내 살림을 챙기는 일

취향 -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

연애 - 나를 반짝반짝하게 하는 일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다.

출근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을때가 있었지. 간절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구하던 그때

합격되었으니 출근하시라는 그 전화에 세상을 다 가진듯 벅찰때가 있었다.

출근은 출근일뿐 그날 이후로 퇴사를 꿈꾸고 있는 건 나뿐만일까..


부모님의 원조와 간섭을 피해 처음으로 독립을 했을때

청소,빨래,음식쓰레기 처리등의 잡다한 집안일부터 귀찮은 공과금 납부까지

내손을 거쳐야 했고, 소홀히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난장판이 되기 십상이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취미 생활을 하고, 그 취미에 돈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때 내가 왠지 대단한 사람이 된듯 느껴질때가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목요일 글쓰기 모임에도 나가보기도 하고

김밥을 좋아하고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며 자신의 취향이 정확하고

고집있게 취향을 지킨다. 자기 주장 또렷한 요즘 젊은 사람들의 특성이다.

연애.. 하고는 싶지만 자신은 없고, 기회가 널린듯하지만 나한테만 그런건지

좀체 알콩한 연애를 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소개팅만 예순번쯤 해보고

결혼을 믿어보기도 하지만 혼자할 수 없는 연애는 최고 난재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와 연애, 수많은 인간관계가 버겁고 어제같은 오늘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내일을 희망해보며 좋아하는 글쓰기로 출렁이는 감정도 다 잡아보고,

연애를 대신해보기도 하며 자기만의 색깔을 내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오늘을 응원해본다.

꾸밈없고, 솔직하다보니 조금은 덜 다듬어진 투박한 에세이를 읽는듯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리얼 생생한 느낌이 훨씬 더 임팩트가 큰 편이라

애써꾸미지 않은 작가의 털털함(?)이 좋게 느껴졌다.

 

 

 

어른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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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나는 산책길
공서연.한민숙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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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나는 산책길..


평소 별 생각없이 지나다니던 길이 알고 보니 단종이 영월로 귀양을 떠날때 정순왕후가

배웅을 나와 이별을 한 '영도교'였다거나..

덕수궁 돌담 길을 팔짱끼고 데이트할때 걸었는데 알고보니 그 길이

고종이 세자 척도와 함께 혹독한 겨울 새벽에 궁녀로 변장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던 아관파천때의

길로 '왕의 길'이라고 불린다든가..

이런 저런 내막을 알게되면 그때부터 단순한 길이 아니고 단순한 건물이 아니게 된다.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였던 서울은 영광스럽게 빛나는 조선의 역사를 지나

수치스럽고 암울한 일본의 침략기라는 근현대를 건너서

현대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이 지금의 발전된 모습으로 남기까지 500여년의 오랜 역사를 품고 있으니

서울의 곳처가 역사적인 유물로써 사적,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는게 사실 이상하지 않다.


경국지색의 미모의 여인을 아내로 두고 살고 있는 남편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내의 미모도

익숙해진 나머지 자각도 못할 때가 올것이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네의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곳이

사실은 역사적 의미와 유서가 깊은 유적이라는 것도 모르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 일것이다.


이 책은 고층빌딜과 아파트만 빽빽한듯한 서울이 사실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를 알려준다.

크게 4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서울의 역사적인 장소로 우리를 안내한다.

파리가 부럽지 않은 역사도시 편에서는 서울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역과

계동1번지 중앙고등학교, 혜화동 대한의원, 서울 시립미술과,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별길

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 강점기때 일본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보니

한국인들에게는 나라잃은 슬픔과 아픔이 묻어 있어 읽고 있자니 가슴이 한켠이 아려오고 뻐근해진다.

하지만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잊지말고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말자 라는 의미로 삼으며 

건물자체의 미적가치만을 두고 평가한다면 충분히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는 곳이라 생각된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처연한 왕의 길 편에서는 정조 능행자, 강화도령 철종의 추억길,

왕이어서 불행했던 고종의 정동길, 피난길로 바뀐 하늘재, 영녕릉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강화도령이라고 불린 철종과 첫사랑 봉이가 처음 만나 사랑을 속삭인 청하동 약수터에서

강화산성 남장대를 지나 숲길을 걸어 찬우물 약수터까지.. 그 길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찬찬히 걸어보고 싶어진다.

뜻하지 않게 왕이되어 첫사랑을 두번다시는 만나지 못한채 정적들만 가득한 궁에서 쓸쓸히 사라져간

왕이었던 철종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 편에서는 철강골목 문래동, 요즘 핫플레이스인 익선동,

인쇄골목의 화려한 변신 을지로, 사람 냄새나는 재래시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저런 일로 비교적 익선동에 발걸음을 자주하게 된다.

레트로 열풍으로 익선동이 젊은 층에게 각광받는 핫한 지역이 되어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떠밀려다닐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이 익선동은 경성부(서울)의 인원이 급격히 증가하자 총독부가 일본인들이 주거지역을 청계천 북쪽으로

넓히고자 하였고 이를 막기위해 정세권, 김종량등의 우리 건설업자들이 민간주택 건설 사업에

진출에 일본인들이 북촌지역으로 주거지를 확장하는 것을 막았다한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하마트면 한옥보다 적산가옥이 더 많이 남아 있을뻔했다. 이들이 개발한

지역이 익선동이다. 부자들의 북촌 한옥과 다르게 보급형 한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익선동의 한옥들은 크기가 모두 작았구나)

내가 자주 가는 지역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되니 구불구불 좁은 그 골목들이 더욱 애틋해질듯하다


우리의 자유로운 삶이 있기까지 편에서는 남한산성, 독립을 꿈꾼 열여덟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

경교장, 장사리,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근대사를 지나 근현대사, 그리고 현대사까지의

역사적 흔적을 찾아 걷는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꽃같은 어린 나이의 소녀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모진 고문을 받다 출소 이틀전에 순국하고 만다.

사인은 정확치 않으나 모진 고문으로 인한 방광과 자궁파열이라고 하니

일제의 고문이 얼마나 가혹하였는지 생각만으로 치가 떨리는듯 하다.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 숨을 거둔 대공분실..한때 온 국민을 거리로 나가

군부독재타도를 외치게했던 대공분실.

민주화를 위해 맞서 싸운 그분들의 외침은 일제에 맞서는 독립만세를 외쳤던

수 많은 독립투자들의 외침과 닮아있다.

이 책은 발품을 팔지 않으면 결코 알수 없는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발 한발 내 발로 걸으면서 영광과 기쁨, 슬픔과 아픔, 쓸쓸함과 허망했던

역사적 흔적을 찾아 떠나는 산책길이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부족했던 역사적 지식과 상식을 보탤 수 있었고

다양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 우리의 역사를 곱씹으며 기억할 것은 반드시

기억하고 보전할것은 잘 보존하여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해주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다 보니 바깥 나들이가 쉽지 않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어느 좋은 날, 이 책을 옆에 끼고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산책길을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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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 - 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의 자기 탐색 에세이
윤지영 지음 / 끌레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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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


최근에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자기 탐색 에세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라는


부제목이 신기했다. 교수님이 학생들과 같이 기숙사에 산다고? 엄청 불편 할텐데..뭔 일이 있었던


거지? 라는 호기심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5년여동안 흔히 보따리 장수..라고 하는 시간 강사를 지내고 부산의 사립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중이다. 마흔을 넘긴 미혼의 여자 교수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세련되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이며, 자기애가 강하다라는 게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또 다시 편견의 늪에 빠진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만나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니 일단 편견을 바닥에 깔아둔다고 하더라도 근데 왜 기숙사에서 살고 있지? 라는 의문을


털어내지 못했다.


작가는 마흔이 되던 해 연구년을 맞아 작가는 집을 처분하고 쓸만한 짐들만 추려서 연구실에 구겨넣고


1년간 해외를 다니며 세상을 구경하며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매 순간 희열과 실패의 두 추가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함을 느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얽매인 것이 없기 때문이겠지.


다시 되돌아온 작가는 대학의 게스트 룸에서 미니멀라이프를 몸소 실천하며 그녀는 기숙사의 작은 방에서


무릎 담요를 덮고 덧버신을 신은 채 붉은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기숙사 앞 마당엔 온갖 꽃나무들이 있어서 봄이면 꽃들의 향연을 매일 즐길 수 있다. 조용히 글을


쓰거니 일을 해야 할 때는 학교 연구실로 가면 된다.


젊음이 쏟아지는 대학 교정에서 자고 일어나고 일하며 생활하는 작가의 삶이 어느 한군데 모자라거나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구속 없이 조금 쓸쓸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녀의


처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선택으로 우리네 삶을 짓는다.


비혼 주의의 삶도, 돌아올 집도 남겨두지 않고 훌쩍 외국으로 떠났던 일도, 대학 기숙사에서 글을 쓰며


지내는 것도..작가의 삶이 나와 닮지 않았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다르다고해서 수근수근 할 수 없다.


각자 원하는 모양새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가면 되는 것이니까..


이 책에는 그녀의 지나온 삶들이 기록되어져 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가슴 아픈 이별, 내 피붙이 가족들의 이야기, 조금은 어수룩한 그녀의 일상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었다. 꺼내놓기 어려워 꽁꽁 묶어서 가슴 속에 숨겨두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을텐데, 조용조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모든 걸 필터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 보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작가라는 명찰을


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내 일 같아서 더 애처로웠던 작가의 삶을 응원하며


쉽고 멋지게 글을 써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길 권한다.


내가 읽은 수 많은 책 중에 이렇게 맛깔스럽고 입에 착착 감기는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는 드물었다.


한줄 한줄 새겨가며 읽다보면 그녀의 직업이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구나 라는 것이 문득 떠오를


정도다. 자기 과시나 자기 비하에 빠진 흔해빠진 에세이와 다른 발랄하고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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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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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와 옷에 자라는 균류, 머리카락과 옷, 신발에 묻은 꽃가루와 포자를 조사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체를 옮기고 파 묻는 과정에서 용의자의 부츠에 박힌 꽃가루를 통해 누가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았는지를 알려줄 수도 있다.

콧속 작은 알갱이를 통해 그 사람이 산채로 묻혔는지,

아니면 목이 졸리는 동안 땅위에서 어떤 입자를 들이마셨는지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연은 우리의 온몸에, 몸의 안과 밖에 흔적과 단서를 남긴다.


법의학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퍼트리샤 월트셔의 "꽃은 알고 있다"라는 책은

위의 글로 요약이 가능하다.

퍼트리샤 월트셔살인, 강간, 납치등 수십년간 쌓아온 지식으로 식물의 씨앗과 꽃가루등이 남긴 흔적으로

살인자를 찾아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사람의

누명을 벗기고, 진짜 범인들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여 죄값을 치루게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지식의 힘인것이다.


처음 살인 현장에 나타난 식물학자를 수사관들은 우습게 여겼다. 강력 사건에 식물학자라니..

뜬금 없다 생각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식물들이 준 꽃가루, 포자, 미세입자등의 단서들을

퍼즐을 맞추듯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짜 맞추며 놀랍도록 정확한 '장소 그림'을 완성한다.

 결과 남자친구에게 목졸라 살해된 젊은 여성 조엔의 시체를 숲속에서 찾아냈었다.

나는 심장이 벌컥거리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처럼 25년간 강력 사건 현장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그녀였지만 사실 처음부터 법의학자를 꿈꾸지 않았다.

젊었을때 병원에서 의학 실험실 연구원으로 일했던 그녀는 좀더 여자다운 일을 찾아보라는 남자친구의

핀잔에 20대의 그녀는 코카콜라 본사에서 일을 하였고 건축회사에서 평범한 일을 하였다.

그러던 그녀는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식물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런던 대학교 고고학연구소에 부임하여,

환경고고학자로써 영국 전역을 다니며 환경을 연구하는 일을 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그녀를 뜻하지 않은 법의학의 세계로 들어서게 했다.


범인의 차량에 묻은 옥수수 가루를 조사해 달라는 형사의 전화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범죄 현장에

뛰어들게 되었고 그녀의 나이 50대에 들어선 중년이었다.

인생이란 그렇듯 그녀는 예고 없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 하게 된다.

사실 불과 수십년전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범인에게 접근하진 못했던 걸로

알고 있다.

많은 경험이 있는 경찰관들의 직관과 눈에 보이는 증거들로 범인은 단정하고 증거품들을 제대로

유지하거나 보관하지 못해 미해결로 남아 있는 강력 사건들이 많이 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범인조차 밝혀지지 않는 사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는 유전자 감식으로 과거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단서들도 쉽게 찾아내는 것을 보면

과학의 발전에 새삼스럽게 고마움을 느낀다.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식물학도 이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사건을 명확히

재구성하여 범인을 잡는데 크게 기여를 하게 되었으니 경이로운 일이 아닐수 없다.

자연이 주는 힌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칫 범할 수 있는 오류를 없애기 위해

사건에 집중하고 또 집중하는 그녀의 자세에 감탄과 존경이 우러러 나온다.


최근 한국 사회에 지독히도 잔인하고 끔찍한 살인 사건들로 사람들의 충격에 빠트리는 사건들이

있었다. 프로파일러가 투여되고 법의학자들이 동원되어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흐트러져있던

단서들을 찾아 일목요연하게 사건들을 정리하는 것을 뉴스나 다큐를 통해서 보게 된다.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신뢰와 존경이다.

법의학의 여왕이라 불리는 퍼트리샤 월트셔 또한 50대에 법의학에 뛰어들어 70대의 나이에도

왕성히 활동하며 300여건의 강력 범죄 사건을 해결하며 초기 법의생태학의 토대를 닦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다.

나이에 굴하지 않고 지식의 나누며 고령에도 자신의 길을 꿋꿋히 걷고 있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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