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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갔어야 했다 ㅣ 쏜살 문고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시나리오와 소설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두 세계가 자연스레 눈앞에 펼쳐졌다. 해를 가하는 귀신이나 범죄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읽는 내내 섬뜩하고 오싹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나고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각과 각의 합은 어긋나고 뒤틀린다. 유리창에 비친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만이 사라진 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린 그 벌어진 틈 속에서 현실에 대한 강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가. 지금의 내가 보는 내 모습은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정말 이곳에 제대로 존재하는 것일까. 다니엘 켈만이 풀어내는 공간지각 미스터리는 현대인들의 복잡한 삶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누구보다 잘 나타내고 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나’와 함께 숨죽이며 공포에 떨기도 했고 미세한 소리에 집중하며 어긋난 부분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정신없이 발버둥 치며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뛰어다니기도 했고 결국엔 그 자리 그대로 돌아온 것에 대해 허무함을 느끼기도 오싹함을 느끼기도 했다.
처음 읽을 때 문장 사이에 걸렸던 “가버려”란 글자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 의미가 확실해지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처음 이 책을 받아 보았을 때 제목 사이에 희미하게 숨어 있던 “가버려”란 글자와 기록한 기억도 없는데 수첩 곳곳에 써진 “가 버려”란 글자가 누군가가(내가) 긴박한 상황에서 보낸 간절한 메시지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그땐 우리 모두 늦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서 가, 가 버려.
읽을 때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내심 궁금했는데, 막상 결말에 다다르니 여전히 책을 ‘읽는 중’인 것 같다. 책을 덮고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 인상 깊게 읽은 이 책 덕분에 다니엘 켈만의 전작들도 하나씩 읽어나갈 생각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